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50)
이 3세는 악역입니다-349화(350/390)
349화.
아빠와 엄마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맞붙었다.
저러다 정말로 한 판 붙을 기세라 나는 얼른 소리쳤다.
“그러면……!”
그제야 두 사람이 나를 쳐다보았다.
“식사를 한 다음에 가는 게 어떨까요?”
식사도 하고, 가기도 하자.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엄마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빠는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곧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으로 가지.”
아빠의 말에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호 중인 귀족들, 몬테규 가문, 조카들까지 데리고 있는 주제에 식당이라.”
“해서.”
“그렇지 않아도 출생과 메시아라는 것이 밝혀져 곤란한 질문을 받을 텐데, 아예 회견장을 마련해주지 그래?”
“자리를 피하면 더욱 시끄럽게 떠들겠지. 어디까지 비약할지 모르니, 이쪽에서 확실히 정리해주는 것이 낫겠지.”
“확실히 정리해준다고 그대로 믿을 성싶으냐? 사람을 그리 겪고도 모르는군.”
두 사람이 또 싸우기 시작해서 나는 눈알을 바쁘게 굴렸다.
삼 형제도 칼만 안 들었지, 전투를 벌이는 것 같은 두 사람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테, 테라스!”
내가 또 한 번 소리친 후에야 두 사람이 날 쳐다봤다.
난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는 테라스에서 따로 식사해요. 손님들에겐 따로 설명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면 어떨까요……?”
“…….”
“…….”
두 사람이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손님방을 내어드릴게요. 갈아입을 옷을 드릴 테니 준비가 되시면 하인을 보내겠습니다.”
“…….”
“안 될…… 까요……?”
“……방이 어디니.”
내 얼굴이 밝아지자, 세 오라버니들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는 얼른 하이디를 호출해 엄마에게 방을 내어주라 명했다.
* * *
한 시간쯤 후에 난 엄마에게 내준 방의 문을 두드렸다.
“에릴로트예요.”
“기다려라.”
그런데 이상했다. 한참이나 입실을 허락하는 말이 들려오지 않은 것이다.
뭐지?
‘설마 누가 침입했나?!’
엄마가 그리미에를 그렇게 배신했으니, 약이 바짝 오른 그 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있던 엄마가 급히 드레스 자락을 내렸다.
“아직 입실을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뭐예요?”
“별일 아냐. 식사가 준비된 거니?”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일으키려 했다.
나는 급히 엄마의 치맛자락을 들치었다.
“……!”
다리가 온통 새카맸다.
피멍이 잔뜩인 것은 물론, 사람의 살이 맞나 싶은 정도로 짓물러 있었다.
“이게 무슨…….”
“별일 아니라지 않아.”
“그리미에와 달리아가 사용하던 저주의 결계 때문인 거죠?”
“…….”
“가호만 내줬던 게 아닌 거예요? 아, 그래. 평범한 가호석과는 달랐어. 담아준 게 아니라 궁주님의 힘을 끌어 쓰고 있던 거야…….”
“…….”
저주의 가호는 다른 가호보다 까다롭다.
다른 가호도 한계를 넘으면 생명력을 가호의 에너지원인 마력(혹은 신성력)으로 변환하는 등의 위험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가호를 사용하지 않으면 더는 위험이 없지.
그러나 저주의 가호는 다르다.
한계를 넘으면 시전자에게 역으로 영향을 미치니까.
그것을 카운터라고 부른다.
“카운터죠? 카운터가 온 거예요, 그렇죠?!”
“…….”
왜 카운터가 올 정도로 힘을 사용했단 말인가…….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그리미에를 도와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신뢰를 얻어야 하는 이유는 뻔했다.
“……절 지키려고 그런 거죠.”
“내 이득을 위해서야.”
“엄마가 그리미에에게 얻어낼 게 뭐가 있어요. 내 일이 아니라면 이득을 얻을 일 따위 없잖아요.”
엄마는 침묵했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이렇게 되었으니 설명해야겠구나.”
“말씀하세요.”
“그리미에는 제가 사용한 힘이 저주의 결계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달라. 난 그와 달리아에게 어떤 저주를 심어뒀다. 필시 전쟁에 도움이 되겠지.”
엄마는 진지한 투로 저주에 관하여 설명했다.
“……해서 그 저주는 그리미에와 달리아의—”
“저는 그런 설명을 바란 게 아니에요.”
“……뭐?”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일어났다.
“식사는 아빠와 하세요. 당분간 궁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요.”
“에릴로트…….”
“하이디, 당분간 궁주님을 전담하렴.”
“예, 아가씨.”
나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에릴로트! 얘야!”
엄마가 불렀으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 * *
에릴로트가 잔뜩 화가 나서 방을 빠져나간 후, 벨트리는 굳은 얼굴로 라온트라에서 데려온 시종들에게 물었다.
“에릴로트는 어찌 화가 난 것이냐.”
시종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귀족들의 앞에서 달리아 팔로스토를 감싸고 친딸이신 에릴로트 님을 외면한 게 서운하신 게 아니겠습니까?”
“예. 내심 대단한 이유가 있을 줄로 예상하셨는데 생각보다 별것 아닌 이유라 더욱 섭섭하셨을 것입니다.”
“겨우 황족이란 것이 밝혀졌건만 궁주님의 몸에 이상이 있으니 미래가 어둡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벨트리가 힐끗 하이디를 쳐다보았다.
“그런 것이냐?”
“예?”
“나는 내 손으로 키우지 못해 저 아이의 성향을 그리 잘 알지 못하지. 너는 나보다 오래 아이를 봐왔을 테니 심중을 헤아릴 수 있을 게 아니냐.”
“그건…….”
하이디가 어색하게 웃었다.
‘눈치가 빠른 분인 것 같았는데, 왜 모르실까.’
라온트라의 시종들이 말했다.
“천한 것이 감히 에릴로트 님의 심중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궁주님.”
하이디는 깨달았다.
‘주변에 온통 이런 놈들뿐이라 인간애에 대해 잘 모르실 만도 하겠구만.’
하기야, 라온트라는 아스트라보다 더 가족의 정이 없는 곳이라고 하니까.
‘어쨌든 쉽게 말해줄 순 없지.’
“저는 전혀, 조금도 모르겠습니다, 궁주님!”
혹시라도 아가씨께서 저 인간미 없는 라온트라로 가게 둘 수는 없었으므로.
마침 통신석이 깜빡였다.
“식사가 준비된 모양입니다. 테라스로 모시겠습니다.”
벨트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에릴로트가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면서.
데이몬드의 서재 테라스.
테라스의 테이블엔 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커트러리 세트는 6벌이 놓여있었다.
데이몬드, 벨트리, 삼 형제와 에릴로트의 몫이었다.
그러나 에릴로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테이블 밑으로 요슈아의 다리를 툭 친 발자크가 속삭였다.
“에릴로트는?”
“입맛이 없다던데.”
“……왜?”
묵묵히 식사하는 벨트리를 힐끗 쳐다본 리시먼드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벨로스터 님과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발자크가 중얼거리던 찰나, 데이몬드가 입을 열었다.
“잘하는 짓이군.”
벨트리는 데이몬드를 노려보았다.
“닥쳐.”
“대체 딸의 마음을 얼마나 상하게 했으면 이런 날 식사마저 거부하느냔 말이다.”
“그 입을 찢어줘야겠어?”
“무슨 짓을 한 거야?”
“…….”
벨트리가 입을 다물었다.
데이몬드는 연한 고기를 나이프로 베어내며 말했다.
“잘 됐군. 지금 에릴로트에게 누구 따라가겠느냐고 물으면 고민 없이 아비를 택하겠어.”
벨트리는 데이몬드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이내 포크와 나이프를 탁, 내려놓고는 접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난 그저 저주에 관해 설명했을 뿐이야…….”
요슈아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주라니요?”
“내 가호를 통해 그리미에와 달리아에게 심어둔 것이다. 전쟁 중에 필경 도움이 되겠지.”
발자크는 턱을 괸 채로 물었다.
“도움이 될 일인데 왜 에릴로트가 화가 난 겁니까?”
“카운터로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보았지. 어찌 된 것이냐고 묻기에 저주에 관해 설명했다. 한데 화가 났더군.”
“…….”
“…….”
“…….”
삼 형제가 침묵했고 데이몬드는 허, 실소를 흘렸다.
“설마 그 애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어?”
“카운터로 몸이 저주에 잠식당하긴 했으나 이 정도면 큰 부상은 아니야.”
“그래서.”
“걱정할 만큼 대단한 게 아니지. 이 정도 대가로 그리미에에게 폭탄을 안겨두었으니 이득이다.”
“…….”
“무엇보다 자식을 위해 이 정도 위험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그게 어미란 말이냐.”
“……리시먼드, 발자크, 요슈아.”
기가 찬 얼굴로 묻던 데이몬드는 이젠 아예 벨트리를 외면하고, 자식들을 바라봤다.
“혹여라도 에릴로트를 라온트라에 빼앗기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거든 버려라.”
“……예. 조금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발자크가 콧방귀를 뀌었고 요슈아는 달콤하게 웃었으며, 리시먼드까지 시선을 돌렸다.
벨트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바보 취급을 당했다는 것은 알겠기에.
* * *
그날 밤.
나는 싸늘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잔뜩 열이 받으셨군.]나와 통신 중이던 알렉시스가 픽 웃었다.
“답답해 죽겠어.”
엄마는 종일 내 눈치를 봤다.
어디서 구했는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살구 파이를 들고 와서는
“저…….”
하고 우물쭈물했다.
“왜요?”
“……네가 좋아한다기에. 잔느라는 네 호위가 그러더군.”
“좋아해요.”
“아. 그럼 먹겠니?”
“아니요.”
“그래…….”
좋아한다는 말엔 얼굴이 확, 밝아졌다가 아니라고 하자 시무룩해졌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보며 히죽 웃었다.
“에릴로트는 밤엔 과자를 먹지 않아. 밤에 밀가루가 든 음식을 먹으면 다음 날 속이 쓰리다고 했거든.”
“…….”
“에릴로트, 살구 절임이 더 좋겠지?”
“……싫어요.”
“……왜?”
“에잇, 전부 안 먹을래요!”
나를 더 잘 안다고 엄마에게 자랑하던 아빠도 금세 풀이 죽었다.
[정확히 뭐에 화가 난 건데.]“너도 모르겠어?”
[네 어머니가 너 때문에 그만한 저주를 받았다는 것에 1차로 화가 난 건 알겠다.]“그래!”
[걱정돼서, 너를 위한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게 슬퍼서 화가 났겠지.]“맞아.”
[거기에 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화가 났겠고.]“……거기까진 말하지 않아도 돼.”
서류라도 보고 있는 건지 통신석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먼저 이해해볼 생각은?]“뭐?”
[네 어머니의 삶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내줘야 한다’는 게 당연하잖아.]“…….”
[널 지키기 위해, 버려야 했지. 궁주로 복귀하기 위해, 적통 황족인 것을 숨겨야 했고.]“적통?”
[황태후께서 말씀해주시더군. 네 어머니는 라온트라 황후에게서 태어났어. 황제와 황후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후계를 거래 삼았기에 네 어머니가 적통이란 것을 숨겼다고 해.]“…….”
[또 황실에 돌아가기 위해서 네 아버지를 놓아야 했잖아.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상실했고.]“그건…….”
[해서, 저주에 당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 널 지키기 위해서.]“알고 있지만…….”
나는 고개를 수그렸다.
알렉시스가 말했다.
[너는?]“뭐?”
[만약 네 어머니와 같은 상황이 온다면, 넌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을 건가.]“……아니.”
웅얼거리던 나는 금세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난 미안하게 여겨.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아. 왜 본인의 희생만 당연해? 나도…….”
[그래, 너도 네 어머니를 지키고 싶겠지.]“너, 왜 말 잘해? 씨…….”
알렉시스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넌 왜 날 그렇게 잘 아는 거야.”
[매일 네 생각을 하니까.]“당당하게 고백하네.”
[내 마음에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나는 쿠션을 끌어안으며 웃었다.
“좋아, 더 당당해 봐.”
[네가 보고 싶어.]“오, 저돌적인데.”
[가끔 네가 이럴 때마다 열 받고.]“더 해봐, 더!”
[지금 입 맞추고 싶어.]나는 큼, 헛기침했다.
“그, 나도, 뭐, 네가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
중얼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통신을 확, 종료했다.
아빠인가? 오빠들?
“누, 누구세요?”
“……나다.”
엄마의 목소리였다.
나는 쿠션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세요?”
“날이 차기에 몸을 데울 수 있을 만한 걸 가져왔어…….”
“…….”
“내 양모가 자주 타주던 차인데 혹시 너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 문은 열어주지 않아도 돼…….”
“…….”
“두고 갈 테니 마셔줄래……? 취향이 아니라면 손에 쥐고만 있어도 되는—”
우물쭈물하는 말이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문을 열었다.
엄마가 흠칫해서 나를 쳐다봤다.
“그게 뭔데요?”
“생강 벌꿀차야.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이맘때면 자주 해주셨지…… 저, 들어가도 되겠니?”
내가 빤히 쳐다보자 엄마는 움찔했다.
“불편하면 됐고……. 그, 네가 화가 난 이유를 생각해보았어. 내 짐작이 맞는지 들어주겠니?”
엄마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웅얼거렸다.
내가 듣던 엄마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평민으로 정체를 숨기고 살 때도 누구에게나 당당하고, 매몰찰 만큼 냉정한 사람이라고 했다.
벨로스터 궁주로 복귀했을 땐 뛰어난 능력과 정이 없는 면 때문에 그 누구도 쉽게 말을 붙이지 못했단다.
라온트라를 넘어 타국 사람들에게까지 동경의 대상이면서 곁을 조금도 내주지 않는 철인이라고도 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엄마는 매우 어수룩해 보였다.
혹시라도 내게 미움을 살까봐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
“싫으면 편지를 보낼게……. 답장은 보내지 않아도 돼. 읽어주기만 해도—”
“엄마.”
“……!”
엄마가 흠칫, 날 쳐다봤다.
“어, 그, 그래.”
“들어오세요.”
엄마가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쟁반이 떨어질 뻔했다.
대체 어떻게 이제껏 마음을 숨겼을까.
내가 엄마라고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감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그때였다.
“저기, 저희도……!”
크로노트 회의 수호자들이었다.
저들도 내가 나와줄 때까지 한참 기다린 모양이었다.
나는 싸늘하게 말했다.
“싫어.”
누가 너희 들어오래?
수호자들이 시무룩 어깨를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