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56)
이 3세는 악역입니다-355화(356/390)
355화.
* * *
‘……뽀뽀나 하자고 말하긴 했지만요.’
나는 끙, 신음하며 알렉시스의 얼굴을 밀었다.
“그만, 그만.”
“왜.”
“왜긴 왜야…….”
이 짐승아.
뺨이고, 입술이고 퉁퉁 부르트겠다.
알렉시스는 씩 웃더니 내 코에 가볍게 입 맞추고 떨어졌다.
‘아씨…… 귀여워.’
그렇게 생각하던 난 흠칫했다.
남자가 귀여워 보이면 끝이라던데, 진짜 큰일 난 거 아니야?
나는 알렉시스의 가슴팍을 확 떠밀었다.
“안 되겠어.”
“뭘.”
“당분간 금지.”
“왜!”
“금지.”
“…….”
알렉시스는 시무룩해졌다.
꼭 비 맞은 강아지처럼 귀와 꼬리가 축 처진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귀여…… 그만.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연애에나 빠져있어선 안 되지. 살바토레와의 전투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황군이 위거스 산을 넘을 예정이다.”
위거스 산이라면 살바토레의 진지 코앞이다.
‘살바토레 쪽도 밀릴 대로 밀렸다는 소리군.’
“전투로 끝?”
내가 묻자 알렉시스는 실소를 흘렸다.
“하여간에 눈치는. 그래, 우리가 대화를 요청했어.”
그랬겠지.
살바토레는 절벽까지 몰려 있었다.
계속된 패배로 군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터.
알렉시스와 공작군이 이렇게 우세한 이상 귀족들은 변절하지 않을 거다.
결국 원군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믿고 있던 나도 전혀 연락을 받지 않으니까.
살바토레도 내 뜻을 눈치채고 더 이상 연락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적당히 하고 백기 투항하라 조언할 수 있지.’
황궁으로써도 더 큰 피해 없이 살바토레와 적군 주축들의 목으로 상황을 끝내고 싶을 것이다.
“살바토레는? 응하겠대?”
“아직 연락은 없어. 숙고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리미에만 끝내면 된다는 소리다.
숨을 크게 내쉰 나는 살짝 열려 있는 방문을 두드렸다.
“그렇다는데! 이제 일 좀 할까?!”
소리치자 방 안에 있던 마리와 아퀼라가 흠칫했다.
한겨울이 되었는데 저쪽만 꽃이 피어있구만.
아퀼라는 염려 어린 얼굴로 마리를 살폈고, 마리는 새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퀼라가 헛기침하며 나왔다.
“병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자주 와서 마리를 살펴도 돼.”
“감사합니다.”
아퀼라가 돌아가고 난 알렉시스에게 말했다.
“아빠를 불러줄래? 난 마리와 할 말이 남아서.”
“그래.”
알렉시스까지 내보낸 후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마리를 쳐다봤다.
“그러다 얼굴 터지겠다.”
한껏 능글맞게 놀리니 마리가 파닥파닥 손 부채질을 하며 휙, 고개를 돌렸다.
“좀…… 놀랐을 뿐, 이거든?”
“그렇게 삐걱거리면서?”
“죽는다?”
나는 킥킥 웃으면서 침대 옆에 앉았다.
“아퀼라 많이 컸지?”
“……원래도 나보다 훨씬 크긴 했어.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아퀼라가 나를 대하는 게 뭔가 좀…….”
“바뀌었다고?”
“……그래.”
나는 협탁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 이불 위에 올려놨다.
노트를 본 마리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이, 이거—!”
“일기장은 잘 관리했어야지.”
“너, 너, 너 이 계집애……!!”
마리는 난리였다.
몸을 들썩거리다가, 노트를 던지려고 하다가, 노트는 위험할 것 같았는지 베개를 내던졌다.
나는 깔깔 웃으며 양손으로 베개를 막았다.
“아하하핫! 내가 찾은 거 아니야! 아하핫!”
“그럼!”
“잔느가 아퀼라한테 네 짐을 맡겼단 말이야. 거기서 찾았나 봐. 나도 봐야 할 것 같다면서 가져왔어.”
마리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으윽…….” 신음했다.
부끄럽기도 할 것이다.
아퀼라를 향한 절절한 마음, 그러나 동생인 마사의 미래를 위해 못되게 굴 수밖에 없던 것이 다 적혀 있었으니까.
나를 향한 우정조차도.
나는 침대에 팔꿈치를 받치고 턱을 괴었다.
“내가 그렇게 좋은 친구야?”
“시끄러워!”
“날 위해서라면 목숨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했으면서. 죽기 전에 그런 친구를 만난 게 네 인생에 있어 가장 감사한 일이라고 했잖아.”
“닥쳐! 닥치라고—!”
마리는 옆에 있던 베개까지 들고 나를 팡팡 두들겼다.
얼마나 새빨간지 이러다 정말로 펑, 터질 것 같았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못살아! 버렸는데, 분명히 버리고 갔는데 어떻게 잔느 님께서……!”
“실수로 소각장에 둔 줄 알았다잖아.”
“아아, 정말……!”
“그래서 다행이야.”
“……뭐?”
“이렇게 귀한 마음을 나와 아퀼라가 알게 되어서.”
“…….”
“그런데 난 그렇게 좋은 친구가 아니야, 마리. 너한테 또 심한 부탁을 해야 하거든.”
내가 쓰게 웃자,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마리는 이내 미소 지었다.
“그래. 해.”
“뭔지 묻지도 않고?”
“네 부탁이라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겠지.”
나는 마리의 손을 양손으로 꽉 잡았다.
“네 안에 고대 몬스터가 있어.”
“고대 몬스터?”
“아빠의 힘으로 너와 몬스터를 분해해서 죽여야 해. 그래야 내 금제가 풀리고, 그래야만 그리미에를 끝낼 수 있어.”
마리가 흠칫한 동시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때마침 아빠가 온 것이다.
“들어오세요.”
내 말에 아빠가 방으로 들어와 침대 맡에 꿇어앉았다.
“주인님!”
마리가 얼른 “이러지 마세요.” 하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아빠가 우리의 손 위로 커다란 손을 덮었다.
“가족은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으나 친구는 다르지.”
“…….”
“너희는 수많은 사람 중에 서로를 알아보고 선택했어. 진실로 신의를 다했고, 마음 깊이 서로를 위하니 스스로 선택한 가족이다.”
“…….”
“내 딸의 가족은 나에게도 가족이야.”
“…….”
“약속하마. 어느 한 곳 상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네게서 삿된 존재만을 지우겠다.”
마리의 눈이 글썽였다.
그 애가 고개를 수그린 채로 조그맣게 “예. ……예, 주인님.” 하고 대답했다.
나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았다.
“역시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져. 그렇지, 마리?”
“으응…….”
아빠는 다정히 웃으며 나와 마리의 손을 잡았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전투지로 발을 옮길 순간이었다.
* * *
옥사.
마사는 오들오들 떨며 무릎을 끌어안았다.
“추, 추워.”
“…….”
“…….”
경비병들은 그런 마사를 힐끗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마사가 울컥 소리쳤다.
“춥다니까! 내 말이 안 들려?!”
“얼어 죽지는 말라고 모포를 내줬잖아!”
“지푸라기로 엮은 게 무슨 모포야!”
마사가 창살을 쥔 채로 고함을 내질렀다.
“아무리 옥사에 갇혔다지만 난 아스트라의 핏줄이야! 이렇게 대우했다간 나중에—”
“그럴 일은 없어.”
낯설면서도 어딘가 한구석은 익숙하게 느껴지는 묘한 목소리였다.
마사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갈색 머리와 청안.
훌쩍 컸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언니?”
마리는 경비병에게 목에 건 브로치를 내보였다.
아스트라의 직계의 것임을 증명하는 까마귀 브로치.
브로치 줄에 엮인 듯 세공된 장미 덩굴을 보자마자 경비병들이 허리를 수그렸다.
까마귀와 장미.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상징으로, 이것을 내줬다는 건 총애의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죄인과 대화할 시간이 필요하네.”
“예, 예.”
경비병들이 옥사를 나서고, 마리는 마사의 앞에 바로 섰다.
“어, 언니,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여기에 있어? 응? 아니, 그보다 나를 좀 풀어줘. 춥고, 배고프고, 힘들어 죽겠어. 언니……!”
“……잠들기 전에 그런 꿈을 꿨어.”
“얘기는 나중에 하고 나부터—”
“나이가 들면 바뀌지 않을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말이야.”
마리는 묘한 표정으로 마사를 바라보았다.
마사가 움찔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사람은 모두 환상을 바라보며 살잖아. 위대한 권력자가 되는 것, 호화로운 집, 가득 쌓인 재물……. 하지만 선을 넘진 않아.”
“뭐?”
“그러니까 너도 언젠가는 자랄 거라 생각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면 난 널 용서하고, 우린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꿈을 꿨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마사의 표정이 표독해졌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몇 년 만에 만나서도 날 탓해.”
“왜 그리미에의 손을 잡았니.”
“내 아버지니까.”
“사실 아니란 걸 알았잖아.”
“무슨 헛소리야! 내가 그걸 어떻게—”
“어릴 때 엄마가 너를 혼낼 때마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했던 걸 잊었어?”
“…….”
“엄마의 무릎 위에서 갓난아이 때 본 게 고작이지만 아빠가 기억난다고, 아빠의 외모를 말하며 사랑받았잖아.”
“…….”
“난 기억나. 네가 ‘우리 아빠는 털보예요. 그렇지요? 덩치가 이렇게 크고요. 나무를 했어요.’ 말하던 것.”
“…….”
한참 대답하지 못하던 마사가 이를 악물었다.
“털북숭이가 우리 아빤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었더라고. 그리미에가 내 진짜…….”
“거짓말!”
마리가 고함을 내질렀다.
마사는 잔뜩 굳어져서 마른침만을 겨우 삼켰다.
“난 기억해. 고작 너덧 살 때였지만. 나를 잡고 네가 그랬어.”
“……아니야. 언니의 기억이 틀려.”
“‘엄마는 언니를 좋아하지 않나 봐. 언니의 아빠가 떠올라서 언니가 미운 거야.’ —그렇게.”
“아니라고!”
“넌 다 알고 있었어—!”
“…….”
“에릴로트에게 들었어. 그 애가 네게 ‘넌 그리미에의 딸이 아니다’라고 하자 생각보다 쉽게 납득했다고.”
“…….”
“처음부터 짐작했기 때문이지? 스스로조차 속이고 있었던 거잖아.”
“……아니야.”
“그런데도 넌 그리미에의 손을 잡았어.”
“아니라니까!”
마리가 눈을 꽉 감았다.
“그럼 물을게. 왜 날 찾지 않았니?”
“그건, 그러니까, 그, 그건…… 아! 나, 난 추측하고 있었어. 언니가 제물이라고 하니까 에릴로트와 언니 사이에서 불행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그, 그래서—”
“내가 없어야 네가 완벽한 그리미에의 딸이 될 수 있으니까.”
“……!”
“네가 그리미에의 딸이 아니라, 나무꾼의 딸이라는 걸 내가 말할까 봐.”
마사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입을 틀어막은 마사가 비틀거리며 물러나자 마리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런데 마사, 그리미에는 전부 알고 있어. 네가 친딸이 아니란 것 말이야.”
“…….”
“그런데도 네가 필요했던 건, 네가 엄마의 딸이기 때문이야. 이공간을 오가는 몬스터와 결합된 모체. 그 모체가 낳은 딸.”
“……몬스터?”
“우리 안에 고대 몬스터 <교만>이 있어. 우리도 인공 마물과 똑같은 존재야.”
마사가 흠칫 철창을 잡았다.
“무슨 소리야?”
“에릴로트가 모든 조사를 끝냈어. <교만>이 개체 하나 남지 않고 사라진 이유를 말이야.”
“그게 무슨…….”
“<교만>은 이공간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독을 타고난 몬스터. 그 독이 스스로를 죽인다고 했어.”
“……어?”
<교만>의 수명은 10년~12년.
마리가 점점 몸 상태가 악화된 이유가 그것이었다.
몬스터의 수명에 다다랐기에.
동생인 마사가 건강한 건, 언니인 마리가 <교만>의 대부분을 이어받고 마사에게 물려진 부분은 크지 않기 때문이었다.
“에릴로트가 그랬어. 그래도 너 또한 <교만>의 일부를 물려받았으니 수명이 길지 않을 거라고.”
“무, 무슨…… 그게 무슨……!”
“고작해야 20년, 30년이라고 했지.”
“어, 언니, 그럼 난…… 그러면 난……!”
“점점 교만의 독이 피부 위로 나타날 거야. 피부가 과거의 나처럼 짓무르고, 걸을 때마다 바늘이 찌르는 느낌이겠지.”
“언니—!”
그리미에가 이후를 걱정하지 않고, 달리아에게 모든 힘을 몰아준 이유가 그것이었다.
만약 마리의 몸이었다면, 개조를 통해 수명을 10년쯤은 늘렸겠지만 마사는 그 또한 필요 없었다.
피차 전쟁이 끝나면 그리미에가 원하는 만큼만 살다가 죽을 테니.
“어, 어떡해? 그래서 나 어떻게 해야 해? 언니가 살아있는 걸 보면 에릴로트가 뭘 해준 거지? 그렇지?”
마사가 철창 밖으로 손을 뻗으며 애원했다.
“나, 나도 구해줘. 응? 날 구해줘, 언니!”
“난 널 구하지 않을 거야.”
“언니?”
“네 욕심의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마리가 몸을 돌렸다.
마사가 살려달라며 고함을 내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안녕, 마사.”
이제 정말 인사를 고할 때였다.
* * *
옥사에 갔던 마리가 돌아왔다.
하녀들의 도움을 받아 갑주를 차고 있던 난 마리를 쳐다봤다.
“어떻게 됐어?”
“……인사하고 왔어.”
무슨 뜻인지 알겠다.
자매의 연을 끝내고 왔다는 소리겠지.
나는 마리의 뺨을 매만졌다.
“아퀼라에게 인사하고 와. 이제 출전할 거니까.”
“살바토레와 전투?”
“응.”
“결국 항복하지 않았구나.”
마리의 표정이 어두웠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지마. 우린 후방 지원이거든. 나중에 공을 나눌 때 할 말이 많아야 하니까 군사만 내주는 척하는 거지!”
내가 부러 밝게 얘기하니 마리가 빙그레 웃었다.
“나도 오늘부터 주인님과 실험에 들어갈 거야. 카인로드 님께서도 돕기로 하셨어. 그리고…….”
“어어, 들었어. 테드도 온다지?”
“응.”
나는 양주먹을 가볍게 쥐며 “으쌰!” 소리쳤다.
“다 이겨먹고 올게!”
소리치니, 하녀들과 마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아가씨—!”
콘라드와 한지혁이 방문을 거칠게 열며 뛰어들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뭐야?”
“그게…….”
콘라드가 사색이 된 얼굴로 이마를 잡았다.
“뭐냐니까!”
한지혁이 대신 대답했다.
“그리미에의 공격입니다.”
“어디?”
“……아스트라.”
“뭐?”
“방어선이 무너졌고, 그리미에는 공작성으로 진격 중입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