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58)
이 3세는 악역입니다-357화(358/390)
357화.
유리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만해, 에릴로트.”
바란 왕국 브리크트 공작가의 헤반 또한 미간을 좁히며 동조했다.
“너무하잖아.”
“뭐가. 내 나라와 내 혈족의 목숨으로 내 인생을 저당 잡겠다는 이 자식이?”
“…….”
“…….”
두 사람이 조용해졌다.
“묻잖아. 등 뒤에 몬스터 떼를 두고 내 인생을 거래하자는 이 자식이 너무한 거냐고.”
라온의 눈썹이 까딱 올라갔다.
“네 나라와 집안의 불행은 내가 아사르 같은 보물을 내줘야 할 이유가 될 수 없지.”
“맞아. 동시에 네가 날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네게 미안해할 이유가 없고.”
“…….”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말한다.”
나와 라온의 시선이 맹렬하게 부딪쳤다.
“아사르를 거래하고 싶어. 내가 내줄 수 있는 확실한 것은 내 인생이 아니라, 재물이야.”
“협박이군.”
“협박은 이런 상황에서 내 인생을 달라던 네가 한 짓이고.”
나는 탁, 그의 멱살을 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시간이 없어. 거래를 할 지 말지 빠르게 선택해.”
“……유리.”
라온의 말에 유리가 흠칫했다.
“예, 형님.”
“아사르를 내줘.”
유리와 헤반이 흠칫했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는 건?”
묻자 라온의 입매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가볍게 허리를 굽혀 나와 시선을 마주한 그가 속삭였다.
“남자일 수 있는 기회. 약속은 꼭 지켜.”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라온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유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리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는데, 그것을 본 난 깜짝 놀랐다.
“이게 뭐야?”
“아사르.”
“……깜찍한 짓을 했네, 유리.”
지난번에 난 유리에게서 아사르의 제작 방법을 얻었다.
정확히 말하면 설계도가 아니라, 아사르의 제작 힌트였지만.
카인로드 같은 천재가 골몰해도 완벽하게 바란 왕국의 아사르를 구현할 수 없더라니.
‘접근법 자체가 잘못됐던 거네.’
아사르는 물건이 아니었다.
“몬스터잖아, 이거.”
유리의 품에서 튀어나온 건 작은 박쥐형의 몬스터였다.
아마도 필시…….
“고대 몬스터 <기만>의 화석을 매개로 초음파를 사용하는 박쥐형의 몬스터와 융합했지.”
그래, 나의 ‘나나’가 바로 고대 몬스터 기만이었다.
‘잠깐, 내게는 나나가 있으니까 아사르보다 빠르게 에너지를 변환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난 한지혁에게 ‘아사르’를 건네고 말했다.
“이 아사르와 나나를 데리고 카인로드 숙부에게 가. 이 몬스터가 아사르라는 것을 안다면 숙부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낼 거야.”
“너…… 가 아니라, 아가씨는요?”
“난 공작성을 지킬 거야.”
“……최대한 빠르게 돌아올 겁니다.”
“응.”
한지혁을 귀빈들과 섞어서 내보냈다.
이제 그는 이동의 가호석을 이용하여 황도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라온을 떠밀었다.
“아사르는 고맙게 받을 테니까 넌 가.”
“약속을 지키려거든 네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
“그래.”
나는 귀빈들을 모두 내보내고 복도를 달렸다.
계단을 통해서 할아버지의 집무실로 갈 생각이었다.
창밖을 바라보자 아웬이 인공 마수와 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저 비행형 몬스터는 다른 인공 마수들과 다르다.’
날개와 부리, 갈퀴가 있고 눈에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뿐 인간과 유사하다.
다른 인공 마수들이 몬스터와 더 유사한 것을 생각하면 정반대였다.
‘저게 <벤투스>인가.’
카인로드의 조카인 테드가 말한 ‘인공 마수의 진화형’.
과연 엄청난 수의 인공 마수가 융합된 만큼 무시무시한 힘이다.
고대 몬스터급의 크림슨 구울인 아웬이 밀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심지어 늪요정이며, 자이언트 타란툴라, 그림자 몬스터가 지원 중인데도.
‘빨리 쉬게 해줘야 해.’
나는 더욱 속도를 높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할아버지의 집무실이었다.
쾅!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거대한 금좌에 앉은 할아버지와 그 밑에 몇몇 가신이 보였다.
“아가씨!’
할아버지 곁에 있던 드뷔시 자작이 소리쳤다.
나는 얼른 금좌 가까이로 달려갔다.
“어서 가세요. 결계가 뚫렸어요. 마탑에서 속히 복구할 테지만 위험한—”
“집주인이 집을 두고 어딜 간단 말이냐.”
할아버지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바닥에 낮게 깔렸다.
드뷔시 자작이 한숨을 삼켰고, 가신들은 시끄럽게 내게 토로했다.
“계속 이러십니다.”
“어찌합니까, 아가씨……!”
나는 가신들에게 말했다.
“먼저 가세요. 할아버지를 모시고 갈게요.”
“하지만—”
“가요.”
“…….”
가신들이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 문가에 다가갔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드뷔시 자작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금좌가 있는 단상 위에 올라가 할아버지의 팔을 끌어당겼다.
“가세요, 네?”
“너는 가신들을 이끌고 성을 나서라.”
“여기서 어쩌시려고요! 아스트라 군사는 최소한의 방비 인원을 두고 모두 황도에 있어요!”
그리미에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 땅을 노리리라고 생각했겠는가.
격전은 황도 인근에서 벌어지리라 예상했다.
엄청난 수의 인공 마수를 대적하기 위해 대부분의 군사를 황도로 올려보낸 상태다.
그러니 아스트라의 경비가 허무하게 뚫린 것이다.
아무리 끌어당겨도 할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할아버지!”
소리쳤을 때, 할아버지가 내 손등 위에 커다란 손을 올렸다.
“그리미에가 황도가 아닌 아스트라를 노린다면 목표는 나다. 이 금좌가 그 녀석 욕망의 종착지인 것이야.”
“그러니까 빨리……!”
“내가 이동하면 그리미에의 병력이 나를 쫓을 것이야.”
“네?”
“그리미에의 모든 병력이 공작성에 집결하였을 때가 기회다. 황도 집결해 있는 우리 군을 이끌고 그 녀석을 쳐라.”
“……미끼가 되시겠다고요?”
“황군이나, 타 가문의 병력으론 안 돼. 아스트라를 지켰다는 핑계로 그들이 무엇을 요구할지 알 수 없다.”
“…….”
“우리 군사로 장원을 지켜야 한다.”
“……그럼 할아버지는요?”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어깨를 잡았다.
“이러한 때를 위해 있는 것이 적오기의 계승자다.”
나와 똑 닮았다는 붉은 눈동자가 불꽃처럼 일렁였다.
“내가 네게 주는 마지막 임무다.”
“…….”
“명하겠다.”
“…….”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적오기의 계승자를 도와 이 장원을 수호하고, 무사히 자라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기필코 행복하라.”
순간, 기억들이 떠올랐다.
“큼, 어흠! 커흠!”
“에릴로트.”
“할애비가 잘못했다!”
온몸의 피가 발끝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시, 싫어요.”
나는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 혼자서 외롭게 가게 두지 않을 거야.”
“에릴로트.”
“왜 이래요! 왜 그러냐고!”
“…….”
“계속 고약한 노인이어야지! 어려운 명만 내리는 나쁜 할아범이어야지! 날 외면하고 외롭게 자라게 한 나쁜 할아버지여야지! 왜 이제 와서……!”
“미안해.”
“……!”
할아버지가 희미하게 웃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못난 할애비라, 이렇게밖에 혈육을 지키지 못해서.”
“……싫다고요.”
할아버지가 헝클어진 내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부디 너는 나와 같이 살지 마라. 사랑스러울 땐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안고 싶을 땐 안으며, 표현하고 싶을 땐 표현해.”
“……할아버지.”
“가라.”
드뷔시 자작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황급히 자작을 쳐다봤다.
“이거 놔요. 싫어요!”
“외롭게 가게 두지 않을 겁니다.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싫다고! 놔!”
“플란크.”
자작이 나를 가신에게 떠밀었다.
가신들이 나를 둘러메고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거 놔! 할아버지를 데려갈 거야! 싫단 말이야!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가씨, 제발……!”
“놔! 놔아—! 이 나쁜 늙은이야! 이렇게 가는 게 어디 있어! 이러는 게 어딨어! 싫어! 할아버지! 할아버지—!”
열린 문 안으로 날 보며 다정하게 눈을 휘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이제야 보였다.
멍청하게 지금에서야 알았다.
내 등 뒤에서 그가 얼마나 다정히 날 봐왔는지.
저 주름진 손으로 얼마나 필사적으로 장원을 지켜온 건지.
손주가 사랑스럽다고 느껴도 말하지도, 껴안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노인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는데…….
챙—!!
할아버지가 있는 방으로 창문을 깨고 몬스터가 들이닥쳤다.
드뷔시 자작이 몬스터를 향해 뛰어들었고, 할아버지가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선혈이 튀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복도의 코너를 돌았다.
“할아버지……!”
목놓아 소리치며.
* * *
크로노스 아스트라가 눈을 떴을 땐 사방이 고요했다.
손끝에서 진득한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의식을 잃은 드뷔시 자작이 널브러져 있었다. 금세라도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운 상태였다.
상태가 위험한 것은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미에의 몬스터에 의해 붙잡힌 직후, 몇 번인지 모를 끔찍한 고문이 이어졌다.
한쪽 눈은 이미 보이지 않고, 팔다리 또한 움직이지 않는다.
피에 절어 숨을 쉴 때마다 쇳내가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
가까스로 물었을 때, 정면에서 인영이 흔들렸다.
창밖은 이미 어두웠다.
유난히 큰 달만이 사방을 밝히는 유일한 빛이었다.
정면의 의자에서 일어난 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림자 속에 묻혀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꼴이…….”
그의 입매가 기괴하게 비틀렸다.
“꼴이 어쩌다 이리되셨습니까, 아버님.”
“……그리미에.”
하하, 낮게 웃은 그가 크로노스를 내려다보았다.
“밤입니다. 공작성 습격부터 하면, 어디 보자, 여섯 시간쯤 지났군요.”
“오래도…… 버티고 있군.”
“예. 늙은 몸이 고신을 이만큼이나 버티는 건은 예상외였습니다.”
“아니, 너 말이다.”
피투성이가 되어 벽에 기대있던 크로노스가 킬킬 웃었다.
그리미에는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제가 말입니까?”
“그래…… 슬슬 도망가고 싶을 텐데.”
“도망이라……. 주인이 금좌를 두고 어디에 간단 말씀이십니까.”
“일주일이면…… 연합군이 당도할 것이다…….”
“…….”
“황도로 간…… 내 군사들 또한…… 들이닥치겠지.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지 않느냐.”
그리미에가 픽, 실소를 흘렸다.
“글쎄요. 겁이 있는 편은 아니라. 그리 키우지 않으셨습니까?”
“40년이다. 40년을 널 보았어…… 네 생각보다 난 널…… 잘 알아…….”
그리미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입매를 비튼 그가 천천히 무릎을 굽혀 크로노스와 시선을 마주했다.
부친의 턱을 쥔 그리미에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고신이 시원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직 주둥이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
“…….”
“세상을 호령하던 분께서 어찌 이리되셨습니까. 나이가 드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요.”
“…….”
“판단력을 상실해서 종국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되니.”
크로노스의 턱에서 손을 놓자, 기사 하나가 그리미에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손수건으로 손마디에 묻은 피를 닦던 그리미에는 힐끗 크로노스를 바라보았다.
“선대의 보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선대 아스트라 공작은 무수한 인체 실험으로 끔찍하고도 사특한 것들을 수없이 발명했다.
그중 하나가 <혼의 성배>.
수호성의 힘을 강화하는 마도구로,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수호성의 힘을 수백 배 끌어 올릴 수 있을 터였다.
<복제>의 가호를 강화하여 인공 마수를 백만 대군으로 만드는 것.
또한, 이노락스의 힘을 강화하여 제사장과 같은 힘을 손에 넣는 것.
그것이 이번 아스트라 습격의 목적이었다.
“선대의 오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뭐야.”
크로노스가 킬킬 웃자, 그리미에는 울컥 그의 목을 쥐었다.
“쉽게 가지요.”
“끄으……!”
“더 이상의 고통 없이 단숨에 가길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털어놓는 것이 좋을 겁니다.”
“크흐…….”
“예, 아버지? <혼의 성배>는 어디에 있습니까.”
손에서 힘을 풀었을 때였다.
퉷!
크로노스는 그리미에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정신 나간 늙은이가……!”
그리미에가 크로노스의 머리채를 쥐고 벽에 처박자, 쿵! 소리와 함께 크로노스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크로노스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리미에가 손을 내밀자, 기사가 검을 가져왔다.
새파랗게 빛나는 검날이 크로노스의 목전에 들어왔다.
“다시 묻지요. 성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데이몬드였지…….”
“뭐?”
“네 눈에서 이따금…… 선대를 봤거든…….”
“그따위 이유로 내가 아닌 데이몬드를 적오기의 계승자로 결정했다고?”
“아무리…… 감춰도 썩은 내는 풍기는 법이다…….”
“크로노스 아스트라—!”
크로노스가 검날을 쥐고 칼 끝을 목에 붙였다.
“데이몬드를 선택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감히…….”
“혼백만이 남더라도 난 끊임없이 말할 것이야.”
“…….”
“데이몬드 아스트라를 이 아스트라의 주인으로 명한다.”
“이—!!”
그리미에의 눈에 핏발이 섰다.
새카맣게 일렁이는 눈이 광기에 물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리미에가 크로노스를 노려보았다.
“예, 그리도 원하시니 저승으로 보내드리지요.”
“…….”
“피차 성은 내 것이 되었으니, 연합군이 도착하기 전까진 성배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미에가 검의 손잡이를 말아쥐었다.
“그럼 안녕히.”
크로노스는 눈을 감았다.
돌이켜보면 그리 좋은 삶은 아니었다.
자식, 손주마저 맘 편히 안아주지 못했던 삶.
선대의 장난감이 되어 온 몸이 찢어발겨지고,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몸으로 살아왔다.
혹여 금수만도 못한 이 손이 독이 되어 전해질까 그 누구에게도 손을 뻗지 못했다.
그렇게 죽겠구나 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네가 내게 와주었어.’
가장 싸늘하게 외면했던 네가 손을 내밀어주었다.
너를 안아봤으니 됐어.
이제 한은 없어.
너는 잘해낼 테니까.
그러니까…….
크로노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
“내 할아버지에게서 손 떼—!”
너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