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62)
이 3세는 악역입니다-361화(362/390)
361화.
* * *
내가 허공에 대고 말하자, 그리미에의 추적을 쫓아온 혈족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누구와 얘기하는 거야?”
“유령?”
사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쑥덕였으나, 숙부와 고모들은 흠칫했다.
“저 애, 수호성이 보이는 거야…….”
바스티나 고모가 경악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그녀의 남편인 미스트로 고모부가 입을 틀어막았다.
과연 아스트라 공작가의 2세인 만큼 수호성의 일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사촌들도 얼마쯤 뒤에 수호성의 일을 듣게 되겠지.
“무슨 저런 능력이……!”
“죽은 사람을 살린 아이다. 수호성을 보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혈족들은 물론 가신들까지 나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이노락스를 쳐다봤다.
이노락스는 잔뜩 흥분했다.
뺨에 붉은 홍조가 생기고, 몇 번이나 [응, 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미에가 어떻게 되는지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반면에 그리미에는 사색이 되었다.
“이노락스, 이 간악한 배신자……!”
난 그런 그가 웃겼다.
배신자는 무슨.
‘서로 이용만 한 것들이.’
그리미에도 이노락스를 이용해먹고 나면 버릴 준비 만반이었을 것이다.
버리기만 하면 다행이지.
그녀를 소멸시키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할 자다.
다른 사람에게 그러했듯 말이다.
리시안 숙부, 아일라 언니, 인공 마수로 만든 부하들, 그리고…….
‘첫 번째 삶의 내게 했듯.’
나는 뒷짐을 진 채로 그에게 다가갔다.
“백부님.”
말하며 허리를 굽히자, 그리미에가 흠칫 몸을 굳혔다.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 꼴인 그리미에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우스운 일이네요.”
“…….”
“내가 꼭 그 꼴로 백부님을 올려다본 적이 있었는데.”
“……뭐?”
“이제 마지막이니 알려줄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아빠와 시선을 나누었다.
아빠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의 뒤에 있던 오라버니들과 엄마 또한 눈을 감았다.
물론 다른 혈족들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난 다시 그리미에를 바라보았다.
“백부님의 계획 말이에요. 성공했어요. ……내 첫 번째 삶에서.”
그리미에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난 태어나자마자 백부님에게 금제 당했어요. 지금과 꼭 같은 금제였죠.”
“…….”
“할아버지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켰어요. 또 나를 숙부들과 고모, 사촌들에게서 지키기 위해 열두 번째 탑으로 보냈어요. 이것도 지금과 같네요.”
“…….”
“그런데 그때는 죽을 때까지 가호를 발현하지 못했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미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혈족들과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리미에의 뺨을 톡, 톡, 두드렸다.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제게 왜 이러세요, 백부님……!”
“이것이 내가 안배한 너의 운명이다.”
“네?”
“너는 내가 만들어준 길을 걸어왔구나. 실로 훌륭한 쓰레기가 되어서.”
과거의 그가 내게 그런 말을 하며 뺨을 두드렸던 것처럼.
나는 마치 노래를 부르듯 부드럽게 속삭였다.
“아빠는 내가 열두 번째 탑에서 지낼 때 전장에서 죽었어요. 당신의 저주로.”
“…….”
“보호자 없는 무능력자가 어떻게 되었겠어요? 비참한 일상이었지요.”
“…….”
“방계들에게 무시당하고, 사촌들에겐 멸시당했거든요. 열두 번째 탑에서 지낸 지 십 년 가까이 되어 겨우 본성에 돌아왔을 땐 정말 기뻤는데…….”
나는 아련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미간을 좁히고 다시 그리미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할아버지가 날 열두 번째 탑에 둔 이유가 있었던 거지. ……정말로 끔찍했어.”
“…….”
“훈련에선 수십, 수백 번 살이 찢기고 사선을 넘나들었어요. 그래도 엄마와 아빠를 닮아서 난 악바리잖아요? 공부는 죽어라 열심히 했지. 지금의 리앙틴과는 비교도 안 되게 노력했어요.”
“…….”
“그런데 노력을 해서 좋은 성적을 얻으면 더 괴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성적이 나온 날엔 식사에 벌레가 쏟아졌다.
발데릭 숙부의 아들인 조프리가 온갖 벌레를 내 그릇에 쏟아버렸으니까.
짓밟은 빵을 먹지 않으면 교실에서 내보내 주지 않았다.
겉옷을 빼앗기고 냉장창고에 갇힌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남들은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려고 제 목숨 갉아먹는 바보라고 불렀는데요. 나는 방법이 없었거든요.”
“…….”
“성적마저 나쁘면 버려질 테니까. 그러면 정말로 빵 쪼가리 하나 못 얻어먹는 삶이잖아요.”
“…….”
“괴로운 일이 기다릴 걸 알면서도 하루에 두세 시간 쪽잠을 자면서 공부해야 하는 거야.”
“…….”
“코피를 쏟고, 쓰러져서 겨우 눈을 뜨면 조프리와 애덤, 파비오가 내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요.”
애덤과 파비오가 흠칫, 나를 쳐다봤지만 난 그들에게 시선을 내주지 않았다.
“정리한 노트를 내놓으라고 때리고,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때리고, 더러운 피 주제에 감히 저희보다 좋은 성적을 받는다고 때리고…….”
애덤과 파비오는 희게 질린 얼굴이었다.
“그것뿐이게요? 숙부와 고모들은 또 얼마나 나를 싫어했는데요. 바스티나 고모는 내가 셀레네 언니보다 성적이 좋을 때면 쫓아와서 뺨을 때렸어요.”
바스티나 고모가 굳어졌다.
그녀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쟤가 무, 무슨 소리를……!” 하며 아빠에게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난 그런 적 없어요!”
“첫 번째 삶에선 그런 일이 일상이었다고요.”
나는 그리미에 앞에 쪼그려 앉아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데뷔탕트도 못했어요.”
“…….”
“사촌 언니들이 나를 다른 귀족들에게 내보이기 창피하다고 했거든요. 카라, 리지 언니는 내 데뷔탕트를 막으려고 차에 독을 탔어요.”
카라와 리지가 마른침을 삼켰다.
“리앙틴 언니는 찾아와서 말했죠. ‘제발 좀 죽어주면 안 되겠어? 그게 네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하고.”
리앙틴이 입을 틀어막고 비틀, 물러났다.
“셀레네 언니와 밀란 오라버니는…… 뭐, 나았어요. 무관심했으니까. 황도에서도 그랬지만.”
“……내가 어쨌는데?”
밀란의 말에 나는 “음.” 신음하며 말했다.
“황도 귀족들에게 말했지. ‘난 저런 사촌을 둔 적이 없습니다.’ 하고.”
“…….”
밀란과 셀레네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양손으로 턱을 괴고 그리미에를 바라봤다.
“그런 삶이었지만 희망이 있었어요. 내가 다 크면, 커서 일을 하면, 내 능력을 증명하면…… 그러면 내 지옥 같은 삶도 바뀔 거야.”
“…….”
“그런데요. 성인이 되기 전에 그 애가 나타났죠. 백부님이 만든 딸 말이에요. 달리아, 그 애.”
“…….”
“아, 나는 정말로 신이 나를 미워하는 줄로 알았어.”
“…….”
“그 애의 생일 파티에 괴한의 공격이 생기면 질투한 내 짓이라는 거예요. 디오네라 언니까지 ‘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면서 뺨을 때렸어요. 사촌들은 모두 달리아를 좋아했거든요.”
디오네라는 사색이 되어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발자크와 요슈아에게 험한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
“…….”
발자크와 요슈아가 눈을 꽉 감았다.
“달리아가 독을 먹은 것도 내 탓, 달리아가 일을 망친 것도 내 탓. 모든 게 다 내 탓이 되니까 제국의 모두가 나를 싫어했어요.”
“…….”
“전부 백부의 짓이었죠?”
그렇게 날 고립시킨 것이다.
아무도 내게 손을 내밀지 못하게.
혹여라도 내가 도망칠 구석을 만들지 않으려고.
그래야 수중에 두고 감시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흐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난 오기 하나만큼은 과연 데이몬드 아스트라와 벨로스터 라온트라의 딸이었던 것 같아요. 포기를 안 했거든.”
“…….”
“집안에서 시키면 뭐든 죽어라 노력했어요. ‘어쩌면 이 기회로 뭔가 달라질지도 몰라’라는 희망 하나로.”
“…….”
“그 희망도 당신이 깨뜨렸지만.”
난 손끝으로 그리미에의 턱을 들어 올렸다.
“당신이 그렇게 소망했던 것은 이루어졌어요. 아스트라가 망하고 이 장원에 팔로스토의 깃발이 꽂혔거든요.”
“……뭐?”
그리미에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등 뒤에 바라마지 않았던, 꿈 같은 미래가 있었다는 말에 경악했다.
나는 하하, 낮게 웃었다.
“백부님은 황제를 들쑤셔서 결국 할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했어요. 근데 너무하더라.”
“…….”
“수족처럼 부리던 숙부들과 고모들은 왜 죽였어요?”
“……!”
“뭐?!”
“그 자가 우릴 죽였단 말이냐?!”
바실레 고모가 굳어졌고, 바스티나 고모와 구스타프 숙부가 소리쳤다.
“나는 옥사에 갇혀 있어서 못 보았지만, 아마 끔찍했을걸요? 배우자와 자식들은 노예로 팔거나 인체 실험의 도구로 썼고, 2세들은 목을 성문에 걸고 백성들에게 돌을 던지게 했으니까요.”
“맙소사……!”
“이, 이 개자식이—!”
숙모들이 경악했다.
유난히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데콘스 숙부는 그리미에에게 달려들었다.
혈족들은 물론이고 가신들, 연합군조차 내 말을 믿었다.
그야 난 저들 눈앞에서 죽은 사람을 살린 사람이다.
신과 같은 능력을 가졌으니, 회귀 또한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일어나 데콘스 숙부에게 두들겨 맞는 그리미에를 내려다보았다.
“내 처지도 끔찍한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뭐. 옥사에 가둬두고 내게 온갖 실험을 했잖아요.”
“크흑…….”
“죽여달라고 애원해도 결코 죽여주지 않았어. 엄마에게 듣자 하니 날 어둠이 몰려오는 날 제물로 쓰려고 했던 것 같더라고요.”
“…….”
“하지만 난 죽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세상을 겪고 왔죠. ……내 수호성인 세일론 덕분에.”
제사장의 두 가지 이능.
사자들의 가호를 사용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인도자>.
백성의 혼을 거두고, 이공간을 오갈 수 있게 하는 지배자의 권능이었다.
“지구라는 곳이었어요. 당신이 달리아를 데려온 그곳 말이에요. 그곳에서 나와 달리아는 이부자매였지요.”
데콘스에게 멱살이 잡힌 그리미에가 눈을 홉뜬 채로 날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아빠에게 물려받은 금사 같은 머리칼이 나부꼈다.
나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곳에서도 끔찍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이런저런 것을 배웠어요.”
“……무엇을.”
“당신 같은 쓰레기를 상대하는 법, 그 쓰레기를 이기는 법!”
나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달빛이 몸의 윤곽을 따라 부서졌다.
“그렇게 죽어서 지금의 내가 되었지.”
사람들은 나를 멍하니 바라봤고,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던 기사의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스릉, 검이 차갑게 울었다.
난 검 자루를 쥔 채로 그리미에에게 다가갔다.
데콘스 숙부가 홀린 듯 자리를 비켜주었다.
“<고대어를 읽는 능력>, <마물조련> 같은 가호? 그런 건 없어.”
“뭐라고?”
“뭐, 뭣?!”
“그게 무슨……!”
혈족들이 경악했다.
“철저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단련하고, 준비했어.”
“에릴로트, 너…….”
그리미에가 이를 악물었다.
나는 하하, 소리 내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돌아간 그리미에가 내게 달려들려는 듯 땅을 짚었다.
그 때.
“……컥.”
나는 그의 복부에 검을 꽂아 넣었다.
한 차례.
또 한 차례.
또 한 차례 더…….
“이 순간을 위해서—!”
“크흐…… 끄흐…….”
“모두 너 때문이었어. 모두.”
“사,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죽어.”
“아, 아아, 아아아아—!”
“죽어, 죽어, 죽어, 죽어!”
그리미에가 복부를 쥔 채로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나는 양손으로 검을 말아쥔 채로 그를 향해 또 한 번 검을 내질렀다.
……아빠에게 가로막히지 않았더라면.
“에릴로트.”
나는 흠칫 아빠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내 뺨은 엉망으로 젖어있었다.
턱 끝까지 숨이 차고,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아빠와 시선을 마주한 순간, 힘이 빠졌다.
챙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이 나뒹굴었다.
나는 아빠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아빠…… 아빠, 나…….”
“알아.”
“나, 난 정말로 그리미에가…… 저 악마 같은 인간이…….”
“모두 알고 있어.”
아빠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로 오열했다.
“흐, 으으, 으허어엉…….”
아빠는 서럽게 우는 나를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등 뒤로 발소리가 다가왔다.
리시먼드, 발자크, 요슈아, 그리고 엄마가 아빠를 빙 둘러서 나를 감쌌다.
지독한 피로감이 몰려온 순간, 실감했다.
‘아, 끝이구나.’
그리미에와의 지독한 인연이 이제야 끝이 났음을.
그 와중에도 도망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그리미에는 사람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제 손으로 죽이고, 팔아버린 아스트라의 혈족들이었다.
* * *
아스트라 공작성의 고문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얼음주머니로 눈을 문질렀다.
눈이 퉁퉁 부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잘 떠지지도 않았다.
‘이제 좀 쉴까.’
정말로 휴식이 간절했다.
“그리미에도 잡았겠다, 가족들과 감동의 포옹도 했겠다. 이제 쉴 타이밍이잖아? 안 그래?”
“그렇지.”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발자크와 콘라드, 미켈란이 대답했다.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얼음주머니를 내려둔 채로 몸을 일으켰다.
“제발 좀 도와주라, 응?”
“이, 이 비열한 계집! 알려줬잖아! 그리미에를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게 하는 법을 알려줬는데 왜…… 꺄아아아아아악—!”
이 시끄러운 죄인은 이노락스였다.
“그래서 약속대로 현신시켜줬잖아?”
약속은 지켰다.
현신시키고 고문하려고.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인상을 찌푸렸다.
“달리아의 혼을 어떻게 불러오냐니까!”
내가 달리아는 그냥 넘어갈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