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64)
이 3세는 악역입니다-363화(364/390)
363화.
* * *
리카와 레이디들이 돌아간 후, 나는 할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했다. 오라버니들도 함께였다.
방에 들어가자 드뷔시 자작이 할아버지와 함께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자작.”
“바람이 선선한 오후지요. 차 드시겠습니까?”
“네. 아빠는요?”
“곧 오실 겁니다.”
우리는 아빠가 올 때까지 가볍게 차를 마셨다.
한담을 나누던 중에 발자크가 나를 쿡, 찌르곤 속삭였다.
“조부님 표정이 영 별로인데?”
“…….”
어떻게 좋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그런 거’라도 아들이잖아.”
아들인 그리미에에게 평생을 일궈온 장원이 짓밟혔다.
백성들이 수도 없이 목숨을 빼앗겼다.
그 자신 또한 아들에게 붙잡혀 심한 고문을 당했고, 결국 아들은…….
나는 할아버지를 힐끗 쳐다보았다.
“장원 복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함께 소풍 가요.”
“……소풍?”
할아버지가 미간을 좁히며 물어서 나는 헤헤 웃었다.
“강도 좋고, 산도 좋고, 바다도 좋아요.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풍경을 보고 오는 거예요.”
“…….”
“오락 같은 것을 해도 좋지요. 그러면 밀란 오라버니와 아론 오라버니도 끼워줘야겠다. 두 사람은 엄청나게 잘 노니까.”
“…….”
“에잇, 기분이다. 숙부와 고모들도 끼워주지요, 뭐. 사촌들도 같이 가요.”
“…….”
“봄에는 꽃나무가 예쁜 공원으로 가고, 여름엔 바다로 가는 거예요. 가을은 단풍 구경도 할 겸 산을 타면 되겠다. 겨울은 언 호수가 좋겠어요.”
“…….”
아무런 말 없이 날 빤히 쳐다보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꿇은 채로 손등에 손을 포개고 그를 올려다봤다.
“그렇게 살다 보면요. 오늘의 고통이 일기장 한 페이지에 불과한 날이 올 거예요.”
“……그러냐.”
“끔찍했던 할아버지의 유년기가 ‘그런 때도 있었지’하는 지금처럼요.”
“그래.”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일어나 할아버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더 많이 사랑할게요. 더 깊게, 더 오래, 더 절실히.”
“…….”
“할아버지의 텅 빈 부분은 제 마음으로 채워요.”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말하며.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말수가 적은 노인은 모든 표현을 이렇게 했다.
눈빛으로, 목소리로 하였다.
‘하지만 나는 다 알아.’
[어떻게 너 같은 아이가 내 곁에 와주었을까.너는 어쩌면 그리도 내 마음을 아는 것일까.
사랑한다.
사랑한다…….
—크로노스 아스트라는 그렇게 소리 없이 속삭였다.]
이처럼 <열람>의 능력이 아니더라도, 난 이제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드뷔시 자작과 오라버니들이 그런 나와 할아버지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었습…… 뭡니까.”
아빠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할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있는 나를 쳐다봤다.
오라버니들과 드뷔시 자작,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지금은 질투할 때 아니야.
“에릴로트, 이리 와라. 왜 거기—”
“아버지…….”
리시먼드가 인상을 찌푸렸고,
“상황을 좀 보셔야 할 텐데.”
요슈아가 한숨을 내쉬었으며,
“나만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니까.”
발자크가 팔짱을 끼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눈을 부릅떴고, 드뷔시 자작이 시선을 슥 돌렸다.
아빠만이 미간을 좁히고 주변을 둘러봤다.
“……뭔데.”
“아빠, 눈치 없어요.”
“……왜?”
“쉿.”
“…….”
아빠가 시무룩해졌다.
아빠까지 자리에 앉은 후, 나는 계획을 설명했다.
달리아를 데리러 가기 위해 이계로 갈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계로?”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염려되는 모양이었다.
“금제가 풀려서 제사장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아빠는 영 마뜩잖은 표정이었다.
“그리미에가 인공 마수를 그렇게나 많이 만든 이상, 어둠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건 필연이 되었어요.”
“그렇기야 합니다만…….”
드뷔시 자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미에가 어둠을 대비하여 저를 살려놨듯, 저는 어둠을 대비해서 달리아를 데려와야 해요.”
“아무리 그래도 이계라니요. 위험합니다.”
“제가 살던 곳이에요. 검은 든 사람들이 무수한 이곳보다 안전해요. 그리고…….”
나는 싸늘한 눈으로 말했다.
“욕망을 위해 우리 세계를 망가뜨린 달리아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요.”
아빠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굳이 네가 갈 필요는 없어. 다른 사람을 보내도—”
“다녀와라.”
할아버지의 말이었다.
“아버님!”
“조부님!”
아빠와 오라버니들이 못마땅한 투로 소리쳤으나 할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지켜야 할 신념이란 게 있다. 너희 모두 그 바보 같은 단어에 목숨을 건 적이 있지 않았더냐.”
“…….”
“…….”
“…….”
아빠에게 신념은 자식들이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자고 결심했던 순간이 있었다.
오라버니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신념인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기를 아깝게 여기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엔 에릴로트가 그것을 지킬 차례다.”
“가서 모든 걸 정리하고 올 거예요.”
늘 내 발목을 붙잡았던 ‘사랑받지 못한 자식’이라는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나는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 * *
며칠 후.
황도의 아스트라 저택.
“사구를 열 준비가 끝났습니다…….”
준비를 전담한 크로노트 회의 수호자들이 어두운 얼굴로 내 방을 찾았다.
통신 중이던 나는 그들을 힐끔 쳐다보고서 일어났다.
“이제 가야 해.”
[정말로 가야겠어?]알렉시스였다.
나는 통신석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살바토레, 아직 도주 중이지?”
[그래. 지난 전투로 군사의 대부분을 잃고서도.]오셀리아 황비는 지난 ‘살바토레 진지 습격전’에서 붙잡혔다.
살바토레는 그런 어머니를 두고 도주했다.
오셀리아 황비가 자신을 두고 도망치는 아들을 보며 고함을 내질렀다는 얘기가 있었다.
“어찌 나를 두고 가는 것이냐! 살바토레! 아아, 이 천벌을 받을 녀석—!!”
그러나 살바토레는 결코 돌아보지 않았단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넌 살바토레를 잡아놔. 그리고…….”
[그리고……?]“황태자가 되어 나에게 청혼해.”
마시타브바들을 비롯한 젊은 수호자들이 흠칫 나를 쳐다봤다.
표정이 엉망으로 무너져 있었다.
알렉시스는 쿡쿡 웃었다.
[받아줄 건가?]“생각해보고?”
[하여간…….]“그게 할 말의 전부야?”
[조심해서 다녀와…….]“또?”
[사랑해.]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도.”
그렇게 통신을 종료했다.
수호자들은 엉망이 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결혼하실 겁니까.”
“너희에게 말해줄 이유가 있어?”
“메시아, 그렇게 급하게 결정할 일이……!”
난 황급히 다가온 마시타브바의 동생에게서 한 걸음 멀어졌다.
“웃기고들 있네.”
“메시아…….”
“너희가 날 돕는다고 해서 내 인생에 관여할 권리가 생겼다고 여긴다면 오산이야.”
“…….”
“내 인생을 망가뜨린 대가로 돕는 거잖아?”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단지 이렇듯 얼굴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길 청하는 겁니다…….”
“결혼은 하지 않고서 말이지?”
“……사랑합니다.”
“그래, 오늘만 네 번째 고백이네. 사구로 가자.”
“저는 정말로…….”
“가자.”
“……예.”
밖으로 나가자 제르모 공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주 드나드시네요. 크로노트 회의 수호자인 걸 들키면 어쩌시려고.”
“메시아가 인세의 영웅이 되었으니 크로노트 회의 박해도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하하.”
제르모 공작이 나를 안내했다.
그는 걸으며 비 맞은 강아지 꼴이 된 젊은 수호자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게 속삭였다.
“평생 용서해주지 않으실 겁니까?”
“해주길 바라나요?”
“저야 물론…… 그렇지만 평생의 원한으로 남을 일을 했다는 것은 압니다.”
날 금제해서 무능력자로 만든 게 크로노트 회였다.
수없이 살해하려고 했고.
나는 지하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와 오라버니들, 그리고 엄마가 먼저 들어와 있었다.
난 크로노트 회를 쳐다봤다.
“내가 이곳으로 돌아오면—”
“예?”
“—그땐 원수로 여기지 않을 거야.”
“메시아……!”
헤라와 마시타브바들이 떨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들이 바닥에 새겨놓은 진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처음부터 인연을 다시 쌓자. 다만, 다른 기회는 없어.”
“예! 예, 메시아, 예!”
젊은 수호자들은 물론, 제르모 공작을 비롯한 파빌 등의 수호자들도 감격하여 눈이 젖었다.
나는 가족들을 돌아봤다.
“다녀올게요.”
엄마가 흠칫 내게 다가왔다.
“조심해서.”
“……응.”
“제발 다치지 말고…….”
“약속해요.”
“사랑한다.”
나는 배시시 웃었다.
“알아요.”
그리고 단전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세일론.’
[준비되었다.]사구의 문이 열렸다.
한지혁이 후다닥 진 안으로 뛰어들었다.
“너……!”
“혼자 보낼 수야 없지. 길을 잃어도 같이 잃자.”
“…….”
“파트너잖아?”
“……응.”
진 안으로 바람이 휘몰아친다.
온몸이 부유하는 느낌과 함께 멀리서 빛이 보였다.
그리고 곧 의식이 흐려졌다.
그렇게 다시 눈을 떴을 땐 서울이었다.
* * *
“헉!”
벌떡 일어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병실.
나, 아니, 유혜민이 죽을 때까지 지내던 병실이다.
‘뭐지?’
어떻게 된 거야?
영혼으로 지구에 와서, 쿼로스의 가호인 <현신>을 이용해 육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런데…….
‘가호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몸이 있어?’
몸을 더듬더듬 매만졌다.
병원복…….
병원복이다.
난 후다닥 협탁을 돌아봤다.
“……!”
유혜민의 몸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시간 축이 다른 서울로 넘어온 거다. 이공간의 문은 수없이 많으니까.]세일론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설마…….’
난 협탁에 아무렇게나 놓인 스마트폰을 주워들었다.
10월 5일
“아…….”
보험을 해약하기 하루 전이다.
‘유혜민이 살아있던 과거로 온 거구나.’
“잠깐, 그럼 한지혁은?”
한지혁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 한지혁의 몸으로 돌아가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죽었을 때인데.’
혹시 이공간에 남아있나?
서울까지 오지 못했나?
‘어떻게 된 거예요, 세일론!’
[확실히 이공간을 넘어왔어.]‘그런데 어디에 있냐고요!’
[글쎄. 육체가 없는 혼이니 시체 안으로 들어갔겠지. 네가 그랬듯.]그렇다면 다행이다.
한지혁은 내가 유혜민인 것도 알고,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언젠간 찾아오겠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이 병원은 주차장이 엉망인 게 말도 못 한다니까. 하여간에 너는 하필 이런 병원에 입원해서 사람을 생고생시키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병실 문안으로 들어오는 ‘유세은의 가족들’이 보였다.
엄마, 새아빠, 할머니, 그리고…… 유세은.
할머니는 오자마자 내 몫의 작은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냈다.
“아나, 우리 세은이.”
“……됐어.”
“왜?”
“안 마실래.”
“이게 별로야. 얘, 혜민아. 너 가서 음료 좀 사 와라. 아기가 이건 별로인갑다.”
……여전하네.
아니, 기억 속의 모습과 꼭 그대로였다.
세은이에게 먹이겠다고 병자인 날 심부름 시키는 것도 으레 있던 일이었다.
세은은 팔짱을 끼고 주변을 돌아봤다.
“여전히 더럽네.”
여전히?
말투가 묘했다.
게다가 내 기억과 달리 유세은은 가족들을 차갑게 대하고 있었다.
이맘때쯤엔 온갖 애교로 가족들의 혼을 쏙 빼놓았던 것 같은데.
‘설마…….’
“이런 게 귀족이 되고…… 웃기지도 않아, 정말.”
“……!!”
확실했다.
‘달리아야.’
칼소이에를 겪고 온 유세은.
저 애도 이공간을 넘어오며 시간 축이 다른 현세, 그러니까 과거로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언제 온 거지?’
몇 년 전?
아니면 몇 달 전?
며칠 전일 수도 있다.
‘떠보자.’
나는 못마땅한 투로 말했다.
“언니 병실에 와서 할 말이 그것뿐이야?”
“언니는 무슨…….”
“아이고, 세은아.”
새아빠가 세은을 말렸다.
이러다 내가 토라져서 보험금을 주지 않을까 겁이 날 것이다.
엄마도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이해해라. 사흘 전에 아프더라니 예민해.”
“사흘이요?”
새아빠는 껄껄 웃었다.
“그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우리에게도 얼마나 쌀쌀맞은지 속상해서 혼났다.”
……사흘 전에 왔구나.
‘그럼 아직 아무것도 못 했을 시기야.’
혹시 과거의 지식으로 뭐라도 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세은은 간이침대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나 며칠 여기 있을 거야.”
“왜?”
“그냥. 언니 간호도 하고. 괜찮지?”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뭘 시작하려는 거구나.’
보험을 해지하지 못하게 하려고 날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어느새 음료 하나를 동내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카드 좀 줘라.”
“카드요?”
“밥은 먹고 와야지.”
세은과 새아빠, 엄마는 익숙한 표정이었다.
병문안을 핑계로 와서 내 카드를 잔뜩 쓰고 가는 일이 빈번했으니까.
세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폰도 좀 주고.”
“폰은 왜?”
“배터리가 없어서. 왜? 싫어?”
혹시나 저희가 밥을 먹으러 간 틈에 내가 보험을 해약할까 봐 빼앗으려는 것일 터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아니.”
“얼른 줘.”
“같이 가자.”
“……의사가 너 외식해도 된대?”
“돼.”
나 이제 건강하니까.
혼에 남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사용하는 가호는 제롬의 <치유>.
순식간에 금세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과연 사자의 가호.
암도 말끔하게 치료해주는구나.
“꽃등심 먹어요. 꽃등심.”
“소? 네가 웬일로?”
할머니가 인상을 찌푸렸다.
“싫으세요?”
“우리야 좋지…….”
“그럼 가요.”
그러며 나는 새아빠와 엄마의 팔짱을 꼈다.
새아빠가 눈을 동그랗게 꼈다.
“뭐 하는 거야?”
세은은 울컥 인상을 찌푸렸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 말까요, 아빠?”
“아, 아니, 뭐…… 허허.”
“그럼 가요. 아, 그렇지. 아빠 친구분이요. 그 교수님 말이에요. 그 분도 암이라고 했던가요?”
“그렇지. 그 양반도 오늘내일 하거든.”
“한 번 뵙고 싶어요.”
사자들의 가호로 돈 좀 벌 수 있을 것 같거든.
총알을 장전하고 나면 너희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