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65)
이 3세는 악역입니다-364화(365/390)
364화.
* * *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유세은의 표정이 묘했다.
‘유혜민이 저랬던가?’ 하는 얼굴이었다.
물론 그런 적 없지.
엄마나 새아빠, 할머니에겐 하도 당한 게 많아서 얼마나 소심했는지 모른다.
팔짱을 끼는 일 같은 게 있었으려고.
하지만 유세은이 긴가민가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내 병실에 온 적이 있어야지.’
병원 냄새가 싫다고 날 밖으로 끌어내기나 했으니.
이따금 들려도 5분을 못 넘겼다.
그래서 이맘때의 나를 모르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엄마와 새아빠가 한창 보험금을 노리고 내게 잘해주던 시기다.
심지어 죽음을 앞두고 있지.
내 행동이 평소와 다를 이유는 충분했다.
우리는 병원 앞 고깃집으로 향했다.
꽃등심을 넉넉하게 시키고 육회까지 얹어주자 할머니는 입이 함지박하게 벌어졌다.
상추쌈을 입에 욱여넣으며 호들갑이었다.
“네가 웬일로 환심이냐? 하이고, 입에서 녹네, 녹아.”
난 미심쩍은 표정의 세은에게 쐐기를 박아주기로 했다.
“세은이도 왔는데 그냥 보낼 순 없잖아요.”
고기가 구워지는 족족 입에 넣던 새아빠가 나를 힐끗 쳐다봤다.
“세은이?”
“아픈 게 나쁜 것만은 아닌가 봐요. 사실 이제 나 죽는다고 하니까 보험금이 탐나서 잘해주나 싶었거든.”
“…….”
“…….”
새아빠와 할머니가 서로를 힐끗 쳐다보았다.
속내를 꼬집으니 민망하기도 할 것이다.
“그 와중에도 세은인 고생시키기 싫어서 안 끌고 오나 싶기도 하고…….”
“아유, 무슨 그런 생각을 해.”
“응. 그런데 대회 앞둔 세은이가 여기까지 와주니까 전부 내 망상이었구나 싶어.”
나는 세은의 밥공기에 고기를 올려주며 말했다.
“많이 먹어.”
“…….”
“먹고 요 앞에 자동차 대리점에 가자.”
“차?”
“아빠 차 보러. 언제까지 10년이 훌쩍 넘은 낡은 차 타고 다니실 거야. 나 가기 전에 한 대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
새아빠와 할머니의 얼굴이 단숨에 밝아졌다.
엄마마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무슨 돈이 있어서 차를…….”
“사실 모아둔 돈 좀 있어.”
세은을 비롯한 할머니, 새아빠, 심지어는 엄마까지 눈빛이 달라졌다.
“돈이 있어……?”
엄마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 일할 때 의원님 곁에서 이런저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우리 의원님 재계에 끈이 얼마나 많아요?”
“그렇지…….”
“좋은 투자처 있다는 얘기 들릴 때마다 넣어봤지. 나 얼마나 모았는지 알면 엄마 놀랄걸?”
미끼를 던지자마자 대번에 낚였다.
날 보는 표정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얼마나 있는데……?”
“서울에 집 한 채는 능히 사지.”
“그런 돈이 있는데 왜 고생만 하고 살았어.”
“할머니 말씀이 맞는 거지. 내가 지독하게 이기적이었던 거야. 돈 있다고 하면 가족들이 달라고 할까 봐 숨기고 살았어요.”
“너도 참…….”
“죽을 때가 다 돼서야 알겠네. 내가 얼마나 믿음 없이 살았는지……. 반성하고 있어요.”
할머니는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서울에 집을 살 만큼 모아놨다는 말에 잔뜩 신이 난 것일 터다.
내가 죽으면 그 돈이 온통 가족들 차지가 될 테니까.
“그래.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다. 이제야 사람 됐네.”
“아이고, 장모님도 참. 할머니가 서운해서 그러신다. 맘에 두지 마라, 응?”
“그럼요.”
나는 식사가 끝난 후 정말로 가족들을 끌고 자동차 대리점으로 향했다.
“외, 외제차인데?”
새아빠가 당황한 투로 중얼거렸다.
“좋은 차 타고, 좋은 거 먹고 다녀야 남들도 좋게 대해주는 거예요. 사업하시잖아요.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 그렇긴 하지…….”
엄마는 당황했지만, 아빠와 할머니는 신이 났다.
“아이고, 좋다. 쿠션이 침대보다 좋다.”
“요새는 핸들이 이렇게 이쁘게 나오네.”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지. 들고 말고.”
“그럼 이거로 하세요.”
“그래도 너무 비싸지 않나…… 차급을 좀 내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새아빠의 목소리가 은근했다.
말은 배려하는 척하지만, 이 차로 사줬으면 하는 속내가 여실히 느껴졌다.
“좋은 차 타고서 나 배웅해주세요. 그러면 가는 길 아쉽지 않을 것 같아.”
“아이고, 혜민아…….”
새아빠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자동차 딜러는 냉큼 서류를 가져왔다.
“시트 블랙에 이 옵션을 빼면 2주 내로 출고 가능한 차량이 있습니다.”
“어때요? 옵션 전부 넣을까요?”
“빨리 받는 게 좋지…….”
“그렇긴 한데 제가 돈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서류 처리가 오래 걸리거든요.”
나는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아빠가 먼저 입금하신 후에 제가 돈을 넣어드리면 어때요?”
“내가? 내가 그럴만한 돈이 있나…….”
“그러면 뭐…….”
그때였다.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내가 현금이 좀 있으니까 계약하자.”
“그래도 되겠어요, 엄마?”
“혜민이 저게 언제 마음 바꿀 줄 알고. 얼른 계약해야 두말 안 하지.”
나는 속으로 히죽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
여기서 현금이 있는 사람은 할머니뿐.
워낙 욕심 많은 사람이라 일단 계약하자고 생떼일 것을 예상했다.
‘물론 난 안 줄 거지만.’
예약금까지 넣자 새아빠는 꿈에 부푼 표정이었다.
다음은 엄마와 할머니였다.
백화점으로 가서 두 사람의 혼을 쏙 빼놨다.
“엄마, 그 가방 사요. 어울리네.”
“그, 그래? 하지만 너무 비싸서…….”
“언제까지 다 헌 가방을 들고 다니려고. 이 정도 해줄 수 있어요. 사세요. 아, 할머니는 이거 어때요?”
“아유, 색깔 참 곱다…….”
계산 전에 신용카드를 내줬다.
“카드 드릴게요. 계산하고 오세요. 난 다리가 아파서.”
점원이 없는 틈을 타 CCTV 사각지대에서 카드를 건넸다.
팔짱을 끼고 있던 세은이 짜증 섞인 어조로 말했다.
“다 늙은 할머니 심부름 시키겠다는 거야? 넌 어떻게 된 애가—”
“뭘 그러냐. 계산이 뭐가 어렵다고!”
세은이 흠칫했다.
“할머니.”
할머니가 처음으로 세은이 아닌 내 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아빠도 세은을 나무랐다.
“별것도 아닌데 언니 민망하게 그럴래?”
“편치 않은 몸으로 어른들 대접한다고 따라다녀 준 것만으로 얼마나 고생이야.”
세은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의자에 앉아 세은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벌써부터 흥분하면 어떡해?’
이건 시작일 뿐인데.
달리아일 적의 유세은은 ‘아버지’에 집착했다.
아마 미래에 내가 죽고 가족 사이에 불화가 있던 것이겠지.
하지만 난 확신한다.
‘네가 나 정도로 가족에게 이용당했을 리 없어.’
전처럼 마냥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가족이 변했다고 여겼겠지.
유세은은 그런 애이니.
‘그러니까 느껴봐.’
내가 평생 느껴왔던 진짜 차별을.
새아빠와 엄마는 신이 나서 가방을 결제하고 왔다.
난 그들에게 화장품, 구두, 옷, 액세서리 또한 한껏 안겨주었다.
물론 결제는 내가 CCTV 사각지대에 있는 동안 새아빠와 엄마가 하고 왔다.
……문의원의 일을 하며 받고, 두 번째 삶의 내가 반납을 깜빡 잊고 있던 법인카드로.
내가 모셨던 문상진 의원은 대한민국에서 첫손가락 안에 드는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출신이었다.
문의원은 이번 달 말에 당의 회계부서로부터 내용을 전달 받겠지.
옛 실력을 살려 얼마나 화려한 고소장이 날아올지 기대가 된다.
* * *
며칠 후.
나는 억지를 부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면 집에서 죽고 싶다는 핑계로.
“와, 우리 집 냄새.”
그렇게 말하며 웃자, 엄마와 아빠, 할머니가 하하 웃었다.
할머니는 며칠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 이것아. 평소에도 좀 찾아오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엄마가 어제 장 봤어. 너 좋아하는 순두부찌개 끓여주려고.”
“세은아, 전기장판 켜라. 언니 좀 쉬게.”
“그걸 내가 왜 해!”
새아빠는 빽 소리치는 세은을 못마땅하게 쳐다보곤, 거실에 깔린 전기장판에 스위치를 눌렀다.
나는 세은이 보란 듯이 장판에 누워서 옆자리를 두드렸다.
“뭘 힘들게 음식을 하고 그래. 사 와서 먹지 뭐. 할머니 좋아하는 참치회로 할까?”
할머니는 또 입이 함지박하게 벌어졌다.
엄마가 후후 웃으며 내 옆에 누웠다.
“그렇게 돈 써도 돼?”
“싫어?”
“우리야 좋은데 걱정돼서 그러지.”
“걱정하지 마세요. 나 돈 많아.”
그러며 휴대폰을 들며 할머니에게 보여줬다.
“가지고 싶던 이불이 이거랬나?”
“어어, 그래! 이게 거위 털이 들었는데 겁나게 따숩단다.”
“사는 김에 엄마랑 아빠 것도 사야겠다.”
돈을 펑펑 쓴 대가로 가족들은 내게 몹시 친절해졌다.
할머니와 엄마가 양옆에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는 중인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아빠도 엄마 옆에 앉으며 세은에게 말했다.
“정성일식 가서 참치회 좀 포장해와라.”
“내가 이 집 하녀야?”
“뭘 또 말을 그렇게 하고 그래.”
“그렇잖아! 당신들 몸 데우고 있을 때 나는 왜 한파를 뚫고 회 같은 걸 사러 가야 하냐고!”
“당신들?”
새아빠가 울컥 인상을 쓰자, 엄마의 표정 또한 굳어졌다.
할머니는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저, 저 말본새하곤!”
“할머니……!”
나는 어색한 척 할머니를 잡았다.
“됐어요. 제가 다녀올게요.”
“밖이 얼마나 추운데 아픈 몸으로 어딜 가. 세은이가 얼른 다녀와라.”
“그래도 미안해서…….”
“뭘. 그 전엔 네가 다 하던 일을. 동생이란 게 어찌 제 언니 반도 못 따라가.”
할머니가 신랄하게 투덜거리자 세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은에게 다가갔다.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어른들이 이렇게 배려해주신다…… 미안.”
“미안하면 병원에 드러누워 있든가.”
“유세은—!”
새아빠가 고함을 내질렀다.
세은은 흠칫, 새아빠를 쳐다봤다. 금세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세은을 감싸며 말했다.
“괜찮아요. 세은아, 들어가자.”
“놔—!”
세은이 나를 뿌리치곤 방으로 쏙 들어갔다.
할머니와 엄마, 새아빠는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나이가 들어도 어찌 저리 애야.”
“제가 잘못 키웠어요, 엄마.”
“무슨. 저 정도면 기질이야.”
“내 딸이지만 혜민이랑 너무 비교가 되네.”
가족들의 말소리는 문틈을 지나 세은의 귓가에 화살촉처럼 박히고 있을 것이다.
내가 평생을 어두운 방 안에서 비수를 맞았듯이.
“혜민이 쟤는 인간이 글렀어. 뭐 저리 저만 피해자야. 순 이기적이기 짝이 없구만.”
“내가 잘못 키웠지, 뭐.”
“엄마가 뭘. 언니가 어릴 때부터 이기적인 건 우리 가족이 다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아빠?”
“어어.”
세상에 저들뿐이라는 듯 끈끈했던 집안에서 점점 유세은의 자리가 없어지고 있었다.
고작 물건 몇 개 사준 대가로.
‘얄팍하네.’
내게 평생 멍에였던 관계가 이토록 얄팍했다.
이렇게 우스운 곳이었나.
떠올릴 때마다 끔찍했던 공간이 우스꽝스러운 서커스장으로 느껴졌다.
티브이 채널을 넘기던 새아빠가 말했다.
“그 정교수 말이야.”
“암에 걸렸다던 아빠 친구분 말이죠?”
“그래. 연락 안 한 지 오래돼서 만나주려나 싶었는데 그렇잖아도 연락하려고 했었단다. 너한테 물어볼 게 있다던데.”
나한테?
정현수 교수는 새아빠의 인맥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다.
유명 신문사 회장의 막내아들로 아내는 대기업 전무로 있는 사람이 날 왜?
‘문의원 관련해서 할 말이라도 있나.’
아빠가 내 폰으로 번호 하나를 넘겨줬다.
“정교수 번호.”
피차 다른 일로 전화도 해야 해서, 정교수에게 연락하겠다는 핑계로 집을 나왔다.
벤치에 앉은 나는 곧장 병원에 연락했다.
“혹시 저 찾는 사람 없었나요?”
[전혀. 혹시 있음 연락해줄게.]“고마워요, 언니.”
병원에서 지내며 친해진 간호조무사와 통화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한지혁, 이게 뭐 하고 있는 거야.’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는데.
나는 쯧, 혀를 차고 새아빠에게 받은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후, 전화가 연결되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유진호 씨 딸인 유혜민입니다. 전화 달라셨다고 들어서…….”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이던가요.]나는 휴대폰을 꽉 말아쥐었다.
‘뭐지?’
뭔가 이상했다.
정교수가 이런 사람이었나?
“저, 교수님—.”
[만나서 얘기하죠. 이 세계의 통신은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세계의 통신.
그 말을 듣자마자 깨달았다.
‘우리 세계의 사람이다.’
“당신 누구야.”
[…….]“누구냐고 물었어.”
[오랫동안 당신과 대화할 날을 꿈꿔왔습니다.]몇 초의 침묵 후에 정교수, 아니, ‘우리 세계의 사람’이 말을 이었다.
[쿠말입니다.]서울 한복판.
유혜민의 세계에…… 수호자들의 리더가 등장했다.
* * *
이튿날.
쿠말과 나는 어제 바로 약속을 잡았다.
대충 눈치를 보니 정말로 전화에 무슨 수작이 걸려 있는 듯했다.
‘복잡한 집안이니 통화를 감청할 이유가 있나 보지.’
약속 장소는 카페였다.
그렇게 출발하려고 하는데…….
“어어, 가자. 혜민아!”
“……아빠도 가시게요?”
새아빠는 평소에 입지도 않던 정장까지 입고 와선 차키를 들고 있었다.
“그럼, 가야지.”
“교수님이 저와 할 얘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얘기 해. 하면서 겸사겸사 나도 좀 끼고.”
수가 훤했다.
‘노리는 게 있구만.’
투자를 받고 싶거나, 아니면 정교수의 집안에 물건을 대고 싶거나.
그도 아니라면…….
“세은아, 뭐하냐!”
‘유세은에게 인맥을 만들어주고 싶구나.’
유세은은 한껏 차려입고 나왔다.
엄마에게 사줬던 가방과 구두까지 신은 채로.
“가요!”
그러며 새아빠와 후다닥 집을 나선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틈을 봐서 쿠말과 빠져야겠어.’
쿠말이 정교수의 몸에 있으니 몇 마디만 해주면 알아서 빠져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유세은, 새아빠와 함께 카페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