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66)
이 3세는 악역입니다-365화(366/390)
365화.
새아빠가 아침부터 분주하더라니 세차까지 한 모양이었다.
낡은 SUV에 광이 반질반질했다.
정교수와의 만남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알만 했다.
나와 새아빠, 세은은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평일 낮인 만큼 카페 안은 한산했다.
“아이고, 정교수님!”
새아빠는 반쯤 허리를 굽히고 뛰어갔다.
“이게 얼마만입니까. 건강은 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안색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정교수는 두 번째 삶의 나만큼이나 건강이 나빴으니까.
쿠말이 저 육체를 차지한 걸 보면, 정교수는 내가 사구를 넘어오기 전에 사망한 모양이었다.
저쪽은 나와 달리 치유 능력이 없는 만큼, 지금도 죽을 맛일 거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세은은 수줍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쿠말이 힐끗 쳐다보자, 뺨까지 붉어진다.
새아빠는 호탕한 척 하하 웃으며 말했다.
“제 딸입니다. 이 녀석 어릴 때 교수님의 앞에서 피아노를 친 적도 있는데 기억하십니까?”
“…….”
“아아,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할 만도 하십니다. 그때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실수 연발이었죠.”
“…….”
“교수님께 본 실력을 선보이는 것이 제 딸의 오랜 꿈일 정도라—.”
쿠말은 전혀 대꾸가 없는데도 새아빠 홀로 잘만 떠들었다.
세은도 기대로 뺨이 발그레했다.
새아빠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앉아서 하시죠.”
“얘기는 따님과 따로 나누고 싶습니다만.”
“우리 세은이요? 아이고, 영광입니다.”
“그, 그럴까요. 아빠, 잠깐 비켜주세요.”
“그래. 혜민아, 우리는 차에서—”
“아뇨.”
쿠말은 단호히 대답하며 나를 쳐다봤다.
“얘기는 이쪽 따님과 합니다.”
“…….”
“……!”
새아빠가 당황했고, 세은의 표정이 굳어졌다.
“비켜주시죠.”
“아…… 예. 그, 세은아, 우린…….”
“…….”
세은은 자켓 자락을 꽉 비틀어 쥐고 있었다.
겉보기에도 기분이 나쁜 게 확연히 티가 났다.
새아빠는 어색한 표정으로 세은을 달래며 함께 카페를 나섰다.
창밖의 두 사람이 차로 향하는 것이 보인 후에야 나는 자리에 앉았다.
“할 말이 뭔데요.”
“음료를…….”
“용건만 간단히. 뭐냐니까요.”
“음료를 시켜야 합니다.”
쿠말이 묵묵히 벽에 붙은 코팅지를 가리켰다.
음료는 1인 1잔.
꼭 부탁드려요~^^
“이런 건 어떻게 알아요?”
“‘아아’가 먹을 만합니다. 아아란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기가 막혀.”
쿠말은 제가 일어나 커피를 시키고 왔다.
“‘아아’ 한 잔 부탁합니다.”
“5,200원입니다. 포인트 적립하시겠어요?”
“여기…….”
“네, 감사합니다.”
“진동벨은 안 줍니까?”
“직접 불러드려요.”
……진동벨은 또 어떻게 아는데.
‘대체 언제 정교수 몸에 들어간 거야.’
기가 막혀서 가만히 보고 있으니, 쿠말은 얌전히 기다려 커피를 받아왔다.
“대체 언제 ‘여기’ 온 거예요?”
“이곳의 시간으론 41일째입니다.”
“왜요.”
“…….”
“왜 왔냐고.”
“메시아와 비슷하고도 다른 이유였습니다.”
“수호자들은 말을 제대로 하는 법을 몰라요? 비슷하고 다른 건 또 뭔데.”
쿠말은 나와 세은, 새아빠가 들어오기 전부터 마시고 있던 커피잔을 들었다.
입매가 어쩐지 웃는 것 같았다.
“‘그 세계’엔 결국 어둠이 열리고 폭풍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렇겠죠. 그리미에가 인공 마수를 만들겠다고 그렇게 길을 열어젖혔는데.”
“고대인은 현세인에 비해 수십 배는 강했고, 신의 완성품이라 불리던 13사자들마저 존재했습니다. 그런 그들조차 멸망하지요.”
“그래서요?”
“해서,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쿠말이 나를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길 수 없습니다. 그 세계는 멸망할 겁니다.”
“그건—”
“달리아는 어디까지나 메시아의 복제품입니다. 메시아가 나서도 그 세계가 온전할 확률은 극히 낮은데, 달리아로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나는 쿠말을 빤히 쳐다봤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왜 이 세계에 왔어요?”
“그건…….”
“달리아를 이용해 폭풍을 막아낼 다른 방법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쿠말은 픽 웃었다.
“영민하신 분.”
“계획이 뭐예요. 들어나 봅시다.”
“달리아를 이용해 이 세계의 사구의 문을 부술 겁니다.”
“네?”
“해서 그쪽 세계의 인간들을 이 세계로 이전시킬 생각입니다.”
“그럼 이 세계의 인간들은?”
“약자가 도태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미친놈이—!!”
그러니까 에릴로트 세계의 인간들이 지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무슨 만화영화야?
악의 조직이라도 되려고?
“이 세계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메시아의 힘이라면 가능합니다. 또 우리에겐 가호가 있지요. 핵이든, 전투기든 우리는 능히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헛소리할 거면 몸이나 얌전히 내놓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
“그렇게 그쪽 세계인들을 구원한다면!”
쿠말이 언성을 높이며, 곧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희생할 일은 없어.”
“돌았어. 고작 나 하나 때문에 80억 지구인과 전쟁을 해?”
“고작?”
쿠말의 눈매가 붉어졌다.
그는 돌아가려는 내 손목을 붙들었다.
“이거 못 놔? 놓으라—”
“당신이 어떻게 고작일 수 있어.”
“너…….”
“태어나 줄곧 당신만 바라보며 살았어.”
“……너 역시 내가 메시아라는 걸 알고 있었구나. 네가 사라졌다고 들은 날부터 예상은 했지.”
“…….”
“전부 다 알고 있었으면서 침묵하고 수호자들이 날 금제하게 만들었구나.”
“결코 들킬 수 없었으니까! 당신의 정체를 남들이 안다면 희생을 강요받았을 거야. 그 꼴을 어떻게 보란 거야!”
“무능력자로 내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알면서……!”
“당신이 죽는 것보다 나았어.”
“…….”
“살아만 있어 준다면 얼마든지 원망해도 좋다고 여겼으니까.”
“너…….”
쿠말은 충혈된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렇게 당신을 사랑해왔어.”
“……네가 뭔데.”
“무슨…….”
“네가 뭔데 내게서 선택권을 빼앗아.”
“…….”
“결국 네 감정이 중요해서 내 인생을 네 멋대로 휘저어놓고 사랑? 네가 그리미에와 뭐가 달라!”
“……뭐라고요?”
쿠말은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어디서 충격받은 표정이야?”
“저는…… 난…….”
“그럼 내가 ‘아, 날 지키기 위해서 그랬구나. 날 위해서 80억 지구인을 모두 죽이겠다니 네 사랑은 위대해!’ 그럴 줄 알았어?”
“…….”
“또 ‘지금까지 힘들었겠다. 이해해. 그렇게 날 사랑한다니 고마워. 그리고 나도 널 좋아해.’ 이럴 줄 알았냐?”
“…….”
“너, 내 눈앞에 다신 나타나지마.”
“…….”
“혹시나 사구의 문을 부순다 어쩐다 또 지랄하기만 해.”
나는 양손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 앞에서 목을 매줄 테니까.”
“어떻게 제게 그런 협박을 하십니까. 어떻게요…….”
쿠말의 눈이 젖어 들었지만, 조금도 가엽지 않았다.
“협박 아니고 진심이야.”
“…….”
“내 목숨 하나 보전하자고 80억 지구인을 제물 삼을 바에야 죽는 게 훨씬 낫다는 뜻이고.”
나는 쿠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경고했다.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역겨우니까.”
“…….”
쿠말이 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뜨거운 눈물이 손 틈새로 뚝, 뚝, 흘러내렸다.
* * *
카페를 나서서 차로 돌아갔다.
막 차 앞에 도착했는데 훌쩍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세은이 트렁크 쪽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었고, 새아빠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애를 달래는 중이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니까. 정교수도 몸이 안 좋다 보니까 혜민이한테 동질감이 느껴지나 보지.”
“아빠도 정교수랑 똑같아!”
“아빠가 또 뭘 똑같아…….”
“유혜민만 찾는 건 같잖아. 쟤, 집에 오고서 내 방 한 번이라도 들여다봤어? 엄마랑 할머니는 또 얼마나 냉담한데!”
“그런 거 아니래도 그런다.”
“아니긴…… 돈 떨어지면 알바라도 해서 벌어오라고 난리일 거면서…….”
“요새 왜 자꾸 이상한 말을 해. 아빠가 언제 너더러 돈 벌어오라고 한 적 있어?”
“……유혜민이 보험 해약해서 허공에 뿌리고 죽으면 그럴걸.”
“아이고, 그럴까 봐 네 엄마, 할머니, 아빠까지 얼마나 쟤 비위 맞추냐.”
“…….”
새아빠가 세은의 얼굴을 양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 우리 공주 편히 살라는 거 아니야.”
“……저거 대체 언제 죽어. 왜 하루하루 혈색이 더 좋아지냐고.”
“그러게 말이다. 저거 밖에서 돈 펑펑 쓰는 걸 보면 슬슬 겁나는구만. 슬슬 가줘야 할 텐데…….”
나는 무심하게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슬프거나 괴로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저 대화 덕에 더욱 확고해졌을 뿐.
‘저런 사람들인 걸 몰랐던 것도 아니고.’
알기에 그렇게 덫을 깔아놨던 것이 아닌가.
내 반이라도 괴로워해 보라고.
“아빠.”
내가 웃으며 부르자 새아빠와 세은이 흠칫했다.
“어어, 그래. 정교수가 우리 찾아?”
“아뇨. 몸 상태가 안 좋아지셨나 봐요. 먼저 들어가라던데요.”
“뭐? 사람 불러놓고 뭐 하는 거야, 그 남자!”
세은이 울컥 성질을 부렸다.
‘널 불렀냐. 날 불렀지.’
기가 막혔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세은의 어깨를 토닥였다.
“따로 부르시겠다던데?”
“……날?”
“응.”
물론 쿠말은 그런 말은 한마디도 안했다.
쿠말도 이제까지 멋대로 내 인생을 휘저었으니, 이번엔 내가 그의 덕 좀 봐야겠다.
“나 통해서 연락하시겠다고 하셨어.”
“왜 내 번호를 주지 않고?”
“교수님도 몸이 안 좋으시잖아. 나와 신세가 같아서 동질감이 느껴지시나 봐. 종종 보자시더라고.”
“…….”
“가자, 가자.”
난 쾌활한 척 새아빠와 세은을 종용했다.
차를 타고 가며 난 창밖을 보는 세은을 힐끗 쳐다봤다.
‘슬슬 저걸 우리 세계에 데려가야 하는데.’
나는 마력을 가늠했다.
마력량이 아슬아슬했다.
‘본래 세계의, 본래의 시간 축에 돌아가야 하니까 사구를 마음대로 열어젖힐 수는 없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사구를 여는 건 마력 낭비가 심하다.
본래의 세계와 시간 축을 찾는 동안 마력이 죄다 소진될 터.
까딱 잘못하면 또 다른 세계로 갈 수도 있었다.
‘사구를 열기에 최적의 장소가 있을 거야.’
아마 그리미에가 그 장소를 이용해서 달리아를 데려왔을 것이다.
그쪽의 인도는 이노락스가 맡았을 테지만, 이노락스는 세일론보다 현저히 약하다.
결국 최적의 장소를 찾아서 달리아를 데려가야 했겠지.
‘그렇다면 그 장소를 유세은이 분명히 알고 있어.’
그런데 어떻게 입을 열게 하지?
저 성격에 고문한다고 입을 열 것 같지도 않고…….
일부러 잘못 알려주면 일이 커진다.
‘으음, 그러면…….’
고민하던 중에 내가 입원했던 병원 인근에 다다랐다.
“아!”
소리치자 새아빠와 세은이 나를 돌아봤다.
‘혹시 내가 온 길의 문이 아직 닫히지 않았을 수도!’
난 얼른 새아빠에게 말했다.
“저 병원에 좀 내려주세요.”
“병원은 왜?”
“놓고 온 게 있어서요. 금방 갔다 올게요.”
세은이 쯧, 혀를 찼다.
“귀찮게…….”
“미안, 금방 다녀올게.”
새아빠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는 동안 나는 내가 있던 병실로 올라갔다.
“아유, 혜민 씨 웬일이야.”
“안녕하세요, 아줌마.”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내가 쓰던 베드로 향했다.
내가 쓰던 베드엔 며칠 만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이 침대 쓰던 환자인데요. 잃어버린 게 있거든요. 혹시 여기 있나 싶은데 찾아봐도 될까요?”
“뭐,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철제 프레임 밑을 살피는 척 길이 열려 있는지 살폈다.
‘젠장, 흔적도 없이 닫혔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없네요.”
“잃어버린 게 뭔데요? 찾으면 연락드릴게요.”
“별 건 아니고요…….”
그런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혜, 혜민 씨, 혜민 씨!”
병실에 오며 스테이션에서 인사를 나눴던 간호사가 헐레벌떡 내게 다가왔다.
“네?”
“그, 혜민 씨 찾는 분이 계신데요……!”
“찾는 분이요?”
‘한지혁인가?’
누구 몸에 들어갔길래 이렇게 놀라?
난 간호사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스테이션 쪽에서 키가 큰 수트의 남자가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찾으셨다고 들었는데요. 혹시…….”
말을 걸자, 그가 천천히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
“사구를 넘어오기 전에 전화번호를 받아둘 걸 그랬지? 찾아오기 엄청 귀찮았다, 인마.”
사구를 넘어왔다는 말에 확신했다.
한지혁이다.
그런데 모습이…….
나는 기가 막혀서 입을 떡 벌렸다.
한지혁은 양손을 가볍게 들고 어깨를 으쓱했다.
“왜?”
“……로또 맞았네.”
아니, 이건 로또 수준이 아니었다.
파워볼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야 ‘그런 몸’에 들어갔으니까!
나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유세은의 입을 어떻게 열게 할까 싶었는데 잘됐다.”
“뭘?”
“이제 네 전문 분야의 도움을 받을 때가 왔나 봐.”
“그러니까 그게 뭔데.”
나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서 속삭였다.
“사기.”
“무슨 사기를 치라고?”
“결혼 사기.”
“……그건 내 분야가 아닌데.”
“못 해?”
“분야는 개척하는 거지.”
나와 한지혁은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 * *
나는 한지혁과 함께 새아빠와 세은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 문을 열자마자 세은이 버럭 소리쳤다.
“대체 뭐 하는데 이렇게 늦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소리치던 세은이 묘한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새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선이 내 뒤에 서 있는 한지혁에게 닿았다.
“누구시냐, 혜민아?”
“의원님 통해서 알던 분인데요. 제 문병을 오셨나 봐요. 운 좋게 병원에서 만났어요.”
“그래? 묘하게 익숙한…… 어?”
“어? 어, 어?!”
새아빠와 세은이 거의 스프링처럼 차 밖으로 튀어나왔다.
세은은 폰을 두드렸다. 포털 창에 이름을 검색해서 사진을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기 힘들지.’
그리고 난 한지혁의 ‘몸’을 이용해서 유세은에게 사구를 열 최적의 위치를 불게 하고, 그녀를 우리 세계로 데려갈 것이다.
칼소이에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화끈한 복수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