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75)
이 3세는 악역입니다-374화(375/390)
374화.
황비들과 다른 황자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아하.’
메르세데스 황자의 형인 네르펠데스.
그는 본래 황태자위에 가장 가까운 황자였다.
‘저쪽이 대단한 분이시다 이거지?’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는 모델 같은 체형에 장신의 키, 서늘한 눈매를 가진 미남이었다.
그런데도 품위와 지성이 느껴진다.
“네, 네르펠…… 우린…….”
“국사가 어지럽습니다.”
“…….”
“이러한 때에 황족들이 소란을 벌여서야 되겠습니까.”
“그, 그렇지…….”
“자중하십시오.”
“그, 그래…….”
베르단디 황비가 희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자, 네르펠데스가 말했다.
“모후를 모셔가란 뜻임까지 알려주어야겠느냐, 프레이.”
“아, 아닙니다, 형님…….”
프레이가 제 모친을 데리고 후다닥 나서자, 다른 황자와 황비들 또한 온실을 나섰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메르세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앉으란 말도 없는 거냐?”
“그런 것까지 알려드려야 하나요? 뭐, 그럼 앉으세요.”
“너…….”
메르세데스가 울컥 인상을 쓰자, 네르펠데스가 한 손으로 제 동생을 가로막았다.
그러곤 내 맞은편에 앉았다.
메르세데스도 한숨을 내쉬곤 제 형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네르펠데스가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황위를 노리고 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
“아, 죄송. 말씀하세요.”
“너는 칼소이에의 황태자비가 될 아이지. 그러나 황후는 되지 못할 것이다. 네 모후가 이 동제국의 황제인 한은.”
“그런데요?”
“부정하고 싶겠지만, 사실이다. 지금은 네 능력이 아쉬워 알렉시스 황자와 네 결정에 동의하고 있으나 추후엔 달라질 터.”
네르펠데스는 곧은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적국 황제의 딸이 황후가 되는 것을 반길 신하는 없지.”
“그래서요?”
“네가 칼소이에의 황후를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같은 배를 탈 수 있어.”
“……그쪽이 황제가 되게 도와달란 말이에요? 어떻게?”
“네 어머니를 설득할 수도 있겠고, 나를 지지하겠노라 선언할 수도 있겠지. 유사시엔 약간의 도움도.”
내가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듯하니, 네르펠데스의 말은 더 자세해졌다.
“네가 한배를 탄 동료라면 나 또한 자비를 베풀마.”
“무슨 자비요?”
“벨로스터 궁주의 이주를 허락할 것이다.”
“…….”
“가문을 꾸려 사재를 칼소이에에 빼내 가는 것 또한 눈을 감지.”
“그러면 엄마가 아스트라 공작부인이 될 테니까요?”
“그래.”
“…….”
“너로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일 테지.”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으음, 신음했다.
메르세데스는 씩 웃고 있었다.
제 형과 나의 대화가 좋은 쪽으로 흐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메르세데스가 말했다.
“우리로서도 성녀인 서제국 황후님과 척을 지고 싶진 않다고? 평화롭게 서로의 목적을 이루는 게 제일 아니겠어?”
“…….”
“네 어머니가 너를 끔찍하게 사랑하니 말 몇 마디 한다면 물러날—”
“싫은데.”
“……뭐?”
메르세데스가 움찔했고, 네르펠데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난 내 어머니에게 ‘자식 때문에 꿈을 포기해달라’고 말하지 않을 거예요.”
“너……!”
“…….”
“게다가 내겐 이점이 너무 없는 거래잖아요?”
네르펠데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점?”
“말은 서로 좋다고 하지만, 사실 좋은 건 삼촌들뿐이잖아요?”
“무슨…….”
“엄마는 황태자가 되었어요. 게다가 나 같은 딸이 있는 한 쉽게 건드리지 못하니, 이대로라면 황위에 앉겠죠?”
“…….”
“그러니까 삼촌들은 내게 황위를 통째로 달라는 건데…….”
나는 턱을 괴면서 말했다.
“이 삼촌들이 날 바보로 알아.”
“…….”
“……!”
“황위를 거래할 거라면 그에 준하는 물건을 가져와야지. 꼴랑 가문을 꾸려서 칼소이에에 돈을 가져가라고?”
“…….”
“…….”
“사재는 피차 엄마 돈인데 그걸 눈감아줄 게 뭐가 있어.”
메르세데스와 네르펠데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손을 팔랑팔랑 저었다.
“내 뜻은 알아들은 것 같으니 가세요.”
“……정말로 전쟁을 하고 싶은 것이냐?”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고?”
주변에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칼소이에 국토에서 <폭식>을 물리치는 것을 마경으로 봤을 테니, 이게 어떤 힘인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메르세데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무슨……! 황족을 암살할 셈이냐!”
“삼촌들, 삼촌들.”
나는 양손으로 턱을 괸 채로 생글생글 웃었다.
“우리 아빠가 누구게~요?”
“……데이몬드 아스트라?”
“그래. 데이몬드 아스트라. 칼소이에의 전신(戰神).”
순식간에 표정을 굳힌 나는 그들을 노려보았다.
“전신의 새끼에게 전쟁을 운운할 거라면 목숨 정도는 걸어야지.”
“…….”
“…….”
“그게 수지에 맞잖아. 안 그래?”
두 황자는 말이 없었다.
그때였다.
풋.
문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제왕회에서 보았던 라온트라의 중신들이었다.
웃은 사람은 엄마였다.
“딸의 말이 실로 옳다. 전쟁을 운운하는 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지.”
네르펠데스와 메르세데스가 몸을 일으켰다.
“황후 폐하와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황후 폐하와 ……뵙습니다.”
메르세데스는 죽어도 엄마에게 황태자라고 말하고 싶진 않은지 얼굴이 새파랬다.
엄마는 웃으며 네르펠데스가 앉아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후후 웃으며 다가온 황후가 두 황자에게 말했다.
“너답지 않게 조급하구나, 네르펠데스.”
“모후께서 음독하셨습니다. 조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메르세데스가 제 형을 대신해서 짓씹듯 말했다.
엄마를 매섭게 노려보면서.
엄마는 내 쪽으로 차가 든 왜건을 손짓하며 말했다.
“그러니 네 어미께선 자중하셔야 할 것이야. 새끼 건드리는 자에게 나는 자비가 없거든.”
칼소이에에서 들었다.
네르펠데스, 메르세데스 형제의 모친인 아나스 황비에게 음독을 사주한 이유.
그건 아나스 황비가 내 존재를 알아차리고, 나를 납치하려고 해서란 걸.
메르세데스가 이를 악물고, 온실을 빠져나갔다.
그 형인 네르펠데스는…….
‘어?’
한숨만 조용히 내쉴 뿐이었다.
엄마에게 딱히 분노한 것 같진 않았다.
네르펠데스가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인 후, 제 동생을 따라갔다.
그런데…….
나는 엄마한테 속삭였다.
“엄마, 중신들이 저를 이상하게 봐요.”
“추종자들이라 그래.”
“……네?”
“네가 내 딸인 것이 밝혀진 후 얼마나 의기양양한지 모른다.”
……중신들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저 눈을 알고 있다.
데이몬드 관할령, 아니, 이제 공작 직할령이 된 그곳 행정관들의 눈빛이었다.
“구, 구, 궁주님, 이렇게 뵙게 되어 가문의 영광…… 아니, 나라의 영광, 또 영광입니다!”
“오오오—! 반갑습니다, 궁주님!”
금세라도 울 것 같은 그들을 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네…… 반가워요…….”
“모, 목소리, 꾀꼬리……!”
“오오오—!”
진짜 부담스러웠다.
나는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 부탁이 있는데요.”
“그래.”
“할미에게도 말해주련?”
나는 “네!” 하며 웃었다.
“뭐냐면요…….”
* * *
그 시각, 아나스 황비궁.
베르단디 황비는 팔짱을 낀 채로 방을 걸으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 계집애가 어찌나 오만한지 언니도 보셨어야 해요. 프레이를 내동댕이치고……!”
“그러니 어찌 그 애를 자극했단 말인가.”
아나스 황비가 찻잔을 들며 후후 웃었다.
그러자 다른 황비들이 볼멘소리를 뱉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벨로스터가 황태자위를 차지했습니다.”
“그게 누구 덕이겠어요?”
“결국 에릴로트 아스트라를 어찌하지 않는 한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언니.”
아나스 황비가 “음.” 신음했다.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지. 그 애는 서제국뿐 아니라, 이 세계의 성녀란다. 그 애가 구원하지 않는다면 나라는 패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어.”
아나스 황비가 흘낏 쳐다보자, 베르단디 황비가 소리쳤다.
“고대의 기록을 알면서 이러실 거예요? 그 계집앤 구원자가 아니에요! 희생자이지!”
베르단디 황비는 흥, 콧방귀를 뀌었다.
“건국 황제의 일기엔 분명 ‘제물’이라고 쓰여 있었다고요. 그 애가 아니라도 제물 삼는다면…… 제물?”
베르단디 황비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언니, 전 이만 가봐야겠어요.”
“벌써?”
“프레이를 달래줘야 하기도 하고요.”
전혀 프레이가 목적인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황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으나, 아나스 황비는 미소를 머금었다.
황비들이 돌아간 후, 그녀의 전담 의사인 이데스 자작이 물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단순한 아이가 곁에 있으니 내가 움직일 필요가 없네.”
“다행입니다.”
이데스가 그녀를 청진하기 위해 가까워졌다.
아나스 황비가 부드럽게 손을 들어 그의 턱을 매만지려던 순간이었다.
“어머니?”
“…….”
그녀의 두 아들인 메르세데스와 네르펠데스가 들어왔다.
황비와 이데스가 빠르게 떨어졌다.
“그래. 온실에서 일이 있었다고?”
황비는 언제나처럼 자애로운 모친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메르세데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웃었다.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실 거예요.”
“우리 아드님께서 어떤 고생을 하셨을까.”
동생이 모친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네르펠데스는 이데스 자작을 살벌하게 쏘아보고 있었다.
* * *
그날 밤.
옥사.
달리아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바닥을 노려보았다.
‘찢어 죽일…… 이 찢어 죽일 계집애…….’
토벌이 시작되고 달리아는 철창 차에 탄 채로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오늘도 라온트라에 도착해선,
“확실하게 감시해주시오. 길을 닫을 물건이니.”
—콘라드가 그런 말로 자신을 라온트라 옥사에 인계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언제 죽을지 몰라서 벌벌 떠는 인생이라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그리미에에게 속은 것뿐이잖아.’
어느 곳을 지나도 백성들은 자신을 찢어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다.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너 때문에 내 아이가 죽었어!”
“내 남편 살려내! 살려내란 말이야—!!”
그건 모두 그리미에의 짓인데.
아니, 애초에 에릴로트가 자신을 끌어들이지만 않았으면……!
‘유혜민…… 유혜민, 유혜민, 유혜민!’
달리아는 손마디가 터질 때까지 바닥을 내리쳤다.
그때였다.
“이 계집이냐.”
어떤 여자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붉은 머리칼을 틀어 올린 중년의 귀부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간수는 헐레벌떡 다가와 말했다.
“예, 예. 서제국 놈들에게 들으니, 글쎄! 그리미에 그 놈이 성녀를 대신하게 하기 위해 온갖 실험으로 만든 키메라라지 뭡니까.”
달리아는 눈을 끔뻑였다.
“누구…….”
“누구는! 베르단디 황비님이시다! 당장 엎드려 예를 취하지 못할까!”
달리아가 움찔하자, 베르단디 황비가 시녀에게 눈짓했다.
시녀가 경비병에게 돈주머니를 건넸다.
경비병은 함지박하게 입이 벌어져서 헐레벌떡 열쇠를 건네고,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황비의 시녀가 옥사의 문을 열어주자, 달리아는 흠칫했다.
“왜……?”
“풀어주는 것이다.”
“네?”
“그리미에와는 오래된 사이지.”
“……그리미에를 아세요?”
황비가 후후 웃었다.
“그리미에의 끈이 라온트라에는 없는 줄 알았느냐?”
“아…….”
그리미에는 장막을 통해 엄청난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베르단디 황비도 그리미에의 인맥 중 한 축인 듯했다.
황비가 말했다.
“성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아이가 옥사에 갇혀 있으니 얼마나 서러우냐.”
“황비님…….”
달리아가 울먹이자, 황비는 생긋 웃었다.
“가서 사명을 다하렴.”
“사명?”
“에릴로트 아스트라, 그 맹랑한 계집의 것은 본래 너를 위해 안배되었단다.”
“……저를 위해요?”
“그리미에가 말해주지 않았니?”
“말해주었던 것…… 같아요…….”
베르단디 황비는 후후 웃으며 무릎을 굽혔다.
“이 황궁은 라온트라의 건국 황제께서 세계수의 중심에 지은 곳이지. 이곳이라면 그 계집의 힘을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에릴로트의 힘.”
“에릴로트 아스트라를 세계수의 앞으로 불렀다. 그 계집앤 세계수의 앞에선 가호를 쓸 수 없다는 것을 몰라.”
“…….”
“네겐 이것을 주마.”
시녀가 어떤 오래된 검을 꺼냈다.
“제사장의 검이다.”
“제사장의 검?”
“이 검의 소유자는 세계수의 앞에서도 가호를 사용할 수 있어. 그 계집의 가슴을 찔러 수호성을 빼앗아라.”
달리아의 눈이 검게 일렁였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로 꾸미는 것은 내가 도와주마. 내겐 <기만>이라는 몬스터가 있거든. 너를 이 세계의 성녀로 만들어줄 것이다.”
“……!”
내가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된다고?
그 엄청난 힘.
세상의 동경과 사랑.
그게 모두 내 것이 된단 말이야?
“왜…… 저를 도와주세요?”
베르단디 황비가 후후 웃었다.
“너 또한 나를 도울 수 있기에.”
“제가 무엇을요?”
“내 아들이 황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야.”
달리아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물론이에요!”
환희에 물든 목소리가 옥사에 메아리쳤다.
* * *
어두운 복도.
홀로 복도를 걷던 네르펠데스는 흠칫, 앞을 바라보았다.
“누구냐.”
앞에서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와, 삼촌은 기척을 무척 잘 읽으시네요.”
“……에릴로트 아스트라?”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제 삼촌이 될 기회를 드릴까 해서요.”
“뭐?”
“저 오늘 세계수 앞에서 검에 찔릴 거예요.”
네르펠데스가 흠칫,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에릴로트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야.”
“제가 그렇게 꾸몄거든요. 일부러 달리아를 이 라온트라 옥사에 넘겨주고, 황비들을 자극해서.”
“……알아듣게 설명해.”
“용족의 통로를 닫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제 목숨을 대가로 하거든요. 하지만 죽고 싶은 사람이 있겠어요?”
“…….”
에릴로트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제 목숨이 아닌 다른 것을 대가로 줄 거예요. 저와 닮은 영혼과 세계수.”
“……!”
네르펠데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세계수는 이 세계의 신이야! 제왕들이 이 일을 허락할 성 싶으냐? 당장 라온트라에서도 널 잡기 위해 혈안이 될……!”
“그러니까.”
“……그게 무슨.”
“세계수를 죽이는 건 내가 아니에요. 달리아지.”
네르펠데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계획은 내게 토설하면서 죽이는 건 다른 사람이다?”
“네.”
“왜 내게 그런 것을 말해주지?”
뒷짐을 지고 다가온 에릴로트가 네르펠데스를 올려다보았다.
“제가요. 혈족 부자라 웬만한 친척은 다 있거든요. 숙부, 숙모, 고모 등등…….”
“……?”
“그런데 잘생긴 외삼촌은 없어요.”
에릴로트가 헤헤 웃었다.
네르펠데스가 움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