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76)
이 3세는 악역입니다-375화(376/390)
375화.
“너는…….”
네르펠데스는 에릴로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홱, 고개를 돌리고 못마땅한 어조로 말했다.
“거래엔 상대에 준하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한 게 누구지?”
“저지요.”
“그래.”
네르펠데스가 팔짱을 끼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세계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지 않겠지. 신을 죽이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아니, 그 자체이지.”
“그러네요.”
“그런 일에 공모한다면, 나 자신은 물론이고 이 황궁마저 위태로울 터.”
세계 전역의 나라에서 벌떼처럼 들고일어날 것이다.
특히 세계수를 신으로 떠받드는 신성 국가에선 성전이라는 명목하에 창검을 들 것이다.
“라온트라에선 세상에 다시 없을 흉사이며, 나 또한 흉사를 벌인 천인공노할 황자로 기록될 것이다.”
“…….”
“그도 운이 좋아 살아남아야 볼 수 있는 기록이지. 세계수를 치는 순간, 내 목도 같이 떨어질 테니.”
“아주 엄—청난 일이란 건 두 번 말씀하시지 않아도 알아요.”
“내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에릴로트는 빙그레 웃었다.
“죽을 때까지 황자로 살게 해드리겠어요.”
“……뭐?”
에릴로트는 사뿐사뿐 걸어왔다.
그녀가 손을 휘젓자, 빛나는 문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아나스 황비는 부정을 저질렀다.
황위에 눈 먼 사특한 여인은 주치의와 통정하여 네르펠데스와 메르세데스를 낳았다.
고대어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 네르펠데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너……!”
이를 악문 그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고, 에릴로트에게 바짝 다가갔다.
“감히 무슨 헛소리를……!”
“내 가호의 정확한 이름을 알려줄까요?”
“뭐?”
“<열람>.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어요.”
“……!”
“증명도 쉽지요. 제왕들의 앞에서 그들이 가진 비밀을 보여주기만 해도 내 능력은 증명된다고요.”
“…….”
“이제 외삼촌의 말씀을 한 가지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뭐?”
“나를 돕기 때문에 죽을 위험에 놓이는 게 아니에요. ……살 기회를 얻는 거지.”
네르펠데스는 이마를 잡았다.
거칠게 숨을 몰아쉰 그가 에릴로트를 노려봤다.
“알겠으니까 이 빌어먹을 글자를 치워.”
“원하신다면.”
에릴로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허공에서 빛나던 글자들이 사라졌다.
“제 외삼촌이 되어주시겠어요?”
“…….”
“싫으시다면…… 엄마!”
네르펠데스가 황급히 에릴로트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직 대답하지 않았잖아.”
“으엄 애압아에어. (그럼 대답하세요.)”
“……너처럼 영악한 조카를 두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이다.”
에릴로트가 활짝 웃었다.
* * *
라온트라의 귀빈실.
이제나저제나 에릴로트를 기다리던 한지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콘라드를 쳐다봤다.
“왜 이렇게 늦죠? 일이 잘못된 게 아닙니까?”
“글쎄요…….”
“제기랄, 세계수를 제물로 바치는 건 역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던 거지. 어느 황자가 신을 죽이는 데에 동참하겠다고 합니—”
그러던 찰나.
벌컥, 문이 열렸다.
에릴로트가 목을 주무르며 들어온 것이다.
한지혁이 튕기듯 그녀를 맞이했다.
“어떻게 됐어?”
“외삼촌 하나 생겼지, 뭐.”
한지혁과 콘라드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한지혁은 으하하핫! 웃으며 에릴로트의 등을 두드렸다.
“될 줄 알았다! 아무렴! 협박하면 에릴로트, 에릴로트하면 협박이지!”
“……누가 칭찬을 그렇게 해. 죽을래?”
“당연히 칭찬이 아니니까 이렇게 하— 악!”
결국 한지혁은 에릴로트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그런데도 실실 웃던 그가 말했다.
“이제 달리아가 그물에 걸리기만 기다리면 된다는 거지?”
“그래. 만체 박사…… 가 아니라, 외당숙과 얘기는 나눴어?”
“어어, 했지.”
“……길이 언제쯤 열릴 것 같대?”
라온트라에 오자마자 느꼈다.
곧 길이 열린다는 것을.
라온트라는 그야말로 폭풍전야였다.
고대의 기억에서 용족이 넘어올 때 느꼈던 기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길이 열릴 거야.’
칼소이에 때와는 다르다.
칼소이에는 현재의 인간이 처리 가능한 정도인 <폭식>이 십여 마리 넘어오는 정도였다.
하지만 용족은 개체 하나만 넘어와도 재앙이다.
늙디늙은 네 마리의 용만으로도 세상은 크게 들썩였다.
그런데 쌩쌩한 젊은 개체가 넘어온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그래서 세계수를 제물로 바치는 엄청난 짓을 하더라도 틀어막아야 하는 것이다.
한지혁과 콘라드가 서로를 쳐다봤다.
에릴로트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한지혁을 쳐다봤다.
“왜? 생각보다 더 빨리 열릴 것 같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데. 닷새? 나흘?”
“내일 오후.”
“……뭐?”
“만체 박사는 내일 오후쯤으로 예상한다더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에릴로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정도는 아니었잖아! 아니, 그랬다면 내게 곧장 알렸어야지!”
“네가 네르펠데스를 만나러 갔을 때 급보가 왔어. 하늘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고.”
에릴로트는 급히 커튼을 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용돌이 같은 묘한 빛무리가 상공에 난 커다란 구멍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게헨나가 나왔을 때와 비슷해.’
에릴로트가 소리쳤다.
“엄마와 황제 폐하께 알려! 당장 제의 준비를 해야 해!”
“그래.”
“아스트라에도 소식을 알리고, 칼소이에 황궁에도 전해. 유사시를 대비해서 비상 결계를 구축해야 해!”
“예!”
한지혁과 콘라드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르단디 궁에서 왔습니다.”
“……!”
에릴로트와 콘라드, 한지혁이 시선을 교환했다.
‘시작했다.’
베르단디 황비가 에릴로트를 세계수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달리아의 준비가 끝났다는 소리였다.
에릴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혁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보는 눈이 있으니 따로 대화를 나누시길 바라십니다.”
“따로라시면?”
시녀는 진하게 웃었다.
“오전 일을 사과하시는 뜻으로 영애께 라온트라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를 안내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녀께 걸맞은 장소지요.”
세계수다.
에릴로트는 남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 * *
달리아는 검을 꽉 말아 쥐었다.
“어떻게 되고 있어요?”
라온트라의 베르단디 황비가 붙여준 시종이 고저 없이 말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를 제압할 결계의 준비를 마쳤고, 그녀를 세계수의 앞으로 불러올 것입니다.”
“그렇군요.”
“황비님께서 실수는 용서치 않겠다고 전하셨습니다.”
“그럼요.”
달리아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숨을 크게 들이켠 그녀는 검집에 박힌 보석을 매만졌다.
“피차 이쪽도 실수할 수 없어요.”
“그러시겠죠.”
달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베르단디 황비도 그렇지만, 시종들의 태도도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저 눈이.
쓰레기라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내가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되어서도 계속 저따위로 굴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
에릴로트 아스트라.
그 안에 유혜민의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그 인생 자체는 화려했다.
모친은 동제국의 황태자.
부친은 아스트라 공작이 된 데이몬드 아스트라.
그 데이몬드를 꼭 닮은 인형처럼 아름다운 외모.
신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능력.
멋진 오라버니들.
뛰어난 동료.
전 국민의 사랑.
약혼자는 제국의 황자로 황위를 계승할 자.
실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이었다.
‘이 일만 끝나면…….’
그래,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그 모든 게 자신의 것이 된다.
유혜민의 오만한 얼굴이 일그러질 것을 생각하면 십 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잔혹한 계집이던가.
간교한 계략으로 자매였던 자신을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다.
‘하지만 승자는 결국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야.’
이 검을 박아넣고 말해줄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고.
‘너는 나를 절대로…….’
“옵니다.”
시종의 말에 달리아가 흠칫했다.
세계수의 방과 이어진 커튼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황비께선 어디에 계시지?”
“기다려주십시오. 모셔 오겠습니다.”
에릴로트의 목소리였다.
달리아는 검을 꽉 말아 쥔 채로 에릴로트의 기척을 주시했다.
시녀가 떠난 후, 에릴로트는 조용했다.
“세계수…….”
커튼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 에릴로트의 실루엣이 비쳤다.
세계수는 장관이었다.
이 웅장한 유리 온실로도 모두 품을 수 없이 거대한 밑동이 천장을 넘어 이어져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 하나에도 기묘한 힘이 느껴진다.
“……너구나.”
에릴로트는 자신의 눈으론 처음 보는 데도 이상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어딘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세계수에서 태어난 전생의 자신에겐 요람 같은 곳이기에 그러할까.
“왜 우리를 버렸지?”
어째서 고대의 인간을 버리고, 이계의 존재에게 세상을 내어줬을까.
왜 폭풍을 일으켜 자신의 뿌리에서 태어난 문명을 멸망시킨 거지?
“어째서야…… 세계수.”
“오만하기 때문이지. 너처럼.”
달리아의 목소리였다.
에릴로트가 움찔, 고개를 돌렸다.
* * *
커튼 속에서 나타난 달리아는 초췌한 차림이었다.
철창 차와 감옥을 오가며 옷은 죄 해져 있었고, 손질 안 된 머리가 엉망으로 헝클어졌다.
이제껏 잠도 자지 못했는지 눈엔 핏발이 섰다.
“바퀴벌레도 너만큼 끈질기진 않을 거야, 달리아.”
“끈질겨? 내가?”
달리아는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끈질긴 건 너지.”
그 애의 양손엔 약 30센티쯤 되어 보이는 검이 들려 있었다.
단도라고 하기엔 길지만, 그렇다고 장검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길이다.
어스름한 달빛이 검집에 닿아 부서졌다.
검 자루 부근에 사자가 새겨진 저 검.
나는 저 검을 알고 있다.
‘제사장…… 세일론의 검이다.’
고대에서 그가 세계수에 제를 지낼 적, 날개 종의 몬스터나 짐승을 죽여 바치는 데에 쓰던 검.
태사자의 검이라 불리기도 하는 그 검.
고대의 달리아가 이노락스의 봉인을 파훼하기 위해 훔쳐 썼던 그 검 말이다.
“결국 또 네가 그 검을 잡았구나.”
“알아? 이 검은 그 어떤 결계도 부술 수 있어.”
“그런데?”
“이해를 못 하는구나. 답답해라.”
달리아가 히죽히죽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세계수 같은 엄청난 것을 지키는 사람이 왜 없겠니?”
“왜 없는데?”
“세계수는 가장 청정하고, 완벽한 결계거든. 이런 것도 못 배웠나 보지?”
나는 하하 웃었다.
“멍청하다는 말이 상처였나 봐? 배움에 집착하는 걸 보면.”
“닥쳐!”
“많이 배웠어도 멍청한 사람은 멍청해, 달리아.”
“닥치라니까!”
“유세은을 봐. 대학을 다녀도 멍청하잖아?”
달리아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미친……!”
“멍청해서 오만하고, 오만하니 모든 일을 그르쳤지.”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게 당연한 사람이야. 유혜민은 미움받는 사람이지. 그러니까 나는 유혜민보다 특별한 거지.”
“……시끄러워.”
“특별한 나를 위해서 유혜민이 고생을 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런데 왜 유혜민 주제에 감히 내게 대항하는 거지?”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시끄럽다고.”
“그래서 날 상대하면서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았지? 어차피 네가 더 특별하니까 나 따위는 상대도 안 될 거라는 자만 때문에.”
“…….”
“그런데 봐.”
“…….”
“지금의 너, 특별해?”
“…….”
“네 생각만큼 멋진 모습이니?”
달리아가 이를 악물고 내게 달려들었다.
“모두 네가 망쳤어, 모두!”
내 멱살을 쥔 그 애가 악귀처럼 소리쳤다.
“너만 아니었으면 난 행복했을 거야!”
“내가 없던 서울에서 행복했어? 아니잖아. 그래서 그리미에의 손을 잡고 이 세계로 넘어온 것 아냐?”
“네가 모든 걸 망치고 갔잖아. 보험금만 있었어도……!”
“날 평생 착취하던 널 위해 내가 왜 돈을 남겨야 해?”
“달리아가 되었는데도 너는 나를 끝까지 괴롭혔어.”
얼마나 흥분했는지 태사자의 검을 쥐고도 나를 마치 들듯이 멱살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나는 까치발을 들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모두 네 멍청한…… 짓 때문이었어.”
“네가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모두 잘 됐을 거야! 모두!”
“네가…… 가진 모든 게 내 것을…… 훔쳤던 거야!”
나는 달리아를 거칠게 떠밀며 외쳤다.
“내 힘을 훔치고! 내 혈족을 네 것이라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결국 칼소이에의 수많은 백성을 죽였어!”
“닥쳐, 닥쳐, 닥쳐!”
“얼마나 더 추해질래? 인정해. 넌 쓰레기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특별해지지 못한다고 떼만 쓰는 멍청이!”
“날 매도하지 마!”
“변명할 거리가 있어?”
“네가 아무리 날 구렁텅이에 처박고 싶어도 내겐 구원의 손을 뻗는 사람들이 있어.”
“뭐?”
“넌 미움받는 애니까.”
달리아가 흥, 오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베르단디 황비가 그랬어. 네가 싫다고. 그러니까 네 힘을 뺏어서 내가 옳게 쓰라고.”
“…….”
“아나스 황비도 날 돕고 있어. 세계수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나스 황비가 신관인 제 오라비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야.”
“…….”
“이제 알겠어? 넌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남에게 미움만 사는 몸이라고.”
“…….”
“그러니까 나만이 네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어. 내 놔, 그 힘—!!”
달리아가 검집을 내던졌다.
검날이 푸르게 빛났다.
검자루를 거머쥔 그녀가 에릴로트를 향해 달려들었을 때였다.
쿠르르르르르릉—!
천지가 진동했다.
그 때문에 달리아가 균형을 잃었고, 에릴로트는 그 틈에 몸을 피했다.
그리고 검은…….
“……!”
세계수에 꽂혀버렸다.
그때였다.
상공에 엄청난 수의 송신기가 떠올랐다.
[이게 무슨 짓이냐!]제왕들의 목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