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78)
이 3세는 악역입니다-377화(378/390)
377화.
달리아는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제단인 것 같은데…… 여기서 뭘 하려는…… 설마.’
그리미에, 이노락스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빠가 이제까지 에릴로트를 죽이지 않은 건 그 애의 힘 때문이죠?”
“그래.”
“그런데 저를 불러올 예정이었다면 굳이 에릴로트가 없어도 됐잖아요? 저도 그 애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가능하니까.”
그 말에 그리미에는 하하 웃었다.
“에릴로트는 달리 쓸 데가 또 있지.”
“달리 쓸 데요?”
[그래. 그 애는 폭풍의 제물로 쓰여야 하거든.]“폭풍?”
[인공 마수를 만들기 위해 어둠을 그렇게나 열지 않았니. 나의 세일론 님과 그의 악랄한 고대 딸이 닫아둔 이계의 문이 열릴 것이야.]“열리면 어떻게 되는데요?”
[인류는 해결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은 몬스터들이 넘어올 테지. 이를테면 ‘용’ 같은 몬스터 말이다.]“요, 용이요?”
“그래, 그러니 그 애의 혼과 육체는 아직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
“혼은 제사장을 강제하여 힘을 빼앗기 위해, 육신은 제물로 바치기 위해.”
“……제물로 바쳐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야 죽겠지. 산산조각이 나서.]“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요.”
그리미에는 싸늘하게 입꼬리를 올렸고, 자신은 그의 품에 안기며 히죽거렸다.
“에릴로트는 우리에겐 버릴 데가 없이, 좋은 물건이로군요.”
—하며.
그때는 즐거웠지만, 지금 떠올리니 소름이 끼친다.
‘나, 날 폭풍의 제물로 쓰려는 걸지도 몰라!’
사색이 된 달리아가 철창을 쥐고 소리쳤다.
“여, 여긴 어디야? 뭘 하려는 거야!”
“…….”
“…….”
물 샐 틈 없이 주변을 에워싼 군사들은 말 한마디가 없었다.
달리아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혹시 나를 제물로 쓰려는 거야?”
“…….”
“에, 에릴로트를 만나게 해줘. 아, 아니, 제왕들과 얘기를 해야겠어!”
“…….”
“제, 제왕들은 모르고 있어. 나를 제물로 써봐야 소용없다고! 에릴로트가 너희를 속이고 있어!”
“…….”
“듣고 있어?! 에릴로트가 너희를 속이고 날 제물로 둔갑시킨 거라니—”
“염려하지 마. 넌 제물로 둔갑된 게 아니라, 제물이 맞으니까.”
에릴로트의 목소리였다.
콘라드, 한지혁과 함께 등장한 그녀는 흰 소복 같은, 프릴 하나 없는 민무늬의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제, 제를 지내려는 게 맞는 거야!’
그리미에에게 들었다.
제를 지내는 자는 신성 결계를 몸에 두른다고.
저 복식은 몸에 두른 신성 결계에 이상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금사나, 특정 옷감은 마력 전도율이 높기 때문에 계산식에 이상이 생길 수 있기에.
“너, 너……!”
달리아는 희게 질린 얼굴로 철창을 흔들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네가 날 이용하려 했듯, 나도 널 이용하는 것뿐인데.”
“나, 난 달라. 난 세계수에서 태어난 혼이 아니니까!”
에릴로트가 천천히 철창으로 다가왔다.
“너 말이야. 스스로가 뭐라고 생각해?”
“……뭐?”
“아직도 네가 인간이라고 믿는 거야?”
“……무슨 소리야.”
에릴로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달리아를 훑어보았다.
“육체는 마사의 몸이지. 마사의 몸은 애초에 ‘그리미에가 만든 그릇’이야. 실험과 실험을 거듭하여 고대 몬스터를 재료로 만든 호문클루스거든.”
“……!”
“거기다 너 스스로 개화 의식부터 시작해 또다시 몸을 개조했어.”
“…….”
“나와 가장 비슷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
즉, 영혼을 성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달리아, 넌 현재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비슷한 형태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야.”
“…….”
“그리고 세계수를 함께 제물로 사용하면 순간이나마 나와 동일한 능력을 갖게 되겠지.”
“……!!”
달리아는 온몸의 피가 차게 식은 기분이었다.
“그,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어! 그, 그리미에는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애초에 그리미에는 널 이렇게 써먹기 위해서 데려온 거야.”
“……뭐?”
“생각해봐. 그리미에가 목적을 이루고 나면 가장 거슬리는 존재가 누구일까?”
“그건…….”
에릴로트는 가만히 달리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야, 달리아.”
“……아, 아냐.”
“그리미에를 뛰어넘는 강대한 힘을 가졌으나, 감정적으로 미숙하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너.”
“…….”
“너를 겪으며 그리미에는 점점 더 훗날 널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졌겠지.”
“……거짓말.”
“그래서 최후엔 날 죽이려고 한 거야. 어차피 네가 있으면 제물로 쓸 수 있을 테니까.”
달리아는 고성을 내질렀다.
“그래서 그리미에의 계획을 네가 잇겠다고? 그럼 네가 그리미에와 뭐가 다른데?!”
“…….”
“그렇게나 착한 척하더니 결국 날 제물로 쓰는 비인간적인 짓을 하겠다는 거야?!”
“난 한 번도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
“……뭐?”
에릴로트는 철창을 꽉 그러쥔 달리아의 손을 바라봤다.
“정의롭고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 따윈 한 적도, 바란 적도 없어.”
“…….”
“어떻게 가능하겠니. 내가 그런 굉장한 존재가 어떻게 될 수 있겠어.”
“…….”
“난 아주 평범해.”
모두의 시선이 에릴로트에게 향했다.
철창을 감시하던 군사들도, 한지혁과 콘라드를 비롯한 에릴로트의 아군도, 마경을 통해 지켜보는 자들까지도.
에릴로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난 타인이 내게 날붙이를 들었다면, 나 또한 날붙이를 들 거야.”
“…….”
“난 내가 겪은 아픔을, 날 공격한 사람에게 돌려주는 그런 옹졸한 사람이야.”
“그런 네가 나와 뭐가 달라—! 뭐가 다르기에 난 철창 속에 있고 넌 철창 밖에 있는 거야—!!”
달리아가 눈을 꽉 감은 채로 악을 내질렀다.
에릴로트는 무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르지 않아.”
“……뭐?”
“나도 너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
“내 선택에 책임을 질 거야.”
“……뭐?”
“달리아 팔로스토. 넌 네 부귀영화를 위해 칼소이에의 수십만 백성들을 학살하고, 황궁에 반기를 들어 내전을 초래했다.”
달리아가 입을 뻐끔거리며 에릴로트를 바라보았다.
에릴로트는 단호히 말했다.
“이제 네 선택에 대가를 치러.”
“…….”
“죽어간 모든 백성, 가족과 형제와 이웃을 먼저 보내고 괴로운 내일을 맞은 백성들에게.”
모두의 시선은 시체처럼 파리한 얼굴의 달리아에게 향했다.
달리아에게 피붙이를 빼앗긴 자들.
달리아의 욕망에 친구를 잃은 자들.
달리아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 연인을 희생당한 자들.
새빨갛게 충혈된 수많은 시선이 화살촉처럼 쏟아졌다.
에릴로트가 말을 이었다.
“너와 네가 택한 아비로 인해 삶을 송두리째 희롱당한 내게.”
콘라드, 한지혁, 잔느를 비롯한 에릴로트의 동료들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에릴로트는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너 스스로에게도.”
달리아의 얼굴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선언이 있었다.
“제를 시작한다—!”
군사들이 제단으로 이어진 계단을 향하여 홍해처럼 갈라졌다.
달리아가 고성을 내질렀다.
“시, 싫어! 싫어! 어, 언니, 진짜로 날 죽일 건 아니지? 그렇지? 언니, 제발……! 우린 한때 이부자매였잖아. 20년이 넘도록 자매로 살았잖아!”
달리아는 철창 밖으로 손을 뻗으며 애원했다.
“어, 언니, 이러지 마. 언니, 제발……!”
에릴로트는 계단을 걸으며 말했다.
“죽어간 모든 사람, 그리고 첫 번째 삶의 나도 그렇게 애원했단다, 달리아.”
용서는 없었다.
주변국에서 차출된 신관들.
아스트라에서 도착한 셀레네.
몇 년 새에 칼소이에 신성 기사 중 최강이 된 이세즈.
신성력으로 정평이 난 자들이 제단 주변에 둥글게 모였다.
에릴로트와 같은 차림을 한 그들이 성어(聖語)를 읊었다.
철창은 성어의 길을 따라 천천히 중앙,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에릴로트 또한 철창 앞에 자리했다.
그 시각, 각국의 제단에서도 세계수의 죽은 잎을 제물로 제가 이뤄지고 있었다.
칼소이에 또한 라온트라에서 보내온 세계수의 잎을 중앙에 둔 채로 성어를 읊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렉시스가 물었다.
“라온트라의 제는?”
제단 옆에 세워진 거대한 마경을 바라보던 이시론 공작이 말했다.
“하늘이 어두워졌으니 곧 공명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래.”
그런데 그때였다.
쿠르르르르르릉—!!
상공에서 커다란 굉음이 느껴졌다.
칼소이에의 귀족들이 흠칫, 상공을 쳐다봤다.
“기, 길……!”
트랑 공작이 손가락질했다.
젊은 샤토브리앙 공작 또한 사색이 되어 알렉시스에게 소리쳤다.
“폐하, 어둠이 열리고 있습니다! 고대와는 다른 새로운 길입니다!”
사실이었다.
칼소이에 제단의 상공에 길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타난 건…….
“리, 리바이어던!”
거대한 물뱀.
즉,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였다.
고대 몬스터 리바이어던의 길이 칼소이에 상공에 열린 것이다!
소란은 칼소이에만 겪는 것이 아니었다.
“폐하!”
바다 건너 상테 대륙.
마기우스 4세의 신하들은 새파랗게 질려 고함을 내질렀다.
“황궁 밖 메라탄 마을에서 길이 열렸습니다!”
“뭐, 뭐라?! 고대에 길이 있던 지역이 아니지 않으냐!”
“그, 그렇지만 몬스터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 하는……!”
마기우스 4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무슨 몬스터라더냐!”
“고, 공허! 공허입니다!”
“공허라니—!!”
칸시스 대륙, 아사발.
태녀 엘바라가 고함을 내질렀다.
“결코 성 밖으로 빠져나가게 두어선 아니 되느니라!”
크림슨 구울이 길을 통해 나타났다.
병사들이 항전했으나, 거대한 크림슨 구울에 의해 수수깡처럼 쓰러졌다.
사태는 라온트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에, 에릴로트 궁주님…….”
라온트라의 신관은 새까만 안색으로 에릴로트를 바라보았다.
“성어를 멈추지 마—!”
“하, 하지만……!”
“멈추지 마! 제는 지속되어야 한다!”
상공에서 나타난 것은 용이었다.
기존에 고대에서 나타났던 그 길이 아닌, 제단 바로 위에서 새로운 ‘용족의 길’이 열렸다.
용이 나타난 이상 방법이 없건만, 어떻게 성어를 멈추지 말라는 것인가!
라온트라의 황족, 귀족, 심지어는 에릴로트의 군사들까지 본능적인 공포로 몸이 얼어붙었다.
“아, 으, 으아아아아아아—!!”
황자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신관들 또한 하나둘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라곤!”
에릴로트의 어린 용 라곤이 쉭! 날카로운 소리로 상공을 가르며 제단에 날아왔다.
에릴로트는 곧장 라곤의 등에 올라타 길 위로 향했다.
“제를 지속해라!”
“에릴로트 님!”
“아가씨!”
“주군!”
사람들이 고함을 내질렀으나, 에릴로트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라곤의 등에 올라 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그녀의 주위로 문자가 떠올랐다.
[바람의 벽이 생긴다.용족은 길을 넘어오지 못한다.
길을 넘어온 푸른 용은 라곤의 이빨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지리라.]
에릴로트의 몸에 온통 새파란 핏줄이 떠올랐다.
마경을 통해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성들과 제왕들, 귀족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제발!’
부디!
부탁해!
저택에서 마경을 바라보던 루멜리사가 치맛자락을 꽉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에릴로트 양!”
“이, 이러고 있어도 되겠어요?”
“지원! 지원을 나가요!”
그녀와 함께 마경을 바라보던 레이디들이 소리쳤다.
그리고 아스트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경을 바라보던 혈족들이 소리쳤다.
“황도에 지원을 나갑시다!”
“에릴로트!”
“저러다 죽겠어!”
“제기랄—!”
광장에서도 두 손을 모은 백성들이 마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발, 제발……!”
“어, 엄마…….”
“에릴로트 아스트라!”
라온트라의 제단.
글자에 가로막힌 푸른 용이 기괴한 고함을 내질렀다.
“끼에에에에엑—!”
그러던 찰나.
라곤이 거칠게 용의 목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앗—!
세계수에서 흰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