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82)
이 3세는 악역입니다-381화(382/390)
381화.
열세 명의 사자들 사이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일론만이 맞은 곳을 문지르며 인상을 쓸 뿐이었다.
나는 울던 것도 잊고 픽 웃었다.
세일론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 콧등을 툭 쳤다.
“아비가 맞는 꼴을 보니 울다가도 웃음이 나는 게냐.”
“네.”
“‘네’는 무슨…….”
그러나 세일론도 이내 웃어버렸다.
평화로웠다.
마치 일로테의 유년 시절처럼.
그때였다.
“여, 여기가 어디야?”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흠칫, 고개를 돌렸다.
사자들 뒤로 달리아, 아니, 유세은의 얼굴이 보였다.
‘유세은도 이곳에 왔어?’
나는 어떻게 된 거냐는 표정으로 미카엘을 쳐다봤다.
미카엘은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가 이동하며 육체를 잃은 영까지 함께 온 것이지.”
“이동…… 아, 어떻게 됐어요? 성공한 거예요? 이계의 길이 닫힌 것 같았는데…….!”
양손으로 미카엘을 붙들며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키라 또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성공했지, 그럼. 누구 딸인데.”
“아…….”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는 머리를 쥔 채로 헐떡였다.
‘정말로 끝났구나.’
결국 이루었어.
환희로 떨리는 내 몸을 제롬이 끌어안았다.
“고생 많았어.”
“…….”
“너무나. 너무나도.”
“…….”
“모든 걸 네게 맡겨 한없이 면구스러우나, 결국 네가 모든 것을 이뤄낸 덕에 우리의 영혼은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졌다.”
“…….”
미카엘이 날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바키라도, 세일론도, 다른 아빠들마저도.
“고맙다, 아가야.”
“모두 네 덕이다.”
“자랑스럽구나.”
나는 아빠들을 올려다보았다.
“……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손등으로 코를 문지르던 난 “아.” 하고 말했다.
“혹시 저 죽었나요?”
“뭐?”
“뭐라고?”
감격스러운 표정이던 아빠들이 멈칫했다.
세일론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또 무슨…….”
“일단 전 세계를 구한 영웅이잖아요? 그리고 영웅기는 대부분 영웅의 사망으로 끝난다고요.”
“…….”
“아니면 나라를 건국하거나. 건국해도 동료들이 막 찢어져서 싸우고 아주 막, 어?”
사극은 다 그렇더라.
그리고 건국왕은 외로운 왕좌에서 떠나간 동료들을 추억하며 눈을 감는다.
‘그다음엔 역사 내레이션이…….’
응, 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아빠들은 말이 없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로 죽은 거라면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목적은 다 이뤘네. 알렉시스가 동상 같은 거 세워주겠죠?”
“…….”
“솔직히 엄청 아쉽긴 하거든요. 그런 개고생을 했으니 이제 호의호식할 일만 남았잖아요? 하지만 동료들끼리 패싸움하면서 권력 다툼을 하는 것을 보느니 이게 나을지도.”
“…….”
“아, 그래도 인사는 좀 하고 오고 싶었어.”
“…….”
“부모님이 많이 울 거예요. 엄마보단 아빠가 엉엉 울 것 같은데. 그렇게 안 보여도 자식들 일에 여린 사람이라.”
“…….”
“친척들은…… 뭐, 알아서 살겠고. 오라버니들도 잘할 거고, 알렉시스는…….”
“…….”
“바로 여자를 만나면 가만 안 둬.”
내가 이렇게 개고생을 하고 죽었는데, 곧장 다른 연애를 해?
‘삼 개월쯤은 애도해야지.’
난 그릇이 넓은 사람이 아니라 그 모습을 보면 분통이 터질 거다.
“영혼으로 주변 사람들을 볼 수 있을까요? 드라마에선 다 그러던…… 악!”
꿍!
바키라가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게 어딜 죽음 운운이야! 이 고생을 했는데 살아서 호사를 누려야지!”
“……나 안 죽었어요?”
주변을 둘러보자, 아빠들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상냥한 미카엘과 이카로스마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우린 네 아비란다. 네가 죽을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사명을 맡기진 않는다.”
회갈색 머리칼의 이카로스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묻자, 세일론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네가 <열람>으로 전개한 문장을 떠올려 봐라.”
“그러니까…… ‘이계의 문을 닫는다’랑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는 다시 이 세계에 다다를 수 없으리라’인데…… 어?”
“네 이름은 무엇이냐?”
“에릴로트요.”
“또?”
“또, 라고요?”
순간 겁에 질려 있는 유세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혜민.”
“그래, 넌 이 세계를 겪고 이름까지 얻고 왔지. 반쯤은 이세계인인 것이다. 해서 세계는 너를 ‘인류를 위협하는 강력한 존재’로 규정한 것이겠지.”
“그럼 저 돌아갈 수 있나요?”
아빠들이 빙그레 웃었다.
“산 자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돌아갈 방법은 있지.”
“와—!”
나는 환호성을 내지르며 세일론의 목을 끌어안았다.
세일론이 내 등을 두드렸다.
“이번엔 네가 동료들을 믿고 기다려라. 우리가 널 믿고 기다렸듯.”
“네.”
그러자 유세은이 얼른 소리쳤다.
“저, 저기!”
나와 아빠들의 시선이 유세은에게 향했다.
유세은은 쭈뼛거리며 물었다.
“저, 저도 돌아갈 수 있나요? 기왕이면 서울로 가고 싶은데……!”
“돌아갈 몸이 있느냐?”
바키라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물었다.
유세은은 움찔했다.
“네?”
사자 중 가장 박식한 쿼로스가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넌 이미 혼의 힘 대부분을 소진했어. 괴물이 되면서 말이지.”
“네? 그럼…….”
“현재 상태로는 혼이 있는 육체론 들어갈 수 없다. 그리미에가 했듯 새로운 영혼을 받아들이기 위해 육체를 개조하지 않는 한.”
“…….”
“즉, 과거론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네가 죽음 시점 이후로라면 몰라도.”
이번엔 바키라가 입을 열었다.
“한데 네게 영혼이 사라진 육체를 지키고 있어줄 동료가 있나?”
“그건…….”
“에릴로트와 같이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온갖 수를 동원해줄, 간절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동료가 있느냔 말이다.”
“…….”
아젠탈 아빠가 싸늘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너 또한 남을 위해 그리 살지 않았으니, 남 또한 너를 위해 그리 노력해주지 않을 것이다.”
오르카 아빠 또한 싸늘하게 뇌까렸다.
“그것이 너와 에릴로트의 차이다.”
“말도 안 돼…… 다 내 잘못이란 말이야?”
유세은의 표정이 무너졌다.
* * *
칼소이에 제국.
“흑, 흐윽…….”
“아아아……!”
“에릴로트 님……!”
에릴로트는 관에 누운 채로 귀환했다.
에릴로트의 관이 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스트라 공작성.
아스트라의 혈족들이 도착한 군사들과 에릴로트의 관을 맞이했다.
모두가 초췌한 표정이었다.
관이 도착하기 무섭게 리앙틴이 뛰쳐나와 오열했다.
“이런 게 어디 있어! 이런 게 어디 있느냔 말이야! 일어나! 일어나, 이 못된 계집애야—!!”
그녀의 부친인 데콘스가 관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리앙틴을 붙잡았다.
“리앙틴…….”
“거짓말이에요! 이게 또 우리를 속이려고 그러는 거야. 뭔가 노리는 게 있어서—!”
“리앙틴, 제발…….”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눈물범벅이 된 디오네라마저 리앙틴의 곁으로 뛰어왔다.
“에릴로트……!”
디오네라의 모친인 바실레가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채 고개를 돌렸다.
관과 함께 돌아온 셀레네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그리츠의 군사들 또한 울음을 터뜨렸다.
“아, 아가씨가…….”
루카는 소년병 시절부터 에릴로트를 따랐던 젊은이들을 다독였다.
“그만해라. 우리가 이렇게 슬퍼하면 아가씨의 혼이 발을 떼지 못할 거야.”
하지만 이그리츠의 대장인 칼리마저 관 위에 엎어져 오열하고 있었기에, 누구 하나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할러드마저 눈을 꽉 감았고, 켄달은 고개를 돌린 채로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공작성 안.
창 밖의 행렬을 바라보던 드뷔시 자작이 힐끗, 책상에 있는 크로노스 아스트라를 쳐다봤다.
“아가씨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그래.”
“나가보지 않으실 겁니까.”
“…….”
길을 닫은 이후, 마경을 통해 에릴로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 후, 크로노스 아스트라는 일에 몰두했다.
“아버님도 독하시군. 그리 아끼던 손녀가 떠났는데 어찌…….”
“차가운 성미를 잘 알지 않습니까. 하여간 대단하세요. 나도 마음이 이리……. 셀레네도 그 아이를 아꼈으니 속이 많이 상했을 테지요.”
“데이몬드 형님의 속이 말이 아닐 겁니다. 어찌할는지. 아버님 반만 냉정하면 좋으련만.”
자식들마저 그리 말했으나, 드뷔시 자작은 알고 있었다.
에릴로트의 사망 소식 이후, 크로노스 아스트라는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데이몬드는.”
“행렬에 계십니다. 벨로스터 태자도 함께로군요.”
“결혼은 언제 할 셈이라더냐.”
“글쎄요. 에릴로트 아가씨께서 가셨으니, 두 분이 합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드뷔시 자작은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어이 리시먼드, 발자크, 요슈아 삼 형제 또한 관을 끌어안은 채 오열하고 있었다.
마치 제 살을 잃은 듯, 숨이 끊어질 것처럼 격렬히.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저들에게 그런 존재였다.
* * *
크로노스의 보좌들이 에릴로트의 장례 절차를 논의했다.
“공작님과 협의하는 것이 좋을는지요.”
안경을 쓴 채로 서류를 보던 크로노스가 손을 내저었다.
“그럴 정신이 없을 것이다.”
“각국의 권세가들이 장례식 참석을 청하고 있습니다. 알리기오사, 저먼, 슈엘리즈…… 상테 대륙의 마기우스 4세 또한 친히 방문하겠노라 친서를 전해왔습니다.”
“모든 초청을 받지.”
“황실에서의 연락입니다. 알렉시스 섭정이 새벽녘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래.”
혈족들과 가신들이 피폐한 얼굴로 장례를 논의했다.
그렇게 하나둘 논의가 끝나고 성은 어둠에 파묻혔다.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깊은 밤.
서류를 작성하던 크로노스의 손이 멈칫했다.
“이 부분은 자료를…….”
“일하고 계세요?”
에릴로트의 환영이 보인다.
크로노스의 시선이 문가에 머물렀다.
이렇듯 깊은 밤까지 집무실에 불이 꺼지지 않으면 종종 간식거리를 가지고 들르던 녀석이었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
“와아, 글씨 예쁘다.”
“…….”
“저요. 할아버지 손이 좋아요.”
크로노스가 한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뜨거운 눈물이 손 틈새로 흘러내렸다.
“하부지, 내가 지키꺼야요! (할아버지, 내가 지킬 거예요!)”
“그만해.”
“하부지, 조아……. (할아버지, 좋아…….)”
“그만해, 제발…….”
잠들 수가 없었다.
언제, 어느 순간에도 에릴로트의 환영이 보였으니까.
크로노스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서류를 내던지고 벌컥! 문을 연 그가 성 밖으로 달려 나갔다.
에릴로트의 관이 있는 그곳으로.
에릴로트의 관이 지나는 곳마다 마법사들과 가호 소유자들이 다가와 그녀를 위해 무엇 하나라도 하고 싶노라 말했다.
누구는 시체에 보존 마법을 걸었고, 또 누구는 시체를 감싼 꽃이 시들지 않게 가호를 걸어줬다.
관뚜껑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그 애를 보아야겠다.
보아서…… 보고…….
‘너를……!’
달리다 넘어져 신발이 벗겨졌다.
맨발이 된 발은 온통 엉망이 되었으나 크로노스는 멈추지 않았다.
‘너를…….’
관 앞에 도착한 크로노스가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왜 이곳에 있느냐.”
“…….”
“……어찌 외투도 걸치지 않고.”
데이몬드였다.
관 밑에 미끄러지듯 앉아있던 그가 시체처럼 파리한 얼굴을 들었다.
금세라도 숨이 멎을 듯 비통한 얼굴이었다.
데이몬드는 희게 질리고, 군데군데 찢어진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
“잠이…… 오지 않아서…….”
“…….”
“숨이 안 쉬어져서…….”
“…….”
데이몬드가 입을 틀어막은 채로 오열했다.
“살려주세요, 아버지…….”
“…….”
“이 애를 제발…… 대신 저를 죽이시고, 그놈의 실험을 해서라도 제발…… 제발 아버지, 저 좀…….”
“…….”
“아, 아아, 아아아…….”
무너진 데이몬드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제발, 저 좀 어떻게 해줘요. 아버지—!!”
크로노스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아들을 끌어안았다.
“……알아.”
“으, 으으, 으으으…….”
“네 마음을 알아…….”
아들을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었다.
처음 품에 안은 아들은 금세라도 무너질 듯 왜소했다.
심장을 떼어낸 듯 무력하고, 약했다.
그 자신처럼…….
“에, 에릴로트…… 에릴로트……!”
그때였다.
“살릴 방법이 있습니다.”
알렉시스의 목소리였다.
크로노스와 데이몬드가 흠칫 고개를 들었다.
“제가 압니다.”
알렉시스의 뒤로 쿠말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유세은의 몸이 희뿌옇게 빛났다.
“어, 언니, 언니!”
나는 흠칫, 아빠들을 쳐다봤다.
“어떻게 되는 거예요?”
“혼이 되어 세상을 떠돌겠지. 영겁을.”
“…….”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있는 인류를 질투하다 무력하게 먼지로 흩어질 것이다.”
저 애에겐 가장 끔찍한 벌이 될 것이다.
“언니! 언니! 도와줘, 언니!”
유세은이 비명을 내질렀으나, 나는 눈을 감았다.
“안녕, 세은아.”
“언니……!”
그렇게 마지막이었다.
유세은이 사라진 후 내 몸 또한 희뿌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도 얼마 남지 않은 건가?’
흠칫하자 아빠들이 빙그레 웃었다.
“그들이 널 부르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