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83)
이 3세는 악역입니다-382화(383/390)
382화.
나는 아빠들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모두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나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다시 만날 수 있어요?”
묻자, 세일론이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만나고자 한다면 언젠가.”
“……거짓말.”
바키라가 픽 웃으며 내 뺨을 가볍게 문질렀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아빠들을 쳐다봤다.
“왜냐면 세일론 아빠가 이런 표정을 하는 건 날 위한 슬픈 거짓말을 할 때잖아.”
“슬프지 않아.”
세일론은 헝클어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바라면 다시 만날 수 있고, 굳게 믿으면 기다림이 괴롭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
“…….”
“너로 인해 알게 되었어.”
“…….”
세일론은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바라건대 네가 구원한 세상 안에서 너 또한 우리와 같은 존재를 품에 안고, 우리와 같은 기쁨을 누리길.”
“…….”
“내 아이를 위협할 모든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에 뛰어들길 주저하지 않는 용기, 내 아이 앞에 일어날 모든 일에 겁먹는 연약함, 그러나 아이의 미소 하나로 눈부시게 아름다울 풍경.”
“…….”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즐겨라.”
“…….”
세일론의 미소가 짙어졌다.
“우리는 그런 너를 즐겁게 바라보고 있으마.”
“…….”
세일론이 나를 끌어안았다.
“사랑한다, 일로테.”
미카엘과 바키라 또한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미카엘이 말했다.
“아가야, 우리는 부족한 부모였으나, 네가 차고 넘치게 훌륭했기에 우리 삶에 의미가 있었음을 증명받았어.”
바키라 또한 미소를 머금었다.
“딸아, 네가 존재함에 단 한 순간도 외롭지 않았고, 네가 있음에 세상을 사랑했다.”
이카로스도, 제롬도, 쿼로스도…….
내 혼에 피와 살을 나눠준 최초의 아버지들은 더없이 밝게 웃었다.
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슥슥, 훔치고 애써 활기차게 말했다.
“더 많이 배우고, 배움에 넘어지더라도 굳세게 일어날 테야. 그러면서 자라 아빠들처럼 멋진 부모가 될 거예요.”
나는 배시시 웃었다.
“이게 내 다음 꿈이에요.”
세일론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래.”
다른 아빠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점점 부유했다.
의식이 멀어지며 마지막으로 아빠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행복해라.]—더없이 따뜻한 그 말을.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땐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눈을 뜨지 않아도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익숙한 향기가 났으니까.
“……트.”
“…….”
“에릴로트…….”
간절하게 나를 부르는 이 목소리를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몸을 뒤척이며 손끝까지 차가운 그 손을 잡았다.
“아빠…….”
“……!”
눈을 깜빡이자 희뿌옇던 시야가 점점 선명해졌다.
아빠의 뒤로 익숙한 얼굴이 잔뜩 있었다.
리시먼드, 발자크, 요슈아. 사랑하는 나의 오라버니들.
한지혁과 콘라드, 미켈란. 소중한 동료들.
잔느와 벨로스터. 나의 멋진 두 엄마.
이제 미운 정이 든 사촌들과 고모, 숙부들.
이그리츠의 군사 몇과 서군 출신의 기사 몇.
그리고 할아버지…….
또…….
“알렉시스.”
“……사람 속을 다 태워놓고.”
“응…….”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 알긴 해……?”
“알아…….”
한 손으로 얼굴을 덮은 알렉시스가 스르륵 주저앉았다.
아빠 또한 울음을 터뜨리며 날 끌어안았다.
나는 어린애처럼 오만상을 찌푸린 채로 울었다.
돌아왔다.
모든 것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평화로운 일상을 거머쥔 채로……!
* * *
꿍!
“악!”
“아니, 한! 아가씨의 이마를 어찌 그렇게……!”
“한!”
한지혁에게 이마를 얻어맞은 내가 비명을 지르자, 하녀들이 펄쩍 뛰었다.
어느덧 공작성의 하녀장이 된 힐다가 도깨비 같은 얼굴로 노려보자, 한지혁이 멈칫했다.
“아니, 난…….”
“감히!”
“가아암히!”
내가 열두 번째 탑에서 이곳 공작성으로 왔을 때 처음 날 돌봐준 힐다와 그레타는 내 든든한 우군이었다.
두 사람이 눈을 부라리자, 데이몬드 공작성…… 아니, 이제 공작 직할령의 상급 하녀인 하이디와 베티도 냉큼 편승해 한지혁을 노려봤다.
잠시 당황했던 한지혁은 큼! 헛기침을 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걱정시켰는데 혼이 나야죠. 너, 이리 와!”
“나 환자인데!”
나는 힐다의 뒤에 쏙 숨어서 양팔로 머리를 가로막았다.
그레타와 하이디, 베티는 왁왁 소리쳤다.
힐다는 근엄하게 소리쳤다.
“아무리 토벌의 공로를 인정받아 귀족원에 이름을 새겼어도 아가씨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어불성설! 이 일을 공작님께 알려서……!”
“귀족원? 이름을 새겨?”
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묻자, 한지혁이 헹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품에서 화려한 양피지를 자랑스럽게 펼쳐 보였다.
[황명에 준하는 알렉시스 섭정의 이름으로 귀하의 토벌 공로를 인정……(중략)…… 귀족원의 이름을 올리는 바이다.]나는 냉큼 양피지를 빼앗았다.
“이거, 이거……!”
너 귀족이 됐어?!
스프링처럼 침대에서 펄쩍 뛰어오르자 한지혁이 히죽 웃었다.
“처음 그 카페에서 만났을 때부터 눈치를 채긴 했지. 이 꼬맹이는 모 아니면 도라고.”
“모 아니면 도?”
“따르면 초대박 아니면 완전 쪽박이 될 거라고 말이야.”
“참나.”
“맞잖아? 도박에 성공해서 이제 자작님이 되었다고 난.”
나는 양피지를 보고 또 봤다.
‘한지혁이 귀족…….’
나를 따르면서 한지혁만큼 고생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언젠가 꼭 챙겨주고 싶었는데, 알렉시스가 한발 먼저 챙겨줬구나.
배시시 웃으며 양피지를 쓰다듬었다.
“다 내 덕이라고 잘난 척하고 싶지만, 사실 모두 네가 한 거야.”
한지혁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알아. 하지만 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나 없는 새에 좀 컸네?”
“제일 절친한 친구가 죽다 살아났는데 성장하지 않을 리가 있냐?”
“아, 그러고 보니까…….”
나는 하녀들을 쳐다봤다.
“한과 나눌 이야기가…… 가 아니라, 지헤크 경과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나가보렴.”
경이라는 말에 한지혁이 헤죽헤죽 웃었다.
하녀들은 못마땅한 듯 한지혁을 쳐다봤지만, 이내 픽 웃어버렸다.
그러곤 우르르 나섰다.
하녀들이 나선 후 나는 본격적으로 물었다.
“내가 2주쯤 시체로 있었다고 했나?”
“정확히 17일.”
깨어난 지는 이틀째니, 오늘이 문을 닫은 지 19일의 낮이다.
“내 영혼을 어떻게 불러온 거야?”
“…….”
한지혁이 움찔 입을 다물었다.
“뭐야, 왜 그래?”
“……네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라.”
“해줘. 뭔데?”
“쿠말이야.”
“뭐?”
쿠말?
서울에 있던 그가 언제 이 세계로 돌아온 거지?
한지혁의 표정이 진지한 것으로 봐선 정말로 쿠말이 날 되살린 모양이었다.
“쿠말이 금술을 이용해 널 되살린 거야.”
“……금술?”
“‘사구’를 연 게 아닐까 싶어. 그리미에가 달리아 혼을 이 세계에 데려왔을 때처럼.”
“불가능해. 이계의 문은 내가 닫아버렸는 걸.”
세계수까지 바쳐서 꽁꽁 닫아버린 문이다.
인간의 힘으로 열 수 있었을 리 없다.
한지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세한 건 몰라.”
“그 남자, 지금 어디 있어?”
“그건 왜. 설마 만나게?!”
“응.”
“좋은 생각이 아닐 것 같은데.”
한지혁은 주저했으나, 내 표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말린다고 들을 얼굴이 아니네.”
“응.”
그는 내 뺨을 콱, 잡고서 말했다.
“죽었다 살아나도 이 놈의 쇠고집은 변할 줄을 모르는구나.”
“이어 앙 나? (이거 안 놔?)”
“어허, 어디 자작님께.”
한지혁이 손을 떼며 씩 웃었다.
“나는 공작 영애거든? 그런데 자작이라고?”
제국법상 신규 귀족이 자작위를 받으려면 500제곱킬로미터를 초과하는 면적의 영지를 가져야 한다.
한지혁이 히죽히죽 웃었다.
“네가 숨겨둔 땅 덕이지.”
“……내가 네 명의로 산 땅?”
“그래! 으하하하하학!”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기꾼.”
“천성이 어디 가?”
한지혁이 낄낄거려서 나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날 해 질 녘.
난 한지혁의 안내를 받아 공작성을 나섰다.
그가 날 데리고 간 곳은 산 중턱에 있는 폐가였다.
“……쿠말이 여기에 있다고?”
“그래.”
“제왕회를 통해 크로노트 회가 종교로 인정받았다면서.”
단, ‘수호성을 해방한다’는 교리를 수정한다는 조건 하에.
“그런데 왜 크로노트 회로 돌아가지 않고…….”
“수호자들이 함께 돌아가자고 했지만, 거절했다더군.”
“그래…….”
나는 폐가 앞에 한지혁을 두고, 홀로 안에 들어갔다.
낡아서 쿰쿰한 곰팡이 내가 나는 커튼이 햇빛을 차단하고 있어서 내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주방인 듯, 식탁이 놓여있는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쿠말……?”
“어찌 오셨습니까.”
쿠말이 맞다.
그런데 감기에라도 걸린 듯 목이 몹시 쉰 상태였다.
“물어볼 게 있어서.”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언젠가 찾아오실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
“…….”
“몸이 좋지 않아 차를 대접할 순 없겠군요. 다만, 하문에 답할 수는 있습니다.”
나는 그대로 우뚝 선 채 물었다.
“어떻게 내 혼을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거야?”
“당신의 고대 아버지들 덕이랄까요.”
“……아빠들을 만났어?”
“서울에만 가진 않았지요. 아주 많은 세계를 보았습니다. 그 중엔 수호성이 모인 곳 또한 있었지요.”
“그렇게나 사구를 많이 열 수 있다고?”
“그 방법을 알기 위해 그리미에에게 붙어있던 겁니다. 목적을 이룬 것이죠.”
아…….
‘그래서 그리미에에게 협조했던 거구나.’
그가 이노락스를 통해 얻은 정보를 빼돌리려고.
“아빠들이 네게 무슨 방법을 귀띔한 거야?”
“귀띔은 없었습니다. 다만 힘을 받았지요.”
“힘?”
“그들에게 남은 모든 힘.”
“…….”
“세계수에서 태어난 자들입니다. 모이면 세계수와 같은 힘을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세계수로 닫은 문을, 세계수에서 태어난 존재들의 힘으로 다시 잠깐 열었을 뿐입니다.”
쿠말은 하하, 낮게 웃었다.
“메시아의 덕도 좀 보았고요.”
“내 덕?”
“서울에서 사구를 열며 깨끗이 길을 닦아두셨더군요. 상당한 양의 마력이 남아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사구는 70년은 족히 열려 있을 겁니다.”
“그렇구나…….”
“세계의 통로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그 곳을 기점으로 이 세계를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
“잔여 마력으로 메시아를 추적했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충분한 답이 되었으면 가십시오. 쉬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나는 뚜벅뚜벅 그에게 다가갔다.
어둠이 눈에 익자 웅크린 등이 보였다.
“어째서 모습을 숨기고 있는 거야?”
“목적은 모두 이뤘습니다. 해서, 이제는 쉬려 합니다.”
“거짓말쟁이.”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십시오. 저는 더 드릴 말씀이—”
휙!
로브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쿠말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메시아!”
“따라와.”
“놓으십시오!”
나는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끌고서 문을 활짝 열었다.
빛이 순식간에 스며들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한지혁이 나와 쿠말을 보고 흠칫 표정을 굳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쿠말 하나를 보고.
“어, 어떻게……!”
한지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내가 잡은 쿠말의 손을 빤히 쳐다봤다.
한지혁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피부는 이곳저곳 기워져 있었고, 주름이 무성했으니까.
마치 금세라도 죽을 날을 받아둔 노인처럼.
“……세계수로 닫은 사구를 열고 무사했을 리 없지. 아무리 아빠들의 힘을 이용했어도!”
“…….”
“그리미에가 심혈을 기울인 최고의 실험체였던 달리아까지 폭발할 만큼 강대한 힘이 필요했어!”
“……이렇듯 눈치가 빠르실 때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쿠말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쿠말을 노려봤다.
“왜 이랬는데? 내가 그토록 매정하게 굴었는데 왜 이런 꼴이 되어서까지……!”
“사랑해서요.”
“……뭐?”
“사랑해버려서요.”
“…….”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너…….”
“그렇게 사느니 이 꼴이 되는 게 낫다고 여겨져서요.”
쿠말이 쓰게 웃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보답을 바라는 게 아니니까.”
“…….”
“저는 이것이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