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84)
이 3세는 악역입니다-383화(384/390)
383화.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지혁.”
“응.”
“성에서 치유사를 데려와.”
내 말에 쿠말이 무감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치유사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제사장의 후예인 당신 또한 제겐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헛고생 말라는 뜻이었다.
“그 지경으로 망가진 건 어쩔 수 없겠지. 그래도 감기 같은 병 정도는 치료할 수 있잖아.”
“그건…….”
“몸이 약해져서 온갖 잔병을 앓고 있지? 목소리만 봐도 알아.”
“…….”
“지혁아, 데려와.”
한지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공작성을 향해 떠났다.
나는 쿠말을 밖에 세워두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커튼을 쳤다.
온통 어두웠던 집 안에 빛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먼지떨이를 사용해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다음은 지푸라기들을 대충 엮어 비질을 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던 쿠말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내 손목을 붙잡은 쿠말을 무감하게 쳐다봤다.
“보면 몰라? 청소.”
“이런 일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일이 뭔데?”
“그건…….”
나는 여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집에서 살면 건강해도 병에 걸릴 거야.”
“…….”
“수호자들에게 돌아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거잖아. 그럼 청소라도 해야지.”
“필요 없습니다.”
“왜? 이런 집에서 살다가 죽으려고?”
“…….”
“그렇게 비참하게 살면 내가 가슴 아파하며 ‘아, 저 남자는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는구나. 저 남자의 사랑이야말로 진짜야.’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
쿠말의 손을 탁, 떼어냈다.
“절대 아니야.”
“…….”
“그러니까 살아.”
“……예?”
나는 다시 바닥을 쓸며 말했다.
“저거 참 못된 여자다, 왜 저런 걸 좋아했을까, 저거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쿠말이 정신없이 나를 쳐다봤다.
“메시아…….”
“멀뚱히 있지 말고 비키거나, 돕지 그래?”
“……돕겠습니다.”
“끝나면 네 얘기 들어줄 테니까.”
“예?”
“줄곧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줘. 들을게.”
“…….”
쿠말의 눈매가 붉어졌다.
엉망이 된 손으로 이마를 짚은 그는 눈을 꽉 감았다.
“예…….”
—대답하며.
* * *
쿠말이 메시아를 처음 인지하게 된 건, 너덧 살 무렵이라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크로노트 회의 임무 중에 사망.
일찍이 고대 수호자의 수호성을 물려받은 그는 할아버지 손에서 컸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주에게 고대의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해서 메시아께선 수호자의 죽음에 분노하시어 초월적인 힘을 개화하셨다. 이노락스는 그렇게 밀려나 몸을 숨겼지.”
어린 수호자들은 하나같이 즐겁게 이야기를 경청했단다.
“크로노트 회의 본지에는 애들 놀거리가 없었어? 왜 그런 지루한 얘기를 즐겁게 듣는 거야?”
내가 투덜거리자, 한지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쿠말이 비식 웃었다.
난 큼,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미안. 계속해.”
“본지에 놀거리가 부족하긴 했지만, 꼭 그렇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수호자들의 수호성 동조율은 엄청난 수치입니다.”
“그럼…….”
“어린 만큼 수호성의 힘을 완벽히 사용할 순 없으나, 어리기에 수호성의 영향을 상당히 받지요.”
“너희는 수호성을 대대로 물려받잖아. ……고대 수호자들 말이야.”
“예. 메시아를 목숨보다 아낀 수호성의 영향을 받은 겁니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알고 있었잖아.”
“무슨 말씀이신지요.”
“네 진심이 아니고, 수호성에게 영향을 받았을 뿐인 감정이라는 거. 그런데 왜 그렇게 메시아에 집착한 거지?”
“처음엔 저 또한 당신이 싫었습니다.”
“…….”
“조종당하는 것 같았거든요. 내가 원하지도 않는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건, 마치 기계가 된 기분이죠.”
“…….”
“나 자신은 싫으나,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수호성은 설렙니다. 내 안에서 내 것이 아닌 감정이 꿈틀대는 기분. ……느낄 때마다 최악이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처음 그리미에의 손을 잡은 건 수호성에 대한 반항심도 있었습니다.”
“…….”
“그런데 당신을 보게 됐죠.”
“…….”
“아십니까? 갓난쟁이인 당신을 열두 번째 탑으로 모셔간 건 저였습니다.”
아니.
몰랐다.
그때는 소설에 빙의했다고 생각했을 때라 주조연만 신경 썼거든.
“열두 번째 탑의 관리자에게 강보에 싸인 당신을 넘겨주는데…… 당신이 내 옷깃을 잡는 겁니다.”
“그랬어?”
“예. 그 작은 아이가 손을 앙당그레 쥐고, 나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정말로 놓치고 싶지 않았어. 열두 번째 탑에 가기 싫었으니까.”
“그때부터였습니다.”
쿠말은 쓰게 웃었다.
“아, 당신도 사명과 운명이라는 것에 반항하고 있구나. 나뿐만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동질감.”
“예. 그때부터 무던히 당신이 신경 쓰였지요. 이따금 열두 번째 탑에서 당신을 살폈습니다.”
“…….”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꿋꿋하고, 그 작은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숨어서 울고…….”
“…….”
“안쓰럽다고 느낀 순간, 알았어요.”
쿠말은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수호성과 다른 감정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명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날엔 나를 보러 왔다고 했다.
수호자들의 리더.
동료들은 모르는 비밀을 끌어안고, 동료들과 다른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 자.
답답한 일이 많았을 것이다.
“수호성이 바라는 대로 당신에게서 사명을 빼앗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금제하였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은 후회하고 있었어요.”
“후회?”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명이나, 운명 같은 것에서 벗어나 살았을지도 모른다.”
“…….”
“뭐든 할 수 있는 애였으니까.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보였으니까.”
“……그런데 왜 나를 죽이려고 했어? 기르타브를 보낸 것 말이야.”
“죽이려던 게 아닙니다. 이 판에서 나가게 하려던 거지.”
쿠말은 눈을 내리깔고 읊조렸다.
아주 음산한 목소리였다.
“그리미에의 욕망은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당신을 정말로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랬구나…….”
“예, 그래서 수호자들은 언제든지 당신을 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미에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그리미에가 나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고 여기고, 안심해서 관심을 거둘 테니까?”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부모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듯 말입니다.”
“이해는 돼. 네 방식에 동의할 순 없어도.”
쿠말이 빙그레 웃었다.
“내가 당신을 남자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
“바란에서였어요.”
“바란? 칸시스 대륙까지 왔었어?”
“예.”
“스토커…….”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쿠말이 하하 웃었다.
“바란에 일이 있었어요. 겸사겸사 당신을 보러가자 싶긴 했지만요.”
“…….”
“왕궁에서 시녀로 일하는 당신을 봤습니다. 선임 시녀가 시킨 걸레질을 투덜거리면서 하다가 냅다 던진 것도요.”
그랬던 적이 있다.
선임 시녀는 유리 왕자와 가깝게 지내는 나를 싫어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떨어뜨려 놓으려고 별일을 다 시켰지.
그 넓은 정원 청소를 나 혼자 다 하라고 해서 혼자 쌍욕을 했던 기억이 있다.
“걸레질을 하다가 벤치 그네에 털썩 주저앉기에 조금 웃었습니다. 하여간 성질하곤…… 그런 생각을 했었죠.”
“맞아, 난 성격이 별로야.”
내가 냉큼 동의하자 한지혁과 쿠말이 웃음을 터뜨렸다.
쿠말은 말했다.
“뭐라도 덮어주자 하고 다가갔는데…… 감겨 있는 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는 겁니다.”
“…….”
“5년 만에 보는 당신은 많이 자라있더군요. 심장이 덜컥 떨어질 만큼.”
“…….”
“담요를 덮어주는 내 옷깃을 잡은 걸 기억하십니까?”
“……아니.”
“잠투정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죠. 한데 저는 알았습니다. 열두 번째 탑에서 내 옷깃을 잡은 당신 손을 보았을 때와는 다른 감정이란 걸요.”
“…….”
“인기척에 급히 돌아와서도 한동안 당신이 잡은 옷깃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
“설레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랬구나.”
“해서 상처였습니다. 당신을 살리기 위해 서울에 간 내게 그토록 차가운 당신이 서운했어요.”
“날 위해서 지구 인간을 다 노예로 삼자는 건 말이 안 되니까.”
당연하잖아?
뻔뻔하게 말하자, 쿠말이 웃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나선 괴로웠습니다. 이제 당신과 함께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마저 버려야 했으니까.”
“왜?”
“이 꼴을 보십시오. 함께 하고 싶은 남자입니까?”
“모습은 중요하지 않아.”
“……예?”
나는 턱을 괸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주 핀트가 어긋나는데 말이야. 난 별로 남자 얼굴은 보지 않거든?”
“…….”
“생각해봐. 우리 아빠만 봐도 그런 화려한 외모인데 다른 사람이 눈에 차겠느냐고. 오라버니들도, 심지어 사촌들도 외모로는 최고잖아?”
나는 한지혁을 척 가리켰다.
“얘도 외모는 엄청나다고.”
한지혁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히죽 웃었다.
쿠말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안 되는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야.”
“……알렉시스 섭정을 뜻하십니까.”
“그래.”
“그러니까 네 외모든, 형편이든 상관없어. 이건 내 감정의 문제라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잘 들었어.”
말하고 떠나려 하자, 쿠말이 황급히 내 앞으로 뛰어왔다.
“내게도 기회가 있습니까?”
나는 그를 빤히 보다가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첫째, 비열한 수단은 쓰지 않는다.”
“……네?”
“둘째, 내 감정과 선택을 존중한다.”
“…….”
“셋째, 이름을 알려줘.”
“이름……?”
“수호자의 이름 말고. 네 진짜 이름을 내게 말해준 적 없어. 이름이 뭐야?”
“……휴고입니다.”
나는 픽 웃었다.
그리고 쿠말, 아니, 휴고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런 방식이라면 나를 사랑하는 것까지 하지 말라고 할 순 없어. 단, 결혼해서는 꼬시는 거 없다? 내 신조엔 바람은 없거든.”
쿠말이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잘 있어. 건강하게.”
“……예.”
그렇게 나는 떠났다.
등 뒤로 쿠말의 짙은 시선이 달라붙었다.
* * *
쿠말은 자신의 손을 빤히 내려다봤다.
“……다정하긴.”
이런데 어떻게 포기해.
살라고, 다른 목표를 가지고 살아보라고 마음을 허락해준 당신을.
이제 삶의 후회가 없었다.
내가 사랑한 여자는 이토록 강하고 상냥하다.
마음을 온통 바친 것의 대가는 충분했다.
바람이 불었다.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쿠말, 아니, 휴고의 삶에 최초로 홀가분한 봄이.
* * *
“어디 갔다 오는데?”
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못마땅한 시선이 돌아왔다.
알렉시스였다.
그가 성문 앞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것이다.
“쿠말한테.”
“뭐?”
“뭘 놀라. 내 영혼을 불러오려고 쿠말과 거래까지 했으면서.”
“…….”
“크로노트회 인정받게 해준 건 너지?”
“……꼭 거래만은 아니었어. 백성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종교엔 자유가 있어야 하니까.”
나는 킥킥 웃으며 알렉시스의 얼굴을 확 끌어당겼다.
“그래서 좋아.”
“……뭐?”
“네가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람이라서.”
알렉시스는 슥,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나 모르게 다른 남자 집에 갔던 건 용서 못해.”
“못하면 어쩔 건데.”
“벌이지.”
“나 벌 좋아! 무슨 벌 줄래?”
알렉시스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벌이 좋은 사람이 어디있어?”
“그야 네가 주는 벌은 세상에서 제일 달콤할 테니까.”
그러며 고개를 약간 기울이자, 알렉시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길 수가 없네…….”
“이기려고 했어?”
“이 기회에 키스 한 번은 할 수 있겠다 싶었어.”
“그게 벌일 줄 알았어.”
나는 알렉시스의 뺨에 쪽 입맞췄다.
알렉시스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정도로 되겠냐?”
“아니면 어떻게 할…… 으악!”
그가 나를 휙! 안아들었다.
깜짝 놀라서 소리쳤지만, 이내 깔깔 웃으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어떻게 할 건데?”
“가면서 생각해보지.”
역시 너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어.
쿠말에겐 미안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다.
다만, 용서하기로 했다.
내 의사를 묻지 않고 내 인생을 뒤흔든 일은 이해하기로 하였다.
만약 나였더라도 알렉시스가 세상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면, 그의 의사를 묻지 않고 내가 나섰을 테니까.
“네가 있어서 이해가 됐어.”
“뭐?”
“그냥 그렇다는 거야.”
“무슨 소리를…….”
“뽀뽀해봐.”
“……후회한다, 너.”
“안 할게.”
알렉시스의 입술이 다가왔다.
그런데 그 때였다.
“신수 좋네?”
“남의 집에서.”
“죽으려고.”
알렉시스의 등 뒤에서 요슈아, 리시먼드, 발자크의 목소리가 순서대로 들렸다.
나와 알렉시스는 움찔 서로를 쳐다봤다.
“하여간 방해꾼들…….”
알렉시스가 으르릉,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