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88)
이 3세는 악역입니다-387화(388/390)
387화.
바란이라니.
‘라온이 무슨 짓을 한 건가?’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바란이 왜?”
[반란입니다. 왕세자 라온이 반란을 일으켜 바란 왕국에서 아가씨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뭐?”
[한데 지원 요청이 바란 왕뿐 아니라 왕세자 라온 또한…….]“뭐어—?!”
내가 버럭 소리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공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영애,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제르모 공작의 아들인 카시안이 물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힐끗 쳐다봤다.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챈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카시안에게 빙그레 미소 지었다.
“손님들께 누를 끼쳐 송구스럽습니다만, 신경 쓰실 만한 사안은 아닙니다.”
아쳐 클럽의 장인 위엘 랑그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면야 뭐…….”
“하면 저는 이만.”
“예? 가십니까?”
위엘과 공자들이 ‘에이…….’ 하는 표정으로 울적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지혁에게 눈짓했다.
“가자.”
한지혁과 함께 슥, 자리를 빠져나왔다.
한지혁도 통신석을 확인하더니 어처구니없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왕궁과 라온 측이 동시에 통신 요청을 했어?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어느 쪽과 먼저 통신하느냐’로 난리겠구만.”
“그러게.”
“타국 내정에 관여해서 좋을 게 없는데……. 네 아버지는 뭐래?”
“아직 연락이 없으시지만 뭐…….”
나와 한지혁이 서로를 쳐다보며 동시에 말했다.
“너 좋을 대로 해라—하시겠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하시겠지.”
그렇다.
아빠는 자식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답을 주겠지만, 아니라면 묵묵히 기다려주시겠지.
나도 이런 선택을 온전히 아빠에게만 맡기고 싶진 않았다.
공작성의 통신실로 향했다.
내전 후, 장원을 복구하며 통신시설을 그리미에 령에서 공작성으로 옮겨왔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큰 공사라 다들 난색이었지만.
“아빠, 전 밀어붙이고 싶어요.”
“아스트라는 서부의 통신 거점이야. 서부 귀족들의 저항이 클 거다. 그들을 모두 회유한다고 해도, 시설을 옮기는 동안에 일어나는 모든 통신 장애를 우리가 보상해야 할 테고.”
“네. 또, 통신 시설 건설에도 큰돈이 들 거예요.”
“뿐만 아니라 장원에서 전투가 일어날 시에 위험도가 높지. 현재는 적이 통신 시설을 노릴지, 장원의 상징인 공작성을 노릴지 고민하지만 시설을 옮긴 후엔 그럴 필요가 없어.”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으니 공작성이 최적의 공격 장소가 되겠지요.”
“모두 알면서도 밀어붙이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냐.”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으니까요.”
“…….”
“지금이라면 주변 귀족들이 쉽게 회유될 거예요. 저라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아스트라에 있으니까.”
“에릴로트, 넌 무기가 아니야.”
“감사해요. 하지만 제 존재에 가치가 있다는 건 사실이잖아요.”
“…….”
나는 아빠를 꾸준히 설득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바다가 열렸고, 전 대륙이 소통하고 있지요. 갈수록 백성의 소리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해질 거예요.”
“해서.”
“변화가 시작한 시대인 만큼 분열이 가장 위험해요. 통신 시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지역을 다스리는 자들의 욕심을 자극할 수 있어요.”
“…….”
“현재의 기술로는 통신 감청을 막기 힘들잖아요.”
“청백한 자를 관리자로 둘 수 있어.”
“아빠, 저는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말을 들은 아빠와 가신들, 혈족들 모두 침묵했다.
다들 일견 동의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 지배자의 첫 번째 역할은 환경을 조성하는 게 아닐까요.”
“…….”
“욕심낼 수 없는 환경, 욕망이 아닌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 그런 것들이요.”
“…….”
“해서 지배자는 언제나 겁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겁은 우리가 내고, 백성들은 단지 안심해야지요.”
“…….”
“전투가 겁이 나서 주변과의 화합을 다지고, 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욕망하지 않을 환경을 만드는 것.”
모두가 나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던 그날.
아빠는 결단을 내렸다.
“통신 시설을 공작성으로 옮기겠다.”
물론 아빠를 설득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이제 시설을 세우고, 방어책을 만드는 일이 중요해졌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일의 책임자로 이 사람을 꼽았다.
“일은 열심히 하고 있어, 테드 마딜로?”
카인로드 숙부의 조카이자, 그리미에의 세작이었던 그 녀석 말이다.
현장을 지휘하고 있던 테드 마딜로가 움찔 나를 쳐다봤다.
큼, 헛기침한 그가 말했다.
“……일을 맡기신 분이 엄청나게 무서운데 어떻게 놀 수 있겠습니까?”
일을 맡기신 분.
그러니까 내가 무서워서 열심히 일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쿡쿡 웃었다.
“친구들이 바닷가에 있던데. 랑그로 공자와 제르모 공자 말이야.”
“……압니다.”
“안 가봐도 돼?”
“예…….”
테드는 어린 날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이 변했다.
아마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많이 변한 자가 아닐까.
위엘 랑그로, 카시안 제르모보다 훨씬 순수하고 소심했던 그가 이제는 가장 단단했다.
조부로 인해 마독을 앓아 죽을 뻔했던 조모.
숙부에 의해 분열한 집안.
조부가 판 작위.
아들의 미래를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 부모.
그런 부모를 위해서 숙부를 배신한 테드.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는데.”
“예?”
“나도 너처럼 힘들었거든. 그리고 성장했지.”
“…….”
“나에게도, 주변에도 좋지 않은 선택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어. 미안한 일이지.”
“…….”
“그게 모두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반성하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보상은 되지 않을까?”
테드가 손끝을 매만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마음이 편하긴 하죠.”
“그래. 죄의식은 갖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네 능력으로 보상해.”
빙그레 웃은 후, 통신기 쪽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테드가 말했다.
“제 첫사랑—”
“뭐?”
“영애입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요.”
테드가 붉은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한지혁이 히죽히죽 웃으며 내게 속삭였다.
“많이도 꼬시고 다녔다.”
“죽을래?”
“솔직한 말로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람을 안 좋아할 수 있겠냐?”
“조언 고맙다. 이제 절대 안 하겠어.”
“가능할까?”
낄낄거리는 한지혁을 쏘아봐 주고, 테드를 쳐다봤다.
“내 첫사랑은 알렉시스야.”
“누가 물어봤습니까?!”
“마지막 사랑도 알렉시스일 거고.”
“……칫.”
입술을 삐죽인 테드가 고개를 돌렸다.
“친구로 지내자는 말인 건 압니다.”
“아닌데?”
“……그럼요?”
테드가 움찔 나를 쳐다봤다.
조금 기대하는 표정이라 나는 음산하게 웃어줬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며—
“주.”
“…….”
테드를 가리키곤—
“종.”
“…….”
“주종. 알겠어?”
“……제길.”
테드가 중얼거렸을 때였다.
슥, 테드의 뒤로 나타난 카인로드 숙부가 주먹으로 조카의 정수리를 꿍! 때렸다.
“어허, 주인 나리께.”
“숙부!”
카인로드 숙부와 함께 나타난 데본 숙부와 레오 숙부가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데이몬드와 벨트리…… 아니지, 벨로스터의 딸 아니라고 단호하긴.”
레오 숙부가 낄낄거리니 카인로드 숙부가 픽 웃었다.
“네 놈에게 기회는 조금도 없다는 것이니 괜한 기대 마라.”
“안다고요…….”
테드는 투덜거리며 사라졌다.
나는 숙부들에게 물었다.
“웬일이세요?”
“황태후 폐하께서 바란의 일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라는 명을 내리셨단다.”
데본 숙부가 다정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엉망이구나.”
“급히 왔거든요.”
데본 숙부는 내게 엄청나게 다정해졌다.
카인로드 숙부 말이,
“데본이 저런 대우를 하는 건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라고 했다.
“제게 엄청 다정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헤헤 웃으니, 데본 숙부가 픽 실소를 흘렸다.
“엄하지 않아도 홀로 잘하는 녀석이기에.”
그러자 다른 숙부들이 소리쳤다.
“우리는 엄해야 잘한다는 거냐?!”
“네가 무슨 우리를 양육해?!”
데본 숙부가 어깨를 으쓱하며 내게 말했다.
“저런 놈들인데 어찌 다정하겠어.”
“그러게요.”
카인로드 숙부는 “저것들이…….” 하며 인상을 찌푸렸고, 레오 숙부는 “나 참.” 하며 껄껄 웃었다.
난 숙부들에게 물었다.
“황제 폐하는요?”
“다음 주 치유 의식을 행한다더구나.”
“……의식까지요?”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신다면…….”
영영 끝이란 말이지.
하기야, 고대 몬스터를 먹고 몸 상태가 그 지경이 되었다.
달리아를 곁에 둬서 상태가 점점 심각해졌을 테니, 다른 크루마투스 병자들과는 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무월기에 공격까지 당했으니.
‘지금까지 명줄이 붙은 것도 신기하지.’
그때였다.
“아가씨, 준비되었습니다.”
콘라드와 가신들이 다가왔다.
한쪽은 바란 왕과의 연락선.
또 한쪽은 라온과의 연락선이었다.
연락선이 있는 방은 각각 달랐다.
‘어느 쪽과 먼저 대화해야 하나.’
모두가 나를 쳐다봤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 * *
바란 왕국, 브리크트 공작가의 헤반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릴에게 연락이 없잖아! 왕을 택했나?”
그가 초조한 표정으로 돌아보자, 유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급하게 굴지 마.”
“조급하지 않을 수가 있겠냐고!”
소리치는 동시에 라온과 눈이 마주쳤다.
라온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있었다.
움찔한 헤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가뜩이나 왕궁이 우세한 상황인데 에릴로트가 왕의 손을 들어준다면…….”
헤반이 쯧, 혀를 차자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에릴로트의 위치를 생각하면 걱정이 안 될 순 없어.”
“세계의 구원자. 그녀가 손을 들어준 쪽에 대의가 있다?”
라온은 중얼거리며 술잔을 들었다.
유리와 헤반이 조용해졌다.
술잔 안의 얼음이 짤랑, 소리를 내며 고요를 깨뜨렸다.
“에릴로트는 왕궁을 택할 것이다.”
라온의 말에 헤반이 흠칫, 소리쳤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우리와 인연이 있으니……!”
“인연 하나에 모든 걸 걸어줄 사람이던가.”
“…….”
“…….”
유리와 헤반이 침묵하자, 라온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에겐 릴이 필요하지만, 릴에겐 우리가 필요하지 않지. 아니, 왕세자가 아닌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지.”
“형님…….”
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라온의 말이 틀리지 않다.
릴.
그러니까 에릴로트가 필요한 것도, 집착한 것도, 간절한 것도 이쪽이다.
에릴로트가 언제 우리를 필요로 했던가.
‘하지만 우리에겐 방법이 없다.’
각국의 노력으로 어둠이 닫혔다.
길을 막는 데에 대표 격이었던 각 나라의 황궁, 왕궁을 향한 백성의 지지가 최고조인 이때.
바란 왕은 이 기회에 눈엣가시였던 왕세자를 몰아내고자 하였다.
사랑하는 막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왕세자 라온은 어둠을 몰아내는 데에 일조한 것이 없다.
도리어 타국을 위해 자국 발명품의 주요 기술을 유출한 상황.
귀족은 물론 백성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헤반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소파에 앉아 술잔이나 기울이는 라온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정을 해.”
“릴에게 살려달라고 하란 말이냐?”
“그래. 도와달라고 해.”
라온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할 것 같아?”
“못해도 해, 인마! 널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쯤은 하라고!”
헤반이 라온의 멱살을 쥐고 소리쳤다.
유리가 다급히 헤반을 뜯어말렸다.
“헤반, 그만해! 형님의 마음을 좀……!”
“욕심 있는 놈이라 널 택했어! 그 욕망으로 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리라 여겨서! 나도, 내 아버지와 어머니, 내 가문, 내 병사들 모두!”
“…….”
“유리도 제 어머니와 제 목숨, 모든 것을 걸었다!”
“…….”
“그러니까 네 알량한 고개쯤은 숙이라고!”
라온은 악을 내지르는 헤반을 가만히 쳐다봤다.
“고개를 숙이면 도와줄 것 같으냐.”
“……뭐?”
“사정하고, 애원하면 도와줄 인사인가.”
“…….”
“난 확인하고 싶지 않아.”
“무엇을.”
“……릴에게 우리가, 아니,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가장 외롭고, 가장 연약했던 때에 그 애가 나타났다.
일 년 내내 비가 내리는 하늘에 얼굴을 비춘 태양 같았다.
“안녕하세요, 황자님. 저는 에…… 릴이에요. 오늘부터 황자님의 담당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렇다고요!”
아무리 소리치고, 냉정하고 굴어도 떠나는 법이 없었다.
‘에이씨’ 한 마디 투덜거리고 다음 날 또 얼굴을 보이는 것이다.
라온에겐……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아무리 화를 내도 본심을 알아주는 사람.
서로 죽어라 싸워도 다음날 만나는 건 당연한 사이.
라온에게 있어 릴은 숨 쉴 구멍이었다.
그러나 릴에게 자신은…….
라온이 무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내가 싫으면 너희가 떠나.”
“……비열한 놈, 책임감 없는 자식.”
“언제 있던 말이던가.”
픽, 실소를 흘리자 헤반이 집어 던지듯 라온의 멱살을 놓았다.
“가자, 유리.”
“헤반…….”
“가자니까!”
그때였다.
군사 하나가 급히 방 안에 뛰어 들어왔다.
“연락되었습니다.”
“어디? 왕궁? 아니면 우리?”
유리가 다급히 캐물었다.
군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