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89)
이 3세는 악역입니다-388화(389/390)
388화.
“아스트라 공작가와 우리의 통신이 연결되었습니다.”
“……!”
“……!!”
헤반과 유리가 놀란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이윽고 환호성을 내지른 그들은 즉시 라온을 흔들었다.
“됐다! 됐다고!”
“…….”
라온의 동공이 가늘게 흔들렸다.
유리는 빙그레 웃으며 라온에게 말했다.
“가자, 형님. 얘기하는 거야.”
“…….”
세 사람은 통신석이 연결된 방으로 향했다.
라온이 자리에 앉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나 보네.]“그래…….”
[엄청나게 기다렸어.]에릴로트의 말에 유리가 하하, 웃었다.
“통신을 국외에서 끌어와 사용하고 있어. 바란의 통신 거점은 왕궁 파가 장악하고 있어서 감청의 위험이 있거든. 해서 연결이 어려워.”
[상황이 심각한가 보네.]헤반도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새벽에만 해도 대규모 전투가 있었으니까. 너희 내전 때만 해도 우리가 자국에서 이런 전투를 치르게 될지 상상도 못했는데.”
[그래. 우리가 간절하고 급박하던 때엔 너희가 상황을 무기 삼았지.]에릴로트의 말에 유리와 헤반이 움찔했다.
유리는 어색하게 말했다.
“사람이 얄팍하지. 우리가 겪으니 참담함에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 우리가 너희를 돕지 않은 건 아니잖아. 기술의 힌트는 분명히 줬고. 그렇지, 전하?”
헤반도 땀을 뻘뻘 흘리며 라온의 어깨를 툭 쳤다.
뭐라도 말해서 기분을 풀어주라는 뜻이었다.
에릴로트는 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지사지는 중요하지.]“당해보니 어떤지 묻기 위해 연락한 거냐.”
라온의 서늘한 목소리에 헤반과 유리가 움찔했다.
“전하.”
“형님…….”
에릴로트가 왕궁보다 이쪽에 먼저 연락을 해줬다.
이쪽을 지지하겠다는 의미일 터.
선택해준 사람에게 감사하다고는 못할망정 비꼬다니.
헤반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라온을 보다가 애써 말했다.
“릴, 전하의 말은…….”
[맞아. 당해보니 어때?]“…….”
“…….”
헤반과 유리가 침묵했다.
에릴로트는 아무렇지 않은 투로 말을 이었다.
[1분 1초가 귀중하지 않아? 내 백성, 내 동료, 내 가족의 목숨이 어깨에 산처럼 얹어져 있을 때 듣는 말은 그 어떤 상냥한 말도 협박처럼 느껴지지 않아?]“그렇군. ……정말로.”
[느꼈다니 속이 시원해.]“할 말은 그것뿐인가?”
[뭐……. 그런 거로 할까. 자, 그럼 다들 잘 지내.]“자, 잠깐!”
“잠깐, 릴!”
“…….”
헤반과 유리가 다급히 소리쳤다.
헤반은 라온을 매섭게 노려보곤, 통신석을 향해 말했다.
“이런 식으로 끊으려고 연락한 건 아닐 것 아냐. 부탁할게, 제발 우리를…….”
통신석에서 에릴로트의 한숨을 터져 나왔다.
간절한 목소리를 차마 외면할 수 없다는 듯이.
얼마쯤 지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라온.]헤반의 말을 끊은 에릴로트가 말을 이었다.
“……듣고 있어.”
[내가 너에게 먼저 연락한 건, 네가 바란을 이끌기에 더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야.]“…….”
[우리나라는 바란에 도움을 받았어. 바란인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기술로 말이야. 그래서 선조와 백성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선택했어. 주제넘지만.]“……릴.”
“…….”
헤반과 유리의 눈이 떨렸다.
라온은 가만히 통신석을 바라보았다.
[난 바란에서 봤으니까.]“…….”
[노력하는 왕세자를 말이야. 하지만 자존심에 동료를 살피지 못하는 자라면, 승리할지언정 성군은 되지 못할 거야.]“……통신을 한 건 그뿐이냐.”
라온의 말에 에릴로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뿐이야.]라온이 눈을 꽉 감았다.
[라온, 나는 네게 다른 얘기를 하지 않을 거야. 아마도 평생.]“알렉시스 섭정 때문에 말이지.”
라온은 실소를 흘렸다.
“그는 제 백성을 위해 무릎을 굽힐 남자인가? 네게 제발 도와달라 애걸할 수 있는 남자라 선택한 거냐.”
[아니, 알렉시스도 결코 내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을걸?]“……뭐?”
“뭐라고?”
“한데 왜.”
헤반과 유리가 깜짝 놀랐고, 라온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너무 소중해서.]“…….”
“…….”
[라온, 당신에게 ‘먼저’는 뭐였어?]“…….”
라온이 조용해졌다.
헤반과 유리의 시선이 묵묵히 통신석을 바라보는 라온의 뺨으로 향했다.
라온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자존심, 네게 남자이고 싶다는 열망…….”
[그래서 너보다 알렉시스였어.]라온은 쓰게 웃었다.
“그렇군. 그래, 그랬던 거야…….”
[우리는 비슷한 사람이야. 언제나 자신이 먼저지.]“그래서 함께 있으면 서로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소리냐.”
[응. 각자 서로에게 더 많은 감정을 빼앗아 스스로를 채우고 싶어 할 테니까.]“그래도 너와 함께 있고 싶었어. 넌 어린 짐승이 각인되듯 가장 필요한 때, 필요한 것을 준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난…….”
[네 사랑이 진심이 아니라 부정하지 않아.]“…….”
[다만, 내게는 이미 서로를 채워줄 사람이 있어. 해서 네겐 기회가 없고.]“…….”
[네게도 그런 존재가 있길 바라.]“그런 게 있을 리가…….”
[라온, 상처받아 등딱지 안에 웅크린 거북이는 주변이 보이지 않는 법이야.]“…….”
[고개 들어 네 몸을 봐. 상처, 정말로 아물지 않았니?]라온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 어느새 해 질 녘이었다.
문득 에릴로트가 자신의 릴이던 시절, 왕궁에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해 질 녘이 되면 쌀쌀한데 아무것도 안 걸치시고 멍하니 서 계세요, 왜?”
“방으로 돌아가다가 보니 아름다워서.”
“노을은 예쁘죠. 바란의 노을은 특히 더.”
“……이렇게 아름다운 줄 이제껏 몰랐어.”
“왜요? 이렇게 예쁜데.”
“네가 없을 땐 뭔가를 아름답다고 느낄 겨를이 없었거든.”
“……네가 없어도 바란의 노을은 아름답다.”
통신석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응.]“……도와줘. 바란, 내가 가져야겠다.”
[자존심보다 바란을 먼저 생각하니 성군이 되시겠군요.]쿡쿡 웃은 에릴로트가 말을 이었다.
[바란에 은혜를 입은 자, 성군이 되실 왕세자를 돕겠습니다.]“……우리 거래는 이것으로 끝이겠지?”
에릴로트는 약속대로 ‘그녀에게 남자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오늘 대화에서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던 건, 기회였던 것이다.
“자존심에 너의 기회는 잃었으니, 다른 것을 놓치지 않아야겠지.”
[부디.]“잊겠다. 너를 잊고 왕이 되마. 해서 훗날 오늘의 일을 보답하지.”
[예, 전하. 강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그렇게 통신이 끊겼다.
헤반과 유리는 뛸 듯이 기뻐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우리 쪽과 연합했다는 것을 적군에 흘리기만 해도 왕궁파는 와해될 거다.”
“그래, 릴이 올 필요도 없겠지. 서둘러 움직이자.”
라온은 노을을 바라보았다.
‘난 정말로 네가 원하는 남자는 될 수 없는 모양이다.’
거짓말을 했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에게 있어 릴은 처음이고, 스승이며, 평생 하나뿐인 여인이었다.
모든 것을 네가 가르쳐줬잖아.
아둔한 욕망, 이로운 욕망, 모두.
헤반이 노을을 바라보는 라온의 어깨를 잡았다.
“네 마음을 알아.”
“너는 알겠지. 같은 여인을 가슴에 품었으니.”
“……알고 있었냐?”
“널 평생 봐왔다. 그녀를 바라볼 때 시선이 짙어진다는 것을 모를 리가 있나.”
헤반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말씀이 첫사랑은 잊는 게 아니라 가슴에 묻는 거란다.”
헤반은 “그 말을 하고 부부침실에서 쫓겨나셨지만 말이야. 어머니가 가슴에 묻은 여자가 누구냐고 물으셨거든.” 하고 덧붙였다.
유리가 쿡쿡 웃었다.
“나도 가슴에 묻어야겠군.”
“……뭐?”
“……?”
“모두 같은 여인을 품었으니, 훗날 함께 꺼내 봐도 좋겠어.”
“……설마 너도?”
“…….”
유리가 산뜻하게 웃었다.
“왜 난 아니라고 생각한 거야?”
“미친…….”
“내가 형님과 너보다 먼저였을 걸.”
숨 막히는 왕궁. 즐거운 때는 주마다 몰래 도망쳐 시장 구경을 할 적뿐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어린 사기꾼이 있었다.
“내 아이, 스크림, 떨어뜨렸으니까 보상, 해. 한지혁, 이게 맞냐? 이 말 맞아? 응?”
“……얼마나 보상하면 되지?”
“어디, 까지, 알아보고 오셨는데요, 손님.”
아이스크림을 원가의 다섯 배로 보상받은 어린 사기꾼.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난 겁이 많아서 형님에게 덤비지 못했으니, 처음부터 무리였겠지만.’
그녀가 보고 싶어 칼소이에 제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지.
“나도 꽤 진지했다고.”
“언제 만났는데? 네가 나보다 먼저라고? 말도 안 돼!”
“……빌어먹을.”
방문 틈으로 세 남자의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한 주 후.
콘라드가 바란에서 온 소식을 전했다.
“왕궁파의 귀족 3할이 변절. 라온 왕세자의 군사들이 왕궁을 넘었다고 합니다.”
“싸움 하나는 엄청난 놈이니까 잘하겠네.”
“예.”
이름을 빌려줬더니 알아서 잘들 싸워준다.
난 픽 웃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이곳은 황도!
드디어 장원에서 황도로 올라왔다.
황제의 회복 의식 때문이었다.
“에, 에릴로트 님!”
“에릴로트 아스트라!”
“성녀님!”
“성녀님, 부디 딸 하나만 점지해주십시오! 아들만 넷입니다! 제발 딸 하나만……!”
“성녀님, 이번 시험에 붙게 해주시고……!”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내게 영험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 제사장과 사자들의 딸이니, 전혀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시험을 붙여주거나 할 순 없는데 말이지.
치유사들마저 나를 의식에 포함하길 바랐다.
‘있어 봐야 신성 의식이라 도움도 안 될 테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궁 안으로 들어갔다.
궁 내로 마차를 타고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직 마찻길을 복구하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돌아가려면 멀어서, 차라리 궁을 가로질러 걷는 것이 빨랐다.
부지런히 걷고 있을 때였다.
“워, 워, 원화!”
“원화—!”
“세, 세상에!”
“허업!”
멀리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저 로브는…….’
원화의 로브였다.
열다섯 쯤 되어보이는 소녀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동거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대, 대선배님을 뵙습니다!”
대선배까지?
‘난 열일곱인데.’
물론 얼마 뒤에 열여덟, 성인이 되긴 하지만.
새로 뽑힌 원화들인 모양이었다.
다들 눈이 초롱초롱했다.
“날씨가 궂은데 훈련중인가요?”
묻자, 원화들이 마구 소리치기 시작했다.
“예, 예!”
“그, 그렇습니다!”
“워, 원화군은 나라의 기틀! 날씨 핑계로 훈련하지 않을 순……!”
그때였다.
“제가아아악! 서군 원화아아아악! 입니다아아아악!”
‘깜짝이야!’
150센티쯤 되어 보이는, 유난히 작은 소녀가 옷깃을 꽉 부여잡고 버럭 소리쳤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후배로군요. 서군에 새로운 원화가 생겨서 기뻐요.”
서군 원화 자리는 나 이후로 쭉 공석이었다.
내가 있을 때 서군의 기상이 엄청나게 올라서, 서부 레이디들은 후임이 되는 걸 저어했다.
거기다 영구결번 어쩌고 하는 부담스러운 감투까지 씌운 것이다.
하지만 내전과 고대 몬스터 습격으로 황군 수가 부족해진 지금도 서군 원화직을 비워둘 순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서군 원화가 된 아이는 나도 익히 알고 있다.
열세 살의 천재 검사.
리셔우 후작은 내전에서 다리를 잃고 딸에게 가주위를 넘겨줬는데, 그 딸의 막내가 바로 이 아이였다.
“지니 리셔우양?”
“이,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건가요……!”
“그럼요. 제 사촌동생 아르망을 이긴 분이신데요.”
사촌 중의 막내인 아르망이 지니 리셔우에게 된통 지고 엉엉 울었지.
아르망의 부친인 구스타프 숙부의 복장을 터뜨렸던 그 천재 검사가 아닌가.
나는 서군 원화의 상징인 브로치를 매만지며 빙그레 웃었다.
“우리 서군 원화는 언제나 군사들에게 앞장 서는 ‘어머니’니, 잘 어울리는 분이 직함을 맡았다고 생각해요.”
“아, 아으, 으아아아아아악—!!”
“……!”
나는 정말로 놀랐다.
새로운 서군 원화가 새빨개지더니 폭주마처럼 미친듯이 뛰어가기 시작했으니까.
다른 원화들은 익숙한 듯 에헤헤 웃었다.
“원래 저런 분이시니 놀라지 마셔요.”
“네!”
“흥분하시면 뛰어요!”
나는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 그렇군요…….”
“저, 저어! 황군 회의가 오늘이거든요. 마침 한 시간 정도 휴식 중이실텐데, 가시겠어요?”
“제가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원화들이 잔뜩 흥분해서 날 끌고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