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4화.(4/390)
4화.
“…….”
“…….”
“…….”
그렇게나 열심히 달려온 주제에 에릴로트는 공작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우뚝 굳어 버렸다.
에릴로트는 한참 우물쭈물하다가 토끼 인형을 들었다.
“언니들이 조써요. (언니들이 줬어요.)”
드뷔시 자작이 픽 웃었다.
“예, 아주 귀여운 인형이군요.”
“녜!”
멀리서 하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공작과 자작을 발견하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자작은 에릴로트에게 말했다.
“아가씨를 데리러 온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녁을 드실 시간이군요. 늦게까지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하녀는 묵례하곤, 에릴로트 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하녀가 “가실까요?” 묻자, 에릴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부지, 안넝. (할아버지, 안녕.)”
“…….”
드뷔시 자작은 하녀의 손을 잡고 떠나는 에릴로트를 보며 쿡쿡 웃었다.
정말이지 재밌는 아이였다.
‘성이 아닌 열두 번째 탑에서 자랐기 때문인가.’
직계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 성에서 토끼 인형을 들고 다니는 아이는 없다.
무려 아스트라 공작에게 인형을 자랑하는 아이는 더더군다나.
거기다 할아버지, 안녕? 이라니.
노회한 귀족들마저 긴장하는 아스트라 공작을 마치 평범한 할아버지처럼 대하지 않는가.
오늘은 재미난 구경을 했다.
저 아스트라 공작이 무시가 아니라, 대꾸를 못 하는 것을 보다니.
‘얼마나 가려나.’
곧 제 할아버지가 평범한 노인이 아니란 걸 알아챌 것이다.
아이는 의외로 눈치가 빠르니까.
하지만 드뷔시 자작의 생각과는 달리 에릴로트는 꾸준했다.
공작이 서재를 나설 때면, 에릴로트는 방문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아이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또래 아이들보다도 작은 편인 터라, 책이 몸집만 했다.
“채 일그면은요. 또또케져. (책 읽으면은요. 똑똑해져요.)”
“…….”
다음 날은 식당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손에는 마찬가지로 몸집만 한 스케치북이 들려 있었다.
“그림 그여. (그림 그려요.)”
“…….”
그다음 날은 침실.
우유병이 들려 있었다.
“우유 머그면은요. 쑤쑤 자라. (우유 먹으면은요. 쑥쑥 자라요.)”
“…….”
에릴로트의 일거수일투족은 보고받지 않아도 되었다.
제가 알아서 잘 보고하고 다녔다.
그렇게 일주일.
“가자 머거요. 치카치카 해야 대. (과자 먹고 있어요. 치카치카해야 돼요.)”
“…….”
에릴로트는 언제나처럼 집무실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공작은 아이를 힐끔 쳐다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함께 들어온 드뷔시 자작과 콘라드는 쿡쿡 웃었다.
콘라드가 말했다.
“오늘도 오셨군요.”
“아가씨께서 어제도 오셨나?”
“최근에 계속 오십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손주 하나 볼 것을 그랬어.”
드뷔시 자작이 하하 웃자, 공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작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 양반이 손주가 졸졸 쫓아다닌다고 신경이나 쓰시겠는가.
그는 들고 온 서류를 공작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톨리소 후작가의 동향입니다. 곡창지대를 빼앗긴 건으로 톨리소 측의 분위기가 묘합니다. 하나 있는 자금줄마저 막혔으니……. 각하?”
“……그래.”
미묘하게 대답이 늦었다.
마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것처럼.
드뷔시 자작과 콘라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보자, 공작이 손을 내저었다.
“계속해.”
아무렇지 않게 말했으나, 자꾸 신경 쓰인다.
저 노란 뒤통수가.
* * *
해 질 녘.
나는 까치발을 들고 서서 몰래 집무실을 훔쳐봤다.
그러니까 집무실에 있는 ‘콘라드’를 말이다.
난 최근에 콘라드를 열심히 쫓아다니고 있었다.
‘곧 배신할 시기니까.’
<빙.흑.손>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서술되긴 했지만, 분명히 보았다.
콘라드가 ‘아스트라에 입관한 지 4년 차 겨울’에 배신했다는 것을.
그리고 알아보니, 지금이 딱 4년 차 겨울이었다.
‘할아버지와 둘이 둬선 안 돼.’
단둘이 있으면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할아버지에게 착 달라붙어 있는 것도 무리였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지도 않을 테고, 무엇보다…….
‘내 목숨 소중해.’
할아버지를 공격할 때 휩쓸려서 나까지 당하면 어떡해.
그런 이유로 난 방엔 절대 들어가지 않고, 항상 방 밖에 있었다.
무슨 일이 나면 소리 지를 준비를 해두고.
‘애라서 불편해.’
기왕 빙의시킬 거면 성인의 몸으로 해 주지.
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세 살인 내가 일 잘하고 있는 부관을 가리키며─
‘쟤는 배신자야. 증거는 없는데 소설에서 내가 봤어.’
─라고 하면 미친 애인 줄 알 거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콘라드가 방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직 계셨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한쪽 무릎을 굽혀서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심심하진 않으셨습니까?”
“가자 이써. (과자 있어.)”
먹으면서 기다려서 괜찮았다는 의미로 과자 봉투를 들어 보였다.
“아주 얌전하시네요.”
“녜.”
그렇게 대답하니 콘라드는 쿡쿡 웃었다.
“괜찮으시다면 존체에 손을 대도 되겠습니까?”
뒤에 다른 행정관들도 있고, 위험한 짓을 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콘라드는 내 옷깃을 여며 주었다. 아주 다정한 손길이었다.
“아직 날이 추운지라.”
복도를 지나던 하녀들이 힐끔힐끔 이쪽을 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들을 이해했다.
‘이렇게 멋지니 시선이 안 갈 수가 없지.’
내 옷깃을 여며 주느라 눈을 내리깔았을 땐, 화보를 보는 줄 알았다.
기다란 속눈썹에 스며든 노을.
깨끗한 눈동자.
오뚝한 콧날.
다정한 호선을 그리는 입술.
‘무엇보다 콘라드의 제일 큰 장점은 이 온화한 느낌이지.’
“계속 이곳에 계실 건가요?”
“콘라드는?”
“전 이제 귀가합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콘라드가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여길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다.
사실 조금 추워서 계속 방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몬 나두 갈래.”
“아가씨껜 아직 성의 계단이 높을 테니 방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녜.”
난 콘라드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는 아이의 발걸음을 맞춰 주는 어른이어서 걷는 게 편했다.
거기다가 심심하지 않도록 말도 잘 붙여줬다.
“아침마다 역사서를 읽어 주신다고요?”
“녜.”
“힘들진 않으십니까?”
“앙 힘드러. 쪼꼼씩 일거. (안 힘들어. 조금씩 읽으니까.)”
“다행이군요.”
할아버지 집무실에서 내 방까지는 꽤 먼데,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콘라드는 날 방 앞까지 데려다주고, 인사했다.
“좋은 밤 되십시오.”
그렇게 그가 떠났고, 난 속으로 ‘흠……’ 신음했다.
아직 할아버지를 습격할 눈치는 아니다.
습격하려면 사람이 적은 밤이 최적인데, 콘라드는 최근에 계속 일찍 귀가했다.
‘그런데 콘라드는 왜 할아버지를 배신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내 저녁을 챙겨 주러 오는 하녀들이었다.
하녀들이 콘라드의 뒷모습을 보고 말했다.
“어머나, 콘라드 님이시군요. 언제 봐도 훤칠하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한 번씩 뵙는 게 낙이었는데, 이제 못 뵌다고 생각하니까 아쉬워요.”
하녀들의 말을 들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콘라드 왜 못 바?”
“공작님 측근에서 물러나신다고 하더라고요.”
“왜?”
“일이 여유로운 곳으로 옮겨 가시는 걸 거예요. 동생을 간병해야 하셔서요.”
그 말에 다른 하녀가 덧붙였다.
“동생이 여름부터 많이 아프다면서요? 그것 때문에 최근에 계속 일찍 귀가하시고.”
“아퍼? 오디가? (아프다고? 어디가?)”
“일모병이라는 건데……. 아, 아가씨는 주무실 시간이시죠?”
말을 삼킨 하녀들은 잠자리를 봐주었다.
하지만, 일모병이라면 이미 알고 있다.
일모병에 걸리면 초기엔 몸에 몇 개의 반점이 생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반점이 많아질수록 통증이 강해지고, 종국에 반점이 온몸을 뒤덮으면 죽어 버리는 병이었다.
하지만 치료 자체는 쉬웠다.
청화 구근이라는 특효약이 있으니까.
‘문제는 청화 구근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거지.’
거의 전설 속 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찾기가 그렇게 어려우니 가격이 천문학적 단위였다.
순간, 머릿속의 전구에 불이 탁 켜지는 기분이었다.
병에 걸린 동생.
구하기 몹시 어려운 치료약.
그리고 배신.
‘뭐야, 동생 치료약 때문에 배신했구나!’
습격을 명령한 자들이 치료약으로 콘라드를 회유한 거다.
콘라드는 동생을 위해서 아스트라를 배신했겠지.
‘아직 저쪽에서 콘라드에게 접촉하진 않은 것 같아.’
접촉했다면 할아버지의 부관 자리에서 물러날 리가 없다.
습격에 그보다 완벽한 자리가 없으니까.
‘그럼 치료제만 있으면 배신하지 않는다는 소리네?’
청화 구근만 구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건 쉽지!’
다음 날.
나는 고대어 읽을 시간이 되어 서재로 향했다.
서재엔 할아버지와 드뷔시 자작, 그리고 콘라드만이 있었다.
아무래도 ‘용의 뼈, 축복받은 땅’ 같은 엄청난 내용이 나온 뒤로, 내용을 소수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역사서를 보는 척 말했다.
“처하 구근이 가호를 간녁하게 한다는 설이 이따. (청화 구근이 가호를 강력하게 한다는 설이 있다.)”
물론 역사서에 그런 말은 없다.
드뷔시 자작의 눈이 살짝 커졌다.
“청화 구근을 말하는 겁니까?”
“녜.”
“청화 구근에 그런 효능이 있었다니…….”
드뷔시 자작이 할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호만 개발시킬 수 있다면 확인해 볼 가치는 충분하지.”
“하면……?”
“구해 와라.”
‘좋아!’
난 속으로 히죽 웃었다.
나한테 청화 구근을 구하는 일은 정말로 쉬웠다.
왜냐면 아스트라 공작가를 이용하면 되니까!
청화 구근 구하기가 아무리 하늘의 별 따기라도 아스트라 공작의 힘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자금력.
대륙 곳곳에 퍼진 정보원들.
아스트라는 정말로 하늘의 별이라도 딸 수 있는 가문인 것이다.
할아버지는 한술 더 떴다.
“구하는 즉시 내 손주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효과를 확인해야겠다.”
“예. 독성 있는 식물이 아니니 위험하지 않을 테지요.”
드뷔시 자작은 콘라드를 쳐다봤다.
“콘라드. 정보국에 연락해 청화 구근을 찾아오도록 해라.”
“……예.”
콘라드의 눈은 떨리고 있었다.
당연하겠지.
주인을 배신할 만큼 간절한 물건이니까.
콘라드가 잔뜩 굳은 얼굴로 나갔다.
난 역사서를 얼른 내려놨다.
“이제 힝드러요. 가도 대요? (이제 힘들어요. 가도 돼요?)”
드뷔시 자작이 할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하듯 쳐다봤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넙죽 인사하고 얼른 콘라드를 쫓아갔다.
그는 반쯤 혼이 빠진 얼굴이었다.
“콘라드.”
“아. 예, 아가씨.”
난 콘라드의 재킷 끝을 잡고 소곤소곤 말했다.
“내가 구근을 바드며는 콘라드 주께. (내가 구근을 받으면 콘라드 줄게.)”
“……예?”
나는 양손을 번쩍 들며 애답게 말했다.
“하녀 언니들 그래써. 콘라드 돈새 아파. 처하 구근 피료해. (하녀 언니들이 그랬어. 콘라드의 동생 아파. 청화 구근 필요해.)”
“그런……. 어째서 제게 그런 귀한 것을 주신단 말입니까.”
“나 콘라드 기쁘면 조아.”
“…….”
콘라드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기다랗고 예쁜 손가락 사이로 눈이 떨리는 것이 얼핏 보였다.
한참 떨리는 숨을 진정시키던 그가 곧 한쪽 무릎을 굽혔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그의 눈엔 결기가 흘렀다.
나는 콘라드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좋아. 정말로 잊지 마.’
* * *
그리고 며칠 뒤.
난 콧노래를 부르며 복도를 걸었다.
‘콘라드의 동생이 회복했으니까!’
역시 아스트라의 정보국.
일주일 만에 청화 구근을 떡하니 구해 왔다.
난 약속대로 콘라드에게 청화 구근을 넘겼다.
‘잘됐네, 잘됐어.’
이제 할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질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아가씨.”
멀리서 콘라드가 보였다.
“밤이 늦었는데, 어디 가십니까?”
“하부지하테. (할아버지한테.)”
콘라드 감시는 끝났지만, 난 그래도 공작에게 열심히 드나들고 있었다.
‘자주 봐야 정이 들지.’
고대어 읽어 주기는 언젠가는 끝난다.
그러면 내 쓸모도 다 할 것이다.
그러니 그때를 대비해서 할아버지와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어쩌죠. 공작님께선 막 외출하셨습니다. 긴급한 원로 귀족 회합이 있으셔서요.”
“그러쿠나…….”
“더욱이 오늘 같은 날은 조심하시는 게 좋습니다.”
“왜?”
“붉은 달이 뜨는 날이니까요.”
아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달이 뜨면 가호가 매우 약해진다. 가호에 많이 의존하는 귀족들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위험한 날인 거네.’
콘라드는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말했다.
“아가씨의 교육 일정이 잡혔습니다.”
“교육?”
“직계분들이 수련에서 돌아오시면, 함께 교육을 받으실 겁니다. 수업 내용은…….”
이제 콘라드는 내게 각종 정보를 주기 시작했다.
청화 구근을 준 것 때문에 날 은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난 감격했다.
‘이런 정보 아주 좋아!’
원래 상류 사회는 뭐든 정보전이지.
역시 콘라드에게 청화 구근을 주길 잘했어.
나는 콘라드가 해 주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아가씨, 검술 스승은 다소 깐깐한 편이니 긴장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콘라드가 해 주면 조을 텐데.”
그 할아버지에게 기습을 성공시킨 강자잖아.
그리고 내게 아주 친절하다.
콘라드는 곤란한 듯 웃었다.
“아쉽지만 저는 무예 계통이 아니라서요.”
뭐?
“검술은 배운 적이 없습니다. 살상 훈련도 받은 적이 없고요.”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럼 기습을 어떻게 한 거지?
그 순간, 간과했던 것이 떠올랐다.
‘세작이 꼭 하나이지 않을 수도 있어.’
이 망할 소설!
꼭 콘라드 혼자서 기습한 것처럼 서술해 놓고……!
‘잠깐만.’
나는 홱, 고개를 돌려 창문을 쳐다봤다.
붉은 달.
가호가 약해지는 날.
긴급하게 잡힌 원로 회합.
‘기습이다.’
난 뒤돌아서 미친 듯이 뛰었다.
“아가씨? 아가씨!”
할아버지가 위험해!
* * *
아스트라 공작은 세작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미 한 차례 전투를 치른 흔적으로 주변은 온통 엉망이었다.
널브러진 시체.
땅은 선혈로 물들었다.
“괴물 같은 놈…….”
이번 일의 수괴인 톨리소 후작이 으득, 이를 갈았다.
붉은 달이 뜨는 날에 어찌 이만한 힘을 낼 수 있단 말인가.
병사 여럿이 아스트라 공작에 의해 압축되어 땅을 나뒹굴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끝장이다.’
본래 아스트라 공작의 부관을 끌어들여 안전하게 해결할 일이었다.
암살한 후, 부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면 끝났을 일.
부관이라면 공작의 일정을 알 수 있을 테니, 긴급 회합을 열면서까지 끌어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은 틀어졌다.
그놈의 동생이 어찌 된 일인지 회복한 것이다.
‘대체 일개 귀족가의 관리 따위가 어떻게 청화 구근을 구한 것이야!’
어쨌든 간에 오늘 기필코 아스트라 공작을 죽여야 했다.
톨리소 후작은 공작과 병사들에게서 멀찍이 물러나 소리쳤다.
“공격해라! 놈을 죽? 꽥!”
톨리소 후작이 비명을 내질렀다.
모두의 시선이 톨리소 후작에게 향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후작이 등지고 있던 낮은 절벽에서 뚝, 떨어진 조그만 아이에게로.
“하부지 개로피지 마! 이 나뿐 놈……! (할아버지 괴롭히지 마! 이 나쁜 놈……!)”
어린아이는 톨리소 후작의 등에 앉아서 연약한 그의 모근을 쥐어뜯고 있었다.
“……에릴로트?”
공작이 기막힌 목소리로 불렀다.
……네가 여기 왜 있지?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아악!”
겁 많은 톨리소 후작은 병사들의 한참 뒤에 있었다.
손이 닿지 않아서 병사는 에릴로트를 향해 단검을 던졌다.
그 순간.
챙—!
아스트라의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두른 기사가 날아온 단검을 쳐냈다.
“각하, 무사하십니까!”
절벽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콘라드였다.
이 순간에도 톨리소 후작의 모근을 야무지게 쥐어뜯고 있던 에릴로트는 생각했다.
‘내가 바보냐. 혼자서 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