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2)
이 3세는 악역입니다 42화.(42/390)
42화.
추적자는 굳어졌다.
그의 얼굴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스쳐 지나갔다.
황비의 명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아스트라 장원 내에서 내게 손댈 순 없다.
내가 지키는 이상 알렉시스에게 닿을 방법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추적자가 주저하는 사이, 나는 한지혁에게 힐끔, 눈짓했다,
몇 번 시선이 오가고, 한지혁은 목에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휘이익─!!
날카로운 소음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추적자가 한껏 당황한 얼굴로 한지혁을 쳐다보았다.
한지혁은 눈썹을 까딱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병사들이 곧 도착할 것입니다. 감히 아스트라 혈족에게 항명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겠지요.”
추적자의 어깨가 흠칫 솟았다.
‘그렇겠지.’
만약 추적자가 우리 군사에게 잡히면 어떻게 될까.
직계를 건드렸으니, 당연히 신상 명세를 확인할 거다.
‘황비 측 사람인 게 들통날 거야.’
그럼 할아버지는 황비가 추적자를 보낸 이유를 캐내려고 할 거다.
그리고 황비는 비밀이 드러나느니 차라리 추적자를 처리할 테지.
칫, 혀를 찬 추적자가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후,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사실 일이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많이 긴장한 상태였다.
한지혁도 진 빠진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제 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시스가 그런 날 빤히 쳐다봤다.
“병사들이 온다지 않았어?”
“아닌데.”
“……뭐?”
“쩌거 그냥 호루라긴데.”
멀리 클랭클린 제과점에 놓고 온 병사들이 어떻게 호루라기 소리를 듣겠는가?
안 물러날 것 같으니까 수를 쓴 거지.
호루라기를 불기 전에 한지혁과 나는 엄청나게 빠른 눈짓으로 대화했다.
순서는 이랬다.
1. 내가 가슴에 걸려있는 호루라기를 힐끔 쳐다보고,
‘그거!’
2. 한지혁이 호루라기를 내려다보고,
‘이거?’
3. 내가 아주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
그렇게 한지혁이 호루라기를 분 것이다.
사기꾼 출신 한지혁은 대충 그럴싸하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빙의자, 환생자로서 업무 파트너가 된 지 어언 8개월.
이 정도는 가능할 만큼 손발이 척척, 맞춰졌다.
추격자가 고뇌하느라 정신 팔린 짧은 틈에 힐끔거리느라 눈이 빠질 뻔했지만.
나는 눈이 빠질세라 손바닥으로 눈을 꾹꾹 눌러주었다.
알렉시스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짓말했어?”
“응! 나 거짓말쟁이야!”
“…….”
“가까?”
알렉시스의 손을 당기며 말했다.
그러자 이번엔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거짓말쟁이라면서 의기양양해 하는 내가 하찮았는지, 처음보단 경계심을 푼 모양이다.
나는 알렉시스와 걸으며 한지혁에게 말했다.
“알렉시스를 거기루 데려다조.”
“거기? 설마 거기?!”
“거기에 이쓰면 아무도 못 차자.”
“뭐, 그렇기야 하겠지만.”
한지혁이 미간을 좁혔다.
* * *
알렉시스는 미심쩍은 눈으로 에릴로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저 분홍 머리의 남자와 에릴로트는 몇 번이나,
“근데 진짜 거기야?”
“응. 거기.”
─하며 거기를 찾아댔다.
대체 날 어디로 보내려는 거지?
경계심이 다시 강해지려던 찰나, 에릴로트가 알렉시스에게 쪼르르 다가갔다.
“일단 옷을 사자.”
“옷?”
“응. 그걸 입고 갈 순 엄쓰니까.”
에릴로트는 알렉시스의 손을 잡고서 한참을 걸었다.
가는 길에 포목점이나 의상실이 많았는데도, 다른 곳은 쳐다도 보지 않고 앞만 보며 바삐 걷기만 했다.
분홍 머리가 말했다.
“이제 그 골목에서 꽤 멀어진 것 같은데 대충 의상실에 들어가서 사면 안 돼?”
“안대.”
“왜?”
“내가 환비라면 추적자들에게 보고를 들어쓸 때, 확인해보려 하꺼야. 아스트라 영애가 데리고 있던 아이가 진짜 여자애인지.”
“네 행적을 파다가 남자애 옷을 샀다고 하면 증거가 되겠구나. 네가 데리고 있던 아이가 사실 남자애라는.”
“웅.”
“하지만 그런다고 황비가 의심을 풀까?”
“으심해도, 증거가 엄쓰면 내게 아무 짓두 할 수 엄써. (의심해도, 증거가 없으면 내게 아무 짓도 할 수 없어.)”
에릴로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게 힘이란 거야.”
알렉시스는 에릴로트를 지그시 바라봤다.
알렉시스와 눈이 마주친 에릴로트가 빙그레 웃었다,
셋은 상점 지구의 구석에 있는 작디작은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가게를 정리하던 잡화점의 주인이 일행을 보고 “어머!” 하고 에릴로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에릴로트 아가씨가 아니셔요! 세상에, 여긴 무슨 일이세요.”
“안넝. 칼미아. 남자애 옷 이쓰면 조켔어.”
“옆에 있는 분께서 입으실 건가요?”
“응.”
“잠시 기다리셔요.”
잡화점의 주인은 서둘러 창고로 들어갔다.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분홍 머리가 물었다.
“누구야?”
“데몬드 간할성 하녀여써.”
“관할성에 저런 하녀가 있었다고?”
“응. 레체 부인의 부당한 대우에 저항했다가 쫏겨난 하녀야.”
“레이첼 부인? 아아. 지난번에 말했던.”
“응. 내가 찾아서 복직 시킬라구 했는데, 가게를 할 거라구 해서 퇴직금을 조써.”
두 사람이 떠들고 있으니, 칼미아가 창고에서 옷 몇 벌을 가져왔다.
“저희는 잡화점이라 번듯한 옷은 없어요.”
“어쩔 수 엄찌.”
그렇게 말한 에릴로트가 옷을 받아서 알렉시스에게 건네줬다.
“입구 와.”
알렉시스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칼미아는 생긋 웃으며 “이쪽에서 입으시면 됩니다.” 하고 안내해줬다.
옷을 입고 나가니, 에릴로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애쁘다.”
“…….”
에릴로트가 계산대에 있던 칼미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칼미아, 계산해조요.”
“계산은요. 퇴직금도 그렇게 많이 주셔놓고. 그냥 가세요.”
“하지만…….”
“정말로 괜찮아요.”
“으음. 있지, 칼미아. 이 옷 얘기는 모르는 거루 해줄 수 이써?”
칼미아가 생긋 미소 지었다.
그러곤 눈을 가늘게 뜨고 입에 지퍼를 잠그는 흉내를 냈다.
“안심하세요. 뚝심 하면 칼미아 시즈랍니다. 그러니까 레이첼 부인을 들이받고 쫓겨났지요.”
“나 칼미아 그런 점 조아해.”
“하이디와 베티가 아가씨께 푹 빠진 이유를 알겠다니까요.”
중얼거린 칼미아는 후후 웃고, 에릴로트 일행을 배웅해주었다.
칼미아의 잡화점을 나온 에릴로트는 한지혁에게 말했다.
“거기로 데려다주고 와.”
“그래.”
그러곤 알렉시스를 돌아봤다.
걸어온 에릴로트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건넸다.
“이것도.”
그건 장갑이었다.
알렉시스가 받길 주저하자, 에릴로트는 직접 장갑을 알렉시스의 손에 끼워줬다.
“이제 춥지 말라구.”
“…….”
“쪼꼼만 숨어있어. 잠잠해지면 데리러 가께.”
“…….”
대답하지 않았는데도 에릴로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에릴로트는 손을 흔들어 인사한 후에 앞을 향해 뽀르르 달려갔다.
한지혁이 에릴로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알렉시스를 힐끗 쳐다봤다.
“갈까? 아니…… 가실까요?”
“……그래.”
“챙길 짐은 없으십니까?”
“없어.”
알렉시스가 한지혁을 쫓아서 걸어갔다.
그 여자애는 참 이상한 애다.
처음 보는 자신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는지 알 수 없었다.
알렉시스가 한지혁에게 물었다.
“저 애는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지?”
“원래 남한테 잘하는 편입니다. 적이라고 생각하면 얄짤없지만요. 적에겐 아주 냉혹하죠.”
“…….”
“종종 목적을 위해서 무시무시해지기도 합니다.”
“나는 위대한 크로노스 아스트라의 손녀이며,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딸.”
“……!”
“이 장원의 주인이다.”
무서운가?
아닌데.
좀…… 멋진 것도 같았는데.
한지혁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아이를 힐끗 쳐다봤다.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장소는 마차대여소였다.
한지혁은 작은 마차 하나를 빌려서 알렉시스를 태웠다.
고삐는 본인이 잡았다.
얼마쯤 달렸을까.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에 어느 건물에 이르렀다.
마차에서 내린 알렉시스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설마 여기야?”
“예, 여깁니다.”
알렉시스가 굳어진 얼굴로 한지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여기야?”
“제가 그랬잖아요. 목적을 위해서는 무시무시해질 때가 있다고.”
한지혁이 킬킬 웃었다.
* * *
그 시각, 귀빈 숙소.
고날롱 부인이 호위로 분장한 추적자를 노려보았다.
“뭐라고? 누가 방해를 해?”
“본인이 크로노스 아스트라의 손녀이며,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딸이라고 했습니다.”
“뭐야?”
데이몬드의 딸이라면 하나다.
에릴로트 아스트라.
직계들 중 가장 작은 아이였다.
그래, 예절 교실에 있는 것을 보았지.
금발과 적안.
아스트라 초대 가주와 같은 색을 가진 아이.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왜 황자를 찾는 것을 방해한 거지? 이유가 뭐야!”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고날롱 부인이 손끝을 강하게 비볐다.
‘방해할 이유가 없잖아.’
황실의 진짜 장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건가?
아니, 안다고 해도 세 살짜리가 방해할 이유가 뭐야.
아스트라 공작이 명을 내렸다고 하기에도 이상하다.
다 큰 손자도 있는 마당에 굳이 그 작은 애에게 일을 맡긴다고?
‘말도 안 되지.’
좌우지간에 큰일이다.
이번에도 숨겨진 황자를 찾지 못하면 자신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고날롱 부인.”
“예, 예, 황비님…….”
“내가 자네를 참 좋아하네.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망극합니다.”
황비는 소소한 한담이라도 하듯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자신은 알고 있다.
그 말은 능력이 없다면 버려질 거란 뜻임을.
황비는 냉혹한 사람이었다.
아스트라와 분란을 만든 제 오라비를 자살로 위장하여 죽인 것도…….
눈을 질끈 감은 고날롱 부인이 이마를 쥐었다.
황비의 눈에 들어 사업자금을 지원받았다.
이번 일에 실패하여 버려진다면 애써 이뤄놓은 것들이…….
쾅!
테이블을 내려친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오늘은 호위에게 아스트라 장원을 구경시켜준다는 핑계로 상점 지구로 내려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매일 같이 호위가 밖을 나돈다면 의심하는 사람이 생길 터.
“기회는 얼마 없다. 반드시 황자를 찾아야 해!”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어찌할까요?”
“그 애는 내가 파볼 터이니, 너는 서둘러 민가로 내려가라.”
“예.”
* * *
나는 방에서 댓글을 읽고 있었다.
와, 저런데 숨을 줄은 몰랐네ㅋㅋ
근데 에릴로트는 왜 황자 도와준 거?
벌써부터 여자애 붙는 거 장모는 좀 그래
└ㅋㅋㅋㅋㅋ따님 언제 등장하시나요?
└황제 황후 황태후 공작가 후작가 백작가 자작가 남작가 일꾼1 일꾼2…….일꾼1231까지 서사 다 풀고 등장할 예정입니다~
└정답
그래도 남주는 등장했으니 다행ㅋㅋㅋㅋ
└남주일지 아무도 몰라요 미켈란도 할아버지 남주인 줄 알았다구요
‘알렉시스가 잘 도착했나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랍장을 열어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있을 요정 다과회에 가져갈 것들과 또…….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집사가 들어왔다.
“아가씨, 고날롱 부인께서 만남을 청하십니다.”
나는 서랍장을 탁, 하고 닫았다.
‘왔네.’
오늘 일이 고날롱 부인의 귀에 들어갈 줄 알았다.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딸이라고 밝힌 순간, 내 정체는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수도 없었긴 하지만.’
한지혁과 내가 숙련된 병사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겁먹고 물러나게 하려면 내가 누구인지 밝히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아스트라 영애라고 밝히는 순간 나로 특정될걸.’
금발에 붉은 눈을 가진 아스트라 영애는 나뿐이니까.
그래서 차라리 ‘난 추적자들에게 신분을 밝힐 정도로 아무것도 몰라’라고 강조하는 편이 나았다.
“은접실에서 만날래. (응접실에서 만날래.)”
“예,”
집사가 나가고, 나는 응접실로 가서 앉아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고날롱 부인이 미소 지었다.
“좋은 밤이네요, 영애.”
“안넝하세요, 고날롱 부인.”
고개를 살짝 숙인 부인이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밖에 달이 참 아름다워요. 요정 다과회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날씨더군요.”
“녜!”
“씩씩하셔라.”
고날롱 부인은 내게 말 몇 마디를 더 건넸다.
사교계에서 하는 ‘용건 전의 한담’이었다.
칼소이에 제국에선 보통 30분쯤을 한담으로 보내고 그 뒤에 용건을 꺼내는 것이 매너였다.
그런데…….
“오전과 영애의 옷이 다르군요. 외출이라도 하셨나 봅니다.”
한담을 나눈 지 5분도 되지 않아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나는 속으로 조금 웃었다.
아스트라에 초청될 만큼 사교 매너를 중시하는 고날롱 부인이었다.
얼마나 애가 닳았는지 알 법한 부분이다.
“녜. 산점 지구에요. (네. 상점 지구예요.)”
“상점 지구……. 무슨 일로요?”
“오늘 요정 다가회예요. 찬닢 필요해요. (오늘 요정 다과회예요. 찻잎 필요해요.)”
“아스트라의 상점 지구는 굉장하지요. 즐거우셨나요?”
말을 하면서도 안달복달한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제 탐색은 서로 그만해도 대지 않으까요? (이제 탐색은 서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요?)”
“……!”
고날롱 부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럴 만도 하지.
누구도 어린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몰랐을 테니까.
난 생긋 웃었다.
“영애는 대체…….”
크게 충격받은 듯 고날롱 부인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나는 조금 전 서랍장에서 챙겨두었던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쉽께 해결하지요. (쉽게 해결하지요.)”
내가 한 손으로 테이블을 가리키자, 고날롱 부인이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주머니 안을 본 부인이 기함하며 입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