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44화.(44/390)
44화.
요정의 다과회는 어느 순간 ‘스노우베어 따뜻하게 지켜보기’ 모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스노우베어는 걸을 땐 아장아장 걷고, 앉을 땐 털썩 앉았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스노우베어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얘는 뭘 먹어?”
나는 요슈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요슈아가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나무 열매를 먹는대. 가장 좋아하는 건 머루.”
“머루는 가을에 나지?”
“비축해 놓은 게 있을까?”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고용인 하나가 번쩍 손을 들고 말했다.
“식품 창고에서 봤던 것 같습니다!”
“가져와!”
“얼른!”
아이들은 꺄아꺄아, 발그레한 얼굴로 신나서 말했다.
하인이 쏜살같이 식품 창고에서 머루를 가져왔다.
나는 온실에 쪼그려 앉아 한 알을 똑 따서 스노우베어에게 주었다.
스노우베어는 머루를 먹으려다 내 손을 왕, 하고 물었다.
“어딜 감히.”
“이게─!”
“에릴로트.”
지켜보던 아버지와 쌍둥이들이 눈을 부릅떠서 난 그들을 샥, 쏘아보았다.
“개로피지 마.”
“그렇지만 네가 물렸잖아.”
“하나도 안 아파.”
새끼강아지처럼 이도 다 나지 않았는지 무는 힘도 약하다.
‘진짜 아기인가 봐.’
스노우베어는 한 알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간 모양이다.
내 품으로 꼬물꼬물 들어오더니 손에 들린 머루 한 송이를 한 번에 왕 물고 우물우물 잘도 먹었다.
하얀 털로 보송보송하던 입가가 어느새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귀─여─워!”
아이들은 또 한 번 자지러졌다.
.
.
한 시간가량 온실에서 스노우베어랑 놀았다.
나는 우울한 표정으로 하인이 안고 있는 스노우베어를 빤히 쳐다봤다.
“정말로 보내시겠습니까?”
“……웅.”
스노우베어는 개체 수가 현저히 적은 종이다.
강아지나 고양이와는 달랐다.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인이 무엇을 해줘야 잘 자랄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
‘거기다가 엄청나게 연약하다며.’
그래서 난 눈을 딱 감고 스노우베어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저렇게 귀여운 애가 고생하는 걸 어떻게 봐.’
“그럼 멸종위기 생물 관리국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원주인한테는 절대 돌려보내지 않기로 했다.
애니멀 호더인데, 질리면 박제로 만드는 나쁜 놈이라고 하니까.
‘멸종위기 생물 관리국의 국장이라면 잘 돌보겠지.’
<빙.흑.손>에서도 유명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동물변X라고 불렀다.
“흐으…… 흐…… 귀여운 것…… 내 이 테크니컬한 빗질로 널 행복하게 해줄 것이야.”
자칭 동물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태어난 여자라고 했다.
‘그래서 출세는 못 했지만.’
그만큼 뛰어난 능력이 있는데도 말이다.
쌍둥이는 무척 아쉬워 보였다.
하지만 단호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니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다과회의 애들은 떠나는 스노우베어를 보며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이었다.
“잘가요, 귀염둥이. 널 잊지 못할 거예요. 아아, 이별의 슬픔. 시상이 떠오른다…….”
쌍둥이가 흑염룡 사촌 언니를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봤다.
* * *
쌍둥이는 에릴로트의 엄명을 받고, 멸종위기 생물 관리국까지 스노우베어를 잘 데려다주기로 했다.
에릴로트는 다과회에서 아이들과 노는 중이다.
데이몬드는 멀찍이 서서 그런 딸을 지켜보고 있었다.
“네가 스노우베어를 안아보게 해줬으니까, 너도 우리 아빠가 사준 곰 인형을 잠깐 안아봐도 돼.”
리앙틴이 고개를 척 치켜들고 에릴로트에게 말했다.
에릴로트가 곰 인형을 한 번 안아봤다.
다른 애들도 와서 한 번씩 곰 인형을 안아보게 해주었다.
“우리 아빠가 저 멀리 타국에서 구해온 거예요.”
“저희 아빠도 멀리서 구해왔어요. 스노우베어에게 먹이 줄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에릴로트는 사교성도 좋다.
애들과 잘 지내는 에릴로트를 지켜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뭔가 좀 다르다.
뭔가 걸려.
다른 애들은,
“아빠가…….”
“저희 아빠는요…….”
“아빠가 말해줬는데요…….”
에릴로트는,
“아밤미? (아버님?)”
왜…… 나는 아버님이지?
엔조에게 물어봤다.
“보통 저 나이대의 아이들이 부친을 아버님이라고 부르나.”
“예전에는 엄하게 가르쳤으니 그렇게 많이들 부르지만…… 어디 요즘은 예전과 같겠습니까.”
부모님과 식사할 때 먼저 일어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엔조의 형도 자식한테는 아빠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다과회는 우여곡절 끝에 화기애애하게 잘 끝났다.
에릴로트는 데이몬드의 손을 잡고 쫄랑쫄랑 복도를 걸었다.
“그래서요. 디오네라 언니하구요. 리앙틴 언니하구요─”
아이가 자신을 어렵게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얘기도 잘하고, 잘 웃어주고, 잘 안기고.
“아밤미가 포도 준거요. 다 나너머거써요.”
“……에릴로트.”
“녜!”
“다른 애들은 아버님이 아니라, 다르게 부르던데.”
“……?”
“아빠, 라고.”
에릴로트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데이몬드는 무릎을 굽혀서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편하게 불러도 돼.”
“그치만…….”
“그래.”
“아밤미도 하부지하테 공잔미라고 하자나. (아버님도 할아버지한테 공작님이라고 하잖아.)”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건…….”
내가 그 늙은이를 싫어하니까.
하지만 얘기하지 못했다.
그런 얘기는 교육상 안 좋다.
데이몬드는 할 말을 고르며 눈썹을 눌렀지만, 결국 해줄 말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래. 들어가서 쉬어.”
“아밤미 이제 가?”
“응.”
“또 메론 가지러 가?”
“멜론은 이제 끝났어. 다음은 블루베리 차례야.”
에릴로트가 양 눈썹을 기울이며 시무룩해졌다.
“왜 그런 표정이지?”
“나 블루베리 시러요.”
그가 딸을 꼬옥 안아주었다.
“네게 더 큰 세상을 주고 싶어.”
“…….”
“네 재능이 내 게으름으로 인해 빛바래지 않도록, 누구도 널 다치게 할 수 없도록.”
에릴로트의 커다란 눈망울에 미소 짓는 데이몬드가 비쳤다.
데이몬드는 그런 딸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약속하마, 에릴로트.”
“…….”
“다음 대의 아스트라 공작은 내가 될 거야.”
아이가 눈을 깜빡깜빡하며 뭔가를 생각하듯 허공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밤미, 공잔미 되고 시퍼요?”
“그래.”
“모야!”
에릴로트는 인상을 딱 찌푸렸다.
그러곤 다 산 노인처럼 휴, 하고 깊게 한숨을 뱉었다.
“그러몬 그러타구 말을 해야지~!”
“……뭐?”
“알게써요.”
“……?”
“그러몬 아밤미 블루베리 가져와야겐네, 휴우……. 안넝.”
“에릴로트?”
에릴로트는 손을 팔랑팔랑 흔들고 방에 쏙 들어가 버렸다.
졸지에 데이몬드는 방문 앞에 혼자 남게 되었다.
멍하니 방에 쏙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 * *
방으로 들어와서 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후다닥 뛰어가 얼른 방문을 열었다.
한지혁이 서 있었다.
“밤에 왜 불러?”
“지하 창고에 있는 고 옮기꺼야.”
얼른 한지혁을 끌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왜?”
“이제 지짜 돈이 필요하게 되었고든.”
“뭐?”
“나 아밤미 공잔미 만드꺼니까.”
한지혁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데이몬드 님이 공작위에 관심이 없어서 네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 아니었어?”
내가 지금까지 이것저것을 열심히 한 이유는 미래에 살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인정받아서 살기는 편해졌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다르다.
만약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2세가 공작이 된다면?
‘데이몬드 관할령은 끝이야.’
목숨까지도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능력을 키워서 살 구멍을 만들려던 것이다.
“하지만 아밤미 결심해줘쓰니까.”
“그래? 뭐……. 잘됐네. 내심 바라고 있었잖아.”
누가 공작이 되든 데이몬드 관할령은 그 권력에 기생해서 살아야 했다.
어떤 부당한 일도 공작이 명령하면 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공작이 되면 다르다.
‘제일 안전한 길이지.’
“그래서? 뭘 옮기면 돼?”
“하품(下品) 가호석 전부.”
“전부?”
“응. 팔아서 자본을 만드꺼야.”
“이제 돈이 부족하지 않잖아? 발데릭 관할령도 절반이나 받았고.”
“그건 다 외부에 공개되어야 하는 돈이자나. 난 몰래 쓸 수 있는 돈이 피료해.”
사회생활을 더럽게 배운 난 알고 있다.
권력과 가장 친한 건 돈이라는 걸.
‘그것도 검은 돈.’
한지혁과 함께 지하 창고로 내려갔다.
질질 끌고 내려간 자루에 하품만 따로 잘 모아 담았다.
“하품은 쓸데없는 건데도 이런 걸 비싸게 주고 사는 사람이 있다니까.”
한지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호석을 열심히 주워 담아서 나갔다.
“늘 했던 것처럼 암시장에 팔면 되지? 돈은 내 집에 숨겨두고.”
“아니, 돈을 버는 즉시 황도에 건물을 하나 사꺼야.”
“건물?”
“웅.”
나는 계획해둔 다음 일을 한지혁에게 지시했고, 한지혁은 바로 다음 날 집사에게 긴 휴가를 받았다.
그리고 휴가를 틈타서 가호석을 밖으로 몰래 옮겼다.
그는 엿새 후에나 돌아왔는데, 손에는 건물의 권리증이 들려있었다.
[카벨렌 거리 231-31]* * *
오셀리아 황비는 찻잔의 끄트머리를 매만졌다.
아스트라로 내려보냈던 고날롱 부인이 돌아왔다.
황비를 보는 고날롱 부인의 표정이 밝았다.
“감축드립니다, 황비님.”
“감축이라……. 내가 축하받을 일이 있던가.”
“긴 시간 황비님을 시름 하게 했던 문제가 말끔히 사라졌으니 감축드려야 마땅하지요.”
오셀리아 황비는 고날롱 부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아이를 찾았단 말인가?”
“예.”
황비의 표정이 단숨에 변했다.
“어디 있다던가. 역시 아스트라였나.”
“예. 아스트라에 있는 데이몬드 관할령에 지내고 있었습니다. 외진 곳이라 숨어있기 적당했겠지요.”
“해서 어디에 있지?”
“그 아이, 죽었습니다.”
“……죽었다고?”
“예. 작년에 데이몬드 관할령에 산불이 났었다지요. 민가까지 불이 번져서 스무 명도 넘는 사망자가 있었답니다.”
“그중에 그 아이가 있었단 말인가.”
고날롱 부인이 싱긋,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습니다.”
“죽었다는 증거는?”
고날롱 부인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황비에게 넘겨주었다.
확실히 데이몬드 관할령의 직인이 찍힌 서류였다.
사망자 목록엔 숨겨진 황자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체구를 가진 신원미상의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인가.”
“예, 황비님. 몇 번이고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오셀리아 황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날롱 부인을 꿰뚫어 보듯 쳐다봤다.
“서류는 내가 다시 검토해 봐도 되겠지.”
고날롱 부인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이리 나올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검토한다니 가슴이 철렁했다.
“데이몬드 관할령에서 황자가 죽은 것으로 하시겠다고요?”
“녜.”
“조작한 서류는 금방 알아볼 겁니다.”
“그건 걱정 안 해두대여. 우리 간할성엔 아주 일 잘하는 사람이 이써서.”
황궁 사무관들이 석 달 열흘을 파도 먼지 하나 건지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남자,
미켈란이.
‘그리 자신만만해했으니 문제는 없겠지.’
고날롱 부인이 당당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예, 황비님.”
그제야 황비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고생했네.”
“황비님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제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귀부인들이 모였습니다, 전하.”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황비의 살롱 행사가 바로 오늘이었다.
황비는 몸을 일으켰다.
“자네도 가겠는가.”
“예.”
황비와 함께 이동하며 고날롱 부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고날롱 부인은 에릴로트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뭐라고요? 살롱에서 소문을 내달라니요. 우리 거래는 황자가 죽었다고 보고하는 것, 황태후 폐하와 접촉시켜 드리는 것이 다가 아니었나요!”
“하지만 서류도 조작해드렸는 걸료?”
“그건 당연히 해주셔야 할……!”
“세상에 당연한 고는 엄써요.”
“……!”
“부탁을 들어주시면 부인께도 이득이 될 고예요. 절 믿어보세요.”
‘미친 게지.’
어쩌자고 세 살짜리와 손을 잡아서.
보통 세 살도 아니었다.
웬만한 귀부인들은 상대도 안 될 정도로 영악했다.
에릴로트와 했던 대화들을 떠올리며 걸으니 금세 살롱에 도착했다.
귀부인들이 황비와 고날롱 부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자리에 앉자, 이런저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열흘이나 먼 아스트라에 다녀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제국을 돌보시는 황비님만 할까요.”
고날롱 부인의 말에 황비가 미소를 머금었다.
“자네는 아스트라에 가서 말솜씨만 늘어왔군, 그래.”
“영특한 아이와 함께 있다 보니 말재간이 옮았나 봅니다.”
“영특한 아이?”
“예.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딸, 에릴로트 아스트라입니다.”
고날롱 부인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가 보통 영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글쎄 고대어를 읽는 가호를 가지고 있다지 뭡니까?”
“고대어……?”
“아이를 구슬려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더니, 고대어 역사서에는 신묘한 내용이 많이 있더랍니다. 가령, ‘축복의 땅’ 같은.”
“축복의 땅이라면…….”
“신성한 힘이 흘러나오는 땅으로 머물기만 해도 마력이 증가한다지요.”
“흐음…….”
마력이란 건 가호를 만들어내는 에너지원이었다.
마력이 강해진다면 응당 가호도 강력해질 터.
“제가 아이에게 축복의 땅의 조건을 들었습니다.”
고날롱 부인이 속삭이자, 귀부인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런 정보를 그냥 흘릴 리 없는 사교계의 거인들.
살롱을 나서자마자 축복의 땅 조건에 충족하는 곳을 기어이 찾아냈다.
[카벨렌 거리 231-31]빈민굴과 가까워서 황도에서도 가장 저렴하던 땅값이 폭등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