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5)
이 3세는 악역입니다 45화.(45/390)
45화.
* * *
한지혁이 내 책상에 편지를 쏟아냈다.
“네 건물을 사겠다는 사람들의 애절한 편지다. 1000만 골드에 산 건물을 9000만까지 부르던데.”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편지를 끌어안았다.
편지에서 돈 냄새가 나요, 킁킁.
“건물은 언제 팔 건데?”
“더 오를 고야. 족히 2억은 갈 골.”
한지혁은 입을 떡 벌리고 말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웅. 주가 조작가튼 고.”
“뭐?”
“주가 조작. 몰라?”
“넌 양심이 있기는 해……?”
“사기꾼이 양심을 묻는 고야?”
한지혁은 떡 벌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난 어깨를 으쓱였다.
‘뭐, 주가 조작과는 좀 다르긴 하지. 피해자가 생기는 게 아니니까.’
건물 일대의 가격을 다 올려놓은 게 아니었다.
딱 축복의 땅 위에 세워진 내 건물만 값이 미친 듯이 오르는 거다.
‘그리고 폭락하지도 않을 거야.’
거기가 축복의 땅인 건 사실이니까.
“2억까지 오르면 팔아?”
“아니. 그 땅을 살 사람은 정해져 이써.”
한지혁은 무슨 소리냐는 듯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시계를 보고 곧 입을 다물었다.
“황태후의 그림을 복제해달라던 작자와 만나러 가야 해.”
“웅.”
“……이렇게 농땡이를 피워도 내가 공작성에서 잘리지 않는 이유가 뭘까?”
그야 당연히 내가 7서열권 안에 있는 3세니까 그렇지.
내가 관할성에서 데려온 하인을 자를 순 없는 거다.
난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그를 배웅했다.
“잘 가따와.”
한지혁이 나가고 난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알렉시스를 보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알렉시스를 꽤 오래 보지 못했다.
주말에 나가려고만 하면 쌍둥이가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아기야, 어디 가?”
“녜?!”
“왜 그렇게 놀라지?”
“아니, 발쟈쿠가 갑자기 와서 깜짝 놀라가지구.”
“오늘 왠지 기분이 더럽더라고. 너랑 같이 있을래.”
짐승 같은 감을 가진 발자크.
“어디 멀리 가?
”어, 어?!“
”오늘 옷을 가볍게 입었잖아. 추운데.”
“……?”
“넌 외투를 입을 때마다 옷을 가볍게 입거든. 외투가 두꺼워서 불편하다고.”
“…….”
귀신같은 눈치를 가진 요슈아.
두 사람을 피해서 가는 건 진짜,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두 사람은 외부로 훈련 나갔지.’
나는 음음, 콧노래를 부르며 커다란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갔다.
디오네라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에릴로트, 여기야.”
“안넝.”
“응!”
디오네라는 하얀색 천에 푸른 털 달린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아주 잘 어울렸다.
난 오늘 디오네라와 함께 밖으로 나간다.
호위나 하인 없이는 나갈 수가 없는데, 알렉시스가 있는 곳에 가려면 그들을 달고 가선 안 된다.
그래서 디오네라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다.
디오네라의 호위와 같이 나가서 날 잠깐 알렉시스가 있는 쪽 근처에 내려 달라고 했다.
“세인트 강 근처에 내려주면 되지?”
“웅.”
“정말 괜찮겠어? 위험하면 어쩌지?”
“칭구랑 이쓸 거야.”
“으응. 그런데 평민 친구는 언제 사귀었어?”
난 움찔하며 눈을 데구룩 굴렸다.
‘디오네라한테는 몰래 만나러 가는 게 평민 친구를 만나기 때문이라고 했지, 참.’
“어…… 앳날에.”
“옛날?”
“응. 앳날.”
“그렇구나.”
디오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 착한 애라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난 의심하는 애지.’
마부석에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디오네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 칭구 만나러 가는 고 비밀이야.”
“응!”
“하인이라 호이들도 비밀로 해주까? (하인이랑 호위들도 비밀로 해줄까?)”
디오네라가 로브 안에 있던 목걸이를 꺼내서 내게 보여줬다.
“이건 <금제>의 가호석이야. 어머니가 주셨어.”
“아…….”
“우리 관할령의 고용인들은 모두 금제해. 내가 원하지 않는 말은 밖으로 절대 새지 못하게.”
“그래두 대?”
“금제할 수 있느냐가 우리 관할령의 고용인으로 들어오는 조건이야.”
디오네라는 “절대! 에릴로트의 친구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할게!”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
“고마어, 언니.”
디오네라가 뺨을 감싸며 에헤헤, 웃었다.
“난 에릴로트가 언니라고 불러줄 때가 좋아.”
세인트 강까지는 금방 왔다.
디오네라는 날 내려주고 말했다.
“5시에 데리러 올게!”
“응.”
디오네라의 마차가 출발한 뒤에 난 후다닥 움직였다.
로브를 깊게 뒤집어쓰고, 강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거기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이그리츠 감옥>
─이라는 이름의.
* * *
“빨리, 빨리 못해!”
알렉시스가 식판을 박박 닦았다.
한 달이 넘으니까 이제 이 일이 제법 익숙해졌다.
‘익숙…….’
알렉시스는 울컥 인상을 썼다.
처음 에릴로트의 하인이 이곳에 데려다줬을 땐 농담인 줄 알았다.
숨겨주겠다고 감옥에 데려오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진짜로 감옥에 넣어버렸다.
간수에게 돈을 주고서.
처음 며칠은 농담인 줄 알았다.
‘곧 꺼내주겠지.’
기다렸는데, 그 여자애는커녕 분홍 머리도 오지 않았다.
감옥의 일과는 매일 똑같았다.
아침 식사 → 성경 낭독 → 운동 → 점심 식사 → 노동 → 명상 → 저녁 식사 → 노동
누가 보면 죄지은 것들이 놀면서 산다고 하지만, 강도가 끔찍했다.
글자를 배운 적 없는 알렉시스에게 성경 낭독은 고문이었다.
명상도 마찬가지다. 3시간을 시키는데 가만히만 있는 게 이렇게까지 괴로운 줄은 몰랐다.
식사는 다 먹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었다.
노동은 사람이 탈진할 때까지 시켰다.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하니, 화가 치밀었다.
‘오기만 해 봐.’
이 장원의 주인이고 뭐고, 제대로 화를 내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에릴로트는 오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체념할 때까지.
“어허, 자세가 흐트러지니 손에 힘이 안 들어가지! 이 녀석! 꾀부리지 마라!”
간수가 알렉시스에게 버럭 소리쳤다.
‘빌어먹을.’
감옥에 있었더니 입까지 험해졌다.
땀이 눈에 들어갈 것 같아서 고개를 들었는데,
“너…….”
세척장 문 뒤에서 검은 로브를 푹 뒤집어쓴 작은 애가 보였다.
그 애는 씨익, 웃고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속이 뒤집히게 해맑았다.
알렉시스가 벌떡 일어났다.
“너!”
첫 만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 * *
에릴로트는 간수에게 금화 두 개를 주고 감옥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알렉시스를 찾아서 빈방으로 들어왔다.
들어오니 식판을 벅벅 닦고 있는 알렉시스의 머리통이 빼꼼 보였다.
“너, 뭐야.”
알렉시스가 굳은 얼굴로 에릴로트를 쏘아봤다.
“밥은?”
“…….”
“밥 먹었어?”
“여긴 전부 먹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해.”
에릴로트는 메고 온 배낭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몬 이거는 나중에 먹구.”
“…….”
“이거는 담요.”
“…….”
“이건 약이야. 머리 아프 때 먹는 고, 배 아프 때 먹는 고, 또…….”
분명히 화를 내려고 했다.
다시 만나면 고함을 치려고…….
그런데 제 몸만 한 가방을 메고 온 걸 보니 도무지 소리가 안 나오는 거다.
“또 이거는 초코렛이랑…….”
“그만해.”
알렉시스가 왈칵,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거 마싯는데.”
“날 언제 내보내 줄 건─”
에릴로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서 알렉시스의 이마를 짚었다.
알렉시스는 흠칫, 놀라서 물러섰다.
에릴로트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아파? 얼굴 빨개.”
이러니 소리를 칠 수 없는 거다.
아무도 안 물어봐 준 것을 물어보고, 아무도 챙겨주지 않은 것들을 챙겨주니까.
“여기두 으사 불러주는데. 아프면─”
“난 의사가 싫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벌컥 열었다.
문 앞을 지키면서 꾸벅꾸벅 졸던 간수가 화들짝 놀래며 눈을 떴다.
“벌써 끝났냐?”
알렉시스는 대답도 안 하고 휙, 가버렸다.
간수가 “저 성질머리하곤.”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나는 문밖으로 나와서 멀어져가는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으이구, 고집쟁이.’
<빙.흑.손>에서도 그렇게 고집만 부리더라니, 세 살 버릇이 성인까지 간 거였다.
알렉시스가 보이지 않을 때, 간수를 흘낏 쳐다봤다.
“아픈데 챙겨주지두 않으면은 어떠케.”
간수가 쩍 하품하며 말했다.
“어제부터 기침하는 것 같기에 의사를 불러준다고 했습니다. 죽어도 싫대요.”
하긴 의사가 싫기도 하겠지.
자기를 빼돌려서 힘들게 살게 한 사람이 의사였는데.
간수가 날 쳐다봤다.
“그런데 저놈 어디서 주워오셨습니까?”
“빗물바지에서. (빗물받이에서.)”
“희귀한 데서 있었네. 별것이 다 희귀해, 저놈은.”
간수는 팔짱을 끼고 히죽 웃었다.
“가르치는 맛이 있는 놈입니다. 명상을 세 시간씩 꾸준히 시킨 것뿐인데 벌써 호흡법을 터득했어요.”
그렇게 말하며 간수, 아니, 훈련 교관은 뿌듯하게 웃었다.
<이그리츠 감옥>.
남들이 들으면 평범한 감옥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주 극소수의 사람은 알고 있다.
‘여기가 병사 훈련소라는 것을.’
사병은 황궁이나, 장원에서 수를 제한했다.
군사를 기를 때에도 철저하게 인원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귀족들이 사병을 정말로 딱 제한한 수만 기르겠는가?
이렇듯 몰래 사설 훈련소에서 병사들을 길렀던 것이다.
‘이그리츠 감옥은 그중에서도 특별하지.’
교관들이 무려 황궁 출신이다.
선황의 폭정에 열 받은 중앙 기사들이 황궁을 뛰쳐나와 차린 곳이다.
‘원래 역모를 목적으로 지어진 거지.’
그래서 범죄 도시라고 불리는 아스트라 장원에 훈련소를 만든 것이다.
교관이 방으로 들어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거 먹어도 됩니까?”
“웅.”
교관이 과자를 부스럭부스럭 까기 시작했다.
“처음에 아가씨가 찾아오셨을 때만 해도 기겁을 했었는데.”
“…….”
“아, 팔뚝만 한 게 와서 앞으로 사람을 맡길 테니까 잘 부탁한다는데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교관이 그때를 회상하며 낄낄댔다.
“누굴 맡기려나 했더니 저런 걸 주워오셨네요. 신기하게.”
소설에선 더 신기하다.
알렉시스가 직접 찾아오거든.
‘황비의 추적대를 피하려다가 우연히 들어온 곳이지만.’
여기서 오래 훈련받고, 이들을 흡수해서 그는 제국 최고의 용병단장이 된다.
“근데 왜 여기가 훈련소라구 말하면 안대?”
자기 병사를 입소시키는 조건이 그거다.
훈련생에게 이곳이 훈련소라는 걸 말하지 않을 것.
“나중엔 말해줍니다. 입소할 때만 몇 달 테스트를 보는 거지.”
“테스트?”
“쓰레기 하나 잘못 가르쳐놓으면 우리 다 죽어요. 당장 황실에 찌르기만 해도 싹 사형인데요.”
그렇긴 하다.
교관은 과자를 으적으적 씹으며 말했다.
“여기가 훈련소라는 걸 알아도 될 놈에게만 오픈합니다. 우린.”
“알아도 댈 사람은 어떠케 알아보는데?”
교관이 엄지로 자기 가슴을 쿡 찌르며 말했다.
“여기가 단단하면 티가 납니다. 보여요.”
“…….”
“왜요? 멋집니까?”
“……구로니까 지난 4개월 동안 훈련 맡기는 사람이 나바께 엄찌. (……그러니까 지난 4개월 동안 훈련 맡기는 사람이 나밖에 없지.)”
이 훈련소의 훈련생은 알렉시스 딱 하나다.
수감자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은 다 교관들이다.
교관이 머쓱해서 코를 훌쩍 들이켰다.
* * *
나는 세척실에 쪼그려 앉아서 식판을 벅벅 닦는 알렉시스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저렇게 무게중심 잡는 법을 가르치는구나.’
알렉시스는 날 본 척도 안 했다.
“진짜 약 안 머글 거야?”
“…….”
“야아.”
“…….”
“알렉시스.”
“부르지 마.”
“화나써?”
억울해 죽겠다.
나도 말하면 편하거든?
‘교관이 좀 바보 같지만, 감 하나는 더럽게 빠르니까.’
한지혁이 알렉시스를 맡기러 갔을 때 그랬단다.
“이놈 이거, 여기가 어딘지 아는데?”
한지혁은 그 얘기를 듣고 와선
“개무서웠다.”
라고 난리였다.
‘망할 소설.’
하필 이그리츠 설정을 이렇게 잡아놔서.
남주가 여기가 사실 감옥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때의 감동적인 장면 연출을 하기 위한 설정일 뿐이잖아.
알렉시스가 날 쳐다봤다.
“넌 내가 우습게 보여?”
“머?”
“이런 데 가둬놓고 재밌어?”
“……그런 거 아닌데.”
여기는 네 동아줄이니까 그런 거지.
“풀어주지 않을 거면 가.”
“…….”
“나, 네 장난감 아니야.”
이쯤 되니 나도 화가 났다.
벌떡 일어나서 알렉시스를 노려봤다.
“간다, 가!”
씩씩거리면서 세척장을 나와서 복도를 걸었다.
‘원래는 4년을 개고생하다가 겨우 찾는 곳에 안전하게 모셔다 놨더니.’
네가 그 4년간 어떤 지옥을 경험하는지 알아?
우뚝 멈춰 서서 세척장을 쏘아보았다.
그리곤 다시 우다다 세척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알렉시스의 등에 무언가를 퍽! 던졌다.
“바보!”
* * *
뭔가를 던진 에릴로트는 다시 세척장을 나갔다.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그건 약이었다.
감기약.
알렉시스가 약을 주워 들었다.
‘바보는 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