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8)
이 3세는 악역입니다 48화.(48/390)
48화.
하녀들은 아직도 내가 걱정되는지,
“머리가 조금이라도 아프시면 의사를 부르셔야 해요.”
—라고 백번쯤은 말한 후에야 날 보내주었다.
공작성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인사하러 집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아버지와 드뷔시 자작이 앉아있었다.
“아가씨, 많이 걱정했습니다.”
“에리로트, 이제 건강해. 미안함미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드뷔시 자작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픈 게 뭐가 미안한 일이라고요.”
할아버지는 조용히 나만 빤히 쳐다보았다.
드뷔시 자작은 조용히 앉아있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공작님도 하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무슨 말을 해. 나았으면 됐지.”
“에리로트, 그럼 가보께요.”
공작성에 오자마자 할아버지께 인사도 다 했으니 나가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리 와서 앉아.”
낮게 읊조리는 할아버지 말에 왠지 무서워 쭈뼛쭈뼛 가서 다시 앉았다.
뭐지? 내가 뭐 잘못했나?
건강 안 좋은 3세는 버리고, 뭐 이런 건가?
온갖 생각을 다 하며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는데, 마침 집사가 똑똑, 하고 들어왔다.
집사 뒤로 하녀들이 음식을 가지고 졸졸 따라 들어왔다.
첫 번째 하녀가 음식을 내밀었다.
환상어 꼬리 요리.
보양식 최고봉이라고 하는 유명한 음식이다.
“먹어.”
“……녜.”
두 번째 하녀도 접시를 내밀었다.
이국의 환약.
보약으로 유명해 귀족들이 건강식품으로 이국에서 몰래 밀반입 해오는 약이라고 들었다.
“먹어.”
“……녜.”
세 번째 하녀도 접시를 내밀었다.
삼색초.
보양초로, 부르는 게 값이다.
“먹어.”
“……녜.”
나는 열심히 보양초를 씹었다.
나 이러다 배 터져 죽겠다.
* * *
아스트라 공작은 부랑자의 표정으로 꼬흑, 트름을 하는 에릴로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이거밖에 못 먹어. 아직 아픈 게 아니냐.”
드뷔시 자작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저걸 다 구해오라고 하길래 어디다 쓰려나 했더니.’
2주간 정보부가 저것에만 매달려 있었다.
‘혹시 황제가 죽을병 걸렸나 했다…….’
에릴로트는 슬픈 눈으로 드뷔시 자작을 쳐다봤다.
살려달라는 표정에 드뷔시 자작이 나섰다.
“그만하십시오.”
“이거밖에 못 먹었잖아!”
“약도 너무 먹으면 독입니다.”
“…….”
아스트라 공작은 미간을 좁히고서 말했다.
“다 싸서 에릴로트의 방에 올려보내라.”
저걸 다?
에릴로트는 세상 괴로운 표정이었다.
* * *
할아버지의 방을 나와 별관 쪽으로 걸었다.
신관은 폭발 때문에 못 쓰게 되어버려서, 아이들은 현재 별관에서 교육받는 중이었다.
복도 끝에서 서성이는 아이들이 보인다.
“에릴로트…….”
“야!”
디오네라와 리앙틴이 나란히 달려왔다.
둘 다 그새 머리가 꽤 길었다.
키도 조금 큰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반년이니까.’
내 코앞까지 달려온 리앙틴이 나를 새초롬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멍청이! 마도 폭발에 휘말렸다며!”
“소리 지르지 마. 회복한 지 얼마 안 됐잖아.”
디오네라가 울먹이자, 리앙틴이 입술을 꽉 깨물곤 “바보.” 하고 중얼거렸다.
“난 갈 거야. 너는 약이나 먹던지.”
리앙틴은 혼자서 걸어갔다.
그러나 얼마쯤 못 가서 갑자기 날 돌아본다.
“나, 너 없는 동안 중급교육실에 갔어! 내가 너보다 한 수 위야, 알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 애는 코를 훌쩍 들이켰다.
정말로 캐릭터 성이 확실한 애였다.
디오네라는 몇 번이나 내게 물었다.
“정말 괜찮아?”
“응.”
“정말?”
“응.”
“정말, 정말?”
돌아가기 전까지 나는 이놈의 ‘응’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뒤에 있던 하녀들이 2차로 울먹울먹했다.
‘감격의 재회씬은 한 번이면 족하다.’
나는 “이따가!” 하고 슝, 다시 방 밖으로 달려 나갔다.
오도도 달리고 나니 금세 2관문에 도착했다.
2관문 앞에는 작년에 본 바늘개가 침을 뚝뚝 떨어뜨리며 크르륵, 하고 울었다.
“우리 옛날에, 아니, 미래에 친해져.”
이제 하나도 안 무섭다 이거야.
컹!
……조금 무서워.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내가 풀어줘서 달리아한테 달려든 거 아니었잖아.’
달리아가 술 먹고 비틀대면서 나한테 달려들어서 바늘개가 날 지키려고 공격한 것이었다.
난 그냥 그날 밤에 바늘개랑 놀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품에서 숨겨둔 무언가를 짠! 하고 꺼냈다.
나무 피리였다.
호, 하고 입구에 숨을 불어넣자 피리에서 맑은소리가 나며 크륵크륵하던 바늘개가 진정이 되었다.
‘백경나무로 만든 피리거든.’
인간은 맡지 못하는 백경나무목의 냄새는 몬스터들에겐 새끼의 페로몬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모든 몬스터에게 통하는 건 아니었다.
“그럼 지난번 하딕스 산에서 백경나무가 쓰러지자 우리를 공격했던 몬스터는…….”
“새끼를 공격하는 줄 알고 온 거 아냐? 인간이 미안해…….”
한지혁과 내가 울먹이고 있자, 미켈란이 미간을 좁혔다.
“하딕스 산에 있었다던 비행형 몬스터 말이십니까? 카루아톤이잖습니까.”
“카루아톤?”
“약한 개체를 잡아먹습니다. 새끼 냄새가 나니까 잡아먹으러 온 겁니다.”
이렇듯 잘 골라야 했다.
‘일단 얘는 길들일 수 있어.’
바늘개는 경비용으로 많이들 데리고 있는 마물이다. 키우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피리 소리에 엎드려 있는 바늘개에게 “옳지. 옳지.” 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멀리서 저벅저벅 누군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예상되어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바늘개만 쓰다듬었다.
“으악!”
한지혁이었다.
크르르르르륵!
엎드려 있던 바늘개가 벌떡 일어나 한지혁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놀라게 하지 마.”
“뭐 이렇게 커…….”
“왜 왔어?”
“황태후의 그림은 어떻게 해?”
한지혁은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황태후의 그림을 가진 자와 만났다고 했다.
복제해준다는 핑계로, 진품은 숨기고 위조품 두 개를 보냈다.
“그래도 일은 잘했네.”
“……너 일어나면 잔소리할까 봐 그랬다, 왜.”
말은 저렇게 해도 일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했던 모양이다.
내가 진짜 어떻게 될까 봐.
한지혁은 뾰로통한 얼굴로 땅만 보고 있었다.
나는 픽,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림, 가져왔어?”
“방에 가져다 놨다.”
한지혁과 함께 다시 방으로 갔다. 방에는 한지혁이 가져다 놓은 그림이 포장지에 곱게 싸여 세워져 있었다.
“그림이 뭐 이렇게 커……?”
“그림 자체는 작은데 액자가 크더라고.”
한지혁은 포장지를 주욱 찢어서 보여주었다.
진짜 액자가 엄청 특이하게 생겼네.
‘이거…….’
“밀수꾼들이 쓰는 액자인데.”
“밀수꾼?”
여기는 범죄도시인만큼 범죄가 미친 듯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아주 오래전에 한 번 저런 액자에 마약을 담아서 유통했다는 이야기를 수업에서 배웠다.
나는 즉시 콘라드를 방으로 불러왔다.
“부르셨습니까.”
호출당한 콘라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림을 뒤집어놓고 한지혁과 콘라드에게 말했다.
“네 개 모서리 돈시에 누르는 고야! 쪼꼼도 틀리면 안 대!”
하나, 둘, 셋!
쩌적!
퍽!
그림이 밑으로 뚝 떨어지고 상자가 나왔다.
“으악! 그림!”
한지혁이 헐레벌떡 떨어진 그림을 잡는 동안 난 상자를 슬며시 열어봤다.
그리고…….
“와─.”
안에도 그림이 들어있었다.
그림의 보관상태도 좋았다.
왜인가 했더니, 상자 안에 가호석이 내장되어 있었다.
“이고 그림 모지.”
바다가 보이는 창에 매달려 있는 여자아이의 뒷모습.
갈색 머리칼을 가졌고, 목에 조그만 상처가 있었다.
그림 뒤에 서명이 되어 있었다.
[오르디아첼 K 머렐리스]보자마자 난 소리쳤다.
“이고다!”
“예?”
“뭐?”
“황태후가 찾는 그림, 이고여써!”
오르디아첼은 황태후의 돌아가신 모친이니까.
그래서 황태후가 건립한 미술관의 이름이 오르디아첼 미술관이지 않던가!
그냥 어머니가 물려준 그림이 아니었던 거다.
“어머니가 그린 그림이라 그렇게 찾았구나…….”
“황태후의 어머니일 정도면 대단한 신분 아냐? 왜 숨겨놨지?”
콘라드가 대답했다.
“당시엔 여성 화백의 그림은 불운을 불러온다고 해서 불태워졌거든.”
그런데 황궁에 여성이 그린 그림을 가져갈 수 없던 거겠지.
“어떻게 할 거야? 바로 황태후에게 줄 거야?”
“계핵 변경. (계획 변경.)”
“뭐?”
이렇게 소중한 그림이라면 조커가 되어줄 거다.
그런 걸 지금 써먹을 순 없지.
난 악마처럼 킥킥 웃으며 말했다.
“잘 보관해놔.”
“그래.”
그림을 다시 잘 챙기던 한지혁이 “아.” 하며 날 쳐다봤다.
“편지 왔었는데. 꽤 많이.”
“나 다 받았눈데.”
답장도 다 써줬다.
리앙틴, 디오네라, 힐다와 그레타……. 그리고 흑염룡 언니가 시를 적어서 보낸 것에도 잘 받았다고 답장해줬다.
“네 손에 안 가는 것들이 있지.”
“먼데?”
“발신인 주소가 없는 편지 말야.”
발신인 주소가 없는 편지…….
“알렉시스?”
“그래.”
한지혁이 잠깐 기다려, 하더니 편지를 한 묶음이나 가져왔다.
나는 콘라드와 한지혁이 나간 후,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 편지를 읽었다.
아프다는 얘기는 분홍 머리에게 전해 들었어.
가라고 한 거, 별로 그렇게 진심은 아니었어.
‘벌써 다 잊었는데.’
그게 그렇게 신경 쓰였나 보네.
밖엔 봄이 왔대.
간수가 산나물을 캐와서 이상한 걸 만들었어. 다른 애들은 먹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루카 녀석이 먹으면서 뺀질거렸어. 맛있는데, 너희가 안 먹겠다고 했으니까 먹지 말라면서.
화장실에서 몰래 토하는 걸 봤어.
루카는 큰형 같은 애지.
간수, 아니, 훈련소장이 만든 걸 아무도 안 먹어주면 서운할까 봐 억지로 먹었나 보다.
네가 쓰러져서 몇 개월째 눈뜨지 않는다는 걸 애들이 알았어.
분홍 머리는 입이 싸.
내일 혜성우가 떨어지는데, 애들은 네가 깨어나게 해달라고 빌겠다고 했어.
소원을 빌었어.
루카 녀석이 마음에 안 들어.
잘 안 맞을 것 같더라니, 싸웠나 보다.
형 같은 느낌의 루카라면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텐데.
아쉽다.
간수들이 대화하는 중에 훈련소 이야기를 꺼냈어.
날 보고 몹시 당황하더라고.
잠들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간수장이 들어와서 그간의 일을 설명해줬어.
이 감옥이 훈련소라는 것, 입소 규칙이 훈련생은 그 사실을 몰라야 한다는 것, 네가 큰돈을 주고 나를 맡겼다는 것.
그들은 내가 놀랄 줄 알았는데, 침착한 것에 당황스러워했어.
하지만 난 지금까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게 더 당황스러웠어.
엥?!
나는 벌떡 일어나서 편지를 고쳐잡았다.
알고 있었어?
언제?
감옥에 버젓이 널 들여보낼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어. 이곳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네가 루카와 두고 있던 체스판과 기물이 손수 만든 것이란 걸 알았을 때 확신했지.
수감자에게 날붙이를 줄 리 없잖아. 아무리 소년 감옥이라고 해도 말야.
……그렇구나.
그래서 그때 그가 나에게 돈을 쓰지 말라고 한 거다.
간수, 아니, 훈련소장 칼리는 내게 결정하라고 했어. 훈련을 받을 것인지, 나갈 것인지.
이 인간이.
돈을 받아 처먹고 애를 그냥 내보내다니!
난 인상을 쓰고 편지를 마저 읽었다.
나는 고민해보겠다고 했어. 칼리는 내게 외출이 가능하다고 했고, 난 몇 개월 만에 감옥을 나오게 됐어.
오랜만에 나오니 기분이 좋았겠다.
혹시 그래서 훈련을 안 받겠다고 했을까?
나는 으음, 신음하며 다음 장으로 넘겼다.
네게 편지를 주러 데이몬드 관할성에 갔어. 나는 고작 1관문의 경비병에게도 가로막혔어.
내가 그들에게 가로막혀 있을 때, 호화로운 옷을 입고 깨끗한 손을 가진 녀석들이 말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았어.
그들에겐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내겐 이름, 부모 여부, 나이, 사는 곳, 형제 관계…… 수많은 것을 캐물었지.
하지만 결국 올라가는 건 그 녀석들이었고, 난 너에게 편지조차 전해주지 못해.
훈련을 시작했어.
다음엔 분홍 머리가 아닌, 내가 직접 네게 편지를 전해주러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