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2)
이 3세는 악역입니다 52화.(52/390)
52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얼굴을 했다.
“저도 소중한 그림이 있어서 알 것 같아요.”
두 손을 꼬옥 마주 잡고 순진한 척 눈을 깜빡였다.
“이렇게 안목 높은 아가씨에게 무슨 그림이 소중할까?”
다정한 말과는 달리, 딱히 크게 궁금해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건 하나도 모르는 척,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어봐 주셔서 기뻐요.”
그리고 나보다는 당신이 더 기뻐할 거야.
나는 볼을 붉히며 그림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노을 지는 창가에 매달린 여자아이 그림인데, 보고 있으면 아련하고 어딘가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져요.”
“……!”
황태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모르는 척, 그림을 손에 넣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제가 사기엔 좀 비쌌지만 그림을 보고 첫눈에 반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용돈을 열심히 모아서 샀어요! 제 보물이에요.”
“어떤…… 그림일까 궁금하네. 내가 아는 화백의 그림일 수도 있는데……. 혹시 자세히 말해주겠니?”
별로 궁금해하지 않던 아까와 달리 황태후는 이제 초조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나는 보물을 자랑하게 되어서 신이 난 것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노을 지는 창밖은 아름다운 바닷가예요. 바깥을 바라보는 여자아이는 갈색 머리고요, 머리를 하나로 땋고 있어요. 뒷모습만 봐도 그 여자아이가 행복해 보이는 걸 알 수 있어요.”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화백이 무척 사랑하던 아이였나 봐요.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아이를 향한 사랑이 느껴져서 저까지 가슴이 몽글몽글해져요.”
나는 고개를 들어 황태후와 시선을 맞췄다.
“저는 어머니가 없거든요. 이게 바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기분일까요?”
우뚝.
내 마지막 말에 황태후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미소를 가장할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마른 입술을 비집고 나온 황태후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혹시…… 그림을 보여줄 수 있겠니?”
‘물론이죠, 폐하.’
이건 뇌물이 될 거니까요.
“네!”
나는 속내를 감추고 순진한 애처럼 방긋 웃었다.
황태후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되돌아왔다.
그녀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내 이름을 물었다.
“우리 숙녀의 이름이 뭘까?”
역시. 다정하게 대했지만, 그전까진 내 이름조차 궁금하지 않았던 거다.
나는 방긋 웃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예요.”
“아스트라?”
황태후가 깜짝 놀라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 * *
다음날.
그림을 꽁꽁 예쁘게 포장한 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내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미술관에서 황태후를 만났다고?”
“네!”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할아버지의 미간에 생긴 골은 더 깊어져만 갔다.
어제 미술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서부터 계속 그랬다.
할아버지는 내가 홀로 황태후를 만나는 게 아주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너를 부르는 것인지.”
쯧, 하고 할아버지가 대놓고 혀를 찼다.
그러는 사이 마차는 황궁에 도착했다.
목표가 코앞이라 나는 신이 나서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할아버지가 그런 나를 붙잡고 당부했다.
“행여나 그 사자 같은 늙은이가 무슨 무리한 요구를 하면 바로 내게 말하거라.”
“네!”
시원하게 대답했지만, 말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황태후는 내 고객님이 될 테니까.’
나는 속에 있는 생각을 감추며 기운차게 답했다.
할아버지는 마뜩잖은 시선으로 내 얼굴을 몇 번이나 바라보다가 대전으로 가셨다.
나는 곧장 황태후궁으로 갔다.
황태후궁은 순백색의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각도에 따라 대리석이 오묘한 빛으로 반짝였다.
황태후의 높디높은 입지를 나타내듯 더없이 호화로운 궁.
그러나 내게는 그저 보물 광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서 오십시오, 영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궁 앞까지 마중 나온 황태후의 측근 시녀가 나를 반겼다.
‘보통 마중은커녕 대기실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린다던데.’
확실히 황태후의 애가 닳은 모양이다.
나는 대기실 따윈 거치지 않고 곧바로 알현실로 안내받았다.
이미 알현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황태후는 내가 들어가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거라.”
“황태후 폐하를 뵙습니다.”
황태후는 인자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이제 보니 할아버지와 많이 닮았구나. 네가 아스트라 공작의 그 유명한 손녀였다니.”
“집에서도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얼마쯤 사소한 이야기가 오갔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는 게 사교계의 법칙 같은 거였다.
그러나 한담을 하면서도 황태후의 시선은 그림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엄청나게 훔쳐보고 있네.’
나는 모른 척하며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제가 황태후 폐하를 만났다고 하니 믿지 않으셔서, 방금도 궁까지 데려다주셨어요.”
“어머. 이렇게 똘똘한 손녀의 말을 왜 못 믿을까?”
하하 호호.
듣기 좋은 이야기들뿐이었지만, 이야기가 길어지자 황태후의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이젠 애가 닳은 표정을 숨기지도 못했다.
‘빨리 확인하고 싶어 죽겠지?’
체면 때문에 조급하게 굴지는 못하고.
‘이만 애태웠으면 됐어.’
최적의 타이밍이 왔다고 판단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럼, 어제 말씀드렸던 그림을 보여드려도 될까요?”
황태후는 내 말에,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를 것만 같았다.
“물론이지! 어서 보고 싶구나.”
사부작사부작.
꽁꽁 싸맨 포장지를 벗기는 동안에도 황태후의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다.
사라락.
마지막 포장지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그림이 드러났다.
“…….”
황태후의 눈이 잘게 떨렸다.
나는 그림을 보며 황홀하게 말했다.
“아이가 정말 예쁘죠?”
“그런가…….”
“네. 순수해 보이고. 분명히 착한 아이였을 거예요.”
“……그랬던 적이 있기도 한 것 같구나.”
황태후의 시선은 여전히 그림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그림 너머에 있는 무언가였다.
“화백이 엄청나게 사랑했나 봐요. 그림에서도 깊은 애정이 느껴져요. 폐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래……. 맞아.”
황태후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입술이 꾹 다물린다.
황태후는 이제 내게 말을 걸 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그림만 보았다.
하염없이.
조금 시간이 흐른 후.
황태후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아가야. 혹시 이 그림을 내게 팔 순 없겠니?”
“네?”
나는 깜짝 놀란 척 눈을 동그랗게 뜨곤 곤란하다는 듯 시선을 옆으로 굴렸다.
“아……. 하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라…….”
“값은 원하는 대로 치러주마.”
“저는—”
황태후는 초조함을 숨기지 못한 채 내 입술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가 얼마를 부르더라도 다 내어줄 것 같은 시선.
“—돈은 필요 없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황태후가 숨을 들이켰다.
“돈이 필요 없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돈은 있어도 있어도 더 필요하지만.
이 그림으로 사고 싶은 것은 돈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따로 있지. 바로…….’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
이렇게 외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침울한 얼굴을 유지했다.
황태후는 체면상 차마 아이한테 그림을 뺏을 수는 없는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지고 싶어서 죽겠다는 게 너무 잘 보였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신을 그려주신 거라고 할 순 없을 터.
‘누가 믿겠어. 그런 우연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우연이 아니었다.
‘다 내가 만든 거니까.’
“그렇……구나.”
황태후는 할 말을 고심하는 듯 침묵했다. 표정이 당연히 좋지 않았다.
나는 그런 황태후의 안색을 보고 고민하는 척 손톱을 깨물었다.
그리고 결심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폐하…… 그 그림이 좋으세요?”
“그래.”
“그러면…… 드릴게요. 돈은 괜찮아요.”
황태후의 눈이 커다래졌다.
얼마를 불러도 냉큼 내줄 생각이었는데 돈은 괜찮다니? ─하는 표정이었다.
“어째서?”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황궁엔 힘든 일이 많다고요.”
나는 침울한 기색을 떨쳐내며 말을 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저는 이 그림으로 큰 위로를 받았거든요. 아마 폐하께서는 저보다 힘든 일이 더 많으시겠지요?”
황태후와 눈을 마주치며 나는 해사하게 웃었다.
“폐하께서 이 그림을 보실 때마다 저처럼 행복하시기를 바라요.”
아…….
주변에 있던 황태후의 시녀들이 작게 신음했다.
하나 같이 감동한 표정들이다.
“…….”
황태후도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까와 달리 눈빛이 아주 깊었다.
“고맙다. 하지만 내게 소중한 그림을 주는데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순 없지.”
황태후가 고민하다가 물었다.
“아가야, 계속 황도에 있니?”
“아뇨. 오늘 아스트라 장원으로 내려가요.”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구나.”
“아버지가 일이 많으셔서요. 바쁘셔서 시간을 더 내기가 힘드시거든요.”
황태후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멋쩍은 듯 히히 웃었다.
“그래. 장원에 가 있으면 내가 선물을 보내마.”
“선물이요?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내 마음이란다. 거절하지 말려무나.”
사실은 애초에 거절할 생각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킬킬 웃었다.
그 후론 화기애애한 시간이 이어졌다.
원래도 정중했던 시녀들은 조금 더 상냥해진 태도로 내게 이것저것을 권했다.
“이거 좀 드셔보세요. 황태후님을 위해 파티셰가 특별히 만든 디저트랍니다.”
“이것도 드셔보세요. 이건 황제 폐하께서도 좋아하시는 아이스크림이에요.”
“후후, 아기는 아주 복스럽게 먹는구나. 보기 좋아.”
아니, 너무 많이 주잖아?
이거 다 못 먹—
‘맛있네.’
황태후궁의 파티셰는 아주 훌륭한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열중해서 옴뇸뇸 디저트를 해치웠다.
그렇게 행복한 다과 시간을 보낸 후.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인사한 뒤 알현실을 나서려는데 황태후가 일어서서 나를 배웅했다.
황태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리렴. 나는 평생 아스트라 공작에게 부러운 것이 없었는데, 오늘 딱 하나 생겼노라고.”
나는 속으로 주먹을 쥐었다.
‘예쓰! 성공이다!’
나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을 휘며 웃었다.
“네!”
* * *
황궁에서 돌아오자 아빠가 저택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차피 짐은 이미 싸놨기에 내가 뭘 더 챙겨야 할 건 없었다.
도도도 아빠에게로 달려갔다.
“이제 출발해요?”
“그래.”
아빠가 웃으며 내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아빠의 뒤로 그리미에 백부가 배웅을 나왔다.
백부가 고마움 가득한 얼굴로 아빠에게 말했다.
“네 덕분에 큰 위기를 넘겼다. 고맙다, 데이몬드.”
아빠는 겸양의 말도 없이 고개만 까딱했다.
‘정말 시크하다니까.’
함께 마차에 오르자 아빠가 내 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 손에 바리바리 든 게 궁금한가 보다.
“그건 뭐지?”
“황태후 폐하가 주셨어요. 진짜 선물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것들로 행복해하고 있으라고요.”
손에 든 것은 시녀들이 열심히 내게 먹여주었던 것들이었다.
황궁 파티셰의 케이크와 과자들.
빈손으로 보내기 싫다며 쥐여 준 것이었다.
물론 이 과자들은 굉장히 맛있었지만, 나는 진짜 선물에 더 관심 있었다.
‘대체 뭘 보내줄까?’
두근두근.
선물은 뜯어보기 전이 제일 기대가 되는 법이다.
“진짜 선물은 또 무슨 뜻이냐.”
워낙 빠르게 진행된 일이라 아빠에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할아버지도 아는 얘기를 모르면 섭섭해하니까.’
속성으로 나와 황태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었다.
내가 일부러 그림을 구해서 황태후에게 접근했다는 것만 빼고.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 말대로 네가 운이 좋은 걸까. 잘했다. 아버님이 기뻐하겠군.”
나는 순진한 우리 아빠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빠, 우연은 없어요. 모든 건 필연이지.’
* * *
이튿날, 공작성.
하필 황도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이 시험 보는 날이었다.
황태후궁에서 받아 온 디저트는 혼자서 먹기보단 주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감탄하며 디저트를 한 입 한 입 음미했다.
“뭐야. 너무 맛있어……!”
“난 우리 성 파티셰가 최곤 줄 알았는데. 이런 신세계가 있다니!”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자 나도 뿌듯했다.
애들이 디저트를 먹고 있는 틈에 살짝 빠져나왔다.
‘미끼를 물려놨으니까 한동안 안 찾겠지.’
나는 남들 시선을 피해서 뒷정원으로 갔다.
그곳에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내가 빠져나갔다 온 것을 눈치챈 아이는 없었다.
오히려 완전히 디저트에 몰두해서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느낌표를 띄우며 황홀해하고 있었다.
‘그 정도라고?’
더 준다는 걸 거절하지 말 걸 그랬나 보다.
* * *
시험을 위해 훈련장에 모두가 모였다.
상급교육실 실전 훈련이었다.
리앙틴은 죽상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호가 변변찮아서 실전에선 맨날 다른 직계들에게 발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디오네라는 날아다녔다.
디오네라가 가진 가호는 바로 <괴력>.
근거리전에선 누구라도 디오네라에게 뚝배기가 깨질 수 있다.
다만 디오네라는…… 공부를 못했다. 좀 많이.
삐이익!
호루라기가 울리고 시합이 시작되었다.
발자크와 조프리의 시합이었다.
쾅!
콰아앙!
무력계 가호를 가진 발자크는 지루해 죽겠다는 얼굴로 조프리를 공격했다.
‘음. 이건 볼 것도 없지.’
눈 깜짝하는 사이에 발자크가 조프리를 발라버렸다.
“악! 나 피, 피 나!”
조프리는 악을 지르며 제 상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애걔.’
정말 쬐에끔 다쳤는데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엄살은.’
발자크와 시합하고서 저렇게 조금 다친 거면 얼마나 봐준 거야?
넘어져도 저것보단 심하게 다치겠다.
하도 조프리가 난리를 치자 조프리네 고용인이 와서 그를 업어 갔다.
‘발자크의 다음은 누구지?’
일단 요슈아는 아니다.
요슈아는 훈련장에서 실전 훈련을 하지 않는다.
요슈아의 가호는 <압축>.
<압축>은 주변 공간을 압축하는 광역기라서 가호를 쓰면 필연적으로 훈련장이 다 망가지게 된다.
실전 훈련을 할 수가 없으니 패스다.
다음 차례가 누구인가 했더니, 내 이름이 불렸다.
“다음은 로레이나 님, 에릴로트 님!”
반대쪽 진영에 있던 로레이나가 피식 웃었다.
웃긴 웃는데 절대 긍정적인 미소는 아니었다.
그럴 만했다.
‘조프리네 누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