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3)
이 3세는 악역입니다 53화.(53/390)
53화.
로레이나는 조프리의 누나로, 발데릭 숙부의 큰 딸이다.
조프리 가족은 우리가 발데릭령의 알짜배기 영지의 절반을 가져간 일 이후로 나를 원수로 여겼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도둑 누명을 씌우래?’
조프리 가족의 사랑 따위 받고 싶지도 않지만, 먼저 선빵 친 사람이 누군데 싶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몰라?’
—라고 말하기엔 내가 좀 심하게 갚아주긴 했지만.
자기 동생이 누명을 씌웠고 자기 아빠가 할아버지 앞에서 영지를 걸었는데, 내게 원한을 불태우니 웃기는 짬뽕이다.
아무튼 로레이나의 가호는 <수인화>다.
조프리의 상위 호환 기술이라고나 할까.
‘걔는 하관만 수인화하니까.’
로레이나는 가호를 사용하면 야수로 변할 수 있다. 매우 위협적인 가호였다.
로레이나가 피식 웃으며 내게 아량을 베풀었다.
“감당하기 힘들 텐데? 기권해도 좋아.”
나는 씩씩하게 답했다.
“괜찮아요, 언니!”
삐이익!
호루라기가 울렸다.
시합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동시에 로레이나는 바로 수인화했다.
샛노란 홍채에 작은 동공.
속도에 특화된 각력을 지닌 네 발.
흉흉하게 전신을 감싸며 돋아나는 털은 싯누런 데다 얼룩덜룩한 무늬를 띄고 있었다.
‘표범!’
로레이나가 변한 야수는 표범이었다.
“크아악!”
표범이 포효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시합을 지켜보고 있는 발자크와 요슈아가 조마조마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로레이나가 날카로운 발톱이 튀어나온 앞발을 휘두르자 으악! 소리를 질렀다.
“기권해! 기권해!”
“에릴로트!”
‘응원을 해주라고!’
힘 빠지게 기권이라니.
나는 요리조리 열심히 피했다.
나름대로 채찍을 휘둘러 공격을 시도해 보았지만, 로레이나는 빠른 스피드로 요령 좋게 피했다.
역시 인간의 몸으로는 표범의 스피드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허억, 허억…….”
열심히 피했지만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어느새 훈련장의 끝까지 몰려서 표범과 대치했다.
그러자 표범이 푸흐흐, 웃었다.
표범은 다리부터 사람의 형태로 변하여 로레이나가 되었다.
사뿐사뿐.
로레이나가 인간의 모습으로도 표범처럼 가볍게 걸어왔다.
로레이나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하필 이전이 발자크와 조프리의 시합이었기에 자신의 승리가 더욱 통쾌한 모양이다.
로레이나가 아량 넘치는 얼굴로 물었다.
“기권하지 그래?”
“…….”
“네가 아무리 용을 써도 공격계 가호에는 상대도 안 되지. 네 고대어 읽는 가호. 좀 볼품없지 않아? 가엾어라.”
가엾다고 말하면서 표정은 하나도 안 가여워 보인다.
한 발짝, 두 발짝.
천천히 다가온 로레이나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표범으로 변했다.
“크아앙!”
그 순간.
삐이이이익!
높은 호루라기 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 * *
쿵. 쿵. 쿵.
거대한 무언가가 숲을 헤치며 달려 나갔다.
촤아악! 우지끈!
나뭇잎이 부딪치고 나뭇가지들이 끊어지며 소란한 소리가 났다.
푸드드득!
나무에서 쉬던 새 떼가 발작하듯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어?”
“어, 어?!”
“몬스터다!!!”
숲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몬스터였다.
훈련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들 피하십시오!”
고용인과 선생들이 사람들을 대피시키려 했다.
그러나 시합을 위해 나와 있던 인원이 많은 만큼 신속한 대피가 어려웠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제길!”
로레이나 또한 표범으로 변해서 재빨리 도망가려 했다.
그런데.
까마귀를 닮은 커다란 몬스터는 퍼드득, 날아올랐다가 빠르게 하강하며 로레이나를 노렸다.
쐐애액!
쿵. 쿵. 쿠웅!
부리로 내리꽂기도 하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채려 하기도 하고.
‘뭐야? 왜 나만……!’
아무리 표범의 속도로 빠르게 몬스터에게서 벗어나려 해도, 몬스터는 로레이나만 따라갔다.
‘진짜 나만 노리고 있잖아?!’
심지어 가까운 곳에 에릴로트가 있는데도 그랬다.
‘뭐야! 쟤가 더 잡아먹기 쉽잖아. 근데 왜……!’
에릴로트는 팔짱을 낀 채로 몬스터에게 쫓기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도 무서워 보이는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한없이 여유로운 얼굴.
‘뭐지?’
미쳤나?
왜 안 피하는 거지?
“라곤.”
몬스터는 에릴로트의 말에 얌전히 땅에 내려앉았다.
“……!!”
“아, 깜빡하고 말하는 걸 잊고 있었다.”
에릴로트가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 가호, 새로 발현했는데.”
“뭐, 뭐?!”
“<마물 조련>. 내 새로운 가호야.”
라곤이 입맛을 다시며 로레이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에릴로트의 개구진 얼굴이 얄미울 정도로 귀여웠다.
* * *
공작성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에릴로트 아가씨의 얘기 들었어?”
“새로운 가호를 발현하셨다면서?”
“아가씨는 무슨 운이 그리도 좋은지.”
“두 번째 가호조차 대천문이 닫히고 발현하다니!”
수군수군.
고용인들과 가신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도는 사이.
직계들 역시 회장으로 모였다.
공작의 막내아들이자 7남인 헤르난이 쾅! 소리가 나도록 회장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에릴로트가 새로운 가호를 발현했다는 게 진짜입니까?!”
그리미에가 빙긋 웃었다.
“<마물 조련>이라는 가호라더군. 듣도 보도 못한 능력이야.”
조카의 행운을 함께 기뻐해 주는 얼굴이 인자했다.
“뭐가 좋아서 그리 웃으십니까! 우리 로레이나는 그 몬스터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발데릭이 씩씩거리며 불만을 터트렸다.
“발자크는 조프리를 실려 가게 하고, 에릴로트는 로레이나를 죽이려고 하고. 데이몬드 형님 쪽은 우리랑 뭐 원수라도 진 건가?!”
그는 화살을 데이몬드에게로 돌렸다.
데이몬드는 발데릭의 맹렬한 비난에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 자식들이 뛰어난 걸 뭐 어떡하라고?”
뻔뻔함의 극치.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자식 자랑.
열 받은 발데릭의 얼굴이 삶은 문어처럼 새빨개졌다.
화병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공작의 뒤에 서 있던 드뷔시 자작은 아스트라 공작을 흘낏 쳐다보았다.
‘애쓰시는군.’
아스트라 공작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입꼬리를 실룩이고 있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에릴로트를 대단히 아끼는 공작으로선 기꺼운 일인 것이다.
“흠. 에릴로트는 세 살 때부터 남달랐지.”
“그렇지요.”
아스트라 공작이 그렇게 정리하고 넘기자 발데릭은 더 항의할 수 없었다.
물론, 이미 데이몬드 선에서 정리된 이야기긴 했지만.
화제는 곧 바뀌어 다른 이야기들이 화두에 올랐다.
“아, 그리미에 형님의 관직 얘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스트라 공작은 이제 슬슬 자식들을 중앙에 진출시킬 생각이었다.
첫 타자는 당연히 2세 중 장남인 그리미에 아스트라였다.
그리미에가 뺨을 긁적이며 답했다.
“글쎄. 아직 황궁에서 연락이 안 와서 말이다.”
똑똑.
그때, 콘라드가 회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아스트라 공작의 질문에 콘라드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황궁에서의 연락입니다. 그리미에 아스트라 님을 외무 대사로 임명하시겠다는 황명이 내려졌습니다.”
“오오!”
7남 헤르난이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쳤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외무 대사라니. 좋은 거 아닙니까?”
공작이 중앙 진출을 목표로 하는 걸 아는 만큼, 2세들은 다들 그리미에의 임명을 축하했다.
“…….”
하지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정작 아스트라 공작의 표정이 한겨울의 서리처럼 싸늘했다.
* * *
그리미에의 외무 대사 취임 축하연이 벌어졌다.
공작성의 만찬장.
2세의 수도 많은 데다가 2세의 자식들인 3세들도 워낙 수가 많으니 분위기는 시끌시끌했다.
헤르난이 은쟁반에서 샴페인 잔을 잡아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미에 형님의 외무 대사 취임을 축하하며!”
“건배!”
“건배!”
쨍!
높이 올라간 샴페인 잔들이 맑은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황금색 샴페인이 잔 밖으로 흘러넘치며 향긋한 냄새가 공기 중으로 퍼졌다.
“모두 고맙다.”
그리미에는 인자한 표정으로 축하를 받으며 샴페인을 마셨다.
“…….”
에릴로트는 가만히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그리미에가 사람 좋게 웃었다.
“에릴로트는 볼 때마다 쑥쑥 자라는구나. 황도까지도 명성이 자자해. 두 번째 가호를 발현했다고?”
“네. 운 좋게요.”
“초대 가주님도 세 가지 가호를 가지고 계셨다지.”
그리미에가 생글생글 웃으며 에릴로트를 치켜세워주었다.
발데릭만 팍,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도 관할령의 반, 그것도 알짜배기 땅을 뺏긴 게 분한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자식들은 왜……!’
넘치도록 지원해주는 조프리가 에릴로트의 서열을 넘지 못하는 것도 화가 났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조프리는 자라면서 점점 더 멍청해지는 것만 같았다.
샴페인을 물처럼 들이켜던 중에, 일전에 들은 소문이 떠올랐다.
발데릭의 입매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내가 들은 소문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마물을 움직일 수 있으면 저주받은 거라고 하더군.”
데이몬드와 발자크, 요슈아는 저주에 민감하다.
데이몬드는 쌍둥이 동생을 저주로 잃었고, 발자크도 요슈아를 저주로 잃을 뻔했으니까.
울컥한 세 사람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데이몬드가 발데릭을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남의 말에 휘둘리나? 아들의 말 한마디 때문에 관할령의 반을 뺏기고도?”
발데릭이 얼굴을 붉히며 항의했다.
“형님! 저주인지 확인해보라는 좋은 마음으로 말한 건데……!”
언쟁이 일 것 같아지자, 디오네라의 모친인 바실레가 중재했다.
“좋은 자리에서 무슨 소란입니까. 아버님께서 계신 자리니, 그만들 하세요.”
발데릭이 슬그머니 공작을 바라보았다.
‘히익!’
장남이 외무 대사가 되는 경사가 있건만, 공작의 시선은 평소보다 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아스트라 공작의 곁에 서 있는 콘라드는 에릴로트와 시선을 교환했다.
‘역시. 눈치채셨군.’
아스트라 공작의 기분이 나쁜 건 당연했다.
노리던 자리는 권력의 핵심인 중앙탑이었다.
그런데 황제가 아스트라 공작의 장남에게 준 자리는 달랑 외무 대사 자리였던 것이다.
‘아스트라를 견제하는 거지.’
아스트라 공작이 분노할 만했다.
황제가 아스트라를 견제하려는 태도가 이렇게 노골적이건만.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축하 파티를 여는 자식들이라니.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자식들을 보니 속이 터지는 것이다.
2세들의 대부분은 아스트라에 기대고만 있지 스스로 뭔가를 해낼 생각이 없다.
2세들이 생각하는 것은 딱 하나.
아스트라 공작 자리를 노리는 것뿐이었다.
‘누구 하나 마음에 차는 놈이 없군.’
아스트라 공작이 속으로 역정을 내는 게 에릴로트의 눈엔 다 보였다.
그때, 주머니 속에 있는 통신석이 반짝였다.
천 밖으로 희미하게 새어 나온 빛을 알아본 에릴로트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잠시 자리 좀 비울게요.”
에릴로트가 주변에 양해를 구하고 만찬장을 빠져나왔다.
* * *
나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나와서 통신을 연결했다.
연락해 온 사람은 미켈란이었다.
[아가씨.]“무슨 일이야?”
[황제와 최근에 독대한 사람을 알아냈습니다.]‘역시 미켈란!’
너무 유능하다.
나는 새삼 감탄하며 물었다.
“그게 누구야?”
[탈로스 백작입니다.]“탈로스 백작은 요새 어떤데?”
[신이 났다지요.]“알만하네.”
각이 딱 보였다.
탈로스 백작이 중앙탑에 입성할 모양이다.
[예.]“탈로스 백작의 뒤를 더 파봐. 분명 뭔가 나올 거야.”
[어느 선까지 캐볼까요?]“전부.”
[예. 그리고 황궁에서 선물이 도착했습니다.]“선물?”
[황태후가 아가씨의 앞으로 황궁 티 살롱의 카드를 보냈습니다.]‘뭐?’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황궁 티 살롱은 황태후가 직접 주관하잖아.’
겨울에 열리는데, 한해에 가장 빼어난 활약을 한 레이디들이 초대받는다.
사교계의 거두들이나 참석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즉, 인맥의 밭이라는 뜻!
황태후가 그림의 대가로 준다던 선물이 이것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미켈란에게 기뻐하는 걸 티 낼 순 없지.’
미켈란이 사랑한 선황비와 황태후는 정적이었으니까.
황태후는 선황비의 관마저 황궁 묘에 두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계속 고생해줘.”
[예.]통신을 끊고 나서 나는 혼자 생각했다.
‘탈로스 백작이라…….’
왜 그 사람일까?
아스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문이라면 몰라도, 탈로스 백작은 그리 권세가가 아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황제가 아스트라를 이렇게 홀대하기는 힘들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으면서 홀대한다고?’
어지간한 배짱 아니고선 시도하지 않을 일이었다.
할아버지라면 황제를 압박하려고 나올 게 뻔했다.
‘게다가…….’
그리미에 백부의 취임 소식을 듣고 바로 고날롱 부인에게 물어봤다.
황궁 분위기가 어떻냐고.
그랬더니 고날롱 부인은 황궁 분위기가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고 질겁하며 말을 전해 주었다.
‘그 뜻은, 합의된 행동이 아니라는 거지.’
황궁이라 해도 모두 황제의 뜻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여러 세력의 뒤를 봐주고, 그들에게 받아먹는 것들이 있다.
그렇다면.
‘전부 캐보면 알겠지.’
황제가 탈로스 백작에게 중앙탑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내서 그 자리를 도로 뺏어와야지.’
뺏어서 그리미에 백부에게 줄 거냐고?
‘아니. 뺏어서 우리 아빠 줄 거야.’
외무 대사도, 중앙탑 자리도 다 우리 거다.
나는 양손으로 입을 막고 킥킥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