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54화.(54/390)
54화.
* * *
만찬이 끝난 뒤.
난 할아버지에게 황태후 일을 보고하러 갔다.
“아, 할아버지!”
마침 할아버지는 복도에 있었다.
막, 말을 붙이려고 하는데 뒤에서 둘째 고모 바스티나가 황급히 쫓아왔다.
“아버님~!”
“무슨 일이냐.”
“좋은 소식이 있답니다. 우리 셀레네가 원화 후보에 들었지 뭐예요!”
“잘했구나.”
“셀레네가 대단하다고들 하더라고요. 사교계에서도 신성의 등장이라면서, 원화 자리는 떼놓은 당상이라고들 많이 그래요.”
“앞으로도 정진하라고 전해.”
시큰둥한 태도에 바스티나 고모는 남몰래 똥 씹은 얼굴을 했다.
‘뭔가 줄줄 알았더니, 이대로 끝?’ 하는 얼굴이다.
“응?”
그러다 나를 발견했는지 인상을 썼다.
‘아니, 나는 아까부터 있었는데?’
“넌 또 여기 웬일이니? 공부는 안 하고 아버님만 쫓아다니니?”
‘본인 얘기를 하는 건가?’
바스티나 고모의 말은 딱 본인을 지칭하는 수식어였다.
바스티나 고모와 고모부는 부부 둘 다 돈 버는 재주는 없고 사치하는 재주만 있었다.
맨날 쓸 돈이 부족해서 할아버지에게 ‘돈 좀 달라’고 오는 것을 아스트라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딸인 셀레네 얘기하러 온 것도 돈 달라는 구실인 게 분명했다.
‘믿을 구석에 비비는 거야 상관없는데 나를 매도하면 곤란하지.’
나는 순진하게 눈을 깜빡이며 바스티나 고모에게 말했다.
“저는 할아버지께 황태후 폐하의 얘기를 하러 온 건데요?”
“뭐라고?”
황태후라는 말이 나오자 바스티나 고모가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황태후 폐하는 왜?”
“티 살롱에 초대해주셔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할아버지께 여쭤보려고요.”
“황태후 폐하의 티 살롱?! 거기에 네가 어떻게 초대를 받았다는 거니! 원화도 못 들어가는 곳인데!”
“제가 폐하께서 마음에 들어 하는 그림을 선물해 드렸거든요. 무척 기쁘셨던 모양이에요.”
“말도 안 돼. 온갖 귀한 그림을 다 갖고 계신 분이 왜 네가 가진 그림 따위를…….”
“폐하께선 제가 그분과 보는 눈이 비슷하다고 하셨어요.”
그 말은 최고의 찬사나 다름없었다. 열 살인 내가 일국의 황태후에 견주는 심미안을 가졌다는 거니까.
바스티나 고모는 말문이 막혀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모른 척 운을 떼었다.
“티 살롱에 황제 폐하도 자주 오신다던데. 맞나요, 할아버지?”
“글쎄.”
“할아버지는 황제 폐하가 싫으세요? 그럼, 저 티 살롱 안 갈래요.”
바스티나 고모가 그 말에 발작하듯 소리쳤다.
“뭐?! 미쳤니? 그런 자리에 왜 안 가!”
“그치만…….”
나는 할아버지에게로 가서 할아버지의 옷자락을 쥐었다.
“할아버지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사람은 황제 폐하라도 싫은걸요.”
“아니, 그래도 황제 폐하를…….”
바스티나 고모가 황망하게 중얼거리는데, 할아버지가 헛기침했다.
커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은근히 입꼬리가 씰룩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바스티나. 더 할 말이 없으면 가보아라.”
그러곤 옷자락에 나를 매단 채로 집무실로 갔다.
* * *
집무실에 온 아스트라 공작이 에릴로트에게 대뜸 말했다.
“얼굴 보는 게 왜 이리 오랜만인 것 같으냐.”
“네? 어제도 봤는데요?”
어리둥절한 에릴로트의 표정을 보며 부관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가씨, 제발!’
“크흠.”
아스트라 공작은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하고 있지만, 부관은 알고 있었다.
아스트라 공작은 에릴로트가 찾아오는 날을 꽤 기대했다. ……아니, 많이.
“왜 요즘 3세들은 어릴 때처럼 기숙 교육을 안 받는 거냐?”
모든 3세가 보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핑계를 그렇게 대었다.
아스트라 공작 본인은 평소와 똑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명백히 달랐다.
에릴로트를 보는 날과 보지 못하는 날의 차이가.
가뜩이나 깐깐한 아스트라 공작이 에릴로트를 보지 못해서 프로 불편러가 되면…….
들들 볶여서 죽어 나갈 생각을 하니 하늘이 샛노랬다.
‘더는 못 참아!’
공작의 들볶음에 참지 못한 부관들은 상급 교육 과정에도 기숙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몇 날 며칠 밤을 꼴딱 새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마어마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바로 에릴로트의 부친, 데이몬드 아스트라였다.
상급 교육 과정에 기숙 교육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이야기가 퍼지자마자, 데이몬드가 부관들을 찾아온 것이다.
“아직 죽기엔 이른 나이인데.”
부관들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앞에는 공작, 뒤에는 데이몬드라니.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흑흑. 사직할까…?’
살길이 보이지 않았다.
* * *
할아버지와 대화 후.
나는 혼자 마차를 타고 집에 가고 있었다. 아빠는 성에서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차 창밖으로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졌다.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품고 있는 사막처럼 아름다운 밤하늘.
수많은 별이 머리 위로 쏟아질 것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아스트라의 밤하늘은 정말 좋아.’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랑하던 풍경이었다.
홀로 운치를 즐기고 있는데.
덜컹!
마차가 갑자기 크게 덜컹거리며 멈춰 섰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앞에서 고용인이 당황하며 창문을 두드렸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바퀴가 늪지에 빠진 모양입니다. 잠깐 대기해주셔야겠습니다. 금방 고치겠습니다.”
행여나 내 기분이 상했을까 봐 무척 눈치 보는 표정이었는데, 정작 난 화낼 생각이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걸.
그러나 관할령의 하녀인 하이디와 베티는 매섭게 눈을 치켜떴다.
“빠릿빠릿하게 하세욧!”
“우리 아가씨께서 찬 바람을 쐬고 감기에 걸리면 어쩌려고욧!”
나는 깜짝 놀라 하녀들을 쳐다봤다.
‘내가 3살이었을 때는 어수룩하고 착하기만 했는데.’
처음 만났을 때로부터 벌써 7년이 지난 지금, 하이디와 베티는 이제 상급 고용인이다.
경력이 길어지고, 그만큼 능력도 키웠다.
그렇다 보니, 고용인들 사이에서 입김이 상당해졌다. 덕분에 다른 고용인들은 두 사람을 무서워한단다.
‘내 눈에는 귀여운데.’
하지만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인다면 사기당할 걱정은 던 것이니, 다행이다.
하이디와 베티가 마부를 쥐잡듯 잡는 동안,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마침 마차가 멈춘 곳은 호숫가 근처였다.
‘산책이라도 할까.’
나는 밖으로 나와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마부에게 말했다.
“천천히 해. 잠깐 근처를 걷고 올게.”
“잠시만요, 아가씨. 같이 가요.”
“외투, 외투……! 그래도 밤엔 쌀쌀하니까요!”
하이디와 베티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나는 두 사람과 도란도란 수다 떨며 호숫가를 걸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부스럭부스럭.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웬 남자애가 튀어나왔다.
“엄마야!”
베티가 질겁하며 소리쳤고, 하이디는 잔뜩 굳어진 얼굴로 나를 감쌌다.
하지만 살수 같은 부류의 위험한 사람은 아니었다.
15살 정도 된 소년.
얼굴이 낯익었다.
“하하. 기막힌 우연이네. 그치?”
보니까 아르망의 모자를 주워줄 때 봤던 남자애였다.
포슬로니였던가?
그때도 대뜸 저런 식으로 굴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설마 마차가 멈춘 것도 저놈의 짓인가?’
그러고 보니까 성으로 올 땐 멀쩡했는데, 갑자기 늪지가 생긴 게 이상했다.
미쳤나?
삐딱한 태도로 포슬로니를 보는데 포슬로니는 안 물어본 이야기를 줄줄 뱉었다.
“전에 봤을 때 얘기할 시간이 없었던 게 아쉬워서 찾아왔어. 밤에 보니까 더 예쁘네?”
남의 마차를 멈추게 해서 시간을 뺏더니, 헛소리만 줄줄 하고 있었다.
내가 미간을 좁히자, 포슬로니는 하하 웃었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니야. 내 이름 알지? 포슬로니 칼데레. 우리 집 꽤 부자야. 알부자.”
전에는 가난하다가 이제 알부자가 됐겠지. 무려 영지를 할아버지에게 갖다 팔았으니.
“용건만 간단히.”
“하하. 평민 출생이라서 그런가? 성격이 좀 까칠하네. 뭐, 아스트라의 핏줄이기도 하고.”
혼자 중얼거린 남자애가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처음엔 네 출신도 안 믿었어. 이렇게 예쁜데 천출이라니! 너 진짜 예쁜 것 같아.”
칭찬이랍시고 천출 운운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알다시피 우리는 원래 고귀한 게 제일 중요하잖아?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나라면 끔뻑 죽어. 아버지가 뭐라 하셔도 엄마가 내 편이니까 괜찮아.”
그런 TMI를 내가 왜 알아야 하는지?
“내가 다 설득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내 여자가 될 기회를 줄게.”
‘우와.’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왔다.
포슬로니는 마치 성은이라도 내리는 것 같았다. 자기가 관심 가져주는 걸 영광으로 알라는 듯이.
“솔직히 내가 좀 아깝긴 한데, 너 그래도 반쪽은 아스트라니까. 정상 참작해줄 수 있어.”
“어머.”
“미친.”
그나마 내가 이 개소리를 견딜 수 있던 건 뒤에서 추임새를 넣어 주는 베티와 하이디 덕분 아닐까?
베티와 하이디는 손수건이 있다면 갈가리 찢을 기세로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다.
으드득, 으득.
이를 가는 소리가 너무 선명해서, 소름이 다 끼칠 정도였다.
“아가씨. 저 새…… 아니. 저 귀족 놈은 누구세요? 아가씨가 무시하면 안 되는 귀족 놈이신가요?”
“그냥 시골에서 온 귀족이래. 잘 몰라.”
“뭐라고욧!”
베티와 하이디가 목덜미를 잡으며 쓰러지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는 계속 갈리고 있어서, 나는 이제 슬슬 둘의 치아 건강이 걱정되었다. 여기는 틀니도 없는데.
“괜찮아. 그냥 보고 있는 거야. 웃겨서.”
그렇게 설명하는데,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아이고.’
나는 조금씩 내게 다가오는 포슬로니에게 손바닥을 쫙 펼쳤다.
“도망칠 기회를 줄게. 딱 5초.”
“도망? 내가 왜? 아. ‘나 잡아 봐라’라도 하자고?”
음흉하게 웃는 포슬로니는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한 것 같다.
나는 진지하게 경고해줬다.
“더 다가오면 너 큰일 나.”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접으며 숫자를 셌다.
5.
4.
3.
2.
1.
카운트다운이 다 끝나기 무섭게,
뻐어어어억!
두개골이 박살 나는 것 같은 크고 맑은소리가 주변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발자크가 날아 차기로 포슬로니의 머리통을 깨버리는 소리였다.
“으극그극!”
포슬로니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며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일어나. 아직 안 끝났어.”
퍽!
발자크는 눈을 살벌하게 뜨곤 포슬로니의 복부를 걷어찼다.
“힉, 히익……!”
포슬로니가 일어나서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뒤편으로 나타난 요슈아에게 가로막혔기 때문이었다.
요슈아는 냉혹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도망칠 거라면 차라리 호수에 뛰어드는 쪽이 나을 텐데.”
우리가 널 놓칠 리 없잖아?
미처 하지 않은 말이 들린 것만 같다.
그렇게 서로 다른 쌍둥이는 나를 보곤 엄청 상냥한 얼굴을 했다.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다디단 시선이었다.
발자크가 팔을 붕붕 휘두르며 내게 말했다.
“에릴, 잠깐만 숫자 10까지 세고 있어.”
어쩌지? 살려 줄까?
흐음, 신음하며 고민하던 난 이내 결론을 내렸다.
‘나는 도망칠 기회를 줬어.’
그러니까 할 만큼 다 했지, 뭐.
나는 천천히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하나, 둘, 셋…….”
“악! 아아악!”
퍽! 퍼억─!
“잘못, 잘못했어요!”
끄아아악!
돼지 멱따는 소리가 아름다운 호숫가에 메아리쳤다.
* * *
포슬로니를 곤죽으로 만들고도 부족했는지 발자크는 길길이 날뛰며 분노했다.
“칼데레의 아들 따위가 감히 아스트라의 직계에게 그따위 말을 해? 그딴 수작을 걸어? 돌아버린 거 아냐?”
요슈아가 차분히 발자크의 말을 부정했다.
“그것보다는 공포가 욕망을 못 이긴 거지.”
“엥? 무슨 뜻이야?”
요슈아는 자신의 모자란 형제를 한심하게 보며 설명해주었다.
“몬스터는 잘만 이용하면 사람은 상대도 안 돼. 사실상 이제 공격계 최강 가호는 에릴로트나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주제 파악 못 하면서도 일단 들이대 본 거야.”
요슈아가 섬뜩하게 눈을 빛냈다.
“그것도 에릴로트를 깎아내리면서.”
“염병을…….”
쌍둥이가 살벌하게 포슬로니를 조질 계획을 세울 때, 나는 졸려서 눈을 끔뻑거렸다.
발자크가 아까의 살벌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다정하게 물었다.
“에릴, 졸려?”
“응. 오늘 일이 너무 많았어.”
“그대로 자면 추워. 내 옷 덮고 자.”
“아냐. 에릴은 내 옷을 덮고 잘 거야.”
발자크와 요슈아가 옥신각신하는 걸 보자 더 피곤한 기분이었다.
베티의 품 안에서 하품을 하며 잠이 들락 말락 하던 때.
통신석이 반짝거렸다.
누군지 확인했다.
‘헉.’
알렉시스와 연결되는 통신이었다.
그 순간 매서운 시선이 느껴졌다. 통신석을 들고 뒤를 보자 발자크가 매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요슈아의 눈빛도 발자크 못지않았다.
“누구야?”
“……콘라드.”
감 좋은 발자크가 눈을 번쩍 빛냈다.
“왜 이 시간에 연락을 해?”
“일이 있나 보지…….”
심장이 떨렸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통신석을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었다.
두 사람은 콘라드가 날 매우 귀여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 습격 사건 때, 옴팡 뒤집어쓸 뻔한 콘라드를 내가 구해줬다는 것을 말해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7년간 콘라드의 도움으로 여러 가지 이득을 얻었던 터라, 콘라드에게 연락이 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발자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듯 보였으나, 더 따지지 못했다.
‘어휴. 저 짐승 같은 감하고는…….’
어쩌면 짐승보다 더할지도 몰라.
나는 혀를 내두르며 조용히 통신석을 꽉 쥐었다.
* * *
청포도를 먹자느니, 포도를 먹자느니 귀찮게 하는 쌍둥이를 피곤하다는 핑계로 떼어 내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통신석을 연결하자 알렉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릴로트.]“응. 잘 지냈어?”
[그래. 너는?]“나야 뭐…….”
일은 많지만, 일단 아빠가 만들어준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배부르고 등 따시게 지내고 있었다.
알렉시스는 현재 그런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곳에서 지내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피곤해!’하고 투덜거리기엔 민망하기만 해서 난 말을 돌렸다.
“그보다 왜?”
[너, 몬스터가 필요하다고 했잖아.]“응.”
[자이언트 타란튤라를 발견했어. 보내줄게.]“와─!”
마물이라면 항상 반갑다!
근데 자이언트 타란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