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6)
이 3세는 악역입니다 56화.(56/390)
56화.
특별히 블리젠 아스트라와 내가 얽힌 일은 없다.
어쨌거나 같은 3세이기에 알긴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기본적인 정보뿐이다.
‘<이동>의 가호를 가졌다고 했지?’
지난번 성배가 내 저주를 풀어주고 모든 힘을 소진하여 폭발했을 때.
그때, 블리젠이 가호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옮겨주었다고 들었다.
‘내가 폭발을 일으킨 건 아니지만……. 좀 고맙긴 하지.’
그래서 나는 블리젠에게 약간 호감을 갖고 있었다.
‘제대로 대화한 적이 없어서 또 어떻게 바뀔지 몰라도.’
우리 남매의 뒤를 이어 들어온 직계 아이들이 놀랐다.
“어, 블리젠?”
“블리젠이 왜 나왔지?”
“블리젠까지 나올 일이야?”
“대체 무슨 시험이길래?”
사실 직계 아이들도 블리젠을 볼 일은 별로 없다.
블리젠은 16살.
이제는 종종 외부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 탓에 시험에도 안 나오는 경우가 빈번했다.
아니, 시험에 참여할 필요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다.
블리젠은 이미 할아버지와 가신들에게 3세 서열권을 넘어섰다고 평가받았다.
‘그런 블리젠이 여기에 왜 왔지?’
이번 연평가가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이미 판단이 끝난 블리젠을 다시 불러올 정도로?
이번 연평가에서 대체 뭘 하길래?
내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도중.
드뷔시 자작이 신관 홀로 들어왔다.
3세들의 얼굴을 훑던 드뷔시 자작이 나를 보자 살짝 웃었다.
그리고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가서 연평가에 관해 설명했다.
“이번 연평가 시험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드뷔시 자작의 말에 아이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웅성거림이 잦아든 뒤에 드뷔시 자작이 시험 종목을 말했다.
“시험 종목은 바로, 귀빈 접대입니다.”
귀빈 접대?
평소와 다른 형식이라고 했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런 애매한 종목이 연평가로 나온 적은 없는데.’
3세들이 크게 술렁였다.
드뷔시 자작은 아이들의 반응을 예상했던 것처럼 픽 웃었다.
“귀빈을 접대하며 가장 후한 평가를 받는 쪽이 1등입니다.”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1등 외에 나머지는 순위를 어떻게 정하나요?”
“나머지 순위는 교수들이 평가할 것입니다.”
접대라고는 해도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있다는 뜻이다.
귀빈 한두 명을 매수하는 것으로는 좋은 순위를 받을 수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귀빈을 접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고 접대 계획, 계획의 실현율, 귀빈에게 산 호감도 등을 꼼꼼히 따져서 순위를 결정할 것입니다.”
한 명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 귀빈이 누구입니까?”
드뷔시 자작이, 짓궂게 씨익 웃었다.
“그걸 알아내는 것부터가 시험의 시작입니다.”
‘자작도 참 애들 괴롭히기 좋아해.’
물론 괴롭힘이 아니라 평가지만.
아이들은 벌써 골이 아프다는 듯 탄식했다.
드뷔시 자작이 그런 아이들을 향해 인자한 얼굴을 했다.
“이번 귀빈 접대는 단지 평가에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
아스트라 3세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건이라니.
더욱 귀빈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후 자잘한 설명을 한 뒤, 드뷔시 자작과 교수들이 홀을 나갔다.
어른들이 나가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귀빈의 정체를 추측하는 의견들이 난무했다.
“일단 귀족이겠지. 아니면 황족.”
“당연한 얘기를 왜 해? 설마 평민을 공작성에 들이겠어?”
“의외성을 노릴 수도 있지!”
다른 애들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몇몇이 슬그머니 홀을 나섰다.
‘나도 빨리……!’
이번엔 정보를 빨리 습득하는 쪽이 우세하다.
나는 얼른 홀을 나가서, 본성의 청소 용구를 모아두는 창고로 갔다.
어릴 때 콘라드에게 도움받았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때를 계기로, 일이 있을 때마다 콘라드와 여기서 모임을 하게 되었다.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창고 안에는 이미 콘라드가 와 있었다.
나는 콘라드에게 물었다.
“귀빈이 누구야?”
콘라드는 할아버지의 부관이니, 이미 귀빈의 정체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콘라드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외부 초청객이 누군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그럴 수가 있어?”
콘라드가 이런 중요한 일을 모르는 게 말이 되나?
드뷔시 자작이 말해준 일정에 따르면, 귀빈은 고작 나흘 뒤에 공작성에 도착한다.
나흘 뒤에 올 귀빈을 제대로 접대하려면 부관들에게 알리는 게 필수적일 텐데.
할아버지의 성격상 아무리 3세들에게 중요한 연평가라 해도, 귀빈 접대를 아이들에게만 맡기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흐음…….’
골똘히 고민하던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콘라드를 쳐다보았다.
“혹시 말야. 호옥시!”
“예.”
“장원의 아이들을 초대해놓고 아스트라의 진정한 귀빈은 이 자라나는 새싹들이다! 라거나 하는…….”
콘라드가 정색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절대요.”
“맞아. 그렇겠지.”
할아버지 성격을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였다.
어휴.
이 세계에서 그런 청량 따뜻 애니메이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내 말을 들은 콘라드의 눈도 가늘어졌다.
“아가씨, 혹시 말입니다. 호옥시.”
“응.”
“아스트라의 혈족들을 모아두고 진정한 귀빈은 너희들이다! 라는 전개라거나…….”
“그럴 리 없지. 절대.”
“네, 그렇겠죠.”
내가 단칼에 자르자 콘라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말해본 것일 뿐, 정말 그러리라고 기대한 건 아니다.
‘그런 말랑 달콤 가족물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면, 일단 마왕 정도는 강림해줘야지.’
우리 할아버지라면 마왕을 무찌른 뒤에도, 그런 말랑 달콤 감동 장면을 찍지 않겠지만.
‘그럼 대체 귀빈이 누구야?’
내가 한숨을 쉬자 콘라드가 미간 좁혔다.
“하도 상황이 말이 안 되니 이상한 생각까지 드는군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2주 정도 남았다면 모를까, 이제 고작 나흘 남았는데 부관이 몰라?
말도 안 될 정도로 철저한 보안이다.
“그래도 귀빈 접대 준비는 하고 있지?”
“예.”
“특이사항 있으면 알려줘.”
알레르기 목록이라던가, 특별히 선호하는 찻잎 취향이라던가.
사소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런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특징을 만든다.
귀족들의 세심한 취향을 파악하면 인물을 특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콘라드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복도 맞은편에서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머리칼이 보였다.
블리젠이었다.
“안녕, 에릴로트.”
블리젠이 먼저 내게 웃으며 인사했다.
금발에 붉은 눈.
아빠와 같은 금발에 붉은 눈이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안녕, 블리젠.”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사촌 오라버니이지만, 그래도 7년이나 이 성에서 함께 있던 만큼 익숙했다.
그렇게 밝게 인사하고서 지나치려는데.
“서쪽 정원의 장미 말이야.”
블리젠이 말을 걸었다.
딱 나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내가 돌아보자 블리젠이 미소 지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전과는 좀 다르더라.”
“……?”
싱긋.
블리젠이 뜻 모를 미소를 짓고 떠나던 그 순간.
“에릴?”
“에릴로트.”
쌍둥이가 다가왔다.
발자크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블리젠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뭐야, 저 토 나오는 미소는.”
“잘생긴 미소인데?”
내가 말하자, 쌍둥이가 홱! 고개를 돌리고 날 쳐다봤다.
“뭐?”
“뭐라고?”
그러곤 하늘에 해가 둘이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에릴, 잘생겼다는 건 나 같은 걸 말하는 거야.”
“아니, 나지.”
“음? 사람 취향은 다 다른걸.”
내 말에 발자크가 왈칵 인상을 썼다.
“그럼 넌 누가 제일 잘생겼는데!”
“나는…….”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두 사람이 마치 ‘잡히면 죽인다’하는 표정이라서.
“으응, 발자크랑 요슈아가 최고로 잘생겼지.”
대답하자 두 사람의 표정이 일시에 밝아졌다. 그러나 곧 아닌 척 표정을 바꿨다.
‘다 봤는데.’
발자크가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참나, 벌써 열 살인데 아직까지 내가 최고인 줄 알면 어떡해. ……근데 어디가 마음에 드는데?”
“기쁘다, 에릴로트. ……그런데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들까?”
난 피곤해져서 흐린 눈이 되었다.
“나, 조사해야 하니까 이따 봐.”
“그래! 우린 잘생겼으니까!”
발자크와 요슈아가 활짝 웃고 날 배웅해줬다.
나는 얼른 복도를 걸으며, 블리젠의 말을 떠올렸다.
‘서쪽 정원의 장미가 전과 달라졌다고?’
뭐지? 서쪽 정원 장미에 뭔가 다른 뜻이 있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블리젠이 이런 말을 해주는 게 의아했다.
우리가 친한 편도 아닌 데다가, 그는 남에게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확인은 해보자.’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데,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는 다리는 확인이 필수다.
마침 가는 길에 서쪽 출구가 있어서 정원에 들렀다.
블리젠이 말한 장미를 보는데.
고개가 갸우뚱 옆으로 기울어졌다.
“장미가 달라지긴 뭐가 달라져?”
똑같은 빨간 장미다.
이전과 똑같이 예쁜.
멀리서 봐서 그런가 싶어서 다가가서도 관찰해봤지만, 별로 다른 점은 못 느끼겠다.
‘그래도 또 몰라.’
내가 모른다고 남들도 모르리라는 법은 없다.
나는 슬쩍 정원사에게 물었다.
“혹시 장미 말이야. 뭔가 바뀌었어? 더 예쁜 것 같은데.”
“엇, 아가씨.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정원사가 깜짝 놀라며 모자를 벗고 공손히 설명했다.
“드뷔시 자작님의 명이었습니다.”
‘드뷔시 자작?’
드뷔시 자작의 명이라는 말에서 촉이 왔다.
공작의 부관인 콘라드는 모르는 드뷔시 자작의 명령?
‘분명 시험과 관계있어.’
갑자기 장미를 바꾸라고 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못 채게 바꿀 이유가.
‘지금 시기에 그럴 이유는 딱 하나뿐이지.’
나는 확신을 하고 말했다.
“장미 품종을 바꾼 거지?”
“이야, 어떻게 아셨습니까? 품종까지는 전문 지식이 없으면 알아보기 힘든데요.”
“그냥 예전보다 좀 더 예쁜 것 같아서. 바뀐 품종이 뭐야?”
“전의 장미는 브라운 벨벳이었고, 지금 장미는 테레시카 품종입니다.”
“그렇구나. 고마워.”
브라운 벨벳과 테레시카.
무슨 차이일까.
* * *
데이몬드 관할령.
공작성에서 관할령으로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식물도감부터 찾았다.
얇은 도감들은 품종까지 나와 있지 않아서 낑낑, 높은 곳에 꽂혀 있는 엄청 두꺼운 도감을 꺼냈다.
쿠웅!
묵직한 무게의 책은 망치가 따로 필요 없을 지경이다.
나는 두꺼운 식물도감을 펼쳐놓고 품종을 찾았다.
‘테레시카…… 테레시카가…….’
옳지. 찾았다!
<테레시카>
*장미목 장미과*
알리기오사 왕국 남반구 원산의 원예종.
초여름에 피어나 가을 초입에 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색에 가까워지는 것이 특징.
초여름엔 독성이 있으므로 유의…….
‘알리기오사 왕국?’
다른 내용보다 원산지인 알리기오사 왕국의 이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알리기오사 왕국!’
나는 그대로 아빠에게 달려갔다.
“아빠.”
아빠는 하던 일을 모두 제치고 나를 맞았다.
“그래.”
나는 냉큼 궁금한 걸 물어봤다.
“아스트라가 알리기오사 왕국과 교류가 있나요?”
“글쎄. 하지만 교류를 시작할 수는 있지.”
“왜요?”
“알리기오사는 백수정의 최대 산지니까.”
‘오호라, 백수정!’
내 눈이 반짝였다.
백수정이라면 그거다.
‘가호석의 원료.’
가호석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1. 가호를 가진 자가 죽으면 가호 결정이 생긴다.
이 결정을 백수정을 통해 개량한 걸 가호석이라고 부른다.
2. 가호를 추출하는 능력을 사용해서 백수정에 가호를 담으면 가호석이 된다.
‘어쨌든 둘 다 백수정이 필요하다는 거지.’
백수정이 없으면 절대로 가호석은 만들 수 없다.
그러니까 하나에 천문학적 단위인 것이고.
‘그렇지만 걸리는 게 있어.’
나는 골똘히 고민하며 물었다.
“알리기오사 같은 거대한 왕국에서 손님이 온다면 아스트라가 이렇게 조용하진 않겠지요?”
“그렇겠지. 아스트라에 오는 것도 아닐 테지만.”
아빠의 말이 맞다.
‘그래. 알리기오사에서 귀빈이 온다면 아스트라가 아니라 황도로 갈 거야.’
그렇지만.
“서쪽 정원의 장미 말이야.”
“전과는 좀 다르더라.”
블리젠이 해준 말도 그렇고 장미꽃의 품종이 바뀐 것도 걸렸다.
‘정황상 말이 안 되는데, 이 꽃이 걸린단 말이야.’
내가 고민하는 사이 아빠가 내 손을 잡아서 자기 손에 대보았다.
이젠 세 살 때보다 많이 커졌는데도 아빠의 커다란 손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
“여전히 작구나.”
“더 자랄 거예요.”
그때, 뒤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에릴로트님…….”
아빠가 일하지 않자 부관들이 울상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가여운 탈모 아저씨들.’
스트레스성 탈모가 온 아저씨들을 보고 난 짧게 묵념했다.
그러고 아빠를 힐끔 쳐다봤다.
“아빠, 저는 아빠가 일을 열심히 할 때 엄청 멋져요.”
“……그래?”
“응. 그러니까 나는 꼭 일 열심히 하는 아빠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부관들을 쳐다봐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치? 우리 아빠는 일을 아주 열심히 하지?”
움찔.
아빠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리고 부관들이 산처럼 쌓아온 서류를 힐끗 쳐다본다.
“……급한 놈부터 와 봐.”
“제가! 플로란도 왕국에서 지금─!”
“국경선에 전투가 발발했는데 그쪽에서 우리 국민에게─”
“흉년이라 세율을 줄여달라는 연락이─”
부관 아저씨들은 앞다퉈 아빠에게 몰려들었다.
아빠는 아주 지긋지긋한 표정을 짓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워커홀릭의 눈빛으로 변했다.
아빠 키우기 7년 차.
이쯤이야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부관 아저씨들에게 파이팅! 손을 흔들어주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일하는 동안, 난 소파에 몸을 묻고 앉아 있었다.
풀썩!
발자크가 옆으로 와서 엎어졌다.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