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7)
이 3세는 악역입니다 57화.(57/390)
57화.
발자크가 한 손으로 내 양 뺨을 꾹꾹 눌러댔다.
딱딱한 손끝이 말랑한 뺨을 누르자 또잉또잉 볼살이 흔들렸다.
“하히마. (하지마.)”
“위로 좀 받고 가자.”
불쌍한 말을 하더니, 내 볼을 찹쌀떡 주무르듯이 주물러댔다.
‘위로?’
“애? (왜?)”
발자크가 고개를 들고 울분에 차서 말했다.
“웬 미친놈들이 항구에서 난리를 쳐서 난 그쪽으로 차출됐단 말이야. 시험 관련 사항을 조사할 시간도 없어!”
그러자 요슈아가 내 옆에 앉으며 핀잔을 줬다.
“어차피 넌 조사를 해봤자 소용없을 테니까 얌전히 다녀오기나 해.”
그렇긴 하지.
발자크는 머리를 쓰는 쪽엔 영 재능이 없다.
“으헤 조헸어. (그게 좋겠어.)”
그러자 발자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어디 형님한테. 아, 에릴, 너한테 하는 소리는 아니야.”
“헛소리하고 있네. 아. 에릴로트, 네게 한 소리는 아니야.”
요슈아는 아직도 내 뺨에 붙어있는 발자크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곤 쓰레기 버리듯 옆으로 휙 내던졌다.
발자크가 팔짱을 꼈다.
“건방지다, 아우야.”
“1분 차이 가지고 그렇게 재는데, 10분 일찍 태어났으면 벌써 다 늙어서 관짝에 누워있겠군, 형님.”
어휴.
얘들을 보고 있으면 쌍둥이는 사이가 좋다는 말이 과연 진짠가 싶다.
아버지와 숙부는 사이가 좋았다는데 이 둘은 왜 이러지?
‘짝짜꿍이 맞을 땐 엄청나게 잘 맞긴 하지만.’
나는 양팔을 파닥파닥해서 두 사람의 시선을 떼어놨다.
“또 싸워. 또.”
“얘가 1분이나 늦게 태어난 주제에 시비를 걸잖아.”
“1분이나 먼저 태어난 주제에 멍청한 소리를 하길래.”
“발자크. 요슈아.”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름을 부르자 두 사람이 쳇, 하며 고개를 돌렸다.
발자크가 다시 나한테 달라붙어서 내 뺨을 콕콕 찔렀다.
“요슈아. 힐링 중인데 건드리지 마라. 가뜩이나 일 많아서 죽겠는데.”
“일이 많아?”
난 뺨을 내준 채 물었다.
발자크와 요슈아는 나이가 꽤 차서 이제 혈족 교육뿐만이 아니라, 성의 일을 돕고 있다.
두 사람은 경비대 소속인데, 요슈아보다 발자크 쪽이 자주 차출되는 모양이었다.
요슈아의 가호인 <압축>은 광범위한 기술이니, 발자크 쪽이 더 ‘경비’ 쪽엔 맞을 거다.
내 물음에 발자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험은 개떡 같지, 조부님의 기분이 안 좋아서 경비대 분위기는 최악이지, 항구에 나타난 놈들은 닻에 국기도 안 달았지.”
그러다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어, 이거 설마 보고서 내가 써야 하는 건가?”
발자크가 제발 아니라고 해달라는 표정으로 나와 요슈아를 바라보았다.
요슈아는 아주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절대 대신 써줄 것 같지 않다.
발자크가 형 자리를 넘겨준다면 모를까.
하지만 난 다른 말에 집중했다.
‘국기를 안 단 배?’
또 하나의 힌트를 찾았다.
알리기오사 왕국을 원산지로 둔 테레시카 장미.
국기를 안 달고 나타난 배.
기분이 최악인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기분이 최악인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미에 백부가 중앙탑에 들어가지 못한 이후로 내내 나쁘니까!’
슬라임 같은 내 뺨을 양껏 가지고 놀던 발자크가 만족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찢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팔다리를 유연하게 쭉쭉 펴는 게 수인화 가호를 지닌 로레이나보다 훨씬 더 맹수처럼 보였다.
야성적인 붉은 머리칼은 꼭 사자 갈기 같았다.
“성질나는데 그 배의 놈들이나 꼬투리 잡아서 죽여버려야지.”
뭐?
나는 얼른 발자크의 옷을 붙잡았다.
“안 돼!”
국가 간 분쟁은 절대 안 된다!
* * *
나흘 후.
귀빈의 행렬이 아스트라 성으로 도착했다.
아스트라의 직계들은 성에 모여 귀빈을 맞이했다.
3세 아이들의 얼굴은 모두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제국의 귀족, 아니면 황족.
그들이 예상했던 귀빈과 전혀 다른 귀빈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중앙에서 걸어 나왔다.
발걸음 소리도 묵직한 것 같은, 무거운 존재감.
할아버지는 오늘따라 더 빈틈없이 완벽한 공작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귀빈 무리의 중앙에 선 남자에게 다가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벨레인 전하.”
“환대에 감사하오. 아스트라 공작.”
벨레인 전하라 불린 남자는 제국인과는 약간 다른 생김새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모자가 아니라 터번을 쓴 데다가 매끄러운 실크 옷 위로 어깨 띠를 메고 있다.
게다가 선이 굵은 잘생긴 얼굴은 제국의 미남형과는 많이 다르다.
잘 그을린 구릿빛 피부.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
장신의 키.
아빠와 비슷한 연령대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이 남자의 풀네임은 벨레인 알리기오사.
‘알리기오사를 물려 받을 1왕자.’
할아버지가 인사했으니 이젠 아빠의 차례였다.
황도에 있는 그리미에 백부를 제외하면 제일 큰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오늘따라 정말 완벽하게 잘생겼다.
햇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머리칼.
루비처럼 붉은 눈.
그 안에 독을 품은 것 같은 위험한 분위기.
시선이 안 가려야 안 갈 수 없었다.
‘좋아. 다들 쳐다보고 있다.’
첫 만남에선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아빠의 이 빛나는 외모가 남기는 인상은 전동 드릴 급이다.
보고 있는 내가 다 뿌듯했다.
아빠가 한 걸음 앞에 나서며 가슴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가볍게 숙였다.
“알리기오사의 귀인을 뵙습니다.”
“귀인을 뵙습니다.”
“귀인을 뵙습니다.”
“귀인을 뵙습니다.”
아빠의 뒤를 따라 2세, 3세들이 예를 표했다.
벨레인이 하하, 사람 좋게 웃었다.
눈썹도 짙고 인상이 진한데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 유명한 아스트라 일족을 내 눈으로 보니 신기하군. 자, 아비노. 너도 인사드려야지.”
벨레인이 한 소년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가 놓아주었다.
소년이 예를 차려 인사했다.
“아비노 알리기오사. 현왕 폐하의 왕손이오.”
‘아, 쟤가 아비노구나.’
아비노 알리기오사는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반듯한 이마 위로 약간 곱슬기 있는 검은 머리칼이 찰랑였다.
구릿빛 피부며, 눈이 아버지를 똑 닮았다.
그러나 아비노는 자기 아버지보다 훨씬 유명한 애였다.
‘행방불명되었다가 되찾은 왕손이니까.’
아비노는 내전 중에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작년 겨울에야 겨우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전 때의 충격이 큰지 기억장애가 생겨서 내전 당시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1왕자의 아들이 행방불명 되다니.
이유를 알았다면 대대적인 청문과 책임 소재를 묻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비노의 기억장애 때문에 흐지부지되고 말았지.’
어디서, 어떻게,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니까.
납치된 건지, 스스로 궁을 나간 건지조차도 몰랐다.
아비노의 최측근 궁인들만 갈려 나간 모양이었다.
벨레인은 험한 일을 겪은 외아들을 안쓰러워했다.
그래서 아들을 찾고 난 후엔 그 애에게 뭐든 다 해준다고 한다.
‘항해에 데리고 온 것도 그런 이유겠지.’
가장 안전한 자신의 옆에서 아들에게 콧바람을 쐬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도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아들 사랑이 지극하구나.’
아비노를 바라보는 벨레인의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꼭 우리 아빠처럼.
‘미남들은 자식 사랑이 지극한가?’
벨레인이 하하 웃으며 아스트라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항해 중에 표류하고 있었는데 배가 우연히 아스트라까지 흘러들었지 뭡니까. 아스트라 공작, 도와줘서 고맙소.”
나는 영혼 없이 웃었다.
‘응, 개뻥인 거 너무 티 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세상에 그 어떤 표류자가 표류하는 중에 국기도 안 달겠는가?
‘남의 나라 영해에 들어가서 신원불명 배라고 사살당하면 어쩌려고?’
나는 슬쩍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요즘 내내 굳어 있던 표정이 아주 쪼오오끔 좋아 보였다.
할아버지의 기분이 나아진 건 당연했다.
‘우리 할아버지지만 진짜 무시무시하다니까.’
알리기오사의 1왕자 벨레인을 먼 대륙에서 이쪽으로 데려온 건 할아버지일 것이다.
백 퍼센트. 아니, 천 퍼센트 할아버지다.
‘벨레인을 통해 황제를 압박하려는 거지.’
딱 각이 나왔다.
황제가 감히 아스트라를 견제하기 위해 그리미에 백부한테 외무 대사 자리를 줬다.
아스트라의 직계, 그것도 장남에게 외무 대사?
할아버지가 바로 원로들을 소집하고 엄청나게 화를 낸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번 일은 중앙탑 자리를 안 준 것에 대한 항의 조치다.
‘황제를 압박하기 위해 알리기오사라는 힘 있는 왕국의 1왕자를 데려오는 것.’
아스트라의 줄이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세상에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보여주려는 거겠지.
아스트라 공작이 원하는 일을 관철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그 김에 겸사겸사 3세들의 역량도 평가하고.’
나 말고 할아버지의 의중을 파악한 사람들이 제법 있다.
직계들 중에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실무를 보는 가신과 부관들이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은 할아버지의 스케일에 감탄하면서도 살짝 질린 기색이었다.
“자, 그럼 안으로 드시지요.”
할아버지가 악당 같지 않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아스트라 사람들과 알리기오사 사람들이 다 함께 이동하고 있는데.
막 관문 안으로 들어간 순간.
벨레인 왕자의 아들인 아비노가 작지만, 주변에서 다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말했다.
“아버님. 저는 가서 놀고 싶어요.”
이제부터 어려운 얘기를 할 테니 딱히 끼고 싶지 않은가 보다.
‘하긴. 내 또래로 생각하면 열 살 언저리니까.’
“음…….”
아들에게 약한 벨레인이 고민하며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왕자가 할아버지의 허락을 구하는 거야?’
나는 깜짝 놀랐다.
이건 벨레인 1왕자와 할아버지의 관계에서 할아버지가 주도권을 꽉 잡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우리 제국 사람도 아니고 막강한 다른 왕국의 1왕자인데.
‘역시 할아버지네.’
새삼 할아버지가 더 커 보였다.
우리 아빠를 내가 팍팍 키워서 꼭 할아버지의 뒤를 잇게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벨레인이 민망한 듯 웃으며 물었다.
“괜찮겠소?”
“예.”
“고맙소. 내가 팔불출이라 애가 해달라는 게 있으면 거절을 잘 못 하겠기에.”
“이해합니다.”
‘으응?’
왠지 할아버지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떨어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너희들이 왕손을 모셔 가거라.”
할아버지가 직계 3세들한테 아비노를 정원에 데려다주라고 했다.
“왕손님. 이쪽으로 오셔요.”
“제가 정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번 연평가 시험 주제는 바로 귀빈 접대.
누가 봐도 시험에 나오는 귀빈이 알리기오사의 벨레인 왕자와 아비노 왕손인 게 분명한 상황.
말이 데려다주라는 거지, 제대로 놀아주고 접대하라는 말이다.
‘하긴. 애들 있는 데서 정치 얘기를 하긴 좀 그렇지. 나는 듣고 싶지만.’
그래도 콘라드가 듣고 이야기해 줄 테니 걱정 없었다.
3세들은 아비노 왕손을 데리고 서쪽 정원으로 갔다.
바로, 새로 테레시카 장미를 심은 곳으로.
“왕손님. 그 옷은 무엇으로 만든 건가요? 제국에서 입는 옷과는 질감이 달라 보이네요. 굉장히 특별해 보여요.”
“옷도 특별하지만, 왕손님께서 특별하시니 더 그래 보이는 것 아닐까요?”
“왕손님, 터번의 무늬가 정말 훌륭하네요. 저는…….”
“저도……!”
3세들은 다 아비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난리도 아니었다.
‘그야 연평가가 아비노의 말 한마디로 결정될 테니까.’
그 아버지인 벨레인이 꼼짝도 못하는 걸 보면, 키는 아비노가 쥐고 있는 것이었다.
“음…….”
하지만 아비노는 시큰둥했다.
그래도 3세들은 피곤해서 어쩌냐며 난리였지만.
“역시 멀리서 배를 타고 오시느라 고생이 너무 많으셨겠죠.”
“그렇게 먼 바다를 지나오시다니! 정말 용감하세요. 혹시 오다가 바다 몬스터를 만나셨나요? 알리기오사의 기사들이 단칼에 베어 버렸겠지요?”
“여기, 뭐 하고 있어. 왕손께서 드실 것 좀 가져와!”
‘멍멍이 같네.’
평소에도 3세들은 멍멍이 같았다.
아주 사납고, 수틀리면 왈왈 사납게 짖어대는 치와와.
그러나 지금은 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살갑게 꼬리를 붕붕 돌려대는 시골 댕댕이 같다.
‘그럴 만도 해. 마음의 여유가 없을 테니까.’
나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오는 귀빈이 알리기오사의 왕족이라는 걸 알아낸 다른 3세들이 있을 리 없다.
나도 블리젠이 힌트를 주지 않았더라면 감을 잡는 데 오래 걸렸을 테니까.
발자크가 경비대를 하며 국기를 달지 않은 배가 들어왔다고 말했으니 어떻게든 눈치채긴 했을 거다.
그래도 블리젠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적기에 알기 힘들었을 터.
‘내가 그 정도인데 얘네들은 어떻겠어. 아무것도 준비 못 했겠지.’
기껏해야 제국 내의 고위 귀족이나 황족이라고 상정하고 준비했을 것이다.
알리기오사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료, 향, 음식 등등.
조사하고 준비한 게 하나도 없으니 초조하겠지.
‘그러니 우선 눈앞에 있는 아비노 왕손을 이용하려는 거야.’
아직 어려 보이기도 하니까 어떻게든 마음에 들어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그렇지만.
아비노는 아스트라 치와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지루한 표정이었다.
“하암…….”
내적 하품을 하는 것도 보였고.
“하아…….”
애들이 무슨 말을 붙여도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왕손님! 왕손님! 여기 따뜻한 차와 시원한 냉차를 종류별로 가져왔습니다. 어떤 차가 가장 좋으실까요?”
“후우…….”
“차, 차가 싫으시다면 주스라도…! 바로 과일을 착즙 해오라 하겠습니다!”
조프리의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붕붕 돌아가는 게 보일 정도였다.
멍청하기는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조프리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아비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좋은 구경거리다.’
대리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으로 지켜보는 와중에 조프리의 누나, 로레이나가 나섰다.
‘로레이나는 조프리보다 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