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8)
이 3세는 악역입니다 58화.(58/390)
58화.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데.
로레이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아비노에게 말을 붙였다.
“왕손님. 혹시 따로 하고 싶으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별로.”
로레이나의 머리 위로 ‘그럼 왜 놀겠다고 나왔어?’라는 말풍선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재차 물었다.
“평소에 재밌으셨다 싶은 건 없으신지요?”
“있었지만…… 여긴 없네.”
아비노는 3세들이 하인들을 닦달하여 가져온 장난감과 게임들을 둘러보고 고개를 저었다.
“검은 어떠신가요? 보검이 있거든요.”
“별로.”
“활은 어떠세요? 마법으로 시위를 연하게 만들어서 많이 쏴도 아프지 않은 활이…….”
“별로.”
“승마는 좋아하시나요? 제게 굉장한 서러브레드가…….”
“별로.”
“광대를 불러서 공연을…….”
“별로.”
“그럼 책이라도…….”
“별로.”
벌써 5연패.
나는 웃음을 삼켰다.
로레이나의 뒤통수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아비노가 귀빈만 아니었다면 바로 야수로 변해서 앞발로 후려치고 싶은 기세였다.
로레이나가 바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바짝 올렸다.
“……이런. 왕손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싶은데, 정말 안타깝네요.”
그러곤 정말 안타깝다는 표정을 하면서 슬쩍 뒤로 물러났다.
‘다 싫다고 하니 방법이 없을 수밖에.’
“후우…….”
그 뒤로도 아비노의 앞에서 3세들이 각자 재롱을 떨어댔지만, 아비노는 시종일관 같은 표정이었다.
뚱―.
뭘 해도 시큰둥한 표정.
아니, 이제 보니 조금 우울하기까지 하다.
“…….”
“…….”
3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간식이 눈앞에 있어도 먹지 못하는 강아지들처럼 끙끙거리는 표정이다.
아비노를 어떻게든 즐겁게 해줘야 하는데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뭔 반응이 없으니 호스트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 바로 나를 위한 때지.’
몇 걸음 떨어져서 3세들과 아비노를 지켜보고 있던 내가 나섰다.
휘익─!
나는 목에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었다.
높고 맑은소리가 하늘에 퍼지고 난 뒤.
푸드덕! 푸드덕!
저 멀리서부터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들렸다.
상공에 나타난 것은 비행형의 마물.
마물은 빠른 속도로 우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날갯짓 한 번에 훅, 가까워지는 거리에 사람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마, 마물이 우리 쪽으로 날아온다─!”
하인이 외치며 기겁했다.
축 처져가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우왕좌왕해졌다.
어떤 의미로는 분위기 환기는 된 셈이다.
하인이나 고용인들은 자신이 모시는 3세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려 했고.
3세들은 아비노 왕손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큰소리를 쳤다.
“왕손님.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맞습니다. 아스트라 공작성 안에서 직계들과 함께 계신 데 두려운 게 뭐 있겠습니까?”
“저 마물은 금세 처리될 것입니다.”
큰 소리로 호언장담한 아이들이 눈을 굴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경비대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라는 눈빛이었다.
‘물론 무서울 건 없지. 그치만 금방 처리하면 곤란하거든?’
저 애는 내가 길들인 몬스터니까.
직계들의 반응을 보다가 로레이나를 보았다.
로레이나의 얼굴은 한껏 구겨져 있었다.
‘로레이나는 알아보네.’
하긴, 몬스터가 나타나자마자 도망쳐서 멀리 있던 다른 애들과 달리 바로 눈앞에서 봤으니까.
저 마물은 로레이나와 시합할 때 불렀던 바로 그 ‘라곤’이다.
로레이나 외에도 몇몇 사람들이 패닉 상태에서 빠져나와 안심하는 게 보였다.
내가 <마물 조련>이란 두 번째 가호를 발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것이다.
휘이이, 후우웅!
라곤이 우리가 있는 곳 위를 빙빙 돌며 활강하자 태풍이 오는 것처럼 큰바람이 일었다.
“엄마야!”
“악! 저, 저리 가!”
“안돼, 내 스카프!”
거센 바람을 일으키는 거대한 라곤.
아무리 아스트라의 직계라도 3세들은 아직 어리다.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는 게 당연하다.
소란스러운 아이들 사이로 내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곤. 이리로.”
이미 사람들 가까이에서 날던 라곤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쿠궁, 쿵!
보통 새보다 훨씬 육중한 무게로 발을 구르자 땅이 작게 울렸다.
라곤은 강철 까마귀라는 몬스터다.
날개의 윗면이 철처럼 딱딱하고, 부리 안에 이빨이 무수히 많이 난 비행형 마물.
겉보기엔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흉악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하지만 길들이면 이렇게 순한 존재가 따로 없었다.
뒤뚱뒤뚱.
정원에 내려선 라곤이 두 발로 걸어서 내게로 다가왔다.
“잘했어. 착해, 라곤.”
까아아악!
내가 라곤의 머리를 쓰다듬자 라곤이 약간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사람들이 질겁하며 귀를 막는 게 보였다.
깍깍! 까아악!
‘……지옥에서 올라온 까마귀가 낼 법한 소리긴 하네.’
그래도 길들인 나는 안다.
지금 라곤은 나한테 칭찬을 받아서 엄청 기분 좋은 상태야.
“쭈쭈쭈.”
라곤의 부리 밑을 긁어주자 라곤은 신이 나서 날개를 퍼덕거렸다.
으음.
바람이 너무 센데?
머리가 마구 흩날렸지만 그만큼 임팩트는 있었다.
“우, 우와─!”
바로 아비노에게서 반응이 온 것이다.
“대, 대단해!”
뭘 해도 심드렁하니 반쯤 감겨 있던 아비노의 눈이 동그래졌다.
원래도 큰 눈이 아까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붕붕.
아비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아이처럼 양팔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몬스터가 말을 듣잖아!”
그때, 리앙틴이 얼른 말을 받았다.
“에릴로트의 두 번째 가호인 <마물 조련> 능력이랍니다.”
리앙틴의 목소리에서 우쭐거림이 묻어났다.
‘왜 네가 우쭐하는데?’
왠지 리앙틴의 표정이 나를 자랑하는 아빠의 표정과 닮아 보이는 것 같다.
소란스러웠던 정원은 내가 라곤을 귀여운 강아지 대하듯 길들이자, 나를 위한 무대로 탈바꿈되었다.
“여기, 포도 좀 가져다줄래?”
조마조마한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하인에게 말하자 하인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대답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하인이 은쟁반에 포도를 한가득 담아 가져왔다.
‘포도 하나씩 따주는 게 그림이 좋을 텐데, 그랬다간 간에 기별도 안 가겠네.’
보통 까마귀 크기면 모를까, 마물인 라곤에겐 포도 한 알은 너무 작다.
“자, 라곤! 상이야!”
휙!
포도를 송이째 높이 던지자 라곤이 폴짝 뛰어올랐다.
텁!
쿠웅!
포도송이를 척, 받아먹는 건 좋은데 점프한 것 때문에 땅이 울렸다.
사람들의 몸이 휘청였다.
‘쇼는 요란할수록 좋지.’
의도치 않은 화려한 효과다.
라곤은 궁둥이를 뒤뚱뒤뚱 흔들며 신이 났다.
‘포도를 제일 좋아하니까.’
처음 포도를 주었을 땐 집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
“라곤, 이게 포도야.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지?”
“깍깍.”
“자. 옳지, 잘 먹는구나.”
“깍!”
“하나 더? 그래.”
“깍깍!”
“하나 더……? 으응.”
“깍깍!”
“하나…… 더? 그, 그래.”
“깍깍!”
“또? 안 돼. 너무 많이 먹으면─”
“까으웩깍꽥! 깍꽥꽥꽤애애액─!!!”
“으아아아악! 아가씨, 관할성이 무너져요!”
“…….”
아찔한 추억이었다.
근처에서 아주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도 해보고 싶어!”
당연히, 아비노였다.
아비노의 눈이 전에 없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눈에서 광선을 쏠 수도 있을 것처럼!
나는 접대용 미소를 장착한 뒤 라곤에게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하인이 들고 있는 은쟁반에서 포도 한 송이를 집어 내밀었다.
아비노가 내게로 쪼르르 달려왔다.
어쩐지 등 뒤로 붕붕 돌아가는 꼬리가 보이는 것 같은데?
‘얘도 강아지 같네.’
아까는 시큰둥하고 도도한 고양이 같더니, 지금은 곱슬곱슬 까만 푸들 같다.
오늘은 강아지 구경을 하는 날인가 보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설명했다.
“포도를 여기서 던지셔야 해요. 가까이 가면 인간을 뼈 채로 씹어먹거든요.”
“응!”
응? 왜 더 좋아해?
어째 인간을 뼈 채 씹어 먹는다는 말에 더 흥분한 것 같다.
‘하긴. 이 나이대 남자애들이 무서운 걸 좋아하지?’
공룡이나 변신 로봇 같은 거.
크면 클수록, 흉악하면 흉악할수록 애들이 좋아한다.
좋아할 줄 알고 부른 거긴 하지만 예상보다 더 효과가 좋았다.
아비노는 아주 비장한 얼굴을 하고 손안에서 포도송이를 움직여 던지기 쉽게 고쳐 쥐었다.
‘투포환 경기에 라도 나가는 것 같아.’
엄청 진지했다.
포도를 쥐는 손 모양뿐만 아니라, 포도를 던지는 모션을 여러 번 반복하며 신중하게 시뮬레이션까지 했다.
‘포도도 많은데 그냥 던지지.’
심지어 라곤은 아비노가 포도를 던질 듯 말 듯 던지지 않으니까 애가 탄 지 발을 구르기까지 했다.
쿵, 쿵, 쿵, 쿵.
“그래. 이제 던질게!”
아비노가 발갛게 상기된 뺨을 하고 포도송이를 던졌다.
휘이익!
철퍽!
“풉!”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다행히 라곤의 날갯짓 소리에 묻혔다.
“아! 아깝다!”
사실 하나도 안 아쉬웠다.
라곤 근처에 닿지도 못했으니까.
그러나 아비노의 눈엔 간발에 차로 느껴졌는지 그는 아쉬움에 떨며 발을 굴렀다.
라곤도 마찬가지였다.
땅바닥에 떨어진 포도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던 라곤은, 아비노가 다시 포도송이를 쥐자 냉큼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진짜야!”
휙!
철퍽.
“아잇! 어디가 잘못됐지?”
울상을 한 아비노가 다시 포도송이를 던졌다.
휙!
철퍽!
세 번째까지 실패했을 때, 내가 나섰다.
스스로 이뤄내는 성취감도 중요하긴 하지만.
‘포도가 너무 아깝잖아.’
자고로 어른들은 쌀 한 톨이라도 귀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쌀 한 톨이 내 밥상에 올라올 때까지 농부들이 얼마나 땀을 흘리는지 아는가?
내 속에 있는 유혜민은 K-밥상머리 예절을 철저하게 숙지한 아이였다.
물론, 할머니한테 음식 아까운 줄 모르고 밥을 남긴다고 구박을 받아서 머릿속에 박힌 것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아비노의 옆으로 가서 물었다.
“제가 왕손님의 몸을 만져도 될까요?”
“음…… 그래!”
왕족은 자신의 사람 외의 타인에게 함부로 몸을 맡기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게다가 아비노는 행방불명이 되었던 적도 있으니 더 철저하게 가르쳤을 터.
그렇지만 아비노는 라곤에게 포도를 먹이고 싶은지 내게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려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아비노의 뒤로 가서 팔꿈치를 잡았다.
그리고 아비노의 팔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렇─게 팔을 움직이셔야 해요. 그래야 포물선을 그리면서 높이 올라가요.”
“이렇─게?”
“네. 그리고 처음부터 힘을 주시면 안 되고, 처음엔 그냥 하늘 위로 띄우는 것처럼, 손을 놓기 전에 힘을 세게 줘야 포도가 높이 떠요.”
“이렇, 이렇게?”
“네! 잘하고 계세요.”
내 칭찬에 아비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요령을 알았으니 이번엔 꼭 성공하겠다는 얼굴.
심드렁한 얼굴만 보다가 이런 의욕적인 얼굴을 보니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게 바로 할미의 마음인가.’
나는 흐뭇한 얼굴로 아비노를 응원했다.
“이번엔 성공하실 거예요. 물론 성공 못 하셔도 다른 포도를 던지면 돼요.”
“성공할 거야!”
아비노는 자못 비장한 얼굴을 하고 은쟁반에서 가장 큰 포도송이를 찾아서 손에 쥐었다.
그리고 몇 번, 내가 알려준 동작대로 팔을 움직이다가.
“왕손님! 파이팅!”
“이번엔 꼭!”
다른 3세들의 응원을 받으며 팔에 힘을 주어 포도송이를 던졌다.
휘이익―!
높이 솟지 않아 포물선도 그리지 못하고 툭, 떨어졌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 포도송이는 라곤의 머리 위보다 높이 솟아 올라갔다.
방향은 조금 틀렸지만, 그건 라곤이 해결해주었다.
바닥에 처참하게 떨어진 포도 유해만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던 라곤은 아주 재빠르게 움직여 아비노의 포도를 받았다.
텁!
이빨이 빼곡히 난 부리 안으로 크고 아름다운 포도송이가 안착했다.
아비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처럼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와, 와아─!”
얼굴만 보면 모든 활을 10점에 쏜 양궁 선수인 줄 알았다.
‘좋아할 줄 알았어.’
동물에게 먹이 주는 걸 싫어하는 아이는 별로 없거든.
‘그리고 우리 라곤은 강철 까마귀들 중에 제일 귀엽게 생겼으니까!’
비록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한지혁이,
“너 진짜 눈에 문제 있다니까.”
─라고 하지만.
귀여운 애를 귀엽다고 하는데 그게 뭐 잘못됐나?
남의 새끼보고 못 하는 말이 없다.
알에서 부화시켜서 손가락 두 마디만 할 때부터 키운 내 새끼한테.
‘정말 고생했지…….’
난 잠깐 아련해졌다.
강철 까마귀는 알을 부화시키기까지 반 년이 걸린다.
부화 조건도 까다로웠다.
너무 더워도 안 되고 추워도 안 되고, 습해도 안 되고 건조해도 안 되고…….
거기다 품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되어서 난 반 년간 거의 잠을 못 잔 거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수업도 들어야 했지.’
태어나고 나선 너무 작았다. 보통 어른 주먹만한 크기로 태어나는데, 라곤은 손가락 두 마디만 해서…….
“깍! 까아악─!”
그래, 그래.
널 이렇게까지 잘 키운 건 다 이엄마의 눈물 나는 노력 덕이란다.
그때, 다른 3세들의 환호를 받으며 성공을 만끽하던 아비노가 쪼르르 내게로 달려왔다.
“또 포도 줘도 돼?”
“물론이죠.”
아비노는 포도가 가득한 은쟁반을 바라보았다.
라곤은 신이 나서 궁둥이를 흔들고 있었다.
“깍! 깍깍!”
비록 멀리서 바라보는 3세들과 하인들의 얼굴은 좀 창백한 것 같지만.
내 눈엔 귀엽다. 귀엽고말고!
“그런데 저 쟁반에 있는 포도를 다 주었다간 못 날지도 모르겠네요.”
“으음. 아쉽네.”
“그래도 한두 번은 더 던지셔도 돼요.”
“그래. 그럼 또 뭘 할 수 있어?”
할 수 있는 거?
많지!
“많죠. 라곤의 등에 타고 날 수도 있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발자크와 요슈아가 외쳤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