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9)
이 3세는 악역입니다 59화.(59/390)
59화.
“등에 타는 건 안 된다고 했잖아, 에릴로트.”
쌍둥이의 목소리가 무시무시했다.
‘맨날 싸우면서 왜 이럴 때만 손발이 척척 맞지?’
발자크와 요슈아는 눈을 부릅뜨고 내게 압박했다.
난 어릴 때부터 높은 곳을 좋아했다. 당연히 라곤이 알을 까고 나오기 전부터, 등에 타는 것을 고대해왔다.
그렇지만!
위험해서 안 된다는 쌍둥이의 원성 때문에 라곤 등에 타 본 건 총 몇 번?
딱! 한 번!
딱 한 번 타봤다!
‘억울해!’
그것도 발자크가 심장마비 걸릴 것 같은 얼굴로 내려오라고 소리소리 질러대서 얼른 내려와야 했다.
내려오니 요슈아가 부들부들 떨며 꽉 안는 통에 다시 시도도 못 해 봤고.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도…….’
라곤의 둥지를 다 분해하더니, 통나무를 흔들면서 멀리 날려 보내려고 성화였다.
‘하지만 그건 내가 일곱 살 때의 일이고.’
나는 이제 열 살이잖아?
탈 수 있잖아?
발자크는 이제 엄청나게 흉포해진 킹갓울트라…… 가 아니고, 제너를 매일 타고 다닌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등에…… 탈 수 있다고……?”
쌍둥이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아비노가 황홀하게 중얼거렸다.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올 것만 같은 표정이다.
“일단 포도부터 더 던져주세요. 라곤이 기다려요.”
“그래! 나 이제 요령을 알 것 같아!”
크게 고개를 끄덕인 아비노가 포도송이를 잡고 라곤에게 던졌다.
텁!
텁!
요령을 알게 됐다는 게 거짓말이 아닌지 이제 아비노는 포도를 제법 잘 던졌다.
포도송이를 고르는 중에 내게 말을 붙이기도 했다.
“사실 나도 전에 성에서 독수리를 키웠는데 사라졌어.”
다른 3세들이 말을 붙이려고 하면 아까 같은 표정으로 대답도 안 해주더니, 나한테는 종알종알 말도 잘한다.
“와, 독수리요? 멋있었겠다.”
“응. 정말 멋있었어. 그래서 사라져서 너무 슬펐어.”
“어쩌다 사라졌는데요?”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은 거였다.
그런데 아비노의 반응이 약간 이상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이 초점을 잃고 흐려졌다.
“언제더라. 언제였지……?”
뭐라고 중얼거리던 아비노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머리를 붙잡았다.
“으으…….”
“전하!”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아비노의 하인이 헐레벌떡 쫓아왔다.
“으윽. 머리, 아파…….”
아비노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전하. 조금만 참으세요. 방에 가면 약이 있어요.”
나는 하인이 아비노를 데려가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약을 먹어?’
몸이 안 좋은 건가?
* * *
휴식을 취한 후 가진 만찬 자리.
아까 라곤이 무서워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던 3세들은 지금이라도 아비노에게 말을 붙이려 난리였다.
조프리가 엄청 성격 좋아 보이는 얼굴을 가장하고 말을 걸었다.
“왕손님. 음식은 입에 맞으시는지요? 요리사 솜씨가 아주 일품이랍니다. 여러 가지를 드셔보세요.”
조프리가 눈앞에서 엄청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렇지만…….
“이거 맛있대. 에릴로트.”
아비노는 오직 내게만 집중했다.
아까 머리가 아팠던 것은 쉬면서 나아졌나 보다.
“에릴로트.”
아비노는 거의 내 옆에 찰싹 붙을 기세로 몸을 기울이고 조잘조잘했다.
“라곤은 포도만 좋아해? 다른 과일은 안 좋아해? 고기는?”
“라곤은 가리는 게 없어요. 고기는 종류별로 다 먹고, 과일도 없어서 못 먹죠.”
나와 아비노를 보며 애가 탄 로레이나가 우리의 대화에 끼려고 안간힘을 썼다.
“왕손님께선 새를 좋아하시나요? 저도 예쁜 종달새를 키우는데―”
“에릴로트, 내가 더 키가 크면 라곤 등에 탈 수 있어?”
아비노는 이제 심드렁한 얼굴을 하는 것조차 귀찮은지 아예 말을 받아 주지 않았다.
로레이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게 보였다.
내 가호는 공격계 가호에게 안 된다며 무시하던 로레이나로서는 내게 밀리는 게 무척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아비노와 떠들었다.
“글쎄요. 등에 타는 건……. 키가 많이 크셔도 왕자님께서 허락을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
쌍둥이나 아빠의 반응으로 보아, 나는 키가 많이 커도 라곤의 등에 타기엔 요원할 것 같다.
“저 새대가리.”
“새꼬치를 만들어버릴…….”
“강철 까마귀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와라. 뭐? 100년?! 1년만 살라고 해!”
가족들의 반응을 떠올리고 있는데, 아비노가 말했다.
“아버님은 들어주실걸?”
정말?
내가 슬쩍 1왕자 벨레인을 보자 벨레인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벨레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아비노. 영애가 그리 마음에 드느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아비노가 득달같이 대답했다.
“네! 에릴로트를 왕국에 데려가고 싶어요! 라곤도요!”
휙! 휙! 휙!
‘무슨 목 돌리는 소리가…….’
나는 놀라서 쌍둥이와 아빠를 바라보았다.
홱! 바람 소리가 나도록 살벌하게 고개를 돌린 아빠와 쌍둥이가 흉흉한 눈빛으로 아비노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눈을 부릅떴다.
이거 귀빈 접대 자리거든요?
눈빛 안 죽여?
“커흠.”
할아버지가 헛기침해서 대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아예 화제를 바꿔 벨레인 왕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머무실 예정이십니까?”
“빨리 간다고 하면 섭섭하실 거면서 그러십니다.”
벨레인 왕자가 사람 좋게 웃더니 답했다.
“닷새 정도 생각 중입니다. 공작과 나 사이엔 할 얘기가 많으니까요.”
할아버지와 벨레인의 의미심장한 대화에 2세, 3세들의 눈이 도로록 도로록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지요. 여독도 푸시고 푹 쉬다 가셔야죠.”
“물론이죠.”
할아버지와 벨레인 왕자가 의뭉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오, 대단한 게 있나 본데?’
두 사람 사이에 아주 매력적이고 대단한 게 오갈 예정인가 보다.
‘나도 알려줘!’
궁금해 죽겠다.
역시 백수정 얘기겠지만, 관련돼서 어떤 얘기가 오갈지 궁금하다.
우리 쪽에 백수정이 얼마나 필요한지, 저쪽에선 얼마나 공급할 수 있는지.
‘특히 백수정 수급의 책임자가 누가 될지.’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2세들을 훑어봤다.
데콘스 숙부와 발데릭 숙부는 벌써부터 애가 닳은 얼굴이었다.
물론 구스타프 숙부, 헤르난 숙부, 파르망 고모부 등도 욕망으로 눈이 번쩍번쩍했다.
‘그냥 둘 줄 알고?’
백수정 수급의 공로는 우리 아빠한테 갈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아비노가 물었다.
“그래서, 내 키가 얼마나 더 크면 될까?”
아비노는 아버지의 행보가 궁금하지도 않은지 내게만 집중했다.
“음…… 그건요…….”
‘그건 나도 몰라! 나도 라곤을 한 번밖에 못 탔는걸!’
일단 대강 키는 크면 클수록 좋다고 말했다.
뭐, 크면 클수록 좋은 건 사실이니까.
만찬이 끝나고 난 뒤.
슬쩍 먼저 나오는 내 곁으로 아비노가 따라붙었다.
내가 마음에 든다는 게 빈말이 아니었나 보다.
“혹시, 길들인 마물 말이야. 라곤 말고도 더 있어?”
“네.”
내 대답에 아비노의 얼굴이 활짝 폈다.
“나한테 보여주면 안 돼? 응?”
아비노는 큰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으윽. 댕댕이같아.’
한번 아비노를 검은 푸들 같다고 생각하자 어릴 적에 키우고 싶었던 강아지가 생각나 버려서 곤란했다.
거절하기가 힘들다.
“기회가 되면…….”
말을 흐리는데 맞은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바로 알리기오사 왕실의 하인이었다.
하인이 다가와서 아비노에게 알렸다.
“왕자님, 약을 드실 시간입니다.”
“에이…….”
아까는 활짝 핀 꽃처럼 밝았던 아비노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어깨도 힘없이 추욱 처졌고.
한숨을 포옥 내쉰 아비노가 하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올라갈게.”
“예. 준비해놓겠습니다.”
그렇게 하인이 계단을 올라가자 아비노가 중얼거렸다.
“약 싫은데.”
보약이라도 먹나?
하긴, 나도 쓰러졌다 일어난 뒤로 아버지가 몸에 좋다는 것들을 잔뜩 구해와서 먹기 고역일 때가 많았다.
동병상련을 느끼며 물어봤다.
“무슨 약을 드시는데요?”
“난 두통이 너무 심해서 약을 맨날 챙겨 먹어야 해. 안 먹으면 꼭 다음날 아프거든.”
“아아.”
하긴.
아까 보니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는 게 심각해 보이긴 했다.
‘그런데…… 그건 옛날 일을 떠올려서 아픈 게 아니었나?’
“근데 약 먹는 것도 별로야. 몽롱하고, 멍해지고.”
아비노의 투덜거림에 나는 더 의아해졌다.
몽롱하고 멍해져?
‘그런 약이 있었던가? 보약이나 진통제가 아닌가?’
우울한 얘기를 하기 싫었는지 아비노가 화제를 바꿨다.
“에릴로트는 어디서 지내?”
“귀빈분들께서 계실 때엔 저희 모두 성에서 지내요.”
물론 귀빈이 올 때마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번엔 연 평가 시험 때문에 그렇지.
아비노는 기뻐했다.
“그럼 또 볼 수 있겠네?”
“네.”
“라곤도!”
“네.”
“다른 마물도!”
“…….”
이건 확답 못 해줘.
알리기오사 어른들 허락받아 와.
“그럼 나는 가볼게. 안녕.”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는지 아비노가 터덜터덜 숙소로 걸어 올라갔다.
그래도 최대한 늦게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복도를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하며 가는 게 보인다.
‘약 먹는 게 싫기는 해.’
나도 방으로 올라갔다.
이제 기숙 교육을 받지 않고 데이몬드 관할령에서 통학하고 있어서 내 전용 방은 없었다.
잘 땐 귀빈실에서 잤다.
내가 쓰는 방으로 돌아온 나는 쭉쭉 스트레칭하고 어깨를 툭툭 쳤다.
“아이고, 어깨야. 아이고, 허리야.”
분명 제조된 지 10년밖에 안 된 몸인데 왜 벌써 낡은 것 같냐.
이게 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래.
‘일하는 게 싫진 않지만.’
쭉쭉, 새천년 체조로 굳은 몸을 풀어준 뒤.
‘그럼 이제 오늘 치 변수는 없나 볼까?’
가호를 발동시켰다.
주인공이 달리아에서 발자크로, 다시 아빠로 바뀐 소설.
<아빠는 세계관 최고 미남>은 벌써 19화까지 댓글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비노 신경쓰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은 것 봐ㅋㅋㅋㅋㅋㅋㅋ
아버님의 사전엔 사위가 없지만 에릴로트 사전엔 남편이 있을 것인데…
└결혼식장에서 쪼그려 앉아 훌쩍거릴 각.
└그땐 제가 모셔갑니다. 에릴로트야, 아줌마가 바로 새엄마야~
나도 데이몬드랑 같이 딸 키우는 기분. 조회수로 키운 종이 남편, 종이 딸ㅠ
└지적은 아닌데요… 랜선 남편, 랜선 딸 아닌가요?
우리 효녀ㅠㅠ~ 아빠 고생할까 봐 뒤에서 마물도 길들이고, 인맥도 쌓아주고ㅠ 나 흑막 딸 좋아하네
에릴로트 효녀 비 세워줍시다! 그럽시다!
ㄴ아비노 손 잡는 순간 바로 불꽃 불효하게 될 각ㅠㅠ 에릴~ 평생 아빠오빠들이랑 오순도순 살아!
별다른 내용은 없군.
그래도 읽을 때 기분은 좋았다.
<빙.흑.손>에서 <아빠는 세계관 최고 미남>이 된 후 나에 대한 댓글 반응이 매우 온건해졌다.
악역에서 주인공의 딸이 되었다는, 엄청난 역할 변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육아물은 원체 인기가 많고 대중적인 독자들이 많이 붙는다.
게다가 내가 노력한 덕분에 아빠의 미래에 깔려 있던 고난과 역경이 다 사라졌다.
그 덕에 주인공인 아빠가 제법 능숙하게 스토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
읽기 편하고 힘든 사건이 없어서 그런지, 조회수가 쭉쭉 잘 늘어났다.
덕분에 댓글 수도 많아져서 아주 좋았다.
댓글은 많을수록 좋다.
독자들이 소설에 댓글을 많이 달면 달수록 내가 알 수 있는 내용이 많아지니까.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달아주신 댓글들 소중히 아껴가며 읽겠습니다.’
독자님들 만세! 만만세!
콧노래를 부르며 쭉쭉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데…….
‘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댓글이 보였다.
근데 나만 아비노 하인 쎄함? 서술에 힘주는 게 보통 놈이 아닐 것 같다ㅜㅜ
하인?
하인 서술에 힘을 줬어?
나는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실제로 상황을 겪는 것이기 때문에 바뀐 소설의 묘사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댓글이 많을수록 소설의 정보를 잘 알게 되어 좋다는 건데.
‘이런 댓글이 다 맞는 건 아니지만, 반 정도는 맞는데…….’
최소 반반.
혹은 그 이상.
웹소설을 많이 읽어온 독자들의 감은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그들이 쎄하다고 하면 뭔가 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술에 어떻게 힘을 줬는지 알면 가장 좋겠는데.
하지만 내용은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댓글로만 확인을 해야 해서, 나는 눈이 빠지게 스크롤을 내렸다.
그래도 유용한 댓글은 없어 보인다.
‘생각해보자. 아니면 좋은 거고, 맞으면 미리 알아서 좋은 거니까.’
아까 아비노와 대화하느라 하인에게 크게 집중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불온하게 번뜩이는 눈빛이 좀…….
1왕자의 금지옥엽 외아들을 챙기는 하인이라기엔 거슬리는 면이 있었다.
‘눈빛이 거슬려.’
느낌적인 느낌은 아니라고 장담한다.
아스트라 공녀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고용인을 봐온 나다.
내 기분이 나쁘다고 무작정 꼬투리를 잡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씀.
‘그러면 살펴봐서 나쁠 건 없겠지.’
게다가, 내게는 생체 CCTV가 있으니까.
나는 히죽 웃으며 내 그림자를 내려보았다.
오구오구, 기특한 내 새끼.
이제 네가 활약할 시간이다.
“옴브레.”
이름을 부르자, 내 그림자 속에서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오, 이러니까 정말 악당 같네.’
물론 지금의 나는 주인공의 딸이라서 악당은 아니지만.
여하튼,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옴브레에게 명령했다.
“아비노의 방에 다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