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63)
이 3세는 악역입니다 63화.(63/390)
63화.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오랜만에 공작성이 북적북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아스트라 공작가의 2세, 3세가 모두 다 모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각자의 부관과 고용인들이 딸려 오니 엄청난 인원이 모일 수밖에!
이렇게 2세와 3세가 모두 모인 이유는 하나였다.
연평가의 1등은 나로 발표되었지만, 아직 서열은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세들의 서열 발표날이라 2세들도 잔뜩 긴장했네.’
나는 바짝 얼어붙은 2세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여유를 만끽했다.
‘이것이 바로 승자의 여유다!’
3세들은 아직 어리지만, 아스트라는 서열 사회.
3세들의 서열은 당연히 그 윗세대인 2세들의 입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부모인 직계들은 물론 가신들까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모시는 주인 가문이 알짜배기인지, 빛 좋은 개살구인지 재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나오는 날이나 마찬가지.
무엇보다 영광의 1위에게 수여되는 플래티넘 메달은 명예도 명예지만 부상도 엄청나다.
‘부상이 정말 최고야…….’
난 황홀한 표정으로 부상을 떠올렸다.
플래티넘 메달을 받은 사람은 아스트라 장원의 어디든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급되는 용돈도 다른 3세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메달 수여자가 받는 용돈은 더 이상 <용돈>이라고 부를 만한 액수가 아니지.’
어지간한 관할령의 내탕금과 비견될 정도라고 하니 말 다 했다.
그 대단한 혜택을 가지고 있는 플래티넘 메달은…….
‘바로 내 목에 걸렸지!’
쩔그렁, 쩔그렁.
내 옷에 붙은 액세서리와 부딪힌 메달이 쩔그렁거리는 영롱한 소리를 냈다.
걸을 때마다, 가슴팍에서 흔들리는 아름다운 메달.
표면에 섬세하게 조각된 무늬를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흡족하게 웃었다.
뿌듯하다.
물론 메달 말고, 메달에 곁다리로 붙은 혜택 덕에.
‘명예 따위는 쓸모없어.’
중요한 건 돈과 혜택이지.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생각했다.
‘메달 혜택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까.’
그런데 메달을 받은 나보다 더 호들갑을 떨며 난리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디오네라와 리앙틴이었다.
“와, 와! 플래티넘 메달이야. 항상 셀레네나 블리젠만 가지고 있던 건데.”
“나, 나도 볼래! 와, 이 빛나는 것 좀 봐. 때깔부터 다르네!”
“정말이야. 근데…… 셀레네나 블리젠이 걸 때보다 에릴로트한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두 사람이 내 양옆에서 소란스레 재잘거리며 메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도 언젠간 플래티넘 메달을 걸고 다닐 거야!”
리앙틴이 다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픽 웃었다.
리앙틴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걸 알기에 저런 의욕도 귀엽기만 했다.
“그래. 다음엔 걸 수 있을 거야.”
“당연하지.”
우리는 떠들면서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그때였다.
우리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복도 코너 뒤에서 누군가가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였다.
“잠깐.”
“응?”
“조용히 해봐.”
내 말에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목소리가 더 잘 들렸다.
“글쎄. 지금은 힘들다니까. 조금만 기다려주면 금세 돌려준다고 했잖아.”
“물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상황도 고려해주십시오. 저희도 더는 버티기 힘든지라…….”
“내가 주고 싶어도 당장 내 손에 없는 걸 어떻게 해? 다 털어보게. 내가 설마 있는데 안 주겠나?”
“정말로 주실 마음은 있으시긴 한 겁니까? 보름만 쓰고 주시겠다던 게 벌써 반년째입니다.”
흠. 아무래도 돈 이야기 같은데?
코너로 가까이 다가가자 싸우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떼먹기라도 한다는 소리야? 날 모욕하는 건가!”
돈을 빌린 쪽인 고함을 질러댔다.
하지만 그 덕에 확실히 알았다.
정곡을 찔렸네.
떼먹으려고 했구나?
원래 찔리는 사람이 저렇게 화를 내는 법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쩔쩔매며 수그렸다.
“그저 여쭤본 것뿐입니다. 계속 힘들다고만 하시니 저희도 힘들어서…….”
“그건 우리 셀레네가 이번에 플래티넘 메달을 받지 못해서─!”
높고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매우 기분 나쁘다는 듯 째지는 목소리였다.
“사정은 알지만…….”
“됐어! 자네가 날 얼마나 괄시하는지는 잘 알겠다고!”
우리가 숨을 새도 없이, 코너 뒤에서 여자가 씩씩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야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셀레네라고 하면 누군지는 뻔하지만.’
거의 매번 서열 1위를 했던 셀레네 언니의 모친인 바스티나 고모였다.
그때, 바스티나와 내 눈이 마주쳤다.
바스티나가 내 목에 건 메달을 보더니, 얼굴을 왈칵 찌푸렸다.
“너……!”
바스티나는 날 보자마자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아니, 그거보다 좀 더 심하다.
한 대 때리고 싶어 죽겠는 얼굴?
바스티나 고모가 고압적인 태도로 나를 가리키며 내려다보았다.
“야!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아니, 나한테만?
다른 애들은?
내 양옆에 디오네라와 리앙틴이 있었지만, 바스티나는 나만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저…….”
“넌 빠져 있어! 어른이 하는 말이 말 같지 않아?”
디오네라가 끼어들려고 하자 아주 잡아먹을 듯 소리를 질렀다.
리앙틴은 깜짝 놀란 디오네라의 손목을 잡아채서 끌고 왔다.
바스티나 고모가 눈이 돌면 어떻게 구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와, 플래티넘 메달을 셀레네 언니가 아니라 내가 받아서 열이 엄청 받은 모양이네.’
하긴,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셀레네가 플래티넘 메달을 받으면 그걸로 채무를 갚을 생각이었던 것 같으니까.
‘그전에도 나만 보면 잡아먹지 못해서 난리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8살이 된 후로 셀레네의 자리를 위협해서 그렇다고들 했다.
일단 나는 예의 바르게 무릎을 살짝 굽혔다.
“고모님을 뵙습니다.”
“고모님을 뵙습니다.”
“고모님을 뵙습니다.”
리앙틴과 디오네라 역시 나를 따라 인사했다.
바스티나는 두 사람이 인사하든 말든 여전히 나만 바라보았다.
부릅!
눈도 깜빡이지 않고 위아래로 훑는 게 어디 하나라도 흠잡을 곳이 없나 샅샅이 찾는 듯했다.
‘흠잡을 게 있을 리가 없지.’
무려 고날롱 부인이 가르친 인사 예법이다.
그 귀여운 욕심쟁이가 일 하나는 확실히 잘하거든.
“…….”
아니나 다를까 트집 잡을 곳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바스티나는 분한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곤 찬바람이 쌩, 불 정도로 거칠게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가버렸다.
‘오. 초라한 퇴장인데.’
솔직히 나는 별 상관없는데, 저 빚쟁이만 안타깝게 됐다.
아스트라의 직계이니 할아버지 눈치를 보느라 돈을 돌려달라고 제대로 압박도 하지 못할 테고, 얼마나 애가 탈까.
“바스티나 님, 바스티나 님! 저와 이야기가 아직 안 끝나지 않았습니까!”
고모와 다투던 남자가 그 뒤를 따랐다.
‘어, 저 남자는…….’
내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아스트라 공작 가문의 가신인데?’
설마 가신한테 돈을 빌린 거야?
‘미쳤어.’
본인의 직속 부하에게 돈을 빌려도 부끄러울 일이다.
하물며 가문을 섬기는 가신에게서 돈을 빌리다니.
‘할아버지가 아시면 난리 날 텐데.’
대체 어떻게 하면 아스트라의 직계이면서 돈에 쪼들리는 거지?
심지어 셀레네는 3세 중에서 늘 세 손가락 안에 드는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걸음을 옮겼다.
잔뜩 굳어져 있던 디오네라와 리앙틴이 스르륵 긴장을 풀며 우는소리를 냈다.
“으으, 살벌해.”
“에릴로트, 넌 어떻게 바스티나 고모님의 시선에 눈 하나 깜짝하질 않니? 널 찢어 죽일 것 같았는데.”
“눈은 깜빡였는데?”
내 말에 두 사람이 혀를 내둘렀다.
“이거 봐. 여유로운 거.”
리앙틴은 그런 내가 얄밉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도 시선 끝에 분홍빛 애정이 보여서, 나는 그런 리앙틴이 귀여웠다.
‘꼭 자존심 강한 포메라니안 같아.’
디오네라가 물었다.
“우리는 수업 때문에 가야 하는데. 에릴로트는?”
“음…….”
내가 공작성에 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용돈!
—이 아니라 메달을 받으러.
주머니도 두둑해졌겠다, 이제 목적은 다 이뤘으니 관할령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나는 이제 돌아가려고.”
“응! 잘 가!”
“아쉽네. 다음에 봐.”
두 사람과 인사한 후.
나는 우리 가문 마차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건물 밖에 놓인 산책로보다는 숲을 가로질러서 가는 게 더 빨라서 나는 숲길 쪽으로 걸음을 틀었다.
‘가는 김에 라곤을 보고 가야지.’
나는 얼마 전부터 라곤을 공작성에 맡겨놨다.
쌍둥이의 등쌀에 못 이겨서 정말로 라곤이 탈출할까 봐.
경비 몬스터의 형태로 들어왔는데, 라곤도 여기가 더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햇빛은 쨍쨍.
나뭇잎은 반짝.
연둣빛의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이 보석보다 아름다웠다.
물론 내 기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든 건 이 메달이지만.
플래티넘 메달에 햇빛이 부딪히자 아주 순금마냥 번쩍였다.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숲 향기가 폐부를 시원하게 채웠다.
“흐흥, 흥—.”
저절로 룰루랄라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한창 그렇게 숲을 가로지르던 중.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나는 소리가 났던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나무들만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 소리였나?’
내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하아…….”
이번에는 분명하게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의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누구지?’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살금살금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시야를 가리는 나뭇가지를 살짝 헤치자—
‘블리젠?’
잔디에 앉아 나무에 등을 기대어 있는 블리젠의 모습이 보였다.
햇빛을 받으며 눈을 감고 있는 블리젠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상하다? 분명 여자 목소리가 들렸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메이드복을 입은 하녀가 보였다.
저 하녀가 낸 소리였나 봐.
‘근데 약간 소리가 묘했는데…….’
하녀를 보자 아직 젖살이 남은 얼굴이 앳되어 보였다.
성인은 아니고 블리젠과 또래로 보였다.
‘왜 여기에 하녀가 있는 거지? 블리젠 성격에 다른 사람과 함께 쉴 것 같지 않은데.’
잘은 모르지만 블리젠이 타인에게 쉽게 곁을 주지 않는 성격인 것만은 안다.
“아…….”
하녀는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은 채, 황홀하다는 얼굴로 블리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녀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결심한 듯 블리젠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무릎걸음으로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블리젠님…….”
블리젠의 코앞까지 다가간 하녀가 몽롱한 시선으로 블리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으응?’
점점 더 얼굴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아슬아슬, 코와 코가 닿을 것만 같은 가까운 거리.
‘헉.’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니 좀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빠르게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돌렸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
왜 이 숲속에 블리젠과 하녀가 단둘이 있는지 알겠다.
못 본 셈 치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잠깐.’
왠지 모를 위화감에 나는 멈칫했다.
‘블리젠, 자고 있었던 거 같은데.’
고개를 돌려 다시 보니 역시 잠든 얼굴이다.
굳게 감긴 눈은 뜨일 기미조차 없었다.
‘그럼 지금 잠든 사람을—’
거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내 입이 저절로 열렸다.
“거기, 너.”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하녀가 펄쩍 뛰어오를 듯이 놀랐다.
그리고 누구의 목소리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우선 블리젠에게서 후다닥 떨어졌다.
그 후에야 날 보고서 어깨를 움츠렸다.
“아, 아가씨.”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는 천천히 두 사람에게로 다가가며 싸늘하게 물었다.
어쩔 줄 모르고 눈을 굴리던 하녀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그게, 어……. 브, 블리젠님께 먼지가 붙어있어서…….”
“먼지가 어디 있는데?”
“그, 그게…….”
하녀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푹 고개를 수그렸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였다.
블리젠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열린 눈꺼풀에서 루비 같은 붉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는 빛이 투과하는 듯한 투명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낮은 목소리가 동굴처럼 울렸다.
하녀는 그 목소리가 자신을 날카롭게 베기라도 한 것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그녀가 입을 열어 변명하기 전에 말했다.
“저 하녀가 몰래 뽀뽀하려고 했어.”
“아, 아니, 아뇨! 그게 아니라 머, 먼지가 묻어있어서……!”
“먼지 없잖아.”
내 말에 하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쩔쩔맸다.
블리젠은 가만히 그런 하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떼어줘서 고맙다.”
“죄, 죄송— 네?”
얼떨떨한 얼굴로 블리젠을 보는 하녀.
블리젠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갯짓했다.
“가 봐.”
하녀 표정이 확 밝아졌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블리젠의 마음이 바뀔세라 후다닥 그대로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뭐야. 괜히 상관했나?’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블리젠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잠들어있다가 막 깨어난 사람의 반응은 아니었다.
“깨어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