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65)
이 3세는 악역입니다 65화.(65/390)
65화.
* * *
며칠 뒤.
블리젠의 행적을 캐내자마자 그가 상점 지구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딱히 정보를 끌어모으지 않아도 블리젠이나 쌍둥이가 어디 있는지 아는 건 쉬웠다.
‘꺅꺅거리는 비명을 이끌고 다니니까.’
이게 다 얼굴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나는 우선 상점 지구로 갔다. 도착하니 또 블리젠이 어딨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한 곳에 소녀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여기다.’
여기가 아닐 수 없었다.
왜냐면 소녀들의 대화가—
“너 진짜 전당포에 맡길 물건 없어?”
“없대도! 너도 없다며?”
“뭐라도 있었으면 맡기는 척하면서 전당포 들어갔을 텐데.”
“그냥 들어가 보면 안 될까? 그렇게 잘생긴 남자는 한 번 더 눈에 담아야 하는데!”
“그건 금발이 아니라 태양 빛이었어! 머리에 태양이 있었다고!”
“무슨 소리야. 그분이 태양이야!”
“눈에는 루비를 박고 계셨지. 아아…….”
—이랬기 때문이다.
당연히 블리젠이겠지.
블리젠이 아닌 다른 미남이 있었다면 진작 동네방네 소문이 났을 거다.
미남은 희귀생물이니까.
나는 조금 흐린 눈으로 거리의 소녀들을 바라보았다.
‘……블리젠이 잘생기긴 했지만 저럴 정도인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아빠의 얼굴에 익숙해졌나 봐.’
아빠가 말도 안 되게 잘생겨서 그렇지, 블리젠도 매우 뛰어난 얼굴이다.
어쨌든 블리젠은 전당포에 있는 듯했다.
‘전당포엔 왜 갔지?’
이유를 생각하는데, 뒤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더 살 건데……!”
울먹이는 목소리가 나를 보챘다.
돌아보자, 산더미처럼 쌓인 약초 더미가 보였다.
나는 약초 더미에게 말했다.
“구할 수 있는 건 전부다.”
“뭐?!”
약초 더미 위로 한지혁의 얼굴이 솟아났다.
“얼굴이 보이는 걸 보니 아직 더 들 수 있겠다.”
내가 생긋 웃자 한지혁이 “야!” 하고 소리쳤다.
“농담이야. 이제 더 사려고 해도 살 수 없을걸. 물량이 없어서.”
나는 거리를 구경하는 척 주변을 둘러봤다.
블리젠은 아직 전당포에서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대강 볼일이 있는 척 전당포 근처 약초상에서 약초를 사는 중이었다.
한지혁이 소리를 낮춰 내게 물었다.
“그냥 우연인 척 만나려고 쇼핑하는 시늉만 내는 거 아니었어? 뭘 이렇게 많이 사?”
“시간 낭비랑 돈 낭비하면 안 되지. 시늉이 아니라 진짜 필요해서 사는 거야.”
외출한 김에 모든 일을 한큐에 처리해버리기.
집순이들의 가성비 동선 몰라?
얘는 아주 한국에서 헛살았다.
한지혁이 품에 가득한 약초를 바라보았다.
약초의 종류는 단 하나였다.
삼색초.
나는 삼색초가 시중에 풀릴 때마다 다 거둬들이고 있었다.
“이제 매점매석이라도 하려고?”
“하려고 해도 삼색초는 물량이 없어서 못 해.”
아스트라 상점 지구니까 그나마 이 정도라도 구할 수 있는 거다.
“그럼 왜 삼색초만 이렇게 많이 사는 거야?”
나는 대답 없이 씨익 웃었다.
‘왜긴 왜겠어. 비축해놓으면 다 쓸 데가 있어서 그러지.’
“약초 바닥에 떨어지겠다. 잘 들어. 귀한 거니까.”
“대답도 안 해주면서.”
한지혁은 구시렁대면서도 약초 봉투를 추켜올렸다.
그때였다.
내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앗!”
“왜, 왜?”
한지혁이 당황해서 약초 위로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저쪽에 삼색초 판다! 와, 더 살 수 있겠다!”
건너편에 허름한 약재상에 삼색초 다발이 보였다.
나는 한지혁을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잘됐지?”
“……그래. 정말 잘됐네. 정말…….”
잠시 후.
나는 해탈한 표정의 한지혁과 약재상에서 나왔다.
물론 한지혁이 정말 해탈한 표정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제는 확실히 약초 더미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나란히 걷는데, 수군수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블리젠의 소식인가 싶어서 귀를 세웠는데—
‘뭐지? 내 이름이 들리는데?’
착각인가?
돌아보자 시선이 마주친 남자애들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봐도 나를 보며 속닥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뭐지?’
“나 오늘 이상해?”
한지혁에게 물으니 불만 가득한 대답이 돌아왔다.
“넌 매일 이상하잖아.”
“죽을래?”
약초 더미가 가리고 있어도 내 서릿발 같은 시선은 느껴졌는지 한지혁이 찔끔했다.
“왜 다들 나를 쳐다보냐고.”
“인기투표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
“뭔 투표?”
“인기투표. 청초한 백합 같은 자애의 아이콘 셀레네 님이냐, 화려한 장미 같은 능력의 아이콘 에릴로트 님이냐—하는.”
미쳤나 봐.
왜 그딴 투표를 하는 거지?
‘그리고 내가 왜 장미야? 아, 예전부터 장미라고 유명하다고 했지. 깜빡했다.’
고날롱 부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말도 그냥 인사치레로 받고 말았는데.
상점 거리의 사람들이 그 별명을 부르고 있다고 하니까 너무 부끄러웠다.
수치스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장원이 평화로우니 별일이 다 생기네.’
내가 쪽팔려 하니 한지혁은 오히려 재밌는 모양이다.
그가 약초 더미의 옆으로 고개를 쭉 뺀 채 고양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내가 투표 얘기 좀 들어봤는데 알려줘?”
“아니.”
“남자애들 표에선 셀레네 님이 앞서고, 너는 여자애들이 좋아하던데.”
“말하지 말랬잖아!”
나는 소리를 빽 지르며 귀를 막았다.
정말, 제발, 절대 알고 싶지 않다.
질색팔색하는 내 모습에 한지혁은 아주 신이 나서는 킬킬거렸다.
귀를 막았는데도 왜 잘 들리는 걸까?
“나도 한 표 넣었지. 셀레네 님께.”
“나는 에릴로트에게 넣었는데.”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블리젠이 나른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납셨군.
기다리고 있던 상대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언제 왔어?”
“한 표 넣었지, 셀레네 님께─부터.”
나는 한지혁을 노려봤다.
이래서 밖에선 반말하지 말라니까.
“넌 상점 지구엔 무슨 일이야?”
나는 한지혁—약초 더미를 눈짓했다.
“약초 사러 나왔어.”
“그래.”
블리젠은 별 의심 없이 납득한 모양이다.
하긴, 누가 뒤를 캐는 척하기 위해 약초를 저만큼이나 살까.
“블리젠은 상점 지구엔 웬일이야?”
“지나는 길에.”
일부러 모른 척 물으니 뭉뚱그려 대답했다.
“지나는 길?”
“마탑에 가야 할 일이 있거든.”
정말로 마탑에 일이 있는지 멀리서 로브를 입은 남자가 “여깁니다.” 하고 블리젠을 불렀다.
“그럼. 나중에 보자.”
내게 인사한 그가 잡을 새도 없이 몸을 돌렸다.
‘일이 있는 것 같으니 붙잡기도 좀 그렇고.’
나는 블리젠이 거리에서 완전히 떠난 것을 확인하고 전당포에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외알 안경을 쓴 노인이 미소 지으며 내게 인사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전당포 안을 둘러보았다.
‘그냥 평범한 전당포인데.’
블리젠이 여길 왜 왔지?
그저 내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이럴 때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나는 성큼성큼 걸어 카운터로 다가갔다.
“방금 나간 청소년 말이야. 뭘 맡겼지?”
주인장은 잘 차려입은 어린애가 와서 다짜고짜 물으니 당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굳힌 채 답했다.
“죄송합니다만, 아가씨. 손님의 정보는 절대 줄 수 없습니다.”
꽤 단호했다.
예상했던 바였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까딱였다.
어느새 약초를 바닥에 두고 온 한지혁이 카운터에 금화를 탁, 내려놓았다.
나는 주인장을 향해 미소 지었다.
“다시 물을게. 뭘 팔았지?”
주인장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금화를 집곤 어금니로 깨물었다.
샛노란 금화에 선명하게 찍힌 이빨 자국을 발견한 그가 회춘한 것 같이 밝아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아예 골드로 바뀌었다.
“맡기신 게 아니라 사 가셨습니다.”
역시.
이 방법은 항상 쉽단 말이야.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협조적으로 변한 주인장에게 물었다.
“사 갔다고? 뭐를?”
“어디 보자…….”
외알 안경을 추어올린 주인장이 내역이 적힌 리스트를 쭉 훑었다.
그는 내게 서류를 뒤적여 찾아낸 그림을 보여 주었다.
예쁜 오르골이었다.
“이겁니다.”
“이걸 왜?”
“글쎄요. 뒷면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시고 사 가시던데요.”
“이름?”
“아이사 A. 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아이사라면…….
‘돌아가신 고모잖아?’
내 고모이자 블리젠의 모친이었다.
‘대체 누가 고모의 오르골을 전당포에 맡긴 거지?’
그것도 빌려 간 돈을 갚지 못해서 오르골이 아예 전당포 소유가 되어버렸다.
누군지 몰라도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 없다.
정신 나간 하인인가?
“그걸 누가 맡겼어?”
협조적이었던 주인장이 순식간에 경계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골드 모양이었던 눈이 다시 인간의 눈으로 돌아왔다.
한지혁이 금화를 하나 더 내려놓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정확하게 찾아드리겠습니다.”
주인장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며 답했다.
이제는 금화가 진짜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눈이 골드 모양이 되었다.
리스트를 다시 뒤적인 주인장이 아예 서류까지 보여 주며 말했다.
“노아리젠 님이십니다.”
“……!”
노아리젠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왜……?’
그에게 돈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현재 죽은 고모의 관할령은 노아리젠이 관리하고 있다.
다시 없을 순정남이라, 고모가 돌아가시고 삼 년을 통곡하며 곡기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가 그에게 고모의 관할령을 맡겼다고 들었는데…….’
덕분에 노아리젠은 웬만한 귀족 영지보다 더 부유하고 넓은 관할령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구소에서 받는 돈만 해도 풍족하게 살고도 남는다.
“무슨 이유로 맡긴지는 아나?”
“그건…….”
주인장의 눈에서 다시 골드가 사라지고 경계가 떠올랐다.
한지혁이 금화를 하나 더 꺼내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주인장이 냉큼 답했다.
“이유까지는 모릅니다. 그런 걸 말하는 사람이 드무니까요. 하지만 꽤 자주 오시죠.”
자주 온다고?
“이것 말고 또 어떤 물건들을 맡겼지?”
주인장의 눈에서 다시 골드가 사라졌—
‘그냥 차라리 한 번에 달라고 해, 진짜…….’
나는 한지혁에게서 금화 주머니를 낚아채 쾅, 하고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꿀꺽.
자루 안에 가득 든 금화를 본 노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어떤 물건들을 맡겼지?”
“뭐, 장신구에, 책에, 드레스……. 수도 없죠.”
전부 다 여성이 쓸만한 물건들이었다.
‘……고모의 물건을 다 저당으로 맡겼단 말이야? 대가로 빌려 간 돈도 제대로 갚지 않고?’
세기의 순정남인 체하더니 뒤로는 고모 물건을 다 빼돌려 돈을 벌고 있었다니!
여전히 금화 주머니에서 손을 떼지 않았기 때문인지, 주인장은 묻지도 않은 말까지 해주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블리젠 님께서 다 사 가십니다. 저희야 좋죠, 뭐.”
“노아리젠 님은 알고 계시고?”
“알면 오시겠습니까. 블리젠 님이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는데요.”
“……그래.”
아무래도 이상하다.
돈이 급한 노아리젠.
그 노아리젠이 죽은 어머니의 물건을 판다는 걸 알고 있는 블리젠.
‘그런데 아무 제재도 없다니.’
“흐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했다.
하지만 그 부자 사이에 무슨 전말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한지혁이 카운터에 턱! 양손을 올렸다.
“눈치챘겠지만, 이분이 아—주 귀하신 분이라 말이죠.”
그러자 주인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예……! 일전에 초상화를 봐서 알고 있습니다. 데이몬드 관할령의 에릴로트 영애님이시지요! 하하, 최근에 투표의 한 축이 되셨다지요?”
나는 흐린 눈을 했고, 한지혁은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그러니 금화 한두 개에 넘어가 정보를 판다면 어떻게 될지 아시겠지요.”
“그, 그야 물론—!”
“전당포가 불태워지는 것만으로는 안 끝날 겁니다.”
눈을 살벌하게 뜬 한지혁이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경고했다.
“이쪽엔 그 단단한 데이몬드 관할성의 벽을 총 52차례 부순 미친 말도 있고—”
발자크?
“사람 피 말려 죽이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무—서운 뱀도 있고—”
요슈아?
“과일 지도를 제작 중인 전쟁광도 있습니다.”
……아빠?
나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한지혁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 말에 주인장은 정말로 겁을 집어먹은 듯 새파래졌다.
“저, 절대로 아가씨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않을 겁니다.”
“상황 파악을 잘하시니 다행입니다.”
“예, 예, 입에 칼이 들어와도—”
“투표도 하십시오.”
“예?”
“에릴로트 아가씨 쪽으로. 아시겠습니까?”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한지혁의 입을 틀어막고 전당포를 나섰다.
그러고서 매섭게 그를 노려봤다.
‘하여간에 놀릴 틈만 생기면…….’
한지혁은 빙글빙글 웃으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민망해하는 걸 아니 저렇게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럴 때 한지혁의 표정이 싹 바뀌게 하는 법을 알지.
“내일부터 모스코를 호위로 붙일 거야.”
“뭐? 그럼 난!”
“넌 내 시중꾼이니까 당연히 함께이지.”
모스코는 한지혁을 아주 좋아했는데, 한지혁은 모스코의 그림자만 봐도 기겁했다.
지난번에 (모스코의 강요로)함께 목욕을 다녀온 뒤로는 가죽이 벗겨질 뻔했다며 오들오들 떨었다.
“농담이지?”
“…….”
“야.”
“…….”
“에릴로트!”
“…….”
“아가씨? 주인님?”
“…….”
“하느님? 요정님? 천사님!”
“약초나 가져와.”
나는 울부짖는 한지혁을 모른 체하고, 앞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