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66)
이 3세는 악역입니다 66화.(66/390)
66화.
* * *
공작성.
나는 콘라드를 만나러 부관 사무실 쪽으로 갔다.
‘블리젠의 일이 자꾸 신경 쓰이는데.’
골똘히 생각하느라 땅을 보고 걷던 중, 앞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녀들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머리 하나.
‘콘라드?’
뭔가를 잔뜩 들고 있었다.
미소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감사합니다…….”
하녀들이 수줍게 얼굴을 붉힌 채로 “하아아…….”하며 제 뺨을 부여잡았다.
개중엔 “저희가 더 감사…….” 하며 콘라드의 팔뚝에 감탄하는 하녀도 있었다.
‘응?’
그들 사이에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불쑥 시야에 들어왔다.
“그레타?”
내 목소리를 들은 그레타의 어깨가 화들짝, 솟아올랐다.
그레타는 딱딱하게 굳어서는 기계처럼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아, 아, 아, 아, 아, 가, 가, 가, 씨.”
엥?
마치 바람피우다가 딱 걸린 표정이다.
그레타는 지진 난 것처럼 와들와들 떨리는 동공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더니 튀어나와서 절박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결코 다른 데 눈 돌린 것은 아니에요. 아가씨의 것도 분명히 사 왔거든요. 하지만 레이디의 날은 아직 멀었고……. 또 콘라드님께서 워낙 하녀들의 사정을 잘 봐주시고. 그동안 감사한 것도 많고요. 저는 정말, 최고로 애정하는 건 아가씨거든요. 이런 말 의미 없다는 건 알지만, 그러니까, 아가씨, 제가…… 죄송해요─!!”
“…….”
한마음으로 두 사람을 애정해버렸다면서 그레타는 울망울망한 표정으로 떠나갔다.
“사랑은 죄야~!”
죄야~!
죄야~!
그레타의 목소리가 공작성에 메아리쳤다.
……갑자기 피곤해진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레타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물을 산더미처럼 든 채로 어색하게 웃던 콘라드가 내게로 저벅저벅 다가왔다.
“아가씨.”
높게 쌓아진 선물상자가 얼굴을 모두 가려 콘라드는 겨우 상자 옆으로 빼꼼 얼굴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게 다 뭐야?”
“아, 나흘 후가 신사의 날이라고……. 전 내일부터 외부로 나가있을 예정이라 오늘 준 모양입니다.”
아, 신사의 날?
벌써 나흘 후가 그날이구나.
좋아하는 신사에게 선물하는 날.
‘밸런타인데이 같은 거지.’
콘라드 품 안의 높게 쌓아진 선물상자가 휘청휘청하며 위태로워 보였다.
“일단, 그거 놓고 와. 물어볼 게 있어. 여기서 기다릴게. 오늘 날씨 좋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크게 들이키며 말했다. 풀내음이 코 안으로 가득 들어찼다.
“네, 아가씨.”
부관 사무실에 선물을 두고 온 콘라드가 황급히 다가와서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본성에서 2세들을 감시하잖아.”
콘라드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호라고들 하죠.”
“뭐든. 거기에 노아리젠 고모부님도 포함되어 있어?”
“예. 일단 블리젠 도련님의 부친이시니까요. 하지만 다른 2세들보다는 현저히 강도가 약합니다.”
그 정도라도 있으면 좋다.
나는 콘라드의 두 손을 맞잡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나, 그 기록 좀 보고 싶은데.”
주변을 슥, 한번 둘러본 콘라드가 목소리를 작게 죽이며 말했다.
“필사해서 관할성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응!”
나는 고개를 얼른 끄덕이며 헤벌쭉 웃었다.
‘역시.’
3살 때의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았어.
곳곳에 적격의 인물을 잘 배치해놨다.
‘그 덕에 필요한 정보가 이렇게 쉽게 내 손에 들어온다니까.’
3살 때 열심히 돌아다니길 잘했다.
나는 뿌듯한 얼굴로 사무실로 돌아가는 콘라드에게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잘 가, 콘라드!
내 걸어 다니는 공작성 정보 길드!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나는 마차 안에서 널브러진 포즈로 앉아있었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2시간은 족히 걸려서 이동해야 하니 죽을 맛이다.
<신속>의 가호석을 그렇게 때려 넣었는데도 이렇게 힘들다니.
‘블리젠의 가호가 부럽네.’
그는 가호가 둘이다.
하나는 공격계 가호.
또 하나는 <이동>의 가호.
강력한 공격계 가호가 있는데, 그걸 마구 이동하면서 쓰는 거다.
‘완전 사기 캐릭터 아니야?’
쌍둥이도 실전 시합 때는 블리젠한테 못 이길 정도였다.
거의 시합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압축>이라는 광역기를 가진 요슈아는 시합할 적에 공작성이 망가질 위험이 있으므로, 실전 훈련은 거의 성 밖에서 하는 편이었다.
<강화>의 가호를 가진 발자크도 오러를 발현하면서 광역기나 마찬가지인 힘을 가졌다.
그래서 쌍둥이와 블리젠의 시합은 1,2년에 한 번씩 이벤트성으로 붙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쌍둥이가 이기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승률은 블리젠이 높지.’
항상 서열권을 놓치지 않은 이유가 있던 거다.
‘아무튼 이동 가호는 너무 부러워…….’
상점 지구나, 공작성에 갈 적에 마차에 타지 않는 삶이라니.
나는 어딜 나갈 때마다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하는 기분이 든다.
‘두 시간이면 상경이나 마찬가지지.’
오늘도 밖에 있던 시간보다 마차에 있던 시간이 많은 난 거의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 * *
데이몬드 관할성.
성에 도착하니까 저녁이 다 됐다.
나는 피곤해서 옷도 안 갈아입고 침대에 푹 널브러졌다.
밥도 안 먹고 그러고 있으니까, 하이디와 베티가 날 살살 달래며 말했다.
“장미 소금을 넣어서 향긋하고,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녹이시면 돼요.”
“부드러운 거품으로 닦아드릴 거고요. 머리도 감겨드릴 거고요.”
하이디와 베티는 나란히 내 침대에 고개를 올려두고 말했다.
“물속에 계실 땐 새콤달콤한 레모네이드도 먹여드릴 거고요.”
“따끈따끈 상쾌해져서 나오시면 맛있는 토스트가 준비되어 있을 거예요.”
“겉면만 살짝 익힌 빵에 아보카도, 바삭바삭하게 구운 베이컨, 촉촉한 수란을 올려올 거예요. 아주 맛있겠지요?”
베티가 이불에 푹 파묻혀 있는 내 머리카락을 사라락 귀에 꽂아주며 속삭였다.
“디저트론 밀크티를 사각사각하게 갈아서 만든…….”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가 고개를 빼꼼 들었다.
‘알겠어, 알겠어.’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대답했다.
“할 거야…….”
7년 동안 날 꼬시는 데엔 아주 도가 텄다.
‘토스트 맛있겠다.’
토스트 생각에 입에 군침이 돌았다. 토스트에 살짝 발린 버터 냄새가 벌써 나는 것 같았다.
장미 소금을 풀어서 하는 따끈따끈한 목욕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다.
따뜻한 물 속에서 향긋한 장미 향을 맡고 있으면 하루의 피곤함이 싹 가시니까.
하녀들은 욕조에 풀어져 있는 몽글몽글한 거품으로 내 몸을 씻어냈다.
목욕을 마치고 샤워가운을 입고 앉아있으면 하녀들이 저마다 수건을 가지고 와서 내 머리를 말려준다.
손을 내밀고 있으면 하녀들이 길게 자란 손톱도 툭툭 잘라줬다.
‘아, 개운해.’
뽀송뽀송해진 난 황홀한 표정으로 앉았다.
토스트를 슥, 베어서 노른자가 터진 수란에 콕 찍어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식사를 마치고 배를 땅땅 두드리고 있으니 베티가 흐뭇한 미소로 밀크티 아이스크림을 내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목욕과 식사, 그리고 달콤한 디저트까지.
‘아, 이 돈과 권력과 애정의 참맛.’
나는 행복감에 젖어 눈이 헤롱헤롱했다.
베티와 하이디가 그런 나를 보더니 쿡쿡, 웃었다.
“역시 씻고 식사하시길 잘하셨지요?”
“응…….”
디저트 스푼을 입에 물고 있는데 한지혁이 방으로 들어왔다.
콘라드가 낮에 부탁한 내용을 필사한 서류가 왔나 보다.
“아깐 피곤해 죽을 것 같아 보이더니, 지금은 또 멀쩡하네……요, 아가씨?”
한지혁은 습관처럼 반말하려다 옆에 있는 하이디의 눈초리에 얼른 존대했다.
난 씩 웃고서 말했다.
“행복해.”
한지혁은 방실방실 웃고 있는 나를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쟤는 꼭 내가 행복해하면 분해하더라.’
“난 땡볕에서 잡초 뽑고 왔는데, 넌 시원한 방에서 레모네이드를 마셔?”
“싫으면 외부에 자리를 마련해준다니까.”
“나가면! 내가 사기 친 놈들에게 들킬 수도 있잖아! 나도 미켈란처럼 총집사 같은 거 시켜줘!”
“대귀족 가문의 총집사는 아카데미를 나온 재원들이 하는 건데, 지금이라도 아카데미에 다녀올래?”
“여기나 저기나 빌어먹을 학벌 사회……!”
이런 일이나,
“난 엄동설한에 네 시간이나 눈을 치우고 왔는데, 넌 따뜻한 방에서 고구마를 뜯어 먹어?”
“싫으면 외부에 자리를 마련해준다고 열 번쯤 말했다.”
“공작성으로 보내줘. 콘라드 마르시알처럼 공작님 부관 같은 거라도 해야겠어.”
“콘라드는 365일 중에 300일을 야근하는데 괜찮겠어?”
“노동청에 다 고발해버려야 해. X발.”
이런 일이라거나.
“난 모스코와 목욕갔다가 가죽이 다 뜯겨나갈 뻔했는데, 넌 거품 목욕을 해?”
“외부에 자리를 마련해 준다고 100번쯤 말했지.”
“너처럼 귀족 영애라도 시켜줘.”
“모스코! 모스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녀들과 한지혁이 나간 후,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서 서류를 꺼냈다.
‘어디 보자.’
나는 서류를 한 장씩 넘겼다.
확실히 다른 2세들과 달리 정보가 매우 한정적이었다.
‘이동 기록과 휴일 정도만 있네.’
공작성.
관할성.
상점 지구.
관할성…….
‘응?’
노아리젠은 반년 동안 한 번도 장원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
‘뭐야, 그럼 탈로스 백작은 어떻게 만난 거지?’
미켈란은 분명히 노아리젠과 탈로스가 만났다고 했다.
‘그 꼼꼼한 사람이 확인도 없이 내게 말했을 리 없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협탁에 넣어둔 통신석을 꺼냈다. 그리고 바로 미켈란에게 연결했다.
[예, 아가씨.]“탈로스 백작과 노아리젠이 만난 게 정확히 언제지?”
통신석에서 팔랑팔랑,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달 4일, 11일, 18일. 이번 달 5일, 12일입니다.]나는 얼른 펜을 꺼내 서류에 체크하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확실하지?”
[예.]“알겠어, 고마워.”
나는 알겠다고 하고 통신을 마무리했다.
‘뭐지, 정말?’
침대맡 협탁에 통신석을 다시 고이 넣어놓고, 콘라드가 준 서류를 다시 한번 검토했다.
확실히 미켈란이 말해준 날 모두 쉬었다고 적혀있다.
그런데, 장원 밖에 나간 기록은 없었다.
‘블리젠이 이동시켜줬나? 음……. 그건 아닐 텐데.’
블리젠은 지난달엔 20일까지 임무를 다녀와서 장원에 없었다.
‘혹시 <이동>의 가호석을 썼나?’
아니야. 그건 아직까지 발견된 적 없는 가호석이잖아.
<이동>의 가호석이 나왔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 거다.
귀족들이 보물을 이고 지고 와서 제발 팔아달라고 아우성이겠지.
이해된다.
마차는 너무 힘들거든…….
‘어쨌든, 블리젠과 대화하지 않으면 아무런 진척이 없겠어.’
나는 밖에 있는 하녀들을 호출했다.
그리고 편지를 적어서 블리젠에게 보냈다.
[블리젠, 아이사 관할령에 초대해주지 않을래?]* * *
블리젠에게 답장이 왔다.
[미안하지만, 일이 있는지라 초대는 어렵겠어.]난 좀 어이가 없었다.
[나 아직 언제라고 날짜도 말 안 했는데?] [당분간은 안 돼.] [그럼 되는 날을 말해주겠어?] [당분간은 안 돼.] [블리젠의 당분간이 지나면 가고 싶어!] [당분간은 안 돼.] [혹시 같은 편지를 여러 장 써놓은 거야?]편지가 몇 번이나 오갔다.
하지만 승리자는 나지!
결국 마지못한 허락의 답장을 받았거든.
[잠깐이라면.]‘좋아!’
답장을 받은 나는 후다닥 준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왔다.
마차에 얼른 올라타고, 아이사 관할령으로 출발했다.
어제 잠깐 생각했던 <이동>의 가호석…….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마차 타고 이동하는 게 너무 힘들다.
그렇게 생각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와아…….”
관할성 길목에는 보라색, 노란색, 하얀색 들꽃이 흐드러지게 잔뜩 피어있었다.
‘아이사 고모님이 들꽃을 참 좋아하셨다고 했지.’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이사 관할성 앞.
아스트라 문양이 새겨진 낯선 마차를 보고, 멀리서 하녀 하나가 헐레벌떡 마차 앞으로 뛰어나왔다.
마차에서 내리는 나를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라 말했다.
“에릴로트 아가씨께서 여긴 어쩐 일로……!”
처음 오는 아이사 관할성을 스윽, 둘러보며 말했다.
“블리젠에게 관할령에 와도 좋다는 편지를 받았어.”
“저희는 얘기를 들은 게 없는데……. 혹시 편지는 언제 받으셨는지요?”
나는 당당히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1시간 전에.”
“…….”
뛰쳐나온 하인들은 모두 당황하는 기색으로 서로 눈을 마주쳤다.
주인이 초대했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는지, 마지못해 날 관할성 안으로 데려가긴 했다.
하녀들은 얼굴이 새파래져 얼른 관할성의 문을 활짝 활짝 열어주었다.
“이쪽입니다.”
하녀의 안내를 받으며 관할성으로 들어가는데, 복도를 걷던 남자와 마주쳤다.
허리까지 기른 회색의 곱슬머리를 하나로 묶어서 옆으로 늘어뜨린 고전적인 외모의 미남.
노아리젠 고모부.
그 곁에 행정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아리젠을 쫓아오고 있었다.
“그날은 안 된다고 했잖아.”
“하지만 대금업자가 꼭 이때에─”
“어쨌든 그날은 안 돼. 몇 번을 말해.”
블리젠이 아빠의 말투를 쏙 빼닮은 거구나.
신경질적인 말투로 행정관을 쏘아보며 걷는 노아리젠 고모부.
내가 알던 노아리젠 고모부와는 전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