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67)
이 3세는 악역입니다 67화.(67/390)
67화.
내가 알던 노아리젠 고모부와는 전혀 달랐다.
원래 지나치게 털털하고 사람 좋은 웃음으로 껄껄대던 남자였는데.
노아리젠 고모부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걸어오다가 복도에 서 있는 날 보고 깜짝 놀랐다.
“에릴로트?”
“안녕하세요, 고모부님.”
치마를 들어 올리며 우아하게 인사했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지?”
나는 블리젠을 만나러 왔다고 하려다가 멈칫했다.
‘미끼를 던져볼까.’
돈에 정말 혹하는지.
전당포에 돌아가신 아이사 고모님의 물건을 파는 게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니까.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블리젠 오라버니께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초대를 청했어요!”
“……물어보고 싶은 것?”
“이번에 플래티넘 메달(3세 서열 1위에게 수여되는 훈장)을 받아서 돈이 아주 많이 들어왔거든요.”
노아리젠 고모부의 눈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스쳐 지나갔다.
‘아들 밀어내고 1위 한 거니까 싫을 만도 한데…….’
아들 때문일까, 돈 때문일까.
나는 순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투자를 해볼까 싶은데……. 블리젠 오라버니는 플래티넘 메달을 수없이 받으셨으니까, 좋은 투자처를 아실까 해서요.”
그러자 고모부의 눈썹이 한번 치켜 올라갔다.
그러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아리젠 고모부는 평소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확실히 공작성에서는 못할 얘기구나. 2, 3세 모두에게 질투를 살 테니.”
“아무래도요.”
“하지만 잘못 찾아왔다. 블리젠은 그런 데엔 도통 재주가 없어서 관리는 모두 내가 한단다.”
걸려들었다!
“그렇군요…….”
“내 조언이라도 좋다면 듣고 가겠니?”
“정말요? 감사해요, 고모부님!”
뛸 듯이 기뻐하는 척을 하자, 노아리젠 고모부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아까 신경질적인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일단 좀 씻고 오마. 자다 깬 얼굴로 이야기하는 건 매너가 아니지.”
“네!”
서둘러 뒤돌아가는 노아리젠의 뒷모습을 보니 절로 눈가가 찌푸려졌다.
미끼를 가볍게 던졌을 뿐인데 그걸 홀라당 낚아챈다.
‘확실히 돈이 매우 급한 거야.’
처조카 돈까지 욕심내는 걸 보면.
저 욕심이 드글드글한 눈빛을 노아리젠에게서 처음 봐서 더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지?
가만히 노아리젠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내게 집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응접실로 모실까요?”
“응.”
나는 집사의 안내를 받고 응접실로 갔다.
겉은 평화로워 보이는데, 곳곳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칠이 벗겨졌음에도 불구하고 대충 못을 때려 박아 액자를 걸어놓은 벽.
갈라지고 마모된 부분을 대충 색칠해 가려놓은 테이블.
촛농이 떨어져 녹아내린 부분을 대충 다른 천으로 메꿔놓은 테이블 보.
‘뭐야. 얼마나 돈이 없는 거야?’
아무리 아이사 고모님이 돌아가셨더라도, 아스트라의 관할령이니 예산을 꼬박꼬박 챙겨 갔을 것이다.
다른 관할령 만큼 엄청난 금액을 받진 않더라도 이렇게까지 관리가 안 될 리는 없다.
그렇다는 건…….
‘횡령했다는 건데.’
그때였다. 방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블리젠이 들어왔다.
“에릴로트?”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려서, 난 헤헤 웃었다.
“안녕.”
“편지 보낸 지 한 시간이 안 된 것 같은데.”
“응!”
해맑게 대답하니 블리젠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의 차림은 단출했다. 아마도 방에 있었나 보다.
원래 블리젠은 여름에도 예복을 입을 만큼 잘 차려입고 다녔다.
그래서 이렇게 가볍게 입고 있는 블리젠의 모습이 익숙하진 않았다.
블리젠이 허탈하게 한숨을 쉬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왜 그렇게 우리 성에 오고 싶었는데?”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있고 해서. 또, 난 다른 관할성에 별로 가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어.”
응접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하자, 블리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잘 초청하지 않지. 관할성의 비밀이 새어 나갈까 봐.”
“응.”
대화 중에 집사가 차를 가져다주었다.
블리젠 앞에 한 잔.
내 앞에 한 잔.
향긋한 차의 향기가 응접실을 가득 메웠다.
분위기는 고요했다.
난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그의 경계가 풀어지도록 잡담을 걸었다.
“블리젠 오라버니는 여름에도 그렇게 입고 있잖아.”
“그래.”
“덥지 않아?”
“별로. 익숙해지면 외려 가벼운 차림이 더 어색해.”
“그런 것치곤 오늘 옷차림도 가벼운데?”
“밖에선 격식을 차리는 게 익숙하단 뜻이야. 성에선 나라도 편하게 지내.”
“성에선 뭐하고 지내? 블리젠 오라버니도 상급 교육실의 일원이니까 공작성엔 한 달에 몇 번만 가잖아?”
“넌 나한테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야.”
“응.”
말하자, 블리젠이 실소를 흘렸다.
“내가 알기로 너는 남에게 그리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맞는 말이라 난 움찔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관심 있어. 많아!”
“조프리의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넌 문병 한 번 가지 않았잖아?”
“그야, 조프리와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고…….”
“쥴리아나가 담벼락에 눈물 흘리는 초상화를 붙였다가 걸렸을 때 다들 그 얘기로 소란스러웠는데, 넌 끼지 않았고.”
“그건…… 우리 하녀가 그러는데, 어릴 땐 그럴 수도 있다고 했어…….”
“열네 살의 엘먼이 열일곱 먹은 하녀와 야반도주 하려던 그날. 공작성까지 찾아온 숙부님에게 엘먼이 얻어맞을 때도 너 혼자 하품하고 있었지 않나.”
“그땐…… 조, 졸려서?”
블리젠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좋아. 넌 친척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치지.”
“…….”
“그래서? 내게 뭐가 궁금한데?”
이렇게까지 나오면 말을 돌릴 수가 없다.
블리젠은 이미 내가 아이사 관할령에 온 것에 까닭이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으니까.
나는 찻잔을 들며 힐끔 블리젠을 쳐다봤다.
“노아리젠 고모부님 말이야. 최근에 어디 나가신 적 없어?”
나처럼 찻잔을 들려던 블리젠이 흠칫했다.
그 바람에 찻잔에서 물이 흘러넘치며 블리젠의 손등을 흥건히 적셨다.
“앗!”
나는 놀라서 얼른 블리젠의 손목을 잡았다.
찻물이라 그렇게 뜨겁진 않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깐.
탁!
블리젠이 내 손을 매섭게 뿌리쳤다.
‘어?’
뭐야.
블리젠이 이렇게 누가 자기 몸에 닿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나?
아닌데.
그렇다면 자고 있을 때, 하녀가 다가가는 것도 싫어했어야지.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건.
뿌리쳐진 나보다 뿌리친 블리젠이 더 놀란 표정이었다.
‘……뭐야.’
순간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흐트러져 있던 생각들이 퍼즐처럼 착착착, 끼워 맞춰졌다.
<이동>의 가호가 없는 노아리젠이 나간 흔적도 없이 황도에 갈 수 있었던 이유.
노아리젠은 마법사이다.
그런 그에게 <이동>의 가호를 가진 아들이 있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블리젠의 팔을 확 끌어당겼다.
“이거 놔!”
블리젠은 당황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오라버니나 가만히 있어!”
옥신각신하며 블리젠의 팔을 잡아당겼는데, 내가 여자아이라 블리젠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나는 얼른 블리젠의 소매를 걷었다.
얇고 단출한 복장을 하고 있던 터라 소매가 잘 걷어졌다.
그래서 드러난 맨팔엔…….
‘맙소사.’
나는 블리젠의 팔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미간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블리젠의 말처럼 나는 그다지 사촌들에게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아니라면.
난 화를 참느라 뻣뻣해진 말투로 말했다.
“여름에도 매번 예복을 입고 다닌 거, 재킷 때문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블리젠은 시치미를 뚝 뗐지만 나는 알아채 버렸다.
“셔츠만 입으면 행여나 이게 비칠까 봐서.”
“별거 아니니까…….”
“뭐가 별 게 아니야. 그게─!”
자꾸만 아니라고 하는 블리젠의 행동에 화가 나서 인상을 왈칵, 찌푸리며 소리쳤다.
내가 소리치자 블리젠은 눈을 홉떴다.
블리젠의 팔은 그야말로 눈 뜨고 볼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얼마나 실험을 거듭했는지, 땅이 갈라진 것처럼 쩍쩍 갈라진 피부.
쩍쩍 갈라진 피부 틈으로 언제 새어 나온 건지 모르게 말라비틀어져 있는 피딱지들.
그리고 못 움직이게 팔을 묶어 놓은 건지, 팔꿈치 쪽으로 선명하게 나 있는 벨트 자국.
하녀가 다가갔던 그 날.
그는 알면서도 가만히 놔둔 게 아니었다.
실험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었던 거지.
‘하녀를 뿌리칠 힘도 없었던 거야.’
평소 나른해 보이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노아리젠이 실험한 거지? <이동>의 가호석을 만들려고.”
“아니야.”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떼던 블리젠은 뚫어지게 자기를 바라보는 내 눈을 얼른 피했다.
“결국 만들어내서 기록 없이 황도를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던 거야.”
“아니라니까.”
“어떻게 자기 자식한테……!”
나는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고 말했다.
블리젠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 손을 보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지친 표정이었다.
“이제 가. 난 좀 쉬어야겠으니.”
나는 응접실을 나가려는 블리젠의 팔을 끌어당겼다.
“뭐 하는…….”
“가자. 나랑 같이 가.”
“…….”
“우리 성에 가.”
블리젠이 말없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때, 노아리젠이 응접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들어오던 노아리젠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한 노아리젠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블리젠 오라버니를 저희 성으로 데려가도 될까요?”
“블리젠을? 왜?”
노아리젠이 눈을 홉뜨며 물었다.
“오라버니가 연평가에서 절 도와줬거든요. 아빠가 고맙다고 보답하신댔어요.”
“보답?”
“네. 함께 식사하고, 줄 것도 있다고…….”
나에 대한 아빠의 유난한 애정은 유명했다.
날 도왔으면 큰 보답을 하겠지.
잠시 무언갈 골똘히 생각한 듯한 노아리젠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블리젠. 동생과 함께 다녀와라.”
“…….”
“블리젠.”
노아리젠이 엄하게 다그치자, 블리젠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노아리젠은 블리젠을 보던 눈을 거두고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투자 얘기를 해도 될까?”
“죄송해요. 다음에 들을게요. 아빠가 급하게 찾으셔서.”
“혹시 블리젠에게 줄 것 때문에……?”
저 혼자 착각도 잘하네.
“아무래도요.”
입꼬리를 올리며 생긋, 웃자 노아리젠은 화통하게 웃곤 나와 블리젠을 보내줬다.
* * *
데이몬드 관할성.
블리젠을 끌고 중정으로 들어가니 가족들이 다 모여 있었다.
나와 함께 온 블리젠을 보고 발자크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뭐야? 블리젠이 여길 왜 와?”
요슈아는 블리젠은 보지도 않고 날 향해 다정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아빠는 블리젠의 손목을 잡은 날 가만히 뚫어지게 쳐다봤다.
“일단 들어와라.”
아빠는 몸을 돌려 서재로 들어갔고,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던 쌍둥이도 곧장 따라 들어갔다.
나는 굳어있는 블리젠을 끌어당겨 나란히 서재로 들어갔다.
블리젠을 의자에 앉히고 소매를 걷으려는데, 블리젠은 나에게 잡힌 손목을 비틀어 뺐다.
“가만히 있어.”
“이거 놔.”
이젠 제법 힘도 준다.
아까는 다칠까 봐 뭘 어쩌지도 못하더니.
하지만 여기는 지금 내 영역이라고.
“아빠! 오라버니들!”
소리치자 세 부자가 동시에 블리젠에게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빠르기도 하다.
“놓으라니까요, 외숙부님!”
“가만히 있어.”
“발자크! 요슈아!”
“에릴이 소매만 올려보자고 하잖아.”
“제압할까?”
소매를 걷으려는 자와 걷히지 않으려는 자.
나는 네 명이 옥신각신 다투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블리젠의 눈에 안광이 생겼다.
‘이동의 가호다.’
블리젠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천재다.
도망치려고?
하지만 여기가 어디냐. 데이몬드 관할령이란 말씀이지.
즉, 데이몬드 아스트라가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산전,
정말로 수전,
진짜로 해전,
진실로 공중전까지.
두루 섭렵한, 과일 지도를 그리고 온 아스트라 인증의 광견이 있다 이 말이야.
블리젠의 안광이 빛나기 무섭게, 아빠가 먼저 가호를 시전했다.
아무리 천재적인 힘을 가진 블리젠이라 해도 아빠를 이기긴 힘들걸?
시전 속도에서부터 월등한 차이가 났기 때문에, 블리젠은 뭘 해보기도 전에 가호가 가로막혔다.
아빠가 블리젠의 마력이 단전에 전달되기 전에 <분해>해버린 것이다.
“윽!”
그리고 결국, 블리젠의 소매가 끌어올려졌는데.
“…….”
“미친.”
“이게 뭐야.”
의자 뒤에서 블리젠의 양팔을 잡고 있던 아빠.
블리젠의 팔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던 요슈아.
소매를 걷어 올린 발자크까지.
블리젠의 몸 상태를 본 가족들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이미 한번 본 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블리젠은 내게 나쁜 기억이 없는 사람이다.
오히려…….
“블리젠, 왜 여기 앉아?”
“자리 맡아 놓은 거야?”
“그건 아니지만……. 내가 달리아를 죽이려고 했다는 얘기 못 들었어?”
“정말 죽이려고 했어?”
“아니야.”
“아니면 됐지.”
“……달리아가 나 때문에 다쳤다니까? 너희가 목숨처럼 여기는 달리아 말이야.”
“수업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