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68)
이 3세는 악역입니다 68화.(68/390)
68화.
아닌 척했지만, 그때 나는 위로받았다.
난 좋은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나쁜 사람이지.
내 목적을 위해서 옳지 않은 방식을 맘껏 쓰니까.
하지만 나는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은혜를 입었을 때 보답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나는 양손을 허리춤에 붙이고 씩씩대며 말했다.
“노아리젠은 개X끼예요!”
블리젠, 그때 받은 위로는 0을 3개쯤 붙여서 돌려줄게.
* * *
아이사 관할령.
노아리젠에게 서신이 한 통 왔다.
서신에는 데이몬드 관할령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데이몬드가?’
노아리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편지 봉투를 죽, 뜯었다.
[블리젠의 가호는 뛰어나더군.백수정 유통에 블리젠의 가호를 쓴다면 큰 도움이 될 듯싶다.
유통 마진을 떼어줄 테니, 블리젠을 이쪽에 붙여라.
블리젠은 동의했으니, 보호자인 네 허락만 있으면 일을 시작할 것이다.
당분간은 데리고 있으면서 백수정 유통에 도움이 되도록 가호를 개량할 생각이다.
이 제안을 너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허락하는 게 신상에 좋을 것이다.
-데이몬드 아스트라]
무례하기 짝이 없는 편지였다.
편지를 곱씹던 노아리젠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통 마진을 떼어준다고?’
블리젠 녀석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야 그럴 것이다.
블리젠이 가호를 발현했을 적엔 그도 매우 놀랐으니까.
<이동>의 가호는 매우 특별했다.
30킬로그램 이하의 물건을 이동할 수 있는 <텔레포네이션>이라는 가호를 가진 자는 소수이지만 존재했다.
하지만 90킬로그램 이하의 물건은 물론 사람도 옮길 수 있는 <이동>의 가호는 한 세기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하는 특별한 힘이다.
거기다 블리젠은 가호의 에너지원인 마력도 높지, 받쳐줄 공격형 가호도 있지.
그야말로 노다지나 다름없는 재능이었다.
거기다가…….
‘지 어미를 닮아서 마음이 약하지.’
아닌 척해도 속은 맹탕이다.
자신이 애걸복걸하면서,
“블리젠, 내 아들. 네가 아니면 나는 정말 괴로웠을 것이다.”
“…….”
“네 엄마가 그렇게 되고 나서 우리는 아스트라에서 대우도 못 받았지. 그런 네가 서열권에 들다니. 이 아비는 네가 정말 대견하구나.”
“…….”
“블리젠, 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이 아비는 설 곳이 없어…….”
“…….”
“이 아비를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정말 딱 한 번만 도와줄 수 없겠니.”
그런 말들에 블리젠은 언제나 순순히 팔을 내주었다.
어미도 정에 약하더니, 아들도 이용해 먹기에 이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노아리젠은 히죽히죽 웃으며 편지를 접어 다시 편지 봉투에 넣었다.
‘가만있자……. 블리젠이 백수정 유통에 붙는단 말이지?’
노아리젠에겐 아주 좋은 일이었다.
그는 블리젠에게서 가호를 추출해 이동의 가호석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 문제는 백수정이지.’
백수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고가였다.
그런 백수정을 실험에 쓰기 위해 얼마만큼의 자금이 필요했던가.
아이사 관할령의 자금을 깡그리 써서야 겨우 실험을 마무리하고 시제품 4개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이동의 가호석을 더 만들기 위해선 백수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마침 블리젠이 데이몬드 관할성에 들어갔으니…….
‘빼돌릴 수 있겠어.’
그 녀석은 이래저래 쓸 데가 많았다.
노아리젠은 비죽 입꼬리를 올리며 펜을 들었다.
[블리젠의 능력이 도움이 된다니 감사한 일입니다.데이몬드 관할령의 성장은 나아가 아스트라의 부흥으로 이어지겠지요.
무엇보다 블리젠이 존경하는 데이몬드 형님과 함께 일을 한다는 점이 대단히 흡족합니다.
형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 아스트라의 자랑스러운 혈족이 되도록 지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노아리젠 드림]
편지를 작성한 후, 집사에게 데이몬드 관할령으로 전달하라 명했다.
그 후, 노아리젠은 데이몬드가 보낸 편지를 힐끗 쳐다봤다.
‘데이몬드. 정말이지 시건방진 놈이야.’
편지를 서랍에 잘 넣어둔 노아리젠은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 * *
며칠 후.
노아리젠은 황도로 이동했다.
약속한 장소에 도착한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의자에 앉아 상대를 기다렸다.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도착한 지 한참이 되도록 상대는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도통 약속을 지킬 줄 몰라.’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던 때가 돼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상대가 나타났다.
옷이 몸에 꽉 낄 정도로 근육질의 남자였다.
머리에 쓴 중절모만 아니었으면 귀족인 줄도 몰랐을 행색이었다.
노아리젠은 들고 있던 물컵을 테이블에 쾅! 내려놨다.
그러곤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소리쳤다.
“약속 시간에서 30분이나 지났어! 탈로스 백작!”
탈로스 백작은 어색하게 웃으며 중절모를 벗었다.
“오는 길에 문제가 생겨서…….”
“가호석만 쥐고 있으면 <이동>할 수 있는데,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야?”
노아리젠이 고함을 치자, 탈로스 백작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내 말 좀 들어봐. 너도 좋아할 테니까.”
“대체 뭔데 그래.”
“막 출발하려는데 웬 남자에게 연락이 왔더라고.”
“연락?”
“그래. 그 남자가 <이동>의 가호석을 사겠다고 했단 말이야!”
탈로스 백작이 잔뜩 흥분한 채로 말하자 노아리젠은 미간을 좁혔다.
“……뭐?”
“우리 생각했던 금액의 두 배를 제시했어.”
“그만한 돈을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텐데……. 정체가 뭐지?”
“타국의 대귀족이라더군. 신분은 거래 전에 밝힌다고 <이동>의 가호석을 준비해두라더군.”
“신분이 확실하지 않다고? 대체 무슨 소리를……!”
“선금으로 20억을 제시했어.”
“뭐, 뭐?”
“확인할 수 있도록 <이동>의 가호석 10개만 먼저 보여준다면 그 자리에서 20억을 내주겠다고 했단 말야.”
확실히 탈로스 백작의 눈이 뒤집힐 만한 돈이었다.
그나, 자신이나 이제 아무리 박박 긁어도 돈 나올 구석이 없었으니까.
노아리젠은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쪽에서 우리가 <이동>의 가호석을 제작한 걸 어떻게 안 거지…….”
탈로스 백작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아니니 얘기가 샌 곳이라면 하나 아니겠어?”
“황제?”
“몇 달 전에 금강회(왕들의 회합)였잖아. 좋은 정보를 주고 뭐 하나 얻어왔을 수도 있지.”
탈로스 백작을 중앙탑에 입성시키기 위해 <이동>의 가호석으로 거래를 제시했다.
그의 입에서 가호석의 이야기가 나갔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확실히…….’
이동 범위가 제한되어 있고,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제한되어 있었다.
더욱이 황궁 같은 강력한 결계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황제 입장에서는 타국에서 <이동>의 가호석을 소유해도 위험할 일이 없다.
정보 자체는 귀하지만, 황제 입장에선 넘겨도 아쉬운 것 없는 정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영 불안한데.’
노아리젠이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게 이렇게 일찍 퍼지면 안 될 일이라고……. 이제 아스트라 공작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 문제라는 거잖아.”
“늙은이의 귀에 들어가 봐야 뭐 하겠어.”
“뭐라니? 난 아이사 관할령의 자금은 착복한 데다가, 블리젠을 실험해서 가호석을 만들었어. 그게 공작의 귀에 들어가면─!”
“그러니까 그 돈만 메꿔두면 된다는 거잖아. 네 아들의 입이야 언제나처럼 매달리면 해결이 될 테고.”
“…….”
“이번 일만 잘 풀리면 연말에 감사가 있기 전에 그 돈을 다 메꿀 수 있어. 그리고 아스트라를 떠나면 되지.”
“…….”
“거기다 어차피 황제와 약속한 <이동>의 가호석 30개도 맞춰야 하잖아.”
“…….”
“내가 중앙탑에 들어가고, 거부까지 되면 누가 우리를 건드릴 수 있겠어?”
노아리젠은 한미한 자작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점점 기울어가는 가세 때문에 궁핍하게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만난 공작의 딸 덕분에 인생이 폈다.
하지만 그 딸이 죽어 버리는 바람에 이제 아스트라에 구걸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래. 이 가호석만 잘 팔아넘기면…….’
평생 호의호식할 돈과 권력이 손에 들어온다.
“언제까지 준비해야 하지?”
“다음 주.”
“다음 주?! 그리 급하게 말야?”
“저쪽은 타국의 사람이니 그리 오래 제국에 머물 순 없겠지. 한데 문제는…….”
탈로스 백작이 힐끔 노아리젠을 쳐다봤다.
“백수정이 있어야 <이동>의 가호석을 제작할 수 있다는 거야.”
천문학적 단위의 백수정을 대체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실험 비용과 시제품 제작비용을 댄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휘청이고 있었다.
노아리젠이 말했다.
“백수정을 구할 방법은 있어.”
“있다고?!”
“내 아들이 데이몬드 관할령에서 백수정 유통을 돕게 되었어.”
“빼돌릴 수도 있다는 말이로군!”
“하지만 경비가 매우 삼엄할 거다.”
탈로스 백작은 흥분해서 말했다.
“우리에게 <이동>의 가호석이 있는데, 그깟 경비쯤이야!”
“…….”
“네 아들이 일을 돕고 있다면, <이동>할 수 있도록 결계를 펼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
노아리젠은 팔짱을 낀 채로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하지만 침입할 사람은 어떻게 구하지? 데이몬드 관할령에서 물건을 훔쳐 오는 일이라면 용병들도 쉽게 나서지 않을 텐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무뢰배들에게 <이동>의 가호석을 쥐여주면 어떻게 할 줄 알고.”
“…….”
“이런 귀한 걸 주면 단박에 도망칠 테지. 우리끼리 가서 얼른 빼 오자고.”
노아리젠은 침음을 흘렸다.
탈로스 백작은 가문의 격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백작가의 귀하신 도련님으로 자랐다.
한미한 자작가의 셋째로 어려서부터 고생해본 저와는 다르다.
진짜 위험한 것이 뭔지, 그는 모른다.
이 단순한 점이 귀여웠지만.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선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지.’
아스트라의 돈을 착복하고, 아들을 실험해서 ‘<이동>의 가호석’이라는 귀한 것을 얻었다.
한 발만 더 나간다면…… 그렇다면…….
‘아스트라의 놈들의 졸개로 살던 때와는 판이 달라진다.’
노아리젠의 눈빛이 번뜩였다.
“좋아. 일정을 잡아서 알려주지.”
“역시 화끈하다니까!”
탈로스 백작이 껄껄 웃었다.
* * *
며칠 후, 아이사 관할성.
노아리젠이 아들 블리젠을 호출했다.
하나 있는 부모의 말이라면, 어지간해선 들어주는 아들은 이번에도 순순히 호출에 응했다.
블리젠을 마주한 노아리젠이 눈썹을 늘어뜨렸다.
“왜 이리 수척해. 데이몬드 관할령에선 널 먹이지도 않고 일을 시키는 거야?”
“……아닙니다.”
블리젠은 고저 없는 투로 대답했다.
노아리젠은 그런 아들의 손을 잡았다.
“항상 그러지 않았어. 아비는 너까지 잘못되면 죽는다고.”
“…….”
“네 몸이 내 목숨이라고 생각하고 잘 챙겨라. 응?”
노아리젠은 다정다감하게 말하며 블리젠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그러곤 어깨를 한 손으로 툭툭 두드린다.
블리젠은 이제 이럴 때면 아버지가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정하면 다정할수록 큰 걸 바라시지.’
오늘은 유난히 정도가 과한 걸 보면, 엄청난 것을 요구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노아리젠은 블리젠을 은근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그러나 매우 다정한 투로 말했다.
“혹시 백수정이 어디에 보관되었는지 알고 있니?”
블리젠은 눈을 순간적으로 찡그렸다.
“모릅니다.”
아들의 표정을 살피는 데엔 선수나 다름없는 노아리젠이다.
‘아는군.’
하여간, 정 준 사람한테는 맹탕인 녀석이다.
남에겐 그리 표정을 잘 숨기는 녀석이 제 아비 앞에선 삐끗할 때가 있었다.
노아리젠은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좌표만 좀 알아봐 줄 수는 없겠니?”
“모른다고 했잖아요.”
노아리젠이 아들 손을 덥석 잡았다.
그가 한껏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더는 이렇게 키우고 싶지 않아서 그래.”
“…….”
“다른 아스트라 혈족들은 부모가 받쳐주고 밀어주는데, 이리 뛰어난 내 아들에게 난 아무것도 해줄 게 없어서…….”
“…….”
노아리젠은 블리젠의 손을 더욱더 힘주어 잡았다.
“너도 알겠지만, <이동>의 가호석을 제작하는 데에 성공했어. 이제 팔기만 하면 큰돈이 될 거야.”
“포기하세요.”
“블리젠.”
“아버지가 관할령의 자금을 착복하신 걸 지금까지는 제가 어떻게든 숨겨왔지만, 연말 감사까진 속일 수 없어요.”
“그러니까!”
“…….”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백수정으로 <이동>의 가호석을 만들어야 그 돈을 채워 넣을 수 있지.”
“아버지.”
“백수정은 돈을 벌어서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그만이야. 응? 도와줄 수 없겠니?”
“…….”
블리젠은 눈을 내리깔고 침묵했다.
데이몬드 관할령에서─
“노아리젠은 개X끼예요!”
─하며 자신 대신 씩씩대던 에릴로트가 떠올랐다.
데이몬드 관할령에서는 자신을 매우 잘 챙겨주었다.
그곳 사람들은 아닌 척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친절이 배어있었다.
‘사랑하는 막내딸에게 하던 행동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의 부친은 그 어느 구석에도 무의식적인 친절이 배어있지 않았다.
노아리젠이 간절한 얼굴로 블리젠을 설득했다.
“사람은 힘이 있어야 해. 그래야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잃지 않는 거다.”
“아버지.”
“그래!”
“누가 그러더라고요. 작은 것에 익숙해지면 언젠가는 선을 넘고 만대요.”
“뭐?”
“너무 멀리 갔을 때 알게 되면 돌이키기 힘들어지고요.”
“무슨……. 블리젠,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블리젠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노아리젠은 당황했다.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설마 지금에서야 반항할 생각이 든 건가?’
걱정하고 있던 그때, 블리젠은 한숨을 내쉬었다.
“좌표를 확인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그래! 잘 생각했다!”
노아리젠은 아들의 어깨를 토닥였다.
.
.
블리젠이 돌아가고 며칠 뒤.
드디어 블리젠에게 쪽지가 도착했다.
반항하려는가 싶었을 때는 심장이 철렁했지만, 결국 아들은 그 어미의 자식이었다.
무르기 짝이 없다.
노아리젠이 쪽지를 힘주어 쥐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내 상승가도의 열쇠란 말이지.’
곧바로 탈로스 백작에게 연락했다.
결행은 블리젠이 사람 없을 거라고 했던 이틀 후 새벽 1시.
‘이제 행복하게 떵떵거리고 살 일만 남았다.’
그 아스트라 놈들이 제 발 아래에서 쩔쩔매는 것을 보고 말리라.
아스트라 공작에게 성격 좋은 순애보남 행세하느라 못했던 것들을 죄다.
보석이 잔뜩 박힌 옷.
값비싼 보석.
이런 낡은 관할성이 아닌 호화로운, 최신 유행하는 인테리어의 저택.
‘다 누리고 살 거야.’
* * *
그렇게 결행일.
그래서 노아리젠은 탈로스 백작과 각각 움직이기로 했다.
<이동>의 가호석 하나로 옮길 수 있는 무게는 90킬로그램으로, 성인 두 사람을 옮기기엔 무리였기 때문이다.
약속한 시각에 맞춰서 가호석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자, 보이는 건 온통 새카만 어둠뿐이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준비해놓으라니까 뭐 하는 거야.’
노아리젠이 말했다.
“랜턴 좀 켜봐. 보이는 게 있어야 뭘 하지.”
그는 눈을 찡그리고, 이리저리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이봐.”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뭐야. 아직 이동을 안 했나?’
하여간 굼뜨다니깐.
노아리젠은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읊조렸다.
주머니를 더듬더듬 뒤져서, 궐련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라이터를 찾았다.
탁, 탁, 몇 번 버튼을 누르자, 조그만 불씨가 생겼다.
시야 확보는 잘 안 되지만, 그래도 물건쯤은 잘 보였다.
“이야…….”
선반에 깔린 엄청난 백수정.
노아리젠은 신나서 가져온 주머니를 꺼냈다.
‘이제 난 부자야. 부자라고!’
콧노래를 부르며 백수정을 마구잡이로 집어 담았다.
그때였다.
“으극!”
어딘가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