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69)
이 3세는 악역입니다 69화.(69/390)
69화.
노아리젠은 절로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
“탈로스 백작?”
겁먹은 노아리젠은 조그만 불이 켜진 라이터를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비춰보았다.
“장난하지 마. 화낼 거야.”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더 이상 들려오는 소리가 없었다.
겁에 질린 노아리젠이 소리쳤다.
“자기야!”
부르기 무섭게 정면에서 나타난 얼굴은…….
“허억─!!”
노아리젠은 주머니를 놓치고 주저앉고 말았다.
왜냐면 이 얼굴은……!
“아, 아버님…….”
아스트라 공작이었으니까!
그 순간, 불이 확 켜졌다.
노아리젠은 갑작스러운 커다란 불에 눈을 있는 힘껏 찡그렸다.
곧 빛에 익숙해진 눈을 슬며시 뜨자, 자신이 있는 곳이 보였다.
선반이 놓여있긴 하지만 광활한 곳이었다.
‘이, 이곳은……!’
데이몬드 관할성의 중정이었다.
중정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들을 본 노아리젠은 사색이 되어 입만 벙긋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모인 면면들이 죄다 엄청났기 때문이다.
아스트라 공작.
데이몬드 아스트라.
발자크 아스트라.
요슈아 아스트라.
그리고…… 블리젠까지.
블리젠의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 사람은 에릴로트였다.
뿅! 하고 나타난 에릴로트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자기야?”
* * *
나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
왜 탈로스 백작 같은 놈이랑 붙어먹나 했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거든.’
노아리젠이 손잡은 상대가 탈로스 백작일 이유가 없으니까.
더 대단한 가문이 많은데, 왜 황도에 터를 잡은 것 외엔 별 볼 일 없는 탈로스를 선택했겠는가?
영지는 저 시골 쪽에 있는데, 농사를 짓기에도 어려운 땅.
돈이 없는데 욕심은 많아서 영지민을 핍박하니, 한 해에도 봉기가 수없이 일어난다.
그래서 황도 저택을 건사하기도 힘든 가난한 가문.
‘노아리젠이 그런 탈로스와 왜 접촉했는지가 의문의 시작이었지.’
이제 보니 알겠다.
둘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서 함께 나쁜 짓을 한 거다!
노아리젠이 중정의 바닥에 쿵! 소리가 나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엉금엉금 할아버지한테 기어갔다.
“아, 아버님. 아버님!”
할아버지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예기가 실린 눈은 금방이라도 가호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다.
얼굴이 희멀게진 노아리젠이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오, 오해입니다. 오해가 있습니다!”
‘멍청이.’
<이동>의 가호석으로 데이몬드령에 몰래 들어온 순간부터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거기다가 백수정을 마구 훔치던 중에 들켰으니…….
할아버지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백수정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와서, 백수정을 자루에 담았다. 여기까지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나.”
노아리젠은 시체처럼 파리한 얼굴로 떠듬떠듬 말했다.
“그, 그게…….”
할 말 없겠지.
사실만 딱, 딱, 짚어줬는데.
이제 문제는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다.
‘그러니까 분명히 교묘하게 사실을 틀 거란 말이지.’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말입니다. 브, 블리젠을 지원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던 터라─”
저 벼락 맞을 놈.
‘블리젠을 그렇게 이용해 먹더니 핑계로까지 써먹어?’
나는 노아리젠이 말을 미처 다 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자기야.”
쿵!
내 말에 노아리젠은 바위라도 맞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꿀꺽.
노아리젠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중정을 울렸다.
고요한 적막이 흐를 때.
노아리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오해가, 탈로스 백작은……!”
“자기야.”
노아리젠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어깨가 와들와들 떨린다.
손마저 벌벌 떨던 그가 이내 양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자기야.”
나는 속으로 히죽 웃었다.
‘탈로스 백작과의 사이가 탄로 날까 봐 변명조차 떠오르지 않지?’
폭탄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자, 노아리젠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나는 블리젠의 뒤에서 사뿐사뿐 걸어 나와 노아리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며 순진한 표정을 하고 물었다.
“자기는, 연인일 때 쓰는 말이죠? 그렇죠? 왜 탈로스 백작님이 고모부의 ‘자기야’예요?”
“아니, 아니야. 친구 사이의 호칭일 뿐……!”
“그런데 고모부는 왜 백수정을 가지러 와서 친구 이름을 불러요?”
‘자기야’에 집중해서 중요한 걸 간과했지?
천문학적 금액이긴 하지만, 물건을 훔치는 건 그렇게 죽을죄는 아니다.
더더군다나 ‘아들을 위해서 더러운 짓까지 했다’라고 변명한다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터.
‘하지만 거기에 탈로스 백작이 딱 엮이고 말았지.’
그건 가문을 배신한 일이다.
‘차라리 탈로스 백작과의 사이를 완전히 부정했어야지, 바보야.’
하지만 내가 ‘자기야’로 자극해서 결국 친구라는 말까지 이끌어내 버렸다.
노아리젠의 얼굴은 노래졌다가 하얘졌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는 모양이다.
“친구랑 백수정을 훔치러 왔어요?”
“그, 그건……!”
“왜? 친구에게 주려고?”
“아니야! 아니라고!”
노아리젠의 손과 발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그가 변명을 떠올리려는 듯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그렇게 둘까 봐?’
나는 고개 갸웃하다가 이내 알아차렸다는 듯이 짝! 손뼉을 쳤다.
“아! 혹시 탈로스 백작에게 협박당했나요?”
“뭐?”
“협박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죠?”
궁지에 몰린 사람은 머리가 굳는 법이다.
그럴 때 작은 통로가 열리면 어떻게 될까.
“그, 그래!”
대다수의 경우 그곳으로 덥석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게 낭떠러지란 것까지 계산할 겨를도 없이.
‘이런 경우는 보좌관일 적에 숱하게 겪어봤단다.’
노아리젠은 내가 열어준 통로로 결국 완벽하게 들어섰다.
왜냐면 그가 결심한 듯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거든.
“탈로스 백작이 제 약점을 잡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발자크가 실소를 터뜨렸다.
“고모부가 가문의 재산인 백수정을 빼돌리려고 한 건 모두 탈로스 백작 놈의 탓이다?”
“그…… 그래.”
요슈아는 나른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덧붙여 말했다.
“탈로스 백작이 감히 아스트라의 사람을 협박해서.”
“……맞아.”
노아리젠은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으음.” 하며 말했다.
“그러면 탈로스 백작에게 죄를 물어야겠네요?”
“그……렇지.”
“아스트라의 단죄 방식은 평범한 곳과 다르다는 걸 아시잖아요. 지금 당장 탈로스 백작에게 살수가 갈 텐데? 괜찮으세요? 친구라면서?”
“그렇다니까!”
노아리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마자 얼굴을 딱 굳힌 난 말했다.
“데려와.”
내 말에 군사들이 한 남자를 질질 끌어냈다.
당연히 탈로스 백작이었다.
“……!”
노아리젠은 뻣뻣하게 굳어졌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죄를 연인에게 뒤집어씌우고 본인만 빠져나가려고 한 거잖아?’
탈로스 백작은 노아리젠을 찢어 죽일 듯 노려보았다.
“노아리젠…… 어떻게 네가…….”
“…….”
노아리젠은 어버버거릴 뿐 말 한마디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쩔래? 이제 탈로스 백작은 범인뿐만이 아니라 증인도 되었는데.’
네가 한 짓에 대한 모든 것을 이 탈로스 백작이 증언하겠지.
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아리젠을 쳐다보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고발할 게 하나 더 있어요.”
일시에 모든 사람이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나는 블리젠의 소매를 걷어 보였다.
“저들이 쓴 <이동>의 가호석은 블리젠을 끔찍하게 실험해서 만든 거예요.”
할아버지가 지독한 흉이 진 블리젠의 팔을 지그시 응시했다.
한참 팔을 본 후에야 시선을 들어 블리젠을 쳐다본다.
“…….”
“…….”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노아리젠은 여전히 쓰레기였다.
“제발, 블리젠, 제발……!”
제가 낸 이 끔찍한 흉을 눈으로 봤을 텐데도 블리젠에게 상황을 수습해달라고 애원하는 꼴이라니.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이 노아리젠을 금수 보듯이 쳐다봤다.
난 블리젠의 소매를 잡았다.
“말씀드려.”
“…….”
“블리젠 오라버니, 평생을 이렇게 살 순 없어.”
“…….”
“아무리 견뎌도 오라버니의 마음은 보답받지 못할 거야. 그토록 값진 마음을 저런 악귀에게 쓰지 마.”
“…….”
중정이 고요해졌다.
블리젠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난 그의 손을 양손으로 꼭 잡은 채로 말했다.
“오라버니.”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던 블리젠은 눈을 꽉 감았다.
그리고 얼마 뒤.
“에릴로트의 말이…… 맞습니다.”
블리젠은 용기를 내주었다.
“오라버니!”
“블리젠─!!”
나는 기뻐서 소리쳤고, 반면에 노아리젠은 절망 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할아버지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아, 아버님, 제 말을, 제발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모두 아스트라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예!”
“네가 아이사 관할령의 자금을 착복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
“그런 널 놔두었던 건, 블리젠이 제 아비를 두둔하기 위해 필사적이었기 때문이야.”
“아, 아버님…….”
할아버지는 탈로스 백작을 쳐다봤다.
“목숨만은 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네 입으로 네 놈들이 벌인 짓을 토설해라.”
노아리젠은 홱! 고개를 돌려 탈로스 백작을 쳐다봤다.
간절한 시선이었지만, 탈로스 백작은 입매를 우그러뜨렸다.
“저와 노아리젠은 아이사 님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만나고 있었습니다!”
“헛소리! 헛소리입니다, 아버님!”
“제가 미쳤다고 아스트라에게 이런 짓을 했겠습니까? 절 꼬드긴 건 노아리젠입니다.”
“닥쳐!”
“<이동>의 가호석을 만들자고 한 것도, 그것을 황제 폐하께 바쳐서 중앙탑에 입성하자고 한 것도 모두 저놈이란 말입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
“<이동>의 가호석을 만들기 위해 아이사 님의 유품을 다 내다 판 것도 저 자식입니다!”
“닥쳐! 닥치라고!”
“아이사 님의 생전부터 우리가 만나왔다는 증거는 제가 수두룩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제발 그 입 닫아─!!”
노아리젠은 고함을 내질렀다.
탈로스 백작은 그런 노아리젠은 신경도 안 쓰고 죄를 줄줄이 불고 있었다.
나쁜 놈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였다.
할아버지는 탈로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주, 아주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내 자식의 성에서, 내 자식의 돈으로, 내 자식이 이룬 모든 것을 누리면서, 내 자식의 아이에게마저 그런 짓을 하였구나, 너는.”
“아, 아버님…….”
할아버지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짓씹듯 말했다.
노아리젠은 발발발 떨면서 살려달라고 손을 싹싹 빌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발……. 비, 비록 미친 짓을 했지만 저는 블리젠의 아비입니다. 아이사가 죽을 때까지 간병한 것도 모두 접니다……!”
“염려하지 마라. 죽이지 않을 것이야.”
노아리젠의 얼굴에 일순 화색이 돌아왔다.
물론 할아버지가,
“죽여달라 애원하게 만들 것이지.”
─라고 말하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노아리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 * *
어스름한 새벽.
죄인의 호송마차는 아침에 도착하기로 했다.
모든 사람이 다 보는 데에서 노아리젠을 끌고 가기 위함이었다.
‘가는 길조차 쉽지 않을 거라는 엄포지.’
노아리젠은 이제 할아버지 손에 죽었다.
하지만 나는 통 잠이 오지 않아서 밤새 침대에서 몸을 뒤척였다.
‘노아리젠, 그놈이 떠나는 걸 봐야 잠이 올 것 같…….’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야, 에릴로트.”
블리젠의 목소리였다.
나는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블리젠?”
“응.”
“무슨 일이야?”
“……지하에 들어가고 싶은데. 데이몬드 관할령 주인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해서.”
‘지하’라는 말에 블리젠이 무엇을 하려는 지 바로 알아차렸다.
지하엔 노아리젠이 있다.
그를 만나러 가려는 것이다.
“가지 않는 게 좋을 텐데.”
“가고 싶어.”
나는 블리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블리젠을 데리고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아직 어두웠다.
‘조금 무서운데.’
블리젠을 혼자 가게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다 내려가니 창살로 막혀있는 으스스한 분위기의 방이 있었다.
창살 안에는 노아리젠이 있었다.
쪼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던 노아리젠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블리젠……!”
블리젠을 본 노아리젠은 황급히 엉금엉금 기어와 창살에 매달려 말했다.
“살려줘. 살려다오! 네가 얘기를 잘 해줘. 아니라고, 너와 합의된 실험이었다고! 난 아스트라에 대한 충심으로 어쩔 수 없이 널 실험한 거라고……!”
블리젠이 말이 없자, 노아리젠은 더 처절하게 매달렸다.
“어쩔 수가 없었어. 나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지 않니!”
“…….”
“처음에 네 엄마를 사랑했다는 건 진짜야!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기억하지?”
“…….”
“내가 오죽했으면 네게 그런 짓을 했겠어. 이건 다 너를 키우려고……! 그래! 탈로스 백작을 만난 것도 다 너를 위해서야……! 네가 크면 중앙에 갈 테니까, 끈을 만들어두려고……!”
이제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까지 하고 있었다.
가스라이팅의 대명사 노아리젠은 애원하면서도 가스라이팅을 잊지 않는다.
“내가 이 아스트라에서 널 키우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넌 몰라. 그래서 난……!”
나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경비병에게 열쇠를 빼앗아와서 창살 문을 열었다.
노아리젠의 얼굴이 밝아진 그 순간.
뻥!
그를 힘차게 걷어찼다.
노아리젠은 한차례 고신을 당했던 터라 어린애가 찼는데도, 힘없이 널브러졌다.
“무, 무슨 짓을……!”
“헛소리하네.”
“뭐, 뭐?”
나는 무릎을 굽히고 노아리젠의 눈을 마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아이에게 하는 학대는 정당화가 안 돼.”
“……!”
“아이가 잘못해서? 아이 때문에 힘들어서? 아이를 키우려고 아등바등하다가 딱 한 번?!”
“너…….”
“아니! 그런 말로는 절대로 정당화가 안 된다고! 그런 사람에게 잘못 걸린 블리젠이 괴로운 거야! 힘든 거야!”
나는 노아리젠을 발로 뻥뻥 걷어찼다.
“악! 아악!”
피하지도 못한 채 곧이곧대로 다 맞고 있던 노아리젠은 죽는소리를 냈다.
미친 소리만 내뱉는 주둥이를 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블리젠은 그런 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멍하니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