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7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74화.(74/390)
74화.
라곤의 초점이 내게 맞춰졌다 흐려지기를 반복한다.
“라곤, 나는 너를 믿어. 너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줄 거야.”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말을 계속했다.
이윽고 라곤의 눈에 온전하게 나의 모습이 담겼다.
광기에 물들었던 눈이 조금씩, 조금씩 평소처럼 온순해지기 시작한다.
“옳지. 착하다.”
진정된 느낌에 나는 라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캭…… 캬악…….
“그래, 아주 착한 애야. 라곤은─”
라곤이 공격 태세를 접고 내려앉으려는 순간,
“꺄아악─!”
내 뒤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렸다.
황궁 시녀가 이마에 핏대가 돋도록 비명을 지른 것이다.
‘아니, 기껏 진정시켜 놨는데 여기서 더 자극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몬스터를 보고 패닉에 빠질 순 있지만, 무려 황궁 시녀다.
당연히 위기 상황에 대한 훈련은 어느 정도 받는데 이렇게까지 방해를 하니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문제는 시녀가 아니었다.
비명을 들은 기사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온 것이었다.
복장의 문양을 보니 황족을 호위하기 위해 온 황궁 기사들이었다.
“몬스터다!”
황궁 기사들은 라곤을 발견하고 곧장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그들은 포위하듯 라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스르릉—!
쇠 소리를 내며 뽑혀 나오는 검을 보고 나는 숨을 삼켰다.
‘저건……!’
검 자루에는 특이한 빛을 내는 돌이 박혀 있었다.
나는 한눈에 그 돌이 뭔지 알아보았다.
성석(聖石).
몬스터 퇴치를 위한 돌이었다.
저 검에 맞는 순간, 라곤은 가루가 되어버릴 것이다.
‘안 돼!’
나는 라곤을 공격하기 위해 검을 높게 치든 기사에게 달려갔다.
“아니에요. 라곤의 정신은 돌아왔어요! 날 봤다고요!”
나는 기사의 팔에 매달려 애원했다.
“무슨—.”
“진짜예요! 지금도 라곤은 울기만 할 뿐,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고 있잖아요.”
“제 눈에는 아주 위협적으로 보입니다만?”
“꺄아아아! 몬스터! 꺄아! 아악! 악! 몬스터가 날 죽이려고 해요!”
시녀는 이 와중에도 울고불고 난리였다.
이제 라곤은 시녀와 거리를 두고 그쪽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은데.
“기사님 보세요. 지금 라곤은—”
“에이 참! 귀찮게 굴지 말고 좀 떨어지십시오!”
기사가 나를 확 뿌리쳤다.
“윽!”
그냥 성인 남성도 아니고 무려 황궁 기사다.
기사에게 떠밀린 나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라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카아아악!
라곤이 분노 가득한 포효를 하며 순식간에 위로 날아올랐다.
그대로 낙하하며 기사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라곤이 바닥에 처박혔다.
몸체를 압박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라곤은 무언가에 짓눌린 듯 날개를 푸드덕거리기만 했다.
‘이건……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가호인 <중력>을 쓰면 딱 이렇게 된다.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할아버지가 가신들과 친척들 몇, 그리고 아나톨리 선황녀와 함께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드뷔시 자작이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대체…….”
아나톨리 선황녀가 바닥에 널브러져 울고 있는 시녀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된 거니!”
“서, 선황녀님의 침실 앞에 이상한 그림자가 어른거리기에 보러 갔더니, 흐윽, 저 몬스터가 있었어요……!”
“뭐라고?”
“절 보자마자 공격해서……. 정신없이 도망쳐서 이 숲으로 왔어요!”
“내 침실에? 그것도 들키니 공격했다고?”
아나톨리 선황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라곤이 내 몬스터라는 사실은 공작성에 드나드는 사람은 모두 다 아는 일.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내게 향했다.
* * *
공작성은 한바탕 뒤집어졌다.
황실 관료들(제를 관리하는 대신)들이 특히 난장을 피우며 핏대를 세웠다.
“대체 공작가는 안전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겁니까!”
“몬스터가 버젓이 드나드는 곳에 감히 황족을 모신 겁니까? 정신이 있긴 한 거냔 말입니다!”
“그러다가 시녀가 아니라 선황녀님이 공격당하셨다면……!”
“애초에 대체 왜 몬스터가 선황녀님의 침실 주변에 있던 거죠!”
“단순 사고가 아니라 다분히 고의적인 느낌이 드는데.”
“대답 좀 해보십시오! 예? 이런 상황에서 침묵할 겁니까?!”
건수라도 잡은 것처럼 아주 난리였다.
그럴 만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스트라 공작을 궁지에 몰았다는 기쁨이 더 커 보였다.
관료들의 등쌀에 치이던 발데릭이 분노에 못 이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중앙에 있던 나를 홱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짓 한 거야!”
다른 숙부들도 나를 마뜩잖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몬스터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만약 사람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어쩌려고.”
“나는 처음부터 몬스터를 부리는 것 자체가 불안 불안했다니까. 이럴 줄 알았어.”
그 쑥덕거림에 정점을 찍은 사람은 바스티나 고모였다.
“하이고! 저 잘났다고 낄 곳 안 낄 곳 다 구별 못 하며 설치고 다니더니 이렇게 코 깨질 때가 올 줄 알았다니까!”
그녀는 헹,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할아버지에게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니임, 우리 셀레네를 보세요. 저 천방지축에 비하면 우리 셀레네는 어찌나 생각이 깊고 총명한가요?”
그러자 디오네라의 모친인 바실레 고모가 나를 두둔하고 나섰다.
“에릴로트를 몰아세우며 탓하기 전에 전후 사정을 확실히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랜 시간 동안 얌전하던 몬스터입니다. 갑자기 난폭하게 군 게 이상하지 않나요?”
구스타프 숙부도 슬쩍 말을 보탰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일전에 내 막내아들이 몬스터에게 다가가도 얌전했다고 하오. 아이가 어찌나 자랑하던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소.”
그의 아들인 아르망이 라곤을 매우 좋아해서 함께 놀게 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황실 관료들은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저희도 그게 궁금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게나 얌전하다던 몬스터가 왜 황족들이 왔을 때 난폭해지는 겁니까! 그것도 황족이 머무는 방 근처에서!”
“저의가 의심되게!”
‘……아주 작정을 했네.’
관료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든 아스트라 공작에게 빚을 지우고 싶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제물이 되는 건 바로 나고.’
실제로 나는 회장의 중앙에 선 채 죄인 취급을 당하며 온갖 비난을 받고 있었다.
그때였다.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회장 안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아빠!’
아빠가 치맛자락을 꽉 붙잡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좌중에게 말했다.
“내용은 전달받았습니다.”
낮은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게 또 마음에 들지 않는지 황실 관료들은 목청을 돋워 아빠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나를 볼모로.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황족이 말려들 뻔한 사고입니다!”
“제국법에 따라야 합니다! ”
“당연히 몬스터의 주인인 에릴로트 영애를 황도로 호송해야지요!”
나를 호송하라는 말에 아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할아버지의 눈매가 매서워지고 바실레와 구스타프가 난색을 보였다.
여태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황비가 눈썹을 까딱였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이 황비에게는 재밌나 보다.
‘……이렇게 가다간 황실이 날 위험분자로 분류할 거야.’
아스트라 공작의 손녀인 만큼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에 평생 금제구를 매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금제구를 달면 가호를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조차 없어.’
가호를 못 쓴다는 것— 그건 귀족이 아니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더더군다나 난 진짜 가호인 <열람>으로 댓글을 확인해야 해.’
그래야 아스트라 안에서 누가 나를 노리고 있는지 확정할 수 있지.
황비는 고개를 기울이며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안타까운 얼굴을 꾸며냈다.
“어린아이라 마음이 아프지만, 법은 법. 제국의 법을 따르고 지키고 수호하는 것이 황족으로서의 의무인지라…….”
황비가 말을 길게 늘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엄중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를─”
“모든 것은 제 탓입니다.”
아빠가 나를 막아서듯 내 앞으로 나섰다.
“에릴로트의 몬스터를 공작성에 상주시킨 건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가 허가를 청한 겁니다.”
뭐?
“제 욕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제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
말도 안 돼.
아빠한테 허락을 받아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나다.
“이 아이는 고작 열 살입니다. 책임은 본디 보호자가 지는 것이니 호송을 한다면 제가 가야 합니다.”
“하지만…….”
황비는 곤란한 듯 뺨을 감싸 쥐었다.
난처한 표정을 꾸며내긴 했지만 흥미진진하다는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무려 아스트라 최대 전력인 데이몬드 아스트라가 호송되는 일이다.
황비도, 황실에서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짜로 호송이라도 당한다면…….’
지하 감옥에서 아빠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다.
“아빠!”
내가 다급히 아빠의 옷자락을 붙들었지만, 아빠는 날 뒤로 물렸다.
그리고 황비를 향해,
“부디 선처를.”
─허리를 굽혔다.
“……!!”
아빠가, 허리를 굽히다니.
우리 아빠가 어떤 존재던가.
아스트라라는 핏줄이 아니라, 본인이 지닌 능력이 지고해 태산 같은 자존심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물며 부친인 아스트라 공작에게조차 숙여본 적 없는 고개인데.
‘그런 아빠가 나 때문에…….’
답답하고 분하고 억울해서 가슴이 터질 것처럼 화가 났다.
그때였다.
“그만들 해!”
아나톨리 선황녀가 좌중을 제치고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날 보호하듯 끌어안고 황궁 관료들을 노려보았다.
“어린아이의 실수 아닌가! 전혀 예측할 수도 없었던 사고야!”
“하지만 아나톨리 님……!”
관료들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고의적인 범죄라고 몰고 가서 아스트라의 약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니만큼 그들은 당황해서 아나톨리 선황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놓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이 자리에는 황족들뿐만 아니라 아스트라 공작가의 사람들 역시 가득하니까.
관료들이 말을 못 하는 걸 어찌 눈치챘는지, 아나톨리 선황녀는 아주 위풍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사고를 당할 뻔한 당사자가 누구지?”
“아니, 아나톨리 님 그래도 우선은 진위를—”
“그대가 사고를 당할 뻔했어?”
“…….”
“사고를 당할 뻔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야.”
아나톨리 선황녀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러니 내가 괜찮으면 다 괜찮은 거 아니겠어? 피해자가 괜찮다고 하잖아.”
황궁 관료들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이게 어떤 기회인데 이렇게 놓친다고? 저런 바보를 봤나!
—하는 표정인데.
하지만 아나톨리 선황녀는 당당했다.
관료들이 ‘데이몬드 아스트라에게 미쳐서 천지 분간 못 하는 멍청이’를 보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아나톨리 선황녀의 말에는 허점이 있지만 지적할 순 없겠지.’
봉변을 당할 뻔한 사람을 정확히 짚으라면 아나톨리 선황녀가 아니라 황궁 시녀였다.
하지만 ‘아나톨리 선황녀의 침실 근처에 몬스터가 있었다’라는 시녀의 증언을 토대로 피해자는 시녀에서 선황녀로 바뀌었다.
이걸 부풀린 사람은 다름 아닌 황실 관료들이었다.
‘아스트라를 압박하기 위해서.’
그러니 이제 와서 선황녀가 아니라 시녀가 피해자라는 말을 할 순 없으리라.
‘거기다가 아나톨리 선황녀는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어.’
굳이 선황녀와 맞서서 황제의 눈 밖에 나고 싶은 관료는 없을 것이다.
돌아가는 상황에 황비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나톨리 선황녀는 황비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 일은 내가 직접 오라버니와 대화해서 해결하겠어요.”
그러니 황비는 끼어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황비가 “하!” 하고 기가 찬 숨을 터트렸지만, 아나톨리 선황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녀는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더니 더없이 인자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놀랐지, 에릴로트. 이제 괜찮아. 난 널 믿는단다?”
“…….”
“내가 말했잖니. 난 우리 에릴로트가 아주 사랑스러워.”
아나톨리 선황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와, 정말 대단한 사랑이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게 바로 순애보죠!”
“목숨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감싸주는 순애보!”
사람들이 감탄하자 아나톨리 선황녀는 우쭐한 얼굴로 내 뺨을 쓸었다.
* * *
라곤의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피해 당사자가 될 뻔했던 아나톨리 선황녀가 황제와 해결하겠다고 가슴을 땅땅 두드렸는데 무얼 어떻게 하겠는가.
황궁 관료들과 황비는 조금 빡친 것 같았지만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라곤은…….
“데콘스 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데콘스 숙부가 처리하기로 했다.
여기서 ‘처리’라는 건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단순한 사고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를 해하려고 했던 몬스터를 그대로 두는 것은…….”
아나톨리 선황녀의 말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그쪽으로 흘렀다.
가신들은 아스트라를 도와준 선황녀에게 아주 호의적이었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아나톨리 선황녀는 아스트라의 가신들 틈에 둘러싸여 호호, 웃고 있었다.
그때, 선황녀와 내 눈이 마주쳤다.
“에릴로트.”
선황녀가 미소 지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너무 걱정하지 말렴. 모든 오해는 다 풀릴 거니까. 내가 오라버니께 잘 말하도록 할게.”
그녀는 고개를 들어 아빠를 바라보았다.
“데이몬드 장군님, 괜찮으면 식사를 함께하고 싶은데요.”
수줍음으로 두 볼이 발갛게 물들고 있었다.
아빠는 그런 아나톨리 선황녀를 빤히 바라보더니,
“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같았으면 질색을 하며 무시했을 것이다.
“어머나, 너무 기뻐요.”
하지만 아빠는 불쾌하다는 내색도 없이 가만히 아나톨리 선황녀의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이건 나를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조차 아니야.’
차라리 협박당한 사람에 가까웠다.
아직 황제와 아나톨리 선황녀가 대화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선황녀는 일부러 내게 말하는 척, 아빠 앞에서 그 언급까지 했다.
식사 제의를 하기 직전에.
‘……이게 협박이 아니면 뭐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