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75)
이 3세는 악역입니다 75화.(75/390)
75화.
아나톨리 선황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네 몬스터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서 안 됐구나. 하지만 또 다른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일이니, 네가 이해하렴.”
내 어깨를 토닥인 그녀가 기대로 반짝거리는 눈으로 물었다.
“저…. 오늘은 장군과 단둘이 식사해도 되겠니?”
“…….”
“에릴로트는 상냥한 아이니까 이해해 주겠지?”
후후, 웃음을 흘린 아나톨리 선황녀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아, 오라버니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솔직히 아직 정리가 안 되네. 내가 위험할 뻔했다고 하면 진노하실 텐데……. 아, 장군이 도와주시겠어요?”
“예.”
“감사해요!”
아빠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아나톨리 선황녀는 아빠의 팔짱을 끼고서, 그대로 아빠를 끌고 갔다.
“…….”
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타박타박.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상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구석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림자에 가려진 기둥 뒤라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조용히 통신석을 꺼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통신을 연결했다.
[미켈란입니다.]미켈란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장 연락을 받았다.
“공격을 준비해야겠어.”
[황비입니까?]“아니.”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도 내 눈에선 날카로운 예기가 흘렀다.
마치 수풀 속에 웅크린 채 사냥감을 물어뜯어 죽일 준비를 하는 맹수처럼.
“아나톨리 선황녀.”
이번 일을 누가 꾸몄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황비나 간 큰 황궁 관료의 수작질이 아니다.
그들은 결국 얻어간 게 없으니까.
이 상황에서 본인이 원한 모든 것을 얻은 건 한 사람뿐이었다.
아나톨리 선황녀.
이 사건은 모두 그 여자의 짓이었다.
‘감히 아빠를 차지하려고 이딴 개수작을 벌여?’
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 * *
한지혁은 서둘러 공작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절대 아가씨를 혼자 두시면 안 됩니다.”
미켈란의 당부가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는 더 걸음을 서둘러 공작성 내에 있는 에릴로트가 있는 귀빈실로 들어갔다.
“왔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걱정과 달리 에릴로트는 한결 차분한 태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럴 때의 에릴로트가 더 무섭다는 것을 한지혁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미켈란에게 듣지 않았어? 다 선황녀의 짓이야.”
“아나톨리 선황녀? 그냥 바보라면서.”
“바보인 척한 건지, 진짜 바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건은 아나톨리 선황녀의 짓이 확실해.”
확신이 가득한 에릴로트의 말에 한지혁은 의아했다.
증거도 없어서 미켈란에게 조사를 명령한 거 아니던가.
“왜?”
“라곤처럼 얌전한 아이가 아무 일 없이 흉포해질 리 없어.”
“그거야 그렇지.”
“그리고 만약 진짜로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흉포해졌다면 아나톨리의 시녀는 벌써 잡아 먹혔어야 해.”
“흠…….”
“내가 비명 소리를 듣고 현장에 도착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어.”
“…….”
“물론, 고작해야 5분 정도였지. 하지만 몬스터가 아무 무력도 없는 시녀 하나를 죽이는 데 걸리는 시간에 비하면 어떨까?”
“과연. 지나치게 긴 시간이지.”
“미리 비명을 질러놓고, 사람들이 오길 기다려서 라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숲속에서 달려오는 사람의 인기척은 소란스럽기 마련이니 타이밍을 잡기도 수월했을 것이다.
“거기다 아나톨리는 라곤을 죽이길 바랐어. 모두가 라곤을 처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그 분위기를 주도한 건 선황녀야.”
“증거를 없애기 위한 거겠네.”
“그렇지.”
“하……!”
한지혁은 기가 막힌 숨을 터트렸다.
그렇게 에릴로트를 궁지까지 몰아서 데이몬드를 손에 넣다니.
“뭐 그런 여자가 다 있어? 와, 무슨……!”
어이가 없어서 할 말도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
“빨리 장군께 이 일을 알리고—”
“아니.”
에릴로트가 벌떡 일어나는 한지혁을 붙잡았다.
“왜? 알려드려야 그 미친 여자의 술수에 놀아나지 않지.”
“아빠가 알게 되면 마음 아파할 거야. 아빠 때문에 내가 상처받았다고.”
에릴로트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건 절대 싫어.’
잘못한 사람은 달리 있는데, 피해자가 더 마음 아파해야 한다니.
고개 숙인 에릴로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지혁이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긴, 지금 가장 어이없고 화가 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에릴로트일 것이다.
잠시 창밖을 보며 분을 삼킨 한지혁이 에릴로트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떡할…….”
흠칫.
무심코 에릴로트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한지혁이 몸을 굳혔다.
에릴로트의 안광이 그늘진 얼굴 속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뭐, 뭐야…….’
저절로 졸아붙을 정도로 눈빛이 살벌했다.
에릴로트가 이렇게까지 무시무시한 표정을 한 건 처음 본다.
‘……하긴, 아빠를 끔찍하게 좋아하는 딸이니까.’
거기다 에릴로트가 라곤을 얼마나 귀여워했던가.
강철 까마귀가 성체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꼬박 1년이다.
에릴로트는 그동안 라곤을 한 시도 품에서 떨어뜨려 놓은 적이 없이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잠들 때는 머리를 맞대고 자고, 먹을 때는 직접 먹여주고, 매일 같이 함께 뛰어놀고.
‘자기 손으로 키워낸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녀석을 이렇게 잃게 됐으니…….’
한지혁이 막 공작성에 도착했을 때 데콘스가 병사들을 이끌고 숲으로 가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라곤은 이미…….
한지혁은 에릴로트의 어깨에 손을 툭, 얹었다.
“뭘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나도 도울 테니까.”
“…….”
이럴 때의 에릴로트는 엄청나게 무섭다.
봐주던 상대가 머리끝까지 기어오른다면 절대로 쉽게 처리하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아나톨리는 큰일 나겠네.’
에릴로트가 한지혁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아이가 한참을 말없이 손안에서 백경 나무 피리를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폭풍전야의 시작이었다.
* * *
이튿날.
공작성은 살얼음판같은 분위기였다.
바로 어제 그런 큰일이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 성의 주인인 아스트라 공작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조용했다.
심기가 불편할 게 분명한데도.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기에 가솔들은 몸을 낮추고 행동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아나톨리 선황녀는 보란 듯이 데이몬드를 끌고 다녔다.
활짝 웃는 채 재잘거리는 건 선황녀뿐이고, 데이몬드는 혼이 없는 것처럼 무표정했다.
공작성의 모든 사람은 알고 있었다.
데이몬드가 선황녀와 어울려 주는 건 모두 딸 때문이란 걸.
“에휴… 장군님이 원래 무표정하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얼굴을 보니 그건 무표정한 게 아니었어.”
“그러니까. 시체가 그것보단 낫겠다니까?”
“에릴로트 아가씨께서도 기분이 안 좋겠지?”
“안 좋은 것뿐이겠어? 우리 아가씨, 속상해서 어쩌나.”
하인들과 하녀들은 걱정스러운 한숨을 흘렸다.
에릴로트는 3세들 중에 제일 상냥했다.
다른 3세들은 고용인을 사용하는 물건처럼 여기는 데 반해 에릴로트만은 사람으로 여겨주었다.
“안넝!”
활기차게 인사하며 뛰어다니던 3살 에릴로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지금도 귀엽지만, 그땐 정말 귀여웠는데.
“후우, 에릴로트 아가씨께서 얼마나 시무룩하고 계실지…….”
고용인들이 염려 가득한 말을 내뱉고 있을 무렵.
정작 에릴로트는,
“안녕하세요, 아나톨리 선황녀님!”
─해맑은 얼굴로 선황녀에게 인사했다.
일부러 자신을 찾아온 모습에 선황녀는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 네가 무슨 일로 왔니?”
평소에는 에릴로트를 옆에 못 둬서 안달이던 선황녀였다.
엄마로 생각하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일삼지 않았던가.
그런데 옆에 데이몬드를 두자 에릴로트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귀찮은 기색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선황녀는 곧 제 옆에 있는 데이몬드의 얼굴을 힐끔거리더니 활짝 웃었다.
“에릴로트를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니 기쁘네.”
누가 봐도 데이몬드의 눈치를 보고 반가운 척하는 거였지만 에릴로트는 활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관할성에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관할성에요?”
“응. 다 에릴로트를 생각해서 말하는 거야. 어제 그런 일이 있었잖니? 어른들은 너무해서 아이라도 때때로 차가운 시선을 보내곤 해.”
“그건 저도 알지만…….”
속상한 듯 어깨를 늘어트린 에릴로트가 애써 씩씩하게 말했다.
“그래도 선황녀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요!”
“선물?”
“네! 감사의 선물이요!”
“어머, 그게 뭔데?”
궁금한 척 묻긴 했지만, 아나톨리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솔직히 뭘 준답시고 나와 데이몬드의 사이에 끼어드는 것보다는, 빨리 사라져주는 게 더 좋은 선물인데.’
하지만 데이몬드가 아끼는 딸이다.
딸이 열심히 준비한 선물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었다.
“이거예요!”
에릴로트가 내민 것은 아주 섬세하게 세공된 아름다운 보석 상자였다.
아스트라 공작이 에릴로트에게 주었던 보석을 모아둔 상자였다.
“저와 아빠를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드릴 게 이것밖에 없어서…….”
“어머, 고마워라.”
아나톨리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보석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럼 이제 가보렴.”
아나톨리는 그 말로 바로 에릴로트를 돌려보냈다.
‘이제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다시 단둘이야.’
아나톨리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데이몬드를 바라보았다.
우뚝한 코와 길고 섬세한 속눈썹을 눈으로 더듬던 그녀의 얼굴이 몽롱해졌다.
‘어쩜……. 사람이 저렇게 생겼을까.’
몇 번을 봐도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둘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니 자연스럽게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황실 아카데미에 축사하러 갔을 때였다.
데이몬드 아스트라는 그곳에 있었다.
수많은 학생 가운데에서도 오직 그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처럼 눈에 들어왔다.
데이몬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나톨리는 보자마자 데이몬드에게 첫눈에 빠졌다.
그녀가 꿈에서만 그려왔던 이상형의 남자가 현실에 있다니!
그 뒤로 아나톨리는 데이몬드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하지만 데이몬드는 한 번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아니야. 열어주지 않은 게 아니라 열어주지 못한 거지.’
당연하다.
아스트라와 황실은 좋지 않은 관계였다.
그가 마음을 열고 싶어도 열 수 있었을 리 없다.
결국 그를 설득해서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자살 소동까지 벌이게 됐다.
‘하지만 그 때문에 멀리 타국으로 유학 가야 했지.’
황태후는 자신이 아스트라의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 후에 데이몬드는 아스트라 령에만 있어서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7년 전, 그의 소식이 들렸다.
데이몬드 아스트라에게 딸이 있다는 소식!
그때는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그와 입을 맞췄다니!’
생각만으로도 뇌가 타버릴 정도로 열이 올랐다.
다른 여자가 낳은 그의 딸은 어떤 존재일까!
아나톨리는 아스트라 공작성의 고용인을 매수해서 에릴로트의 초상화를 몰래 받기까지 했다.
그를 닮은 금발과 적안을 한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에서는 데이몬드의 모습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얼굴선은 그와 전혀 달라. 친모를 닮은 건가?’
데이몬드의 딸에게서 다른 여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를 사랑했기에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상냥하게도 에릴로트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결국 여기까지 왔지.’
데이몬드와 마주 앉아 이렇게 연인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황궁으로 돌아가는 즉시 오라버니에게 데이몬드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해야지.’
이제 데이몬드의 마음이 자신에게 있으니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아나톨리는 데이몬드를 하루 종일 데리고 다녔다.
그가 일 때문에 관할령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쉽게 바라보았다.
데이몬드 역시 아쉬운지 자신에게 시선을 주었다.
‘걱정 말아요. 이제 우리 헤어지지 않아도 돼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그렇게 상념에 빠져있는데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상자는 어떻게 할까요?”
시녀가 묻는 것은 에릴로트가 준 보석 상자였다.
‘대체 누구를 닮았기에 그리 영악한지…….’
그 어린 나이에 물건으로 환심을 사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게 한심했다.
‘그와 결혼하면 내가 잘 가르쳐야겠어.’
물론 자신과 데이몬드의 사이를 방해해선 안 된다는 것도.
“버리렴.”
아나톨리는 싸늘하게 말한 후 침실로 들어갔다.
시녀는 닫힌 침실문을 힐끔거리며 보석 상자를 열었다.
‘우와…….’
상자 안에는 황홀하게 빛나는 갖가지 보석이 있었다.
‘이게 에릴로트 영애가 줬다는 그 보석함 맞지?’
에릴로트가 선황녀를 찾아와 보석함을 줬다는 말은 유명했다.
‘확실히 아스트라는 굉장하구나. 열 살짜리 애가 이런 걸 다 가지고 있고.’
시녀는 보석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하아…….”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선황녀께선 버리라고 하셨잖아.’
버린 것을 챙기는 건 죄가 아니지.
‘어린애의 것이라 그리 고가는 아니지만, 이 정도가 어디야.’
시녀는 보석함에 든 보석을 전부 다 챙겼다.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주머니 안에 쓸어 담은 뒤 시중을 들기 위해 움직였다.
그때였다.
시녀의 주머니에서 먹구름 같은 검은 연기가 빠져나와 소리 없이 그림자 속에 스며든 것은.
하지만 시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연기가 몬스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