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8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84화.(84/390)
84화.
* * *
개싸움을 시작한 지 5분도 안 된 시각.
건달들이 죄다 쓰러져버렸다.
저마다 맞은 부위를 붙잡고 땅을 뒹굴었다.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던 카넬레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뭐, 뭐, 뭐야, 너……!”
“가라. 여자는 안 때려.”
건달 뒤에 서 있어서 안보였던 깡마른 여자.
건달들이 모두 쓰러지니 그제야 모습이 드러났다.
깡마른 여자는 벌벌벌 떨며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서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마른 여자와 카넬레는 놀라서 어버버했다.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발발 떨며 뒷걸음질 치던 두 사람은 이내 도망쳐 골목을 빠져나갔다.
도망치는 그녀들을 본 모자의 사람이 손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 모자를 벗고 머리도 탈탈 터는데…….
허리까지 오는 남색 머리칼.
아름다운 곡선의 턱.
긴 속눈썹.
나와 한지혁은 멍하니 모자의 사람을 보고 있었다.
정신 차린 한지혁이 꽥 소리쳤다.
“여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 한지혁을 보며 무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녀와 눈이 마주친 한지혁.
바로 눈을 내리깔고 우물쭈물 말했다.
“싸움을 잘해서…… 아니, 잘하셔서…….”
“싸움 잘하는 여자도 있어.”
그렇게 말한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그러곤 무릎을 굽혀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다친 데는?”
“……없어요.”
“다행이네.”
그녀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미소.
어딘가에서 본 듯한…….
아니, 읽은 듯한…….
밤하늘처럼 깊고 아름다운 쪽색의 머리칼을 가진 여인.
그녀를 싫어할 수 있는 아이와 여성은 없었다.
약자에게 누구보다 다정한 강자였으므로.
그녀의 이름은─
책 내용이 머리에 스친 나는 홀린 듯 여자에게 물었다.
“언니, 이름이 뭐예요?”
“내 이름?”
“응.”
“잔느. 잔느 마시프야.”
─잔느 마시프였다.
나는 놀라서 얼어붙었다.
찾았다, 내 사람.
내가 찾던 사람.
내가 이번 생에서 유모로 만들고 싶었던 그 사람 말이다!
잔느 마시프!
나는 조그만 두 손으로 입을 헙! 하고 막았다.
‘대체 뭐야?’
어떻게 그냥 나왔는데 잔느를 마주치지?
난 진짜 운이 없던 사람이다.
귀족인데 평민의 피를 타고 태어난 것부터 그렇지.
심지어 첫 번째 삶에서 아빠는 전장에서 돌아가셨었잖아.
난 뒤로 넘어지면 돌부리에 찍히고, 앞으로 넘어지면 똥이 묻는 사람.
그런 개똥 같은 운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데 왜 이런 행운이……?
생각하다가 퍼뜩 깨달았다.
이거……!
‘주인공 버프구나!’
그렇지.
소설 주인공은 마실 나가서 서브남을 주워오지!
가슴이 콩닥콩닥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빙.흑.손>의 달리아도 그렇지 않았던가.
산책하러 갔다가 초록 라벤더, 맥문동이라는 어마어마한 약초를 발견했지.
그걸 지금 내가 누리고 있네?
주인공 최고! 최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스!’
잔느는 내가 무사한지, 다치진 않았는지 확인한 후 굽혔던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서류 봉투를 주워 들었다.
우릴 구하기 위해 바닥에 잠깐 내려놨었나 봐.
나는 후다닥 뛰어 얼른 잔느에게 다가갔다.
“언니, 고마워요.”
“별말씀을.”
“고마워서 그런데 보답할 수 있게 해주실래요? 저기 제과점에 같이 가서!”
“미안. 난 오늘 일자리를 구하러 가야 해서.”
나는 아쉬운 듯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그럼 저 들고 있는 게 이력서인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들고 있는 서류 봉투가 꼬질꼬질했다.
새로 쓴 건 아닌 것 같은데.
‘아, 돌려받은 거구나.’
취업에 실패한 거다.
하긴, 잔느는 교도소에서 복역했던 사람이다.
황도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잔느는 모자를 다시 푹 눌러썼다.
“그럼.”하고 등 돌려 골목을 빠져나가려는데.
난 얼른 한지혁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푹, 하고 찔렀다.
“왜?”
한지혁은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내가 잔느를 가리키고 파닥거리자 “아.”하고 말했다.
사기꾼이었던 만큼 이런 거엔 눈치가 되게 빠르다.
“저기요.”
한지혁은 잔느를 불러세웠다.
잔느가 휙, 돌아보자 한지혁이 말했다.
“일자리를 찾고 계시면 추천할 곳이 있는데요. 잘 아는 곳입니다.”
“아, 나는…….”
“도와주신 보답입니다. 추천서를 넣어놓을 테니 한 번 가보시죠?”
잔느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
잔느는 원래 한미한 남작가의 딸이다.
영지도 없는 남작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병 걸린 언니가 있어서 본인이 일해야 했다.
그래서 황궁의 기사가 되었지.
그런데…….
‘부하가 성희롱당해서 상사를 개 패듯 패버렸다지.’
그 상사가 하필 백작가의 금지옥엽이라 교도소에서 3년을 복역하고 나왔다.
왜 3년이냐면…….
‘상사는 생식 능력을 잃었거든.’
복역 후, 잔느는 언니의 병간호를 하느라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다 써서 일자리가 급할 거다.
하지만 황도에서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갈 수도 없었다.
언니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황도에 있어서.
잔느는 계속 고민했다.
그러곤 별다른 방법이 없었는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염치없지만.”
“예. 주소를 적어드리겠습니다. 사흘 후,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한지혁이 품속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서류 봉투 위에 주소를 적어주었다.
* * *
사흘 후.
저택 앞.
잔느는 당황한 표정으로 저택을 올려다봤다.
‘대귀족가잖아.’
1구역에 있는 주소라 설마 싶긴 했다.
하지만 이 부근에 사는 귀족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살롱이나, 클럽으로 사용되는 건물인가 했는데…….
정문으로 가자,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고 연미복 차림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노년의 사내지만 자세가 아주 아름다웠다.
“잔느 마시프입니까?”
“아…. 예, 그렇습니다.”
“따라오시죠. 면접장은 이쪽입니다.”
잔느는 노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더 거대했다.
‘이만한 저택은 1구역 내에서도 많지 않을 텐데.’
잔느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우연히 들은 소문이 떠올랐다.
“마시프 경, 들으셨습니까?”
“이제 경이 아니래도.”
“아무튼요. 이번에 아스트라의 차남이 1구역에 입성했답니다. 왜, 그 용의 주인이라는 여자아이의 아버지 말입니다.”
아무래도 여기는 아스트라 백작가인 모양이다.
사내를 따라서 간 곳은 별채로 보이는 공간이었다.
조심스레 들어가자 웬 여자들이 앉아있었다.
다들 잘 준비된 모습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심플하지만 질 좋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바지에 셔츠, 낡은 자켓을 입고 있는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 공간에서 여자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까르르, 웃던 사람과 눈이 딱 마주쳤다.
“너─!”
‘어제 아이를 괴롭히던 여자?’
카넬레와 잔느가 서로를 보며 인상 찌푸렸다.
대화하던 다른 여자들이 인상을 쓰고 있는 카넬레에게 의아하단 듯이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아니에요. 행색이 좀, 그래서.”
순식간에 잔느에게로 여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카넬레는 자리에서 일어나 잔느에게 느른히 걸어왔다.
“설마 면접을 보러 온 건가요?”
“……그런데요.”
카넬레가 허,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돼. 무슨…….”
“…….”
“조언 하나 해줄게요. 여긴 그런 행색으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최소한의 자격조차 없이 무슨 면접이라는 건가요?”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여자들 놀라서 입을 가리고 말했다.
“어머, 카넬레 양이 그런 말을 하시다니…….”
“네, 워낙에 사려 깊어서 싫은 말을 못 하시잖아요.”
주위의 집중된 시선을 느낀 카넬레가 민망한 척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런 행색을 한 사람 때문에 아스트라의 품위가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서요. 제가 너무 참견이 심했을까요?”
“전혀요. 외려 멋진걸요.”
카넬레의 말에 여자들이 화기애애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카넬레는 잔느를 새초롬히 노려보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잔느가 자신의 행색을 내려다보았다.
저런 말이 신경 쓰이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자격을 갖추지 않고 온 것 같기는 했다.
‘제일 편한 차림으로 오라고 하기에 이렇게 입었는데. 좀 자세히 물어볼 것을 그랬어.’
잔느는 분홍머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아뇨. 그냥 편한 차림이면 됩니다. 지금 그 옷도 괜찮고요. 다른 건 오시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러곤.
“저녁 시간에 늦었다! 이 녀석 없으면 그 3형제가 난리부르스를……!”
─하며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헐레벌떡 뛰어갔다.
난리부르스가 무슨 부르스춤인진 모르겠지만, 매우 중요한 춤인 듯했다.
그래서 잡지 않고 보냈는데…….
‘이 집 주인이 보면 불쾌할 만도 하겠어.’
카넬레가 눈썹을 까딱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유모로 당신을 추천한 거죠?”
뭐?
카넬레의 말을 들은 잔느가 순간 미간을 좁혔다.
“유모?”
“뭘 모르는 척 하고 있어요?”
잔느는 매우 당황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모라니.
태어나서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검 잡던 자신이 무슨 유모를 한단 말인가!
검을 잡고, 훈련을 받으면서 양손엔 굳은살이 잡힐 대로 잡혔다.
이런 투박한 손으로 어떻게…….
카넬레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비스듬히 수그리며 말했다.
“추천인이 정말 있는 게 맞나요? 혹시 조작한 거라면…….”
“어머!”
“어머머?”
카넬라의 말을 들은 다른 여자들이 깜짝 놀랐다.
카넬레는 확신하고 있었다.
‘저 행색에, 거리에서 싸움이나 하던 게 무슨 추천인이야.’
분명 조작했을 터다.
자신의 말에 동조하고 있는 여자들의 시선을 느끼며 카넬레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정말 추천장을 받았어요? 누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