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86)
이 3세는 악역입니다 86화.(86/390)
86화.
아, 물론 잔느가 유모 되기를 결정하기까지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 * *
황립 의료원.
잔느는 당황한 표정으로 족히 열 명이 넘는 의사들을 쳐다봤다.
좁은 병실이 의사들로 가득 찼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다…….”
“예, 주치의입니다!”
이렇게 많은 의사를 본 건 처음이었다.
보통 주치의로는 교수 보좌의가 붙는다.
잔느 자매 같은 경우는 훈련의가 주치의였다.
잔느의 언니는 희귀병 환자였다. 본래라면 까다롭게 관리되어야 하지만, 몇 개월째 진료비가 밀리고 있는 판국이라 쫓겨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게다가 희귀병이라, 많은 케이스를 본 적이 없는 훈련의는 언니의 증상만 완화 시켜주는 약을 쓸 뿐 더 이상의 심도 있는 치료는 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교수들이 몰려온 것이다.
잔느의 언니인 록산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스트라 공작가에서의 연락입니다. 소중한 분의 자매이니 각별히 신경 써달라고 하셨습니다.”
“아스트라 공작가에서 말이에요?”
자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서로를 바라봤다.
의사들은 앞으로의 치료과정에 관해 설명하곤 병실을 나섰다.
탁.
의사들이 병실 문을 닫고 나가자, 록산느가 잔느를 쳐다보고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이니?”
“글쎄…….”
록산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잔느의 손을 잡았다.
잔느가 그런 록산느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어쨌든 잘된 일이지 뭐.”
“그렇긴 하지만…… 난 이제 행운이 겁나.”
록산느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미한 가문의 자제, 그것도 여성인 잔느가 황궁 기사가 된 일로 얼마나 기뻐했던가.
온갖 고생을 하고, 겨우 얻은 행운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5년 뒤. 동생은 범죄자가 되었다.
록산느는 분에 넘치는 행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의 이 행운이 너무나도 걱정된다.
“아스트라 백작가에서 널 잘 보았나……? 지난번에 면접에 갔었다며.”
“…….”
“하지만 그것도 이상하지. 넌 아스트라 백작가에 갔는데, 왜 공작가에서 의료원에 연락했을까?”
록산느의 말에 잔느가 멈칫했다.
‘아마도 그분 때문이겠지.’
열 살 나이답지 않게 똑똑했던 그 아이.
잔느는 실력과 성품을 두루 갖춘 기사였다. 여전히 추종자가 많아서 이런저런 소식이 많이 들려왔다.
에릴로트가 아스트라 가문의 금지옥엽이라는 소식까지도.
그 아스트라 공작조차 한 수 접어준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그 아이가 아스트라 공작가에 요청한 것일 터.
이렇게까지 신경 써준 그 아이에게 매우 고맙고, 미안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병실을 옮겨드리겠습니다.”
록산느의 병실이 대귀족들이나 쓰는 초호화 병실로 바뀌었다.
“록산느 님의 전담 간호사입니다.”
한 병동을 책임진다는 수간호사가 록산느에게 인사했다.
“간병인입니다.”
보통 대귀족들을 맡는다는 전담 간병인이 록산느에게 붙었다.
“치료비는 이미 정산이 되었습니다.”
어지간한 귀족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치료비까지 정산 완료.
“부동산업자입니다. 의료원 근처의 집을 몇 채 추려놓았으니 골라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돈이요? 하하, 아스트라 백작가에서 전부 내주실 겁니다.”
“…….”
“…….”
록산느는 겁에 질린 얼굴로 동생을 보았다.
“이거 그냥 행운이 아닌 것 같은데……!”
“…….”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냔 말이야!”
나도 몰라…….
잔느는 아이의 말을 떠올렸다.
“만약 생각하던 일이 아니라서 당황스럽다면 시간을 드릴게요. 생각해보시고, 연락을 주세요.”
생각할 시간을 준다더니…….
이건 생각할 시간이 아니라, 잔느가 유모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 * *
아스트라 백작저.
나는 올라간 문패를 보고, 폴짝폴짝 뛰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인테리어 공사도 했고, 문패도 올라갔어.’
이제 제대로 된 황도 생활의 시작이다!
히죽히죽 웃고 있는데, 미켈란이 다가왔다.
“관할령에서 하인들이 올라왔습니다.”
“하이디와 베티는?”
“아주 기뻐하며 짐을 풀고 있더군요.”
“응.”
하인들은 관할령에서 데려왔다.
황도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인들을 통해 우리 저택의 소문이 퍼질 일을 차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티 참석 준비를 하셔야지요?”
“그래. 아, ‘그건’ 어떻게 되었어?”
묻자, 미켈란이 주변을 살펴보고 내게 속삭였다.
“지하까지 모두 조사했지만, 선황의 은닉재산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각 방에도 없었지?”
“예.”
여기에 숨겨둔 게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외엔 숨겨둘 데가 없는데.
“일단 좀 더 조사해 봐.”
그렇게 말하고 나는 내저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백합 정원 파티가 열리는 날.
준비를 해야 해서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백합 정원 파티는 매우 중요한 파티였다.
중요한 이유가 여러 가지지만, 제일 중요한 건…….
‘미켈란의 신분을 되찾아줘야지.’
미켈란은 황태후에게 완전히 밉보였다.
그래서 황도에선 분장을 하고, 가명을 대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는 그 상태로도 아주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미켈란임을 밝히고 가져오는 정보는 질이 다를 터.
나는 미켈란 앞에서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
“곧 미켈란이 진짜 이름을 대고 살게 해줄게.”
“아…….”
미켈란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봤다. 그러곤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이렇게 급하게 사교계에 발을 들이시는 게 저 때문입니까?”
엥?
“아가씨…….”
“아니, 그게 아니라—”
미켈란이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서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아가씨께선 한낱 고용인을 위해서…….”
“그게 아니라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요.”
“아니—”
“평생 목숨을 바쳐 충성할 것입니다. 예. 목숨을 바쳐서요.”
“…….”
아무래도 미켈란의 귀에 내 얘기는 안 들리는 듯했다.
물론 미켈란의 신분을 찾아주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미켈란 때문이 아니다. 나 좋자고 하는 거지.
‘정보의 질 때문에.’
게다가 백합 정원에 가는 건 다른 일도 해야 해서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미켈란에게 말하길 포기했다.
‘충성한다면 좋지 뭐.’
방에 들어가자, 하녀들이 다가왔다.
“아스트라 백작가의 귀애를 뵙습니다.”
“아스트라 백작가의 귀애를 뵙습니다.”
베티와 하이디가 눈썹을 씰룩이며 ‘백작가’를 강조했다.
“백작가?”
“백작가!”
백작가!
나는 두 사람과 함게 킥킥킥 웃으며 기뻐했다.
하이디가 나를 얼른 의자에 앉혔다.
“자, 예쁘게 꾸며드릴게요.”
베티도 옆에서 종알종알 입을 쉴새 없이 움직였다.
“물론 아가씨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어린이지만, 이번엔 황도 놈들…… 이 아니고, 황도 분들의 눈이 멀도록 꾸며드릴 거예요.”
다들 신이 나서 준비를 시작했다.
하이디는 머리카락 한 올 엉키게 두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빗질했다.
그동안 베티는 드레스를 촤라락 펼쳐두고, 뭐가 제일 나와 어울리는지 다른 하녀들과 토론했다.
“빨강이야.”
“검정이죠.”
“우리 아가씨는 데이몬드 관할령의 장미라고. 이미지를 생각하면……!”
“아스트라의 상징은 까마귀잖아요. 까마귀 무리의 우아한 대장이라는 이미지로—!”
하녀들의 열띤 토론이 계속됐다.
절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줄 생각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앉아서 서류를 훑어보았다.
이 서류는 콘라드가 작성해준 황도 귀족들의 인적 사항이었다.
그중에서도 백합 정원 파티 참석자들의 신상 명세를 꼼꼼하게 외워두었다.
‘황도에서 생활하는 건 처음이니까.’
첫 번째 삶에선 황도란 가뭄에 콩 나듯 오는 곳이었다.
다른 3세들 중에서도 달리아만 황도에 왔다갔다 했었지, 아마.
그러니 내겐 정보가 매우 한정적이었다.
<빙.흑.손>에 나왔던 사람들이나 아는 정도다.
파티 참석 준비는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결국, 난 열심히 토론하던 하녀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해주기로 했다.
가슴에서부터 치마 끝까지 빨강과 검정이 그라데이션 되어있는 드레스를 입었다.
풍성한 퍼프 소매엔 금사가 수 놓여 있었고, 드레스의 중간중간 콕콕 박힌 보석이 마치 여명이 떠오를 때의 빛무리 같았다.
머리는 하나로 높게 올려 묶었다.
거울 속의 나는 내 눈에도 아주 괜찮아 보였다.
“응, 좋아.”
“좋기만 하겠어요~!”
“아스트라의 장미요, 루비요……!”
“아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
주접떠는 하녀들을 흐린 눈으로 쳐다봤다.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지난번에 보너스를 너무 많이 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단을 사뿐사뿐 내려왔다.
“와—!”
발자크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올리니, 세 오빠들이 모여 있었다.
“예쁘다, 에릴!”
발자크가 소리치자, 요슈아도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멋져.”
리시먼드도 미소 지은 채 한참이나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했다.
‘……?’
내가 멋지게 잘 꾸민 건 알겠는데, 너희는 왜 꾸몄어?
오늘 일정 없잖아.
세 사람은 모두 눈부시게 꾸미고 있었다.
장원에 귀빈이 왔을 때도 못 본 화려한 옷들이다.
발자크는 밴드 카라 예복을 입고, 짐승 가죽으로 만든 망토를 한 쪽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맨날 대충하고 다니던 머리도 한쪽으로 잘 넘겼다.
요슈아는 흰색 예복에 검은 롱코트. 모델처럼 예쁜 몸 선을 가진 그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리시먼드는 올블랙 예복에 붉은 케이프를 입었다. 곳곳에 금사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내 의상과 맞춘 것 같이 화려하다.
“……어디 가?”
물어보자 세 사람이 싱긋, 미소 지었다.
“네 첫 황도 파티를 함께 할 건데 잘 꾸며야지.”
“이 정도면 네게 부족하지 않은 파트너일까.”
발자크와 요슈아가 차례로 대답했다. 리시먼드도 빙그레 웃고 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나 오늘 혼자 가는데?”
“뭐?”
“왜?”
“어째서?”
왜 그런 반응인지 내가 더 궁금했다.
같이 갈 거라면 미리 얘기하고, 같이 가달라고 했겠지.
‘으이구.’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은 혼자 가야 하는 일이 있어서…….”
─라고 말하는데, 오빠들의 뒤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아빠였다.
“…….”
“…….”
“…….”
“…….”
발자크와 요슈아가 썩은 눈으로 아빠를 쳐다봤다. 리시먼드도 실소를 터트렸다.
난 당황해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아빠가 말했다.
“이제 출발할까.”
아빠…….
물론 아빠에게도 같이 가달라고 한 적이 없다.
당황한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그 차림이…….”
“좀 꾸며봤어.”
“……조금이 아닌데.”
아스트라의 정복을 입으면 어떡해!
망토에 아스트라의 까마귀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이런 옷은 개선식이나, 나라의 큰 행사 때나 입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반 친구 생일 파티에 아빠가 의사 가운에 수술복 입고 오는 느낌이라고요!
나는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 오늘 혼자 가요.”
“파트너가 있어야 하잖아!”
아빠가 매우 다급하게 말했다.
“혼자 갈 거예요.”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다들 일 없으면 옷 갈아입어요.”
아빠는 하늘이 무너진 표정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세 오빠들이 날 설득하려는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빨리.”
난 단호하게 말했다.
네 남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곤 시무룩한 얼굴로 어깨를 떨구었다. 눈썹을 축 늘어뜨리는 것이 꼭 강아지가 슬퍼하는 표정 같았다.
“쫓아오지 말아요. 화낼 거야.”
나는 네 남자에게 단단히 경고하고 밖으로 나왔다.
* * *
마차를 타고 파티장에 도착했다.
보통 파티가 다 그렇듯 백합 정원 파티도 밤에 시작한다.
미성년자들의 파티인 만큼 자정을 넘기진 못하지만.
파티장은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입구부터 백합 모양의 조명으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들어가실까요, 아가씨?”
하이디의 말에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아……. 난 좀 긴장이 되어서. 여기 있을 테니까 입장 허가를 먼저 받아다 줄래?”
“네, 아가씨.”
대귀족 자제들이 모인 만큼 관리가 까다롭다.
하이디가 내 신분패를 들고 허가를 받으러 갔다.
그 동안 나는 주변을 살펴보고, 마차에서 내렸다.
‘파티장 근처의 숲으로 가야 해……!’
그곳에서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얼른 숲으로 달려갔다.
<빙.흑.손>에서 읽은 대로 숲 입구엔 분수대가 있었다.
‘좋아. 사람은 없다.’
“언제 오는 거야…….”
초조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하이디가 올 때까지 들어가야 한다.
중얼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미 와있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등장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
알렉시스.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