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87)
이 3세는 악역입니다 87화.(87/390)
87화.
* * *
나는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알렉시스에게 파티에 관해서 설명할 시간 정도는 있었다.
‘다짜고짜 황도로 불러왔으니, 얘도 어리둥절할 테고.’
“알렉시스. 내가 널 황도에 불러온 건…….”
“내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줄 때가 됐다며.”
“그야, 그런데…….”
그 말 딱 한 마디하고 불러왔는데, 더 궁금하지 않나?
알렉시스는 이제 꼬꼬꼬마가 아니다. 꼬꼬마로 성장한 그는 궁금한 게 많을 거다.
대충 감옥으로 보이는 훈련소에 가둬놓고, ‘널 위해서야! 그렇게 됐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나, 별말 안 하고 너 불러왔어. 아무것도 안 궁금해?”
알렉시스가 날 힐끗 쳐다봤다.
“응.”
“……왜?”
“네가 나한테 해가 될 일을 할 리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알렉시스는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
기묘한 기분이었다.
‘이건 무슨 감정이지?’
이런 건 또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데.
가족들은 나를 보호하려고 한다. 몬스터의 등에 올라타기라도 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안다.
나를 위해 세상 온갖 것을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날 위한 울타리를 쌓아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넘어가지 마.
여기까지가 안전해.
그래서 내게 모든 것을 물어보고, 납득한 후에야 고개를 끄덕인다.
응, 그렇다면 네가 안전하겠구나. 해도 좋아.
—하고서.
하지만 알렉시스가 나를 대하는 건 뭐랄까…….
‘한도 없는 믿음?’
이상하게 뿌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알렉시스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맞아~!”
“…….”
“난 너한테 해가 될 일은 안 해!”
그러고 등짝을 탁! 때리자, 알렉시스가 미간을 좁혔다.
“네 손, 매운 건 알아?”
나는 킥킥 웃고서 말했다.
“그래도 몇 가지는 알아두는 게 좋겠어. 잘 외워.”
“…….”
“여긴 백합 정원이라는 곳이고, 대귀족 아이들이 모이는 파티야. 파트너가 필요한데, 난 널 내 파트너로 삼아서 데리고 들어갈 거야.”
“……파트너?”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시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귀족이 아니어도 파트너로 삼을 수 있어?”
“규정이 따로 없어.”
“없다고?”
난 어깨를 으쓱하고 팔짱을 꼈다.
“설마 귀족이 아닌 자를 파트너로 데려올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한 거지.”
“참석자 중에 누가 묻기라도 하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하지 마.”
“뭐?”
“아무런 말도 하지 마.”
난 빙그레 웃었다.
“정보가 없을수록 더 불타는 법이거든.”
최근 황도에서 시선의 중심인 나.
그런 내가 데리고 온 의문의 미소년.
사람들이 뒤집어져서 알렉시스의 주변을 캐내려고 할 게 분명했다.
‘아, 실시간검색어가 있는 곳이었다면 1위부터 줄 세우기는 떼놓은 당상인데.’
1. 백합 정원 흑발 미남자
2. 에릴로트 흑발 소년
3. 흑발 소년 정체
4. 에릴로트 아스트라
.
.
10. 흑발 소년 재킷.
뭐, 이런 느낌으로.
난 히죽히죽 웃었다.
알렉시스의 첫 등장으로 완벽한 연출이라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알렉시스와 백합 정원의 입구에 도착한 나는 꽁꽁 얼어붙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의 중심에 있는 세 남자를 보고서.
“에릴은 언제 오는 거야. 너무 늦지 않아?”
“그러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발자크, 요슈아. 그리고 리시먼드였다.
알렉시스가 날 힐끗 쳐다봤다.
“저 남자들, 네 오라비들이 아닌가?”
“……맞아.”
“파트너로 날 데려가겠다며?”
“……그것도 맞아.”
“그런데 저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건 몰라.
나는 이를 악물었다.
* * *
팔짱을 낀 발자크는 삐딱하게 선 채로 에릴로트를 기다렸다.
“왜 안 오지?”
슬슬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얼굴로 형제들을 바라보자, 그들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에릴로트는 라곤을 통해 강대한 힘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라곤은 멀리 있고, 그 애의 마물은 백합 정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에릴로트를 노린다면 지금이다.’
에릴로트만 납치하면, 그 엄청난 용마저 소유할 수 있었다.
자신이 그 힘에 눈이 돌아버린 귀족이라면 필시 지금을 노릴 터.
세 남자가 에릴로트에게 잔뜩 혼이 날 것을 알고도 부득불 이 자리에 쫓아온 이유가 그것이었다.
자신들보다 완벽하게 에릴로트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발자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슬슬 수색해야 해.”
요슈아의 표정도 좋지 않았으나, 곤란한 투로 말했다.
“아무런 일도 없으면? 에릴로트의 황도 첫 파티가 엉망이 될 거야.”
고민하던 리시먼드가 말했다.
“통신해보자.”
이제 혼이 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요슈아가 통신석을 들었다.
그때.
“왜 여기에 있을까.”
등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소년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마른침을 삼킨 그들이 기계처럼 삐걱삐걱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인 건…….
무력으로는 아스트라에서 손에 꼽히는 소년들의 오금을 저리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에, 에릴…….”
“에릴로트.”
“에릴로트…….”
에릴로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세 남자를 훑어보았다.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더니, 그대로고.”
“…….”
“…….”
“…….”
“쫓아오면 화낸다고 했는데도, 쫓아왔고.”
“쫓아온 게 아니라 먼저 왔으니까—!”
“닥쳐, 눈치 없는 놈.”
“입 닫아.”
얼굴이 밝아진 발자크가 변명하려 했지만, 양쪽에서 입이 막혔다.
에릴로트가 세 남자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쳐다봤다.
“돌아가서 대기.”
“그, 그렇지만!”
요슈아와 리시먼드의 손을 떼어낸 발자크가 얼른 변명했다.
“황도는 아무래도 위험하고, 파티에 너 혼자 있는 건 더더욱—”
“아, 그렇네. 위험하니까 오라버니들이랑 같이 다녀야겠어. ……그런데 언제까지?”
“뭐?”
“내일은 위험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어?”
“…….”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아. 내 용 때문이겠지. 그런데 1년 뒤에는 내게 용이 없어?”
“…….”
“10년 뒤에는?”
“…….”
“평생 오라버니들과 같이 다녀야 할까? 위험하니까.”
큰일이다.
진짜로 화가 났다.
에릴로트는 보통 대화에서 져주는 편이었다.
무어라 말하려고 하다가도 가족들이 시무룩해지면, 대체로 알았다고 말해준다.
요슈아와 리시먼드는 눈치를 보았고, 발자크는 시무룩해졌다.
“네 말이 맞아…….”
에릴로트가 검지를 쭉 펼쳐서 입구를 가리켰다.
“집으로 돌아가.”
“응…….”
“알겠어…….”
“그래…….”
황홀한 눈으로 세 미소년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입을 떡 벌렸다.
저 여자애가 등장하기 전에, 세 미소년의 미모에 홀린 몇몇이 접근했었다.
“안녕하세요? 앙튀에 후작가의 시오라예요. 세 분은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뉘신 지 여쭐 수 있을까요?”
“혹시 아스트라 백작가의 도련님들? 어머! 맞구나. 릴리로즈 롱트레랍니다!”
“클로이 메리아타예요. 혹시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럴 때마다 저 미소년들은 북부의 서리 못지않은 눈빛으로 쳐다봤다.
귀찮아.
말 걸지 마.
가.
눈빛에서 냉랭하리만치 서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어머나, 기죽은 강아지 같아.’
‘귀여워라…….’
‘뭐야, 너무 귀여워!’
소녀들은 세 남자의 등 뒤로 축 처진 꼬리의 환상을 봤다.
입구를 향해 일렬로 쪼르륵 걸어가던 발자크가 힐끔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앞에서만 기다리면 안 돼?”
“안 돼.”
“감이 이상한데…….”
“빨리 가!”
에릴로트가 소리치자, 발자크는 “으응…….” 하며 또 한 번 시무룩해졌다.
세 미소년은 기죽은 얼굴로 입구를 나섰다.
요슈아가 발자크에게 짓씹듯 말했다.
“그러니까 오지 말자고 했잖아.”
리시먼드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앞으로 쫓아오지 말라고 했다고, 먼저 가면 된다는 소리는 하지 마라.”
발자크는 억울해졌다.
저희도 다 좋다고 했으면서!
‘감이 나빴단 말야.’
왠지 도둑놈이 에릴로트에게 접근할 것만 같은 기묘한 기분.
세 미소년이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흑발의 청안을 가진, 그들 못지않은 아름다운 소년이 스쳐 지나갔다.
‘응?’
‘뭐야.’
‘뭐지?’
흑발의 소년이 지나가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았다.
흑발의 소년은 그들을 힐끗 쳐다봤다.
아스트라 백작가의 삼형제와 흑발 소년의 시선이 공중에서 조우했다.
그리고 흑발 소년은 안으로 들어갔는데, 삼형제는 미간을 좁혔다.
“이상하게 기분 나쁜 놈이네.”
“뭔가가…….”
“그래.”
어쩐지 평생에 걸친 원수가 될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었다.
* * *
오라버니들이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단단히 화난 척하길 잘했어.’
설득하려고 했다면 몇 시간은 걸렸을 거다.
‘설득할 말이 없기도 하고.’
삼형제는 내가 관련된 일이면 가끔 바보가 되곤 했다.
열 살짜리가 이만큼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당연히 바깥출입을 삼가야지!
적어도 ‘에릴로트 아스트라를 노리면 죽는다.’라는 게 황도 사람들 머리에 박힐 때까진 조심하는 게 옳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외출을 안 할 수도 없지.’
할 일이 너무 많거든.
나는 슬퍼하는 표정으로 돌아가는 오라버니들을 보고 생각했다.
‘미안, 오라버니들.’
……오늘은 알렉시스를 살려야 했어.
“저, 아가씨……?”
마침 하이디가 출입증을 가지고 돌아왔다.
“곁으로 가도 될까요?”
“응?”
하이디는 울망울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화가 많이 난 것 같으셔서…….”
나와 관련된 일에 바보가 되는 사람은 꼭 아빠나 삼형제 뿐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이디도, 마부도 곁에 오지 못하고 ‘우리 아가씨, 화가 나셨나 봐!’하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응, 출입증을 이리 줘. 그리고…… 알렉시스.”
부르자,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알렉시스가 내게 다가왔다.
“이 애를 데리고 있어 줄래?”
“그분은…….”
나는 빙그레 웃고 사람들을 둘러봤다.
“내 파트너야.”
“어머……!”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오라버니들이 시선을 모아줘서 빠르게 관심이 쏠리네.’
알렉시스는 증명할 수 있는 신분이 없다.
나 때처럼 하이디가 신분 패만으로 출입증을 가지고 오지 못할 것이다.
“출입증은 내가 받아올 테니, 잘 모셔줘. 부탁해?”
“예, 아가씨!”
하이디의 가슴엔 아스트라의 고용인임을 뜻하는 까마귀 브로치가 있다.
하이디와 함께 둔다면, 다른 귀족들이 쉽게 보고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난 알렉시스와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파티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출입증을 보이자, 경비병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아스트라 백작가의 에릴로트 님 드십니다!”
거대한 문이 열리고, 화려한 홀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합 정원 파티의 시작이었다.
* * *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나는 홀을 사뿐사뿐 걸어 들어갔는데, 주스 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이 조심스럽게 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아스트라 백작 영애?”
“만나서 반가워요. 크레이솔 가의 멜로디예요.”
“듣던 것보다 더 멋지신걸요.”
우후후, 웃으며 접근한 아이들의 시선이 매서웠다.
탐색할 생각으로 가득한 모양이다.
‘오…….’
아스트라에서는 느껴본 바 없는, 짜릿한 사교계의 시선.
아스트라는 혈족들이다 보니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이런 탐색은 필요 없다.
나는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그러자 반대쪽에서 모여있는 아이들 틈에서 붉은 장발의 여자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말씀을. 용의 주인이라던 아스트라 백작 영애를 뵙게 되어서 저희가 영광이지요.”
“그쪽은…….”
“루멜리사 파앙테랍니다. 이번 백합 정원 파티의 호스트예요.”
백합 정원 파티는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주최한다.
장소는 백합 정원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루멜리사 파앙테라면…… 아하.’
황태후의 친정 쪽 조카다.
사교계를 주름잡는 파앙테 후작 부인의 딸로, 아이들의 사교계에선 공주님이나 다름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샐샐 웃으며 말을 붙였다.
“이번 파티는 정말로 훌륭하네요.”
“파앙테 영애의 손이 닿았는데 당연하지요.”
“초청된 어른도 굉장하다면서요?”
파앙테가 오만한 미소를 짓고 나를 쳐다봤다. 엄청나게 도전적인 시선이었다.
그러곤 쿡쿡 웃으며 말했다.
“네. 황족을 초청했거든요.”
“황족? 세상에……!”
아이들이 모두 놀라서 눈을 깜빡이는 와중에 파앙테 영애가 말했다.
“아, 아스트라 백작 영애는 황족분들은 잘 모르시겠죠? 염려하지 마세요. 곧 소개해드릴 테니까요.”
그때였다.
문 밖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아나톨리 선황녀님 드십니다!”
‘드디어.’
올 줄 알았다.
이게 내가 오라버니들을 일찍 돌려보낸 또 하나의 이유니까.
아나톨리 선황녀가 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그리고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