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88)
이 3세는 악역입니다 88화.(88/390)
88화.
“핫……!”
아나톨리 선황녀가 뻣뻣하게 굳어졌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파란 안색으로 어쩔 줄을 모른다.
선황녀가 입술을 옴짝거리던 그때, 파앙테 영애가 나섰다.
“선황녀님을 뵙습니다. 황가에 광영을.”
“황가에 광영을.”
“황가에 광영을.”
치마를 넓게 펼친 파앙테 영애가 선창하자, 아이들이 제창했다.
나 또한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
파앙테 영애는 생글생글 웃으며, 아나톨리에게 말을 붙였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그, 그래…….”
“황태후 폐하의 부탁으로 오신 거지요?”
파앙테 영애가 ‘황태후 폐하’를 강조하며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황태후가 나를 위해서 선황녀를 보내주었다’라는 것을 으스대고 싶은 모양이다.
난 선황녀를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새파란 얼굴로 어깨를 움츠렸다.
“나, 난 이제 그만 가봐야…….”
그러자 파앙테 영애가 흠칫 놀랐다.
“네?!”
“얼굴은 비췄으니까.”
“하, 하지만…….”
파앙테 영애는 당황했다.
어렵게 데려온 황족이 얼굴만 비추고 간다니. 구색만 맞추기 위한 방문이었다는 게 티가 나는 일이다.
황족과 자신의 단단한 끈을 자랑하고 싶었던 파앙테 영애에겐 곤란한 일일 터였다.
파앙테 영애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마시고 잠시 함께하시는 게 어떨까요? 평소와 달리 궁에만 계신다고 황태후 폐하께서 걱정이 크세요.”
선황녀가 확실히 겁을 먹기는 한 모양이었다.
사교 활동까지 집어치우고 궁에 틀어박혀 있었다면.
‘그러게, 무서울 짓을 왜 해?’
나는 실소를 흘렸고, 그런 날 본 선황녀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됐으니까, 난 이만—”
“선황녀님을 위해서 어머님이 좋은 술을 준비하셨대요. 로렌! 어머니가 준비하신 술을 선황녀님께……!”
“됐다잖아—!!”
선황녀가 버럭 소리쳤다.
파앙테 영애는 희게 질렸고, 회장엔 침묵이 감돌았다.
‘바보.’
루멜리사 파앙테는 파앙테 후작의 무남독녀다.
후작 부부가 딸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먼 아스트라까지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녀가 주최한 파티에서 이런 소란이라니.
여기에 있던 아이들은 파티가 끝나자마자 제 부모님께 오늘 일을 고해바칠 터.
파앙테 부부는 딸이 망신을 당했다며 이를 갈 게 분명했다.
‘파앙테는 황태후의 친정이고, 황제파의 거두잖아?’
그들이 앙심을 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경우는 유혜민의 세계에서도 흔하게 있던 일인데.
파앙테 영애는 모멸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고, 파티장의 누구도 쉽사리 말을 건네지 못했다.
나를 제외하면.
“영애, 괜찮으세요?”
내가 묻자, 파앙테 영애가 흠칫 정신을 차렸다.
“아……. 네. 제가 아무래도 피곤하신 선황녀님께 무리한 부탁을 드린 모양이에요. 용서하세요, 선황녀님…….”
나는 파앙테 영애의 어깨를 감싸며 아나톨리 선황녀를 쳐다봤다.
“많이 피곤하셨던 모양이에요. 파티에서 소리를 치실 만큼 말이에요.”
“…….”
“그런 몸으로 아이들의 파티에까지 몸소 오신 것이니, 파앙테 영애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 수 있지요.”
해석하면 이런 뜻이다.
저 상태로 파티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겠어?
네가 주최한 파티가 아니면 선황녀가 저 상태로 왔을까?
그러니 네가 얼마나 황가에 귀여움을 받는 거니.
다른 사람들도 그 점을 알 거야.
내 말을 이해한 파앙테 영애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그렇지요!”
“그럼요.”
아이가 활짝 웃으며 선황녀에게 말했다.
“몸 상태가 그리 안 좋으셨다니 마음이 아파요. 하면 얼른 돌아가 보셔야겠군요.”
“…….”
“세비즈, 네가 황녀님을 마차까지 모셔다드리렴. 주최자인 난 파티장을 떠날 수 없어서.”
‘세비즈 공자는 파앙테 영애의 사촌이었지?’
굳이 황족을 사촌에게 배웅하게 하는 걸 보면, 그래도 앙심은 있나 보다.
“아, 괜찮으면 제가 배웅해도 될까요?”
“영애가요?”
“네. 마침 파트너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거든요. 1구역의 분이 아니라 입장 절차가 까다롭더라고요. 입장이 얼마나 걸릴지 확인도 겸해서 나갔다 오면 어떨까 싶어요. ”
“어머나, 영애의 파트너가 그리 오래 기다리셔야 되겠어요? 로렌, 네가 바로 입장증을 가져다드리렴.”
너스(귀족 아이의 유모)의 표식을 목에 멘 로렌이란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
파앙테 영애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럼 배웅을 부탁드릴게요.”
“네.”
그렇게 말한 파앙테 영애가 황녀를 보며 무릎을 가볍게 굽혔다.
“황가에 광영을.”
“광영을.”
“광영을.”
아이들의 인사를 받은 선황녀는 도망치듯이 문을 나섰다.
물론 내가 그 뒤를 쫓았다.
마차까지 가는 내내 선황녀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그녀가 마차에 오르려는 그때, 나는 말했다.
“몸 상태가 호전되시길 빌어요.”
“너……!”
선황녀가 이를 악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기세등등할지 지켜볼 거야.”
나는 황궁의 마부와 시녀들을 힐끗 쳐다봤다.
‘지난번에 황태후 궁에서 봤던 시녀인데…… 아하.’
어떻게 일이 굴러가고 있는지 단박에 감이 왔다.
황태후도 아스트라 장원에서 거하게 사고 친 걸 들었을 거다. 그러니 제 사람을 붙여놨겠지.
나는 눈썹을 늘어뜨리며 선황녀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제가 선황녀님께 실수라도 한 걸까요?”
“가증스럽긴……!”
“네?”
“날 얼마나 더 최악까지 가게 할 셈이야! 너 때문에 난 잠도 잘 수가 없단 말야!”
“아버지와의 일 때문인가요? 죄송해요, 선황녀님. 그건 저도 어쩔 수 없는 일인 터라…….”
“너—!!”
눈이 돌아간 아나톨리 선황녀가 내 어깨를 잡았다.
“선황녀님!”
시녀들이 얼른 그녀를 뜯어말렸다.
황태후의 시녀가 사색이 된 게 보였다.
나는 웃음을 능숙히 숨기곤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괜찮으신가요, 영애?”
황태후의 시녀가 얼른 나를 살폈다.
“아, 전 괜찮아요……. 조금 놀랐을 뿐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세상에나…….”
시녀는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정말로 괜찮아요!”
내가 말하는 동안에도 선황녀는 꽥꽥 소리쳤다.
“모든 건 저 계집애 탓이란 말야! 저 계집애가 내게 어떤 말을 했는지 아느냐고! 데이몬드 님도 네가 그런 가증스러운 계집이란 걸 알아?!”
처음부터 멍청한 사람이긴 했지만, 오늘의 선황녀는 거의 정신을 놓고 있었다.
불안이 최고조로 오르면 이렇듯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굴곤 한다.
똑똑한 사람이라도 궁지에 몰리면 헛짓거리를 하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원래도 바보 같던 선황녀가 불안으로 불면까지 얻었으니,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거기서 우리 아빠 이름이 나오면 어떡해?’
그러면 사람들은 네가 아빠 때문에 내게 이 난리를 치는 줄 알 것 아니야.
내 예상대로 황태후의 시녀는 질릴 대로 질린 표정이었다.
“정말이지…….”
한숨을 푹 내쉰 황태후의 시녀가 다른 시녀에게 명했다.
“황태후 폐하의 명을 잊지 않았겠지. 더는 선황녀님께서 사고 치지 못하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라 하셨다.”
“예…….”
황태후의 시녀가 나를 쳐다봤다.
“영애. 황태후 폐하께서 이번 일을 크게 보상하실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깜짝 놀란 척 양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네?”
“황태후 폐하께서 아시면 마음 아프실 거예요. 선황녀님이 원래 나쁜 분도 아니고…….”
“…….”
“아스트라의 어른들이 말씀하셨는데요. 너무 깊은 사랑은 가끔 가시처럼 아플 때가 있대요. 선황녀님께서도 가시 때문에 많이 아프신 거예요.”
“영애…….”
“그리고 황태후 폐하께서 제게 보상하시면, 오늘 일을 다 알게 될 텐데…… 제가 이런 일을 당한 줄 알면 제 아버님께서도 슬프실 테고요.”
“어쩜…….”
황태후의 시녀는 매우 감격한 표정이었다.
황궁의 마부나, 아나톨리 선황녀의 호위들조차 나를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딱 ‘귀족 영애가 어디서 이런 꼴을 당해봤을까. 그런데도 참 의젓하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아스트라에선 비일비재한 일인데.’
오히려 선황녀가 황궁에서 곱게만 커서 그런지 힘이 하나도 없었다.
간지럽지도 않았다.
황태후의 시녀는 여전히 소란스러운 아나톨리 선황녀를 힐끔 보고서 내게 말했다.
“황태후 폐하를 생각하는 영애의 그 갸륵한 마음까지도 잘 전하겠습니다.”
난 속으로 씩 웃었다.
그러나 표정은 여전히 시무룩하게 가장했다.
“황태후 폐하께서 너무 속상해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에나……. 영애가 이처럼 폐하를 생각하는 줄 아신다면 속상함도 금세 잊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나는 시녀들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언제까지 이럴 셈이야. 언제까지 이럴 거냐고!”
“황녀님, 제발……!”
황궁 사람들이 선황녀를 마차에 몰아넣느라 정신이 없을 때, 나는 선황녀만 보이도록 입을 벙긋거렸다.
네가 피 말라 죽을 때까지.
선황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게, 누가 날 건드리랬어?’
난 받은 건 무조건 곱절로 돌려주는 어린이다.
애초에 선황녀가 아스트라 장원에서 벌인 일로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처벌이 불가능하다.
정확하게 따지면 그녀의 죄는 하나였다.
‘몬스터에게 약을 쓴 것.’
하지만 결국, 그 일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날 일부러 공격한 것이니, 몇 년 정도 사교활동이 불가능한 선에서 끝나겠지.
더 큰 벌을 받게 할 방법도 물론 있다.
‘아스트라에서 문제 삼는 것.’
하지만 그렇게 되면, 황가와 아스트라 사이엔 깊은 골이 생길 것이다.
왜 사고를 친 건 선황녀인데, 리스크는 우리까지 짊어져야 해?
나는 떠나는 황궁 마차를 보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그때였다.
“대단하다, 정말로.”
알렉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입장증을 손목에 찬 그 애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건드렸으면 곱절로 갚아줘야지.”
“그래, 너라면 그렇겠지.”
알렉시스가 실소를 터뜨렸다.
난 어깨를 으쓱하고서 말했다.
“이제 갈까. 파티장으로?”
“그래.”
“예법은 대충 익혀왔지?”
“네가 그 닦달을 했는데, 당연히.”
알렉시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한 발을 뒤로 빼고 살짝 무릎을 굽히곤, 그의 손에 가볍게 검지와 중지, 약지를 올렸다.
이제 드디어 입장이었다.
* * *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문으로 집중되었다.
금발의 적안. 장미가 사람이 된 듯 화려한 외모의 여자아이가 아름다운 소년과 함께 파티장에 입장했다.
한차례 소란으로 그녀가 아스트라 백작 영애란 것은 모두 아는 일이었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소년들이 “와…….” 하며 탄성을 흘렸다.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미모는 유명했다.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아스트라 가운데서도 군계일학.
제국에서 미모로 제일이라는 데이몬드 아스트라를 그대로 빼닮은 인형 같은 아이.
그렇지만 소문을 들었을 땐, 과장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응, 정말로…….’
아이와 눈이 마주친 소년은 새빨개진 얼굴로 허둥거리다가 주스 잔을 놓쳤다.
대화하던 것도 잊고 입을 떡 벌린 소년들도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신봉하는 소녀들도 황홀한 탄성을 흘렸다.
눈을 깜빡일 적에 우아하게 흔들리는 금색의 속눈썹.
그 아래에 붉은 눈동자는 그 어떤 보석보다도 반짝거렸다.
신이 직접 빚었다고 해도 믿을 만한 아름다운 얼굴형이나, 꽃잎을 문 것 같은 입술.
어린 탓에 아직 조그마한 코가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두 번째 입장인데도 정신없이 에릴로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고, 하이디는 속으로 잔뜩 으스댔다.
‘그런데 저 남자애는 누구지?’
저토록 아름다운 아스트라 백작 영애와 함께인데도 전혀 꿀리지 않는 외모의 소년.
밤하늘을 그러모은 것 같은 흑발.
새벽 성처럼 눈부신 청안.
에릴로트의 곁에 있기에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외모였다.
‘와…….’
‘굉장해…….’
소녀들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때, 루멜리사 파앙테가 다가왔다.
“영애, 선황녀님은 잘 보내드렸나요?”
“네.”
파앙테 영애가 에릴로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덕분에 파티장을 비우지 않을 수 있었어요.”
호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요.”
“아니긴요. 영애의 마음이 고마운 것이지요. 그런데…… 이분은?”
에릴로트가 “아….” 하며 알렉시스를 돌아봤다.
알렉시스는 가슴에 손을 가볍게 얹은 채로 말했다.
“알렉시스입니다.”
그러자 소녀들이 얼른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황도에선 처음 보는 분인데, 어느 가문의 영식이신지……?”
에릴로트는 남몰래 눈을 빛냈다.
‘이 질문이 올 줄 알았다.’
사람들이 모르게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알렉시스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금세 표정을 바꾸고 대답했다.
“때가 되면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어머나?”
다들 궁금한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릴로트는 능숙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정말 멋진 파티예요. 저는 황도 파티는 처음이라 너무 놀라워요.”
파앙테 영애가 입꼬리를 바짝 끌어당겼다.
“이런 파티는 많이 없을 거예요.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했으니까요.”
“고날롱 부인 말씀이 파앙테 후작 부인의 파티는 항상 멋지다고 했어요. 역시 영애도 어머니의 감을 물려받으셨나 봐요!”
파앙테 영애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기뻐라~.”
파티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줄곧 알렉시스에게 향해있었다.
에릴로트는 파앙테 영애가 손수 건넨 주스 잔을 잡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미모만큼 엄청난 화젯거리가 없지?’
황도의 시선을 알렉시스에게 모으기 계획은 대성공이었다.
* * *
파앙테 영애는 황홀한 표정으로 저택에 돌아왔다.
“어떻게, 파티는 즐거웠니?”
후작 부인이 후후, 웃으며 물었다.
“너—무요!”
“선황녀께선 잘 왔다 가셨고?”
“말도 마세요. 정말 너무해!”
“어째서?”
“아스트라 백작 영애가 아니었다면 망신을 당할 뻔했다니까요?”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