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89)
이 3세는 악역입니다 89화.(89/390)
89화.
파앙테 후작 부인이 인상을 쓰며 딸의 팔을 잡았다.
“대체 무슨 소리니.”
중정을 지나가던 파앙테 후작이 모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루멜리사가 피곤할 터인데, 왜 오자마자 아이를 붙들고 있소?”
“선황녀 때문에 우리 루멜리사가 망신을 당할 뻔했다지 뭐예요.”
“뭐라고?”
딸을 지극히 아끼는 파앙테 후작이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자세히 말해보렴. 무슨 일이지?”
루멜리사는 종달새 부리처럼 입술을 삐죽이며 말을 이었다.
“파티장으로 딱 열 걸음 걸어오시더니 가시겠다는 거예요.”
“선황녀가?”
“네! 당황해서 제가 ‘그러지 마시고, 잠시 계시는 게 어떨까요’하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화를 버럭 내시더라고요!”
후작 부인이 얼굴을 굳히고 물었다.
“예의 없이 말한 것은 아니고?”
“제가 설마 그랬겠어요?”
루멜리사는 그때의 치욕이 떠오른다는 듯 치맛자락을 꽉 잡고 부르르 떨었다.
“사람 많은 곳에서 ‘간다니까!’ 하면서 소리치는데 당황스러워서 혼났어요. 눈물이 다 날 뻔했단 말이에요.”
“뭐야?!”
파앙테 후작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저 시골 귀족들의 파티에서도 그런 일은 다시 없을 무례다.
오자마자 가겠다고 하다니.
심지어는 소리를 쳤다고?
“아무리 애들 파티라지만, 어떻게 그리 무례하게…….”
파앙테 후작이 으득, 이를 갈았다.
싸늘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파앙테 후작 부인이 말했다.
“애들 파티라서 그랬겠어요?”
그러자 후작이 미간을 좁혔다.
“무슨 소리요?”
“백합 정원 파티가 그냥 애들 파티냔 말이에요. 가문의 후계자들이 모인 파티에요. 루멜리사는 파앙테의 하나뿐인 후계자고 말이에요.”
후작 부인이 제 남편을 보며 짓씹듯 말했다.
“이 파앙테 후작가의 후계자가 그리 우습게 보였다는 말이에요.”
“허…….”
“이 파티에 내가 공을 들였다는 것을 선황녀가 몰랐을까요? 가문의 안주인이 황태후 폐하께 참석을 부탁드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파앙테 후작 부부가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루멜리사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창피했다고요. 다른 영애와 영식들이 말도 못 하고 저를 쳐다봤단 말이에요…….”
“세상에, 어미 없는 곳에서 내 아기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딸이라면 껌뻑 죽는 후작 부인이 얼른 아이를 다독였다.
제 어머니의 품에 쏙 안겨 있던 루멜리사는 “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아스트라 백작 영애 덕에 살았어요.”
“아스트라 백작 영애라면……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딸 말이니?”
“네! 생각했던 것처럼 나쁜 애가 아니더라고요.”
루멜리사는 파티 전부터 여러 군데에서 에릴로트의 이야기를 들었다.
‘맹랑하기 짝이 없는 애라더라.’
‘이번 백합 정원 파티의 주인공은 루멜리사 파앙테가 아니라,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될 것이다.’
‘영악한 아이이니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조심하는 게 좋겠다.’
특히 부모님을 통해서 친분을 쌓은 아스트라의 혈족에게서도 그런 말을 들었다.
“조프리 아스트라가 그랬다면서요? 에릴로트 아스트라라면 제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어서라도 주인공이 되려고 할 거라고.”
“뭐……. 그렇다고는 하더구나.”
발데릭 아스트라는 아스트라 공작의 아들인 만큼 대귀족들과 여러 끈이 있었다.
파앙테 후작과도 한 클럽에 몸을 담았다.
그래서 아스트라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루멜리사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런데 굉장히 좋은 애였어요.”
“그래?”
“네. 제가 곤란해하니까 선황녀의 배웅도 나가주고…….”
후작 부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식통에 의하면 선황녀는 아스트라 장원에서 데이몬드를 노리고 온갖 사고를 쳤다고 했다.
그 딸인 에릴로트가 크게 피해를 봤다는 얘기가 있었다.
‘웬만해선 선황녀와 마주치기도 싫을 터인데.’
물론 어른들이야 그런 원수가 졌다고 해도, 철 가면을 써서 사교술을 발휘하겠지만…….
열 살짜리 여자 아이에게 그런 사교술이 있을 리가.
아무리 부모가 주의시켰다고 해도, 제 감정이 우선일 것이다.
“어머나……. 곤란한 아이가 있으니, 제가 싫어도 나선 모양이구나.”
“그런가 봐요. 정말 착하죠?”
“아스트라 혈족답지 않게 사려 깊은 아이이긴 해.”
그 혈족이 얼마나 오만한지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작위도 없는 주제에 대귀족들을 호령하고 다니는 2세도 있었다.
루멜리사는 생긋 웃었다.
“왜 황도 귀족 애들은 그렇잖아요. 겉으로는 착한 체해도 결국 자기 이득이 제일인데.”
“그런 면이 있지.”
“그런데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그렇지 않았어요. 주인공이 되려고 하기는커녕, 절 감싸줬다니까요?”
“감싸줘?”
“네. 선황녀가 소리를 친 건 피곤해서라고 했어요. 피곤한 데도 굳이 여기까지 온 건 다 제가 몹시 귀여워서인 거죠!”
똑똑하기도 해라.
정말로 에릴로트 아스트라 덕분에 딸이 망신을 면한 모양이었다.
루멜리사는 생긋 웃었다.
“좋은 애니까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어머니의 살롱에 초대해주시면 안 돼요?”
파앙테 후작 부인의 살롱은 사교계의 거두들이 모이는 자리이다.
대귀족 중에서도 상위 10프로 안에 드는 걸출한 자들만 모이는 곳.
사람들은 황태후의 티 살롱 다음엔 파앙테의 살롱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파앙테 후작 부인이 미소 지었다.
“우리 딸의 부탁인데 왜 안 되겠니.”
“기뻐라~!”
루멜리사가 제 어머니의 허리를 끌어안자 후작 부부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후작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쪽에서 은혜를 입었는데 이대로 두긴 뭐하죠. 당신도 그 아버지인 데이몬드 아스트라를 클럽에 초대하는 게 어떻겠어요?”
“우리 클럽? 하지만 다른 아스트라 놈들이 펄쩍 뛸 터인데……. 귀찮아질 거요.”
“발데릭이나 헤르난, 구스타프가 뭐라고요. 이제 아스트라의 떠오르는 태양은 데이몬드 아스트라예요.”
“그렇기야 하오.”
“게다가 우리 딸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냥 있으시려고요?”
루멜리사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제 아버지를 쳐다봤다.
후작은 홍조를 띠며 딸의 뺨에 얼굴을 문질렀다.
“귀엽기도 하지, 우리 딸. 그래! 내 자식이 은혜를 입었는데 못할 게 뭐 있겠어.”
파앙테 일가는 하하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도 후작 부인의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선황녀……. 가만두지 않겠어.’
새끼가 건드려진 맹수는 누구보다 사나워지는 법이었다.
* * *
며칠 후, 황태후궁.
아나톨리 선황녀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로 황태후의 심기를 살폈다.
“저어, 모후…….”
탁.
황태후는 읽고 있던 책을 접었다.
기세가 소름 끼치도록 냉랭했다.
아나톨리 선황녀는 다급히 황태후에게 애걸했다.
“지난번, 백합 정원 파티는요. 제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영악한 계집애가—!”
황태후의 매서운 시선이 아나톨리 선황녀에게 닿았다.
아나톨리는 흠칫,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모, 모후…….”
“네가 아스트라 장원에서 사고 친 것을 막아준 게 누군지 아느냐.”
“데이몬드 님이…….”
황태후가 실소를 흘렸다.
“황제에게 가장 먼저 너를 벌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그 데이몬드다.”
“……!”
“아스트라 공작이 그처럼 화를 낸 것을 난 장장 40년간 본 적이 없지.”
“하, 하면…….”
“에릴로트 아스트라다. 그 애가 제 조부와 부친에게 매달려 겨우 네가 재판장까지 올라가는 일을 막았어.”
“…….”
황태후는 황실 사람들이 황도에 올라온 직후, 아나톨리 선황녀의 시녀들을 매섭게 다그쳤다.
그 결과, 아나톨리가 데이몬드를 차지하기 위해 에릴로트의 몬스터를 이용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나톨리 선황녀가 우물쭈물 말했다.
“저는 황제 폐하의 누이동생이에요. 아스트라에서 황가와 척을 질 생각이 아니면 절 어떻게 하지 못할…….”
“그래, 다른 건 전부 황가에서 수습할 수 있지. 하지만 풍요제의 일은—!!”
황태후가 크게 일갈했다.
이토록 노여워하는 황태후를 본 일이 없었다.
아나톨리는 새파랗게 질렸고, 자리해 있던 시녀들은 일시에 무릎을 굽혔다.
황태후가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선황녀를 노려보았다.
“감히 풍요제에 그런 삿된 약초를 써.”
“모, 모후…….”
“몬스터를 불러와서 풍요제를 망쳐.”
“그, 그건, 그건요…….”
“그러고서도 죄를 아스트라에 뒤집어씌우려고 해!”
“…….”
에릴로트가 용을 불러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에릴로트와 선황녀가 나란히 재판장에 올라갔을 것이다.
망신은 둘째 치고, 이 일이 밝혀졌을 때 아스트라가 어떻게 나왔을지 알 수 없다.
아나톨리 선황녀는 얼른 황태후의 팔을 붙들었다.
“제 말도 들어주세요. 저는 정말 잘해보려고 한 거예요.”
“무엇을?”
“예?”
“데이몬드와의 결혼을 잘해보고 싶었더냐.”
“…….”
“네가 결혼시켜 주지 않으면 죽는다고 자살 시도를 할 때도 난 참았단다.”
“…….”
“번번이 아스트라에 세작을 보내 데이몬드의 뒤를 캐내려 할 때도, 내 선에서 마무리했지.”
“…….”
“한데 이제는 그 딸까지 물고 늘어져서 이 사달을 내—!!”
황태후가 편지를 아나톨리 선황녀의 얼굴에 내던졌다.
팍!
선황녀의 얼굴을 맞고 편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네 눈으로 보아라.”
“이게 무엇이기에…….”
“네가 참석하기로 예정되었던 파티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는 편지이지.”
“뭐라고요?”
“누구겠느냐. 파앙테 후작 부인이야. 널 사교계에서 매장하려는 것이야.”
“어떻게 그런……! 미친 거예요? 아무리 아스트라 사건이 있다고 하지만 전 황가의 일원이잖아요!”
“그간 네가 쌓아온 만행들의 결과다.”
“…….”
“아스트라 장원 일이 있기 전부터 벌인 결과. 거기에 백합 정원 파티까지 얹어져서 벌어진 일!”
파앙테 후작 부인은 딸을 망신 준 선황녀를 압박하기 위해 ‘에릴로트’를 카드로 꺼내 들었다.
‘데이몬드에게 미친 선황녀가 아스트라 장원에서 소란을 벌였다더라.’
‘몬스터가 날뛰었는데, 그게 정말 아스트라의 관리 소홀일까?’
‘용까지 길들인 엄청난 가호에 왜 하필 선황녀가 왔을 때 이상이 생겼을까.’
‘그러고 보니 선황녀가 공공연히 에릴로트 아스트라에게 자신을 어미라 부르도록 강요했다더라.’
‘선황녀가 데이몬드 아스트라를 차지하기 위해 무슨 짓을 벌인 건 아닐까?’
사교계에 떠도는 풍문은 이러했다.
선황녀를 공격하기 위해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사교계엔 명분이 생겼다.
[아비와 결혼하기 위해 가여운 딸을 핍박한 선황녀에 대한 반기.]도덕은 기실 귀족사회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어떤 경우엔 다르다.
사교계에선 때로 가장 강력한 명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황태후가 얼굴을 굳히고 선황녀를 쏘아보았다.
“에릴로트 아스트라에게 정식으로 사과하여라.”
“모후—!”
벌떡 일어난 선황녀가 소리쳤다.
내가 왜?
내가 어째서 그런 영악한 애의 술수에 빠져 사과를 해야 해?
“정식으로 사과하면 아스트라와 다시는 연을 맺을 수 없어요.”
데이몬드의 아내가 되는 일은 평생 요원해진다는 것이다.
황태후가 인상을 쓰며 이마를 짚었다.
“대체 널 어찌해야 할까…….”
“전 못해요. 못한다고요! 그따위 계집아이 때문에 그런 망신을 당하고 데이몬드를 영영 잃을 수 없어요!”
“하면 평생 지워진 선황녀로 살아야겠지.”
“……모후?”
“난 널 위해 해줄 일이 없어.”
“모후, 어떻게 그런…….”
아나톨리 선황녀의 표정이 무너졌다.
“선황을 생각하세요. 저를 얼마나 귀여워하셨는지 잊으셨어요? 선황께선 가시기 전까지 모후께 저를 부탁하셨잖아요.”
“해서 너를 이제껏 봐주었지.”
“…….”
“고작 집시의 몸에서 태어난 너를 황가의 일원으로 들이기 위해 내 자식이라 공표했다.”
“…….”
“지금까지 널 봐준 이유는 선황때문이야. 네 가호 때문이고!”
“…….”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너 같은 거라도 벌하지 말아달라 편지를 보냈더구나.”
그 얼마나 기특한 아이인지.
선황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사려 깊고, 영특한 아이였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난 이 사고를 수습해줄 마음이 없어. 네 오라비에게 매달려도 마찬가지다.”
그야 그럴 것이다.
황제는 이제 자신을 만나주지도 않으니까.
선황녀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렇다고 내가 가만히 당하고 있을 줄 알아?’
선황녀가 치맛자락을 꽉 비틀어 쥐었다.
그녀는 황태후궁을 씩씩대면서 나왔다.
복도에 혼자 가만히 선 선황녀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알리아나.”
부르자, 시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예, 황녀님.”
“넌 가서 그 약을 가져와라.”
“약이라시면 설마…….”
“그래, 그 약 말야!”
“야, 약을 어찌하시려고요?”
“파앙테의 파티에 그 계집이 참석한다지?”
“예…….”
“사람을 시켜 약을 탄 쿠키를 넣어놔라.”
“선황녀님!”
소스라치게 놀란 시녀가 소리쳤다.
선황녀의 표정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이렇게 사람을 궁지까지 몰았으니, 절대로 가만히 둬선 안 되지.”
독은 아니었다.
다만, 입에 넣는다면 아주 인생이 고달파질 것이다.
선황녀의 입매가 삐뚜름히 올라갔다.
* * *
파앙테의 파티장.
“안녕하세요, 파앙테 후작 부인.”
“어머나, 귀여운 숙녀가 오셨군요. 반가워요.”
내가 더!
파앙테의 파티라니, 이게 무슨 호사람.
나는 속으로 킬킬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가만있자. 쿠키는 저기에 있네.’
그럼 약도 저기 들었겠다.
‘멍청한 아나톨리.’
걸려 들어줘서 참 고맙다.
‘아무리 수를 써봐라.’
나한테는 우리 독자님들이 다 알려준다고!
댓글 만세!
독자님들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