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9)
이 3세는 악역입니다 9화.(9/390)
9화.
* * *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였다.
할 일이 많았다.
오후쯤 되어서는 연회 준비까지 해야 했고.
리타 부인의 드레스는 오전에 도착했다.
어제 잉크가 묻었던 부분은 자국 하나 없이 말끔하다.
‘잉크 부분을 죄 도려내고 다시 이어 붙이느라 고생했겠다.’
치장한 날 본 콘라드가 말했다.
“오늘 아주 멋지시군요.”
“곤녀밈이니까. (공녀님이니까.)”
내가 우쭐하며 턱을 척, 치켜들자 그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예, 멋진 공녀님으로 보입니다.”
“드레스 고마어.”
“뭘요.”
콘라드는 파티에서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줬다.
“파티는 1부와 2부로 나뉩니다.”
1부는 만찬장에서 식사를, 2부는 홀에서 가벼운 술을 동반한 파티를 즐긴다.
“나는 1부야.”
말하자, 콘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리앙틴 아가씨도 1부에 배정되셨고요.”
그러곤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인사만 하시고, 바로 나오셔도 됩니다. 아가씨는 아직 어리시니까요.”
“녜.”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앙틴 때문에 걱정되는 것 같으니까.’
콘라드는 어제 잉크병 사건을 목격했으니, 걱정할 만하다.
그리고 드디어 해가 저물고, 만찬장에 불이 켜졌다.
생일 연회의 시작이었다.
만찬장에 들어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엄청나다…….’
반질반질한 검은 대리석 바닥.
황금으로 된 부착물이 담쟁이 넝쿨처럼 따라 오르는 기둥.
테이블 상석의 바로 뒤편엔 폭포처럼 물이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만찬장을 둘러보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만찬장에 들어올 수 있고, 팔뚝만큼 작은 귀족 영애라면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에릴로트 아가씨.”
날 알아본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리조 백작가의 스테인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조버 가에 길다스입니다.”
나는 치마를 활짝 펼치고 무릎을 가볍게 굽혔다.
“에릴로트 아스트라임미다.”
똘똘하게 말하는 날 보고 사람들은 미소 지었다.
물론, 좋은 시선만 있는 건 아니었다.
“사생아라면서요?”
“대천문이 열리고 가호를 발현했다고 하던데 가능한 일인가? 돌연변이라던 얘기가…….”
멀리 있는 콘라드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게 보였다.
내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한 것 같았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런 반응을 예상 못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 정도면 예상보다 유한 편이었고, 무엇보다─
‘노다지! 노다지다!’
여기서 인맥을 잔뜩 만들어 두면 분명 미래에 도움이 될 터였다.
난 씩씩하게 사람들과 인사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부모 없이도 혼자서 씩씩하게 파티장에 있는 나를 대견하게 여겼다.
“귀엽기도 하지.”
“제 딸도 이럴 때가 있었는데요.”
그러던 찰나.
“모리조 백작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리앙틴 아가씨.”
“정말 오랜만이에요.”
“아아, 그렇죠. 한…… 넉 달쯤 된 것 같군요.”
“지난번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정원이 너무나 멋졌다고 ‘할아버님’께 말씀드렸어요.”
“공작님께 말입니까!”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
리앙틴은 까르르 웃었다.
“네에. 저는 할아버님께 이것저것 말씀드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공작님께서 리앙틴 아가씨껜 시간을 내주시나 보군요……!”
“음, 직계 중엔 저와 가장 많이 대화하실 거예요. 그쵸, 아빠?”
리앙틴이 뒤를 바라봤다.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갈색 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숙부다.’
할아버지의 셋째인 데콘스 숙부였다.
“그래. 우리 리앙틴은 늘 아버님께 다정하지.”
“아빠가 그러셨죠. 할아버님이 제게 약하신 것 같다고요. 그쵸~?”
“그럼. 유난히 널 귀여워하시지.”
그렇게 말한 숙부는 껄껄 웃었다.
파티장 안의 시선이 한순간에 리앙틴에게 집중되었다.
아스트라 공작은 피도 눈물도 없기로 유명한 노인이었다.
반란을 도모했던 자식을 제 손으로 죽였다는 소문의 냉혈한.
곁을 잘 내주는 사람이 아니라, 다가가고 싶어도 길이 없었다.
그런 공작이 귀여워하는 손녀라면, 친해지는 게 이득일 것이다.
“제 저택의 정원도 못지않게 아름답답니다, 리앙틴 아가씨.”
“제 딸과 아가씨가 동년배였죠. 언제 한번 제 성에…….”
리앙틴은 순식간에 만찬장의 중심이 되었다.
그 애는 까르르 웃었다.
“교육을 받아야 해서 시간을 내기가 어렵지만, 여러분이 이렇게 부탁하시니…….”
그때였다.
“아스트라 공작 각하 드십니다.”
만찬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갈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안으로 그가 들어왔다.
황금 향의 소유자.
서부에서 가장 광활하고 부흥한 영토의 왕.
제국 뒷세계의 중심.
─아스트라 공작이.
“공작님을 뵙습니다.”
“공작님을 뵙습니다.”
할아버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테이블의 상석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크디큰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할아버지가 앉자, 그들 또한 착석했다.
할아버지의 가장 옆자리는 숙부 부부와 리앙틴의 차지였다. 나는 리앙틴의 옆에 앉았다.
자리에 한 잔씩 샴페인이 돌아갔다. 나와 리앙틴의 앞엔 오렌지 주스가 놓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데콘스 숙부가 소리쳤다.
“아스트라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찬의 분위기는 좋은 편이었다.
안 좋으려야, 안 좋을 수 없었다.
다들 할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이었으니까.
코스로 진행되는 식사가 절반 정도 서빙되었을 무렵, 데콘스 숙부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 리앙틴이 아버님의 생신을 기념하여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시선이 리앙틴에게 향했다.
리앙틴은 수줍게 웃었다.
데콘스 숙부는 껄껄 웃고 딸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선물 준비에 그렇게나 노력하더니, 정말이지 특별한 것을 마련해왔지 뭡니까. 하하하! 자, 리앙틴.”
리앙틴은 하인을 향해 손짓했다.
하인이 곧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부터 무척 호화로웠다.
리앙틴이 눈을 깜빡이며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구하는 데에 정말로 어려웠어요. 천신만고 끝에 바로 어제에서야 얻을 수 있었답니다.”
“…….”
“할아버님께서 기뻐해 주셨음 해서 정말로, 정말로 노력했어요…….”
사람들은 “호오.” 하며 탄성을 흘렸다.
아스트라의 직계가 저렇게나 어렵게 구했다는 물건에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리앙틴이 입술을 모으고 “열어 보세요.” 하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그사이에 나와 리앙틴의 시선이 마주쳤다.
쿡,
리앙틴이 입매를 비스듬히 올리며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러곤 상자를 연 할아버지를 향해 어깨를 모았다.
“지금 드셔도 좋아요. 효과가 바로 나타날 거여요.”
“무엇을.”
“그거요. 제가 드린─”
할아버지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상자 안에서 약병을 꺼냈다.
곰팡이가 잔뜩 낀, 얼핏 보기에도 사람이 절대 먹을 수 없는 액체가 들어 있었다.
“……!!”
리앙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왜, 제대로 훔쳐낸 줄 알았어?’
리앙틴이 날 노려봤다.
“무슨…….”
나는 할아버지가 든 약병을 가리켰다.
“에비, 지지야!”
* * *
그러니까 일은 이렇게 된 것이다.
리앙틴이 내 방에 들어오기 전, 나는 혹시 몰라 약을 치워 두었다.
그리고 다른 것을 넣어둔 거다.
‘가짜 육체 회귀제를.’
리앙틴이 가져간 건 육체 회귀제의 실패작이다.
<빙.흑.손>에서 육체 회귀제를 먼저 만들기 시작한 건 에릴로트였다.
하지만 실패했다.
약을 막 섭취했을 땐 치아 통증이 가시는 듯하다가도, 사흘이면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거기다 힘들게 약을 만들어도 유효 기간이 하루도 되지 않았다.
24시간이 지나면 그저 썩은 액체가 되는 것이다.
‘그 조제법에 초록 라벤더를 넣어서 개량한 게 진짜 육체 회귀제지.’
어젯밤, 방에 돌아온 난 책상 서랍이 빈 것을 보고 알았다.
리앙틴이 가짜 육체 회귀제를 가져갔다는 것을 말이다.
데콘스 숙부는 당황해서 리앙틴을 쳐다봤다.
“어떻게 된 거냐. 네가 준비한 선물이 저게 맞는 게야? 섭취해도 되는 약이냔 말이야.”
“그러니까…… 그게…….”
리앙틴은 새빨개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먹어도 된다고 우겼다가, 약을 먹은 할아버지가 잘못되면 일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선물을 열기 전에 리앙틴이 하도 자랑을 해 놔서, 오히려 꼴이 더 우스웠다.
“뭐랄까, 리앙틴 아가씨는 좀…….”
“예. 말이 앞서는 경향이 있지요.”
“생신 선물로 다 썩은 걸……. 공작님의 면만 상했습니다.”
데콘스 숙부는 매우 당황했고, 리앙틴은 손을 벌벌 떨었다. 이런 치욕은 처음이라는 표정이다.
만찬 분위기가 우스워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별말이 없었지만, 눈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드뷔시 자작이 분위기를 환기하려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에릴로트 아가씨께서도 선물을 준비하신다고 하셨지요.”
“녜.”
“보여 주시죠.”
나는 벌떡 일어나서 벽가에서 대기 중이던 힐다에게 물건을 받아 왔다.
드뷔시 자작이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어떤 선물입니까?”
나는 힐다가 포장해 준 봉투에서 부스럭부스럭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짠! 들어 올렸다.
“어머?”
“저건…….”
하하하.
파티장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냐면 내가 준비한 건, 초콜릿이었으니까.
오늘 아침, 내가 바빴던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나는 하녀들과 함께 초콜릿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녀들이 안 볼 때를 노려서…….
‘초콜릿 속에 약을 넣었지.’
이렇게 번거롭게 준비한 건, 3살짜리가 준비한 약을 그냥 먹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뭘 넣었을 줄 알고?
사람들의 반응은 분명히 그럴 것이다.
만찬장에 있던 귀족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애가 준비할 만한 것이라 사람들은 귀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난 할아버지에게 쪼르르 가서 초콜릿을 내밀었다.
“주께요.”
손에 올려 주자, 사람들이 당황했다.
“저, 아가씨…….”
귀족 중 한 사람이 당황해서 날 말리려고 했다.
누가 아스트라 공작에게 이렇게 음식을 줄까.
하지만 분위기가 다시 미묘해지는 것을 우려한 드뷔시 자작이 나섰다.
“에릴로트 아가씨가 열심히 준비한 선물입니다. 맛을 봐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할아버지는 날 흘끔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사람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드뷔시 자작도 눈매를 휘며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떠십니까.”
“나쁘지 않은 맛이구나.”
“하하, 맛이 궁금한데요.”
파티장은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내가 초콜릿을 준 이후로, 다른 사람들도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건넸다.
이국에서 온 말하는 새.
주먹만 한 오색빛깔의 다이아몬드.
하나같이 엄청난 것들이었다.
주방에서도 할아버지 생일을 기념해 엄청난 음식을 내왔다.
송아지 한 마리를 통으로 구운 고기 요리였다.
가장 먼저 할아버지에게 음식이 갔다.
육질이 연하긴 하겠지만, 고기인 만큼 채소보단 씹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평소처럼 내색 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런데.
“…….”
고기를 씹던 할아버지가 멈칫했다.
그가 굳어지자, 할아버지를 주목하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술렁였다.
“공작님?”
드뷔시 자작이 물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대답 없이 고기를 쳐다봤다.
난 이때다 싶어서, 할아버지에게 가서 속삭였다.
“이제 안 아프지요?”
“……뭐라고?”
“하부지요. 이 아파요. 그런데요. 초코 먹으면 안 아파요. 안 아픈 약 있으니까!”
할아버지의 눈은 커져 있었다.
“너, 어떻게…….”
이가 아픈 건 어떻게 알았고, 약은 또 뭐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이쪽을 주목하고 있으니까.
힐끗 주변을 쳐다본 할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질문은 나중으로 미룬 듯 보여서 난 자리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다시 식사했다.
정말로 아프지 않은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그리고 그는 내내 조금도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한 그릇을 다 비우셨네.’
하기야, 원래 식성이 좋은 사람인데 치아 때문에 먹지 못했던 거지.
지금까지 허기졌을 거다.
만찬의 막바지.
드뷔시 자작은 말했다.
“훌륭한 선물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왔군요. 한데, 어떤 선물이 가장 마음에 드십니까?”
만찬장의 사람들은 기대되는 표정이었다.
‘할아버지가 가장 마음에 드는 선물을 한 자에게 보답하겠다’라고 한 내용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만찬장 가장자리에 가득 쌓인 귀중한 선물을 힐끔 둘러봤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에릴로트의 선물이…… 가장 마음에 드는구나.”
“……!”
“……!”
“……!”
엄청난 선물들 사이에서 나의 초콜릿은 가장 보잘것없어 보일 것이다.
그러니,
“공작님께서 에릴로트 아가씨를 꽤…….”
“예, 리앙틴 아가씨보다도 이쪽을 더 귀여워하시는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공작님과 매우 친근해 보이던 것이?”
사람들의 반응이 이런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멀찍이 서 있던 콘라드가 내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드뷔시 자작도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연주자들이 만들어 낸 힘찬 선율이 만찬장을 가득 채웠다.
그 속에서 리앙틴은 얼굴이 희게 질려 있었다.
물론 데콘스 자작도 마찬가지로 표정이 좋지 않았다.
리앙틴 부녀는 만찬 내내 제대로 된 말 한마디를 못 했다.
* * *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만찬이 끝난다는 의미였다.
‘조금 쉬다가 2부가 시작되겠구나.’
귀족들 또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가까지 할아버지를 쫓아가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사, 인사.’
나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옆자리의 리앙틴이 더 빨랐다.
그 애가 거칠게 일어난 바람에 나는 균형을 잃었다.
넘어질 뻔해서 나도 모르게 테이블을 확, 짚었더니 주스 잔이 떨어졌다.
쨍─!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꺅!”
리앙틴이 소리쳤다.
할아버지의 뒤를 쫓던 데콘스 숙부가 얼른 이쪽으로 다가왔다.
“괜찮으냐?”
“유리 파편에 베인 것 같아요.”
울상을 짓는 딸을 본 숙부는 왈칵 인상을 찌푸리고 날 쳐다봤다.
그러곤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냅다 다그쳤다.
“조심하지 못하고!”
억울하다.
‘리앙틴에게 떠밀려서 그런 건데.’
얘기를 들을 생각은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데콘스 숙부는 할아버지의 자식 중 제일 덜떨어졌다는 평가를 들었다.
다혈질이고, 생각이 짧으며 폭력적이었다.
그가 나를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
“어서 사과해.”
“…….”
“내 말 안 들려!”
소란에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했다.
할아버지가 이쪽을 쳐다본 순간이었다.
“여전히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는구나, 데콘스.”
낯선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만찬장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위험한 향기가 날 것 같은 탐스러운 금발.
매끄럽게 떨어지는 날렵한 턱선.
보기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섬세한 이목구비.
장신의 키와 숱한 전투로 자리 잡은 실전형의 잔근육.
그리고 나와 같은 붉은 눈동자.
곳곳에서 탄성이 들려올 만큼 아름다운 외모의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