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91)
이 3세는 악역입니다 91화.(91/390)
91화.
“사과를 더 깎아드릴까요, 아가씨?”
“멜론도 있답니다.”
하이디와 베티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물었다.
아빠가 과일 지도를 제작하면서 우리 집엔 과일이 넘쳐났다. 이제 슬슬 지겹기까지 해서 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보다 아빠는?”
“공작님, 그리미에 님과 함께 중앙탑에 계십니다. 이제 곧 돌아오실 거예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제 괜찮으니까 하이디와 베티는 나가봐도 돼.”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진짜 아픈 것도 아닌데.
하이디와 베티도 내가 진짜로 아픈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순순히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이 나가고, 방엔 미켈란만이 남았다.
난 침대 헤드에 기대서 생각에 잠겼다.
아스트라는 매우 분노했다.
친척들까지도.
할아버지의 분노야 예상하고 있었지만, 친척들까지 이만큼 분노할 줄은 몰랐다.
“친척들은 예상 외인데…….”
—하고 중얼거리자, 미켈란이 빙그레 웃었다.
“아스트라의 혈족을 노린다는 건 가문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음…….”
“혈족들이 목숨처럼 신봉하는 아스트라의 명예가 달린 일이니, 이리 나설 수밖에요.”
“그래도 나서지 않는 사람은 있지?”
“발데릭 님이나 바스티나 님 쪽은 조용하다고 합니다. 외려 바스티나님은…….”
그건 콘라드에게 들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게 온 파티 초대를 셀레네가 대신 가야 한다고 했다가 할아버지에게 된통 깨졌다면서?”
“예.”
“하여간에 재밌는 고모라니까.”
바스티나는 사교활동을 못 한다.
내가 5살 때까진 황도 사교계에 발을 담그기도 한 모양인데, 이제는 불가했다.
‘대귀족에게 돈을 빌렸다가 못 갚았으니까.’
그 일로 할아버지가 크게 분노해서 사교활동을 금지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재능이 넘치는 셀레네는 지금보다 더 승승장구했을 텐데…….
“사교활동을 못 하니까 내 것을 뺏어보겠다는 거네.”
“콘라드 님께 듣자 하니, 아스트라 내부에서도 바스티나 님의 이러한 주장에 몹시 기가 막혀 한답니다.”
“그렇겠지. 일이 터지자마자 홀랑 성에 들어가서 그렇게 주장했으니.”
언제나 점잖은 바실레 고모조차 소리를 칠 정도였다고 했다.
그때였다.
쾅쾅쾅쾅쾅!
저건 노크인가, 문을 부수려는 것인가…….
내 방문을 저렇게 두드릴 사람이라면 한 명 뿐이다.
“문 부서져, 발자크…….”
말하자, 문이 조금 열리고 얼굴이 쏙 들어왔다.
“들어가도 돼?”
“응.”
문이 완전히 벌컥 열리고, 발자크가 들어왔다. 요슈아가 함께였다.
“아버지가 오셨어.”
“응!”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뒤이어 아버지가 들어왔다.
“괜찮으니까 누워있어.”
“안 아프다니까요…….”
“여전히 아픈 것으로 보이는 쪽이 좋으니까.”
“그건…….”
“그렇지.”
나와 아빠는 서로를 바라보며 킥킥 웃었다.
가족들은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
내가 쓰러졌다는 이야기에 사색이 되어 온 가족들에게 전말을 말해줬다.
아빠가 이야기를 듣자마자 파앙테 후작 부인의 파티로 뛰어가려고 했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냐! 아빠! 어디 가요! 나 괜찮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쓰러진 척을 하고 있던 날 보고 가족들은 엄청나게 놀랐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그래.”
“기클로스 백작 부인이 쿠키를 건네는데 아무래도 이상한 거예요. 굳이 앞에 있는 쿠키가 아니라 멀리 있는 쿠키를 건네더라고요.”
“…….”
“그리고 제가 먹는 것을 초조하게 지켜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까 기클로스 백작 부인이 파티 내내 쿠키에 신경을 썼던 것이 기억났어요.”
“그래서?”
“그래서, 다른 쿠키를 먹고 쓰러진 척 한 거예요.”
“…….”
“어른이 주시는 걸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라도 파티장을 빠져나가게요.”
거짓말과 사실을 교묘하게 섞어서 말하자, 아빠는 납득했다.
‘진실을 말할 순 없었지.’
댓글을 보고 선황녀가 그런 짓을 할 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가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분노는 여전했다.
아이에게 약을 먹이려고 한 거잖아.
나는 눈을 반짝이며 아빠를 쳐다봤다.
“기클로스 부인은 어떻게 되었나요?”
“아스트라에서 심은 세작에 의하면, 며칠 전에 고신장에서 선황녀의 명을 받았다고 토설했다더구나.”
“그럼 아직 세상에 안 밝혀진 건…….”
“황실에서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지.”
아빠의 안색은 파리했다.
자신에게 미친 선황녀가 딸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알았으니, 당연히 화가 잔뜩 났을 것이다.
발자크가 분노했다.
“이대로 두실 거예요? 황실에서 조용히 넘어가려 하면 어떡해요!”
“물론 쉽게 넘길 생각은 없다. 늙은…… 공작님도 결코 선황녀를 봐줄 생각이 없는 듯하고.”
가족들이 분노하는 동안 나는 미켈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슬슬 우리가 움직일 때야.’
미켈란도 내게 고개를 숙이곤 조용히 방을 나섰다.
* * *
황도 사교계는 뒤집어졌다.
다급히 살롱 안으로 들어온 귀부인이 말했다.
“기클로스 백작 부인이 파앙테의 파티에 가기 전에 선황녀를 만났다는 소문이 진짜입니까?”
그녀가 자리에 풀썩 앉으며 묻자 다른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더라고요.”
“왜 하필 아스트라 백작 영애를 노렸나 했지요.”
“아스트라 령에서 선황녀와 영애의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요? 몬스터가 날뛰었다고 했나.”
“그것도 말이에요…….”
귀부인이 주변을 살피고 속삭였다.
“선황녀가 아스트라 백작 영애를 인질로 잡고 데이몬드 아스트라를 끌고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에! 데이몬드 아스트라가 순순히 그랬다던가요?”
“자식이 황족에게 위해를 가했다고 평생 금제구를 달고 살게 생겼는데, 끌려다닐 수밖에요.”
“어머나…….”
“태어나자마자 부모 없이 지냈던 아이잖아요? 그래서 데이몬드 아스트라가 끔찍하게 사랑한다더라고요.”
“어쩜…….”
“그 일로 영애가 반발했나 봐요.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슬픈 건 싫다고…….”
“어머나, 기특하기도 해라.”
귀부인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에릴로트가 흘린 소문은,
‘기클로스 백작 부인이 일을 벌이기 전에 선황녀를 만났다.’
—에 불과했으나, 소문은 날개가 돋친 듯 뻗어져 나갔다.
사교계의 거두들은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해 진실에 가까이 갔다.
“한데 황궁에선 왜 조치를 취하지 않죠? 파앙테와 아스트라에서 기클로스 백작 부인을 공개 심문에 부치자고 주장하고 있잖아요?”
“그만한 권세가들이 주장하는데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보면 뻔하지 않겠어요?”
“독이 든 쿠키 사건이 선황녀와 관계가 있는 게 확실하죠.”
말의 힘은 굉장하다.
그것도 힘 있는 자들의 세계에 퍼진 ‘말’은.
사교계에서 흘러나온 말은 민중에게까지 퍼졌다.
나라가 들썩이자, 황실은 점점 더 궁지에 몰려갔다.
그리고 드디어, 아스트라 제 2백작가로 황궁의 연락책이 도착했다.
* * *
마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황궁 시녀들이 다가왔다.
“아스트라 백작 영애를 뵙습니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처음 황태후를 만나기 위해 궁에 왔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반응이었다.
‘그때는 황태후의 궁 앞에 다다라서야 시종이 나왔는데.’
오늘은 마차 대기소에 들자마자 시녀들이 왔다.
그것도 사파이어 브로치를 한 상급시녀들이다.
“오시는 길이 번잡하진 않으셨는지요?”
시녀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져서, 난 아이다운 척 활짝 웃었다.
“황궁에서 마차를 보내주셨는데, 번잡할 리가요! 아주 편하게 왔어요. 감사합니다.”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일전에 백합 정원 파티에서 선황녀를 보고 치를 떨던 시녀였다.
“황족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죠.”
“네!”
나는 시녀를 따라서 걸었다.
‘황태후의 궁으로 갈 줄 알았는데, 다른 곳이잖아?’
무려 황제의 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황제궁은 처음인데.’
첫 번째 삶에선 구경도 못 해본 곳이었다.
거기다 무려 황제궁 시종장이 나와서 날 맞이했다.
난 황제궁의 시종장, 그리고 황태후의 상급 시녀와 함께 궁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붉은 문이 열리고, 보인 것은 황족들과 귀족들이었다.
‘아, 할아버지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쪼르르 다가갔다.
“할아버지.”
“그래.”
할아버지의 곁엔 큰아버지인 그리미에와 우리 아빠가 있었다.
파앙테 후작가에서도 후작 부부가 나란히 참석했다.
다른 귀족들도 매우 권세가들이다.
황족은 황제와 황태후, 오셀리아 황비가 있었다.
그리고…….
“오, 오라버니, 저 애는 왜……!”
—아나톨리 선황녀도 함께였다.
황제는 매우 피곤한 표정이었다.
지난번 용의 주인이 된 일로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올 듯 초췌했다.
아스트라에서 얼마나 황제를 쥐 잡듯 잡았는지 알만한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조용히 못 넘어가고, 귀족들까지 불러모았겠지.’
황제는 이마를 쥐고서 내게 손짓했다.
“영애는 중앙으로.”
“예, 폐하.”
나는 얌전히 중앙에서 서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파앙테 후작이 씨근덕거리며 말했다.
“영애가 내 아내의 파티에서 독을 먹었지. 그게 선황녀 님과 관련된—!”
“여보.”
파앙테 후작 부인이 잔뜩 흥분한 후작을 말렸다.
파앙테 후작가의 중심이 후작 부인이라더니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더 잘 보여놔야지.’
후작 부인이 침착한 표정으로 황제를 보았다.
“제 파티에 약이 든 쿠키를 반입한 자는 기클로스 백작 부인입니다. 한데, 어째서 선황녀님께서 자리해 계시는지요.”
그렇지!
그걸 먼저 물어봐야지.
역시 사교계의 거두다.
저 말은 ‘우리 예상대로 선황녀가 이 일에 관련된 게 맞지?’ 라는 뜻이다.
선황녀는 버럭 소리쳤다.
“어딜 감히 황족을 거론하는가!”
‘바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다른 황족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오셀리아 황비는 헛웃음까지 터뜨렸다.
이미 황족들은 모든 진상을 알고 있을 것이다.
황비는 ‘황족의 권위로 찍어누를 사건이 있고, 아닌 사건이 있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선황녀가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건 청문회와 비슷한 자리였다.
이런 자리가 열렸다는 건 황제도 선황녀를 포기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황족의 권위를 들먹여서라도 황제를 제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을 터.
파앙테 후작 부인이 싸늘한 표정으로 선황녀를 쳐다봤다.
“저는 선황녀께서 이 자리에 계신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뿐일진대, 이처럼 화를 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그건……!”
“화를 낼 만한 연유라도 있으신지요.”
마지막 말은 그리미에 백부였다.
나는 속으로 고소하게 웃었다.
여기저기서 압박하니, 선황녀는 거의 초주검이 된 표정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 할아버지가 나섰다.
“더 탐색할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 모두 이번 일에 선황녀께서 엮였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공작!”
선황녀는 발작하듯 소리쳤지만, 황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클로스 백작 부인의 입에서 선황녀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해서, 영애를 자리에 부른 것이야.”
“예, 폐하.”
“선황녀가 쓴 약은 자백제라고 했다. 영애가 숨기고 있는 일이 있기에 파앙테의 파티에서 그 일을 밝히려 했다고 말했다.”
아하, 자백제를 쓴 거였어?
황제가 날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영애가 먹은 약이 자백제가 맞느냐?”
일을 이렇게 처리하겠다고?
자백제를 먹었다고 하면, 이 사건이 ‘선황녀가 자백제를 먹일 정도로 의뭉스러운 에릴로트 아스트라’로 흐를 가능성도 있었다.
‘약을 먹었다’가 아니라, ‘자백제를 먹인 것’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둘까봐?’
난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그건 모르겠지만, 먹고 나서 가슴이 뛰고, 몽롱하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의사 말이 아이에겐 매우 위험했대요.”
‘무슨 약을 먹였든 간에 난 아주 위험했다’로 다시 초점을 맞춰주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아빠가 미간을 좁혔다.
“무슨 약인지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건 제 딸이 죽을 뻔했다는 겁니다.”
황제는 눈을 꽉 감았다.
‘사실 이렇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란 건 당신도 알지?’
선황녀가 소리쳤다.
“위험하지 않은 자백제였어요! 폐하!”
“넌 제발 그 입을 좀…….”
“제가 데이몬드 님의 딸에게 그런 위험한 약을 쓸 리가 없잖아요. 저 애는 항상 제 일을 방해했고, 저를 무도한 인간으로 몰았어요!”
“아나톨리.”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저 애가 제게 했던 짓을 모두 밝히려고 했던 거라고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서 말했다.
“제가 선황녀님께 무슨 일을 했나요?”
“뭐?”
“혹시 제가…… 선황녀님을 거북하게 한 일이 있다면 사과드리려고요…….”
“넌 날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잖아!”
“제가요? 언제……?”
“그런 눈으로 날 봤어. 그렇게 말했고! 풍요제 때……!”
“아아, 기억이 나요.”
나는 눈썹을 늘어뜨리며 가져온 장부를 꺼냈다.
“선황녀님이 풍요제 때 몬스터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쓴 약초. 그걸 제가 알고 있었지요.”
“그, 그건……!”
“그래서 말씀드렸어요. 이번 일은 결코 쉽게 넘어가지 못할 거라고요.”
“…….”
“왜냐면 풍요제잖아요? 나라의 큰 행사에서 그런 일을 한 거니까.”
“너, 너어……!”
“그래서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렸어요. 황실에서 안다면 아주 곤란해지실 테니까.”
“그래! 날 협박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였지!”
“정말로 선황녀님이 염려되어서 한 말이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왜 증거를 가지고도 가만히 있었겠어요…….”
난 기죽은 표정을 가장하며 선황녀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