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92)
이 3세는 악역입니다 92화.(92/390)
92화.
“증거라고?”
할아버지의 표정이 왈칵 일그러졌다.
나는 콘라드를 통해 할아버지가 풍요제의 일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황궁에서도 아는 걸 할아버지가 모를 리 없지.’
하지만 풍요제에서 선황녀가 넣었던 약초를 내가 전부 회수했기에, 증거를 찾는 데에 시간이 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이후 사건이 엄청나게 많이 터진 터라, 풍요제에 집중할 수도 없었을 테고.
그렇다고 가만히 넘어갈 사람은 아니었다.
‘정 안 되면 조작이라도 하자고 생각하신 모양이니까…….’
그런데 내가 증거를 가지고 있다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나는 눈치를 보는 척 어물거렸다.
그러자 황제와 황태후가 굳어졌다.
오벨리아 황비마저 인상을 찌푸렸다.
황제가 황급히 소리쳤다.
“이 건과는 다른 얘기지. 그 일은 차후에 논해도 충분하다.”
할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항변했다.
“선황녀가 손녀에게 먹인 약이 자백제가 확실하다면,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인과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지.’
나는 속으로 킥킥 웃었다.
귀족들도 할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다.
할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증거란 것이 무엇이냐.”
“저…….”
“할애비가 있으니 너는 겁먹을 필요가 없다. 아는 대로 소상히 말하여라.”
난 우물쭈물하는 척 장부의 끄트머리를 매만지다가 말했다.
“선황녀님이 아스트라 장원에 계실 적에 제 몬스터인 라곤이 날뛴 일이 있어요.”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유명한 일이었기 때문에 다들 아는 내용이었다.
“전 황족에게 위해를 가할 뻔했다는 이유로 금제구가 논의되었고, 황실로 이송될 뻔했지요.”
내 말에 파앙테 후작이 말했다.
“그건 나도 들어서 알고 있소. 실제로 영애는 풍요제에서 금제구를 차고 있었다고?”
“네. 그런데 그게…… 선황녀님이 꾸민 일이었어요.”
“뭐?”
“뭐라고?”
“……!”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황태후는 눈을 꽉 감았다.
아나톨리 선황녀가 소리쳤다.
“아니야, 아냐! 오해예요! 모후, 폐하—!”
꽥꽥 난리를 쳤지만, 나는 조용히 장부를 슬쩍 들어 보였다.
“그 일로 선황녀님께서 제 아버지를 곤란하게 하셨고, 저는 그게 너무 슬퍼서 두 분이 함께 계실 적에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저를 믿어달라고 말이에요. 그랬는데…….”
“…….”
“선황녀님은 그게 속상하셨던 모양이에요. 공작성의 하녀에게 제가 또 다른 몬스터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지 물어보셨대요.”
“…….”
“하녀는 그 일을 모두 기록해두었어요…… 받은 돈까지도요.”
겁에 질린 척 어물어물 말하던 난 선황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선황녀님의 명으로 하녀는 어떤 약초를 반입했어요.”
“……!”
“당시엔 그게 뭔지 몰랐기에 하녀는 반입해주었는데, 그게 풍요제 때 몬스터를 불러들인 약초였어요.”
“너, 너어—!”
“풍요제 때 화로에 넣은 약초. 전부 불에 타지 않은 그것을, 저는 가지고 있어요.”
“닥쳐!”
“약초를 추적한다면 누가 화로에 그것을 넣었는지도 확실해지겠지요.”
“아니야! 아니라고!”
선황녀가 치맛자락을 꽉 쥔 채로 악을 내질렀다.
귀족들은 기함했다.
비슷한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설마’하고 넘어간 사람이 대다수였다.
설마 풍요제에서 그런 미친 짓을 하리라곤 상상을 못 했을 테니까.
오셀리아 황비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대체 무슨 짓을……! 선황녀, 그 자리엔 1황자가 있었어요!”
지금까지 황제의 유일한 자식으로 알려진 1황자 살바토레.
살바토레 황자도 몬스터 떼가 날아들었을 때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다.
선황녀는 새파랗게 질려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황제와 황태후의 눈치를 보며 입술을 꽉 짓씹었다.
그러곤 날 노려보고 소리쳤다.
“여기서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야!”
“…….”
“노리고 있었던 게지? 그렇지! 날 궁지에 몰려고! 그래서 네가 그런 짓들을……!”
선황녀는 미친 사람처럼 악을 질렀다. 나는 겁먹은 척 장부를 끌어안았다.
“너무너무 무서웠지만, 그렇지만 저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않았어요…… 아버지에게도 말이에요.”
그러자 그리미에 백부가 미간을 좁혔다.
“대체 어째서 그런 것이냐. 말을 했어야지. 어른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어, 넌.”
“하지만 이 일이 알려지면 황태후 폐하가 곤란해지실 거예요. 황제 폐하도요.”
“…….”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화를 내실 거고, 아스트라는 황실과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어요.”
“…….”
“저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무서운 것도, 화가 나는 것도, 슬픈 것도 저만 참으면…… 그러면 다들 평화로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입안을 콱 깨물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아, 완벽한 타이밍이야.’
여기에 눈물까지 합해지자, 귀족들은 날 보며 매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내게 4번째 삶이 있다면 그때는 꼭 극단에 들어가리라.
나는 속으로 히죽히죽 웃었지만, 선황녀는 시체같은 얼굴이었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입만 벙긋거렸다.
“폐, 폐하.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제, 제가 전부 설명할 수 있어요. 그, 그러니까 독대를…….”
“무엇을 설명한단 말입니까?”
할아버지의 낮은 목소리가 바닥에 깔렸다.
사람들이 흠칫했다.
세월의 관록으로 위압적인 목소리에 노기까지 서렸으니 두렵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나톨리 선황녀조차 흠칫,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할아버지는 무색의 시선으로 선황녀를 쳐다봤다.
“스스로 벌인 짓이 감당이 안 되어서 겁을 먹은 차에 내 손녀가 황도에 올라오자 선황녀를 협박하는 것으로 느낀 것이 아닙니까.”
“아, 아니, 난 정말 협박을……!”
“해서 감히 황족을 협박했다는 망상에 빠져서 그 일을 세간에 알리려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약을 먹였습니다.”
“그, 그건…….”
“여기까지 틀린 내용이 있습니까?”
찌를 듯한 시선이 선황녀에게 쏠렸다.
선황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옴짝거렸다.
그러곤,
“폐하……!”
─하며 황제에게 매달렸다.
황제는 초췌한 표정으로 한숨을 흘렸다.
하지만 아무리 매달려봐도 어쩌겠어?
황제조차 수습이 불가능한데.
오셀리아 황비는 일찌감치 선황녀에게 분노하고 있고, 황태후도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딱 다물고 있다.
황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선황녀를 황적에서 지우고, 이플란도에 있는 저택에 유폐하며, 저택 반경 2km를 결코 나설 수 없게 하지.”
“폐하……!!”
선황녀가 황제에게 매달렸다.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플란도라니요……!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이잖아요!”
이플란도는 쉽게 말해서 땅끝마을이다.
몬스터 떼가 잔뜩 있는 곳이라서, 사람은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 지역이다.
할아버지는 싸늘한 얼굴로 덧붙였다.
“반입되는 곡물은 한 해에 20kg를 넘기지 못하고, 채소와 육류 또한 무게를 제한하며, 시중인을 둘 수 없습니다.”
“말도 안 돼!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시중인 없이 어떻게 살라고요!”
“폐하, 선례에 따르면 죄지은 아칼릭스 폐황자 또한 그러한 벌을 받았습니다.”
“폐하!”
황제는 고심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을걸.’
풍요제까지 걸린 일이다.
거기다 할아버지 성격에 저 정도만 요구하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사형을 요구했다면 황실과 아스트라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을 텐데.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물론 평생 금제구를 달고 살게 하며, 추후 30년간 이 건에 대해 그 어떤 논의도 할 수 없습니다.”
“폐하─!!”
선황녀는 이제 눈물까지 보이고 있었다.
‘추후 30년간 이 건에 대해 그 어떤 논의도 할 수 없다’라는 건, 30년 동안은 결코 벌을 축소할 수 없다는 소리였으니까.
‘선황녀가 서른이니까…… 60대가 될 때까진 웬만한 평민보다 더 빈궁하게 살아야 한다는 소리네.’
아주 만족스러운 벌이었다.
특히 평생 금제구를 달고 살아야 하는 게!
‘내가 금제구를 달아봐서 아는데, 딱 죽고 싶은 기분이거든.’
머리가 멍하고, 수시로 울렁거린다.
곱게만 자란 선황녀는 금제구를 달고선 생각도 제대로 못 할 거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의 뜻대로 하지.”
“서류화하여 폐하의 인을 찍어주십시오.”
“그래.”
“그래.”
“아나톨리의 이플란도 행은 언제가 되겠습니까.”
폐위되었다고 이제 이름까지 막 부른다.
나는 속으로 웃었고, 아빠의 입매 또한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아나톨리는 주저앉아서 울고 있었다.
“폐하…… 아아, 오라버니! 제게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저는 지금까지 오라버니의 충실한 종노릇을……!”
“그 입 다물어.”
황제가 싸늘하게 경고하자, 아나톨리는 엉금엉금 기어와 황제의 다리에 매달렸다.
“선황께서 보시면 무어라 하겠어요?! 저를 잘 부탁 한다고, 오누이가 사이좋게 황실을 지켜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
“폐하, 제발요. 제가 어떻게 시중인 없이 이플란도에서 산단 말이에요─!!”
아나톨리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나이가 서른이나 되었는데, 저럴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하기야 여기보다 의식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도 서른이 넘어서도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은 많다.
기사만 봐도 ‘저 나이에 저럴 수 있나?’ 하는 이상한 사람들 천지였다.
‘쟤는 원래부터 미쳐 있기도 하고.’
황제는 단호했다.
“이 회의가 끝나는 즉시 이플란도로 갈 준비를 해라.”
“폐하!”
아나톨리가 아무리 울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결국, 그녀는 황적에서 이름이 지워져서 평민이 되었고 이플란도에서 외롭고 고된 30년을 보내야 하게 되었다.
아주 고소한 일이었다.
* * *
회의가 파했다.
귀족들은 쏜살같이 황제궁을 빠져나갔다.
아나톨리가 벌인 미친 짓은 해가 지기도 전에 제국 전역에 퍼질 터였다.
할아버지와 아빠, 그리고 그리미에 백부는 황제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나톨리의 벌은 벌이고, 아스트라 장원에서 벌인 짓의 보상을 따로 받아야 하니까.’
난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
할아버지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는 우물쭈물 말했다.
“말하지 않아서 죄송해요.”
“……다음부터 이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네…… 아, 그리고 이거요.”
난 할아버지에게 장부를 넘겼다.
공작성의 하녀인 힐다가 아나톨리의 미친 짓을 기록한 서류였다.
이게 있으면 황제와의 거래에 엄청난 도움이 될 거다.
그리미에 백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똑똑한 조카를 둔 건 기쁘구나. 하지만 너무 영리하기만 해서는 어른들을 걱정시키는 법이야.”
“죄송해요…….”
“먼저 들어가서 쉬어라.”
“네!”
그러고서 난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황제 폐하에게 소리치시면 안 돼요.”
“알아.”
“흥분하시지 말고.”
“그래.”
“선황녀, 아니, 아나톨리는 벌을 충분히 받을 테니까 이제 중요한 건 보상이잖아요?”
“맞아.”
“드뷔시 자작이 그랬어요. 일이 생겼을 때, 흥분하는 것보다 차후를 위해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게 낫다고요.”
내 말을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픽 웃었다.
“하여간에 데이몬드, 네 놈의 자식 복이란.”
그리미에 백부도 미소 지었다.
“저도 자식을 하나쯤은 볼 것을 그랬습니다.”
아빠는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자식을 두기가 어디 쉬운지 아십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할아버지와 그리미에 백부, 그리고 아빠가 떠난 후 난 복도에서 씩 미소지었다.
‘많은 것을 받을 수 있겠지.’
기왕이면 이제 곧 생길 마철도 같은 거면 좋겠다.
올해 말부터 마철도 공사에 들어간다.
쉽게 말해서 기차 같은 것인데, 마법으로 운행된다.
귀족들은 마차가 있으니 마철도는 큰 의미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
마철도 탑승비용이 워낙에 비싸서 평민들은 타지 못하고, 귀족들은 좋은 마차가 있으니 굳이 그것을 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초기엔 철도를 놓은 지역이 얼마 없었다.
‘아무래도 황실에서 보낸 마법사들을 영지에 들이고 싶지도 않을 테고.’
세작 노릇을 할 수도 있지, 영지는 공사 때문에 혼란하지…….
황제의 눈치를 본 귀족들이나, 친황제파가 마지못해서 철도 공사를 승낙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덕을 엄청나게 보지.’
마철도가 연결된 지역이 크게 부흥하고, 연결되지 않은 지역은 쇠퇴하거든.
아스트라도 나중엔 철도를 놓지만…….
‘처음부터 철도를 놨더라면, 엄청나게 돈을 벌었을 텐데.’
이칸드로 령에 쇼핑 타운이 지어진 후에야 철도를 놓아서, 제국의 쇼핑지가 둘로 나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철도를 놓는다면…….’
금화가 마구 떨어지는 환청이 들렸다.
킥킥 웃고 있던 난 흠칫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그 뒤로도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난 얼른 뛰어갔다.
목적지는 황태후 궁이었다.
“폐하!”
소리치면서 달려가자, 막 궁으로 들어가려던 황태후가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일이니.”
“저, 폐하…….”
“그래.”
“오늘 일로 마음이 많이 상하셨을까봐 걱정이 돼요.”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녀는 조금 지쳐 보였다.
‘그럴 만도 하겠지.’
황실에 이런 먹칠을 당했는데.
아나톨리 때문에 기껏 얻은 황태후의 호감을 놓칠 순 없다.
나는 “저…….” 말하며 황태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무언가를 건넸다.
포장지에 곱게 싸인 그것을 본 황태후가 말했다.
“이게 무엇이냐?”
“라곤이 탈피하면서 떨어뜨린 깃털이에요!”
“깃털……?”
“이게 뭐냐면요.”
황태후가 알면 엄청나게 기뻐할 물건이지.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