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95)
이 3세는 악역입니다 95화.(95/390)
95화.
‘뭐지, 쟤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황도의 1구역 귀족들의 신상 명세는 거의 다 알고 있다.
‘내가 모른다는 건 별 볼 일 없는 가문의 딸이란 건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에릴.”
“에릴로트?”
쌍둥이가 날 불렀다.
“으응.”
“식사 안 해? 별로야?”
발자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보았다.
가족들은 내가 식사하지 않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했다.
난 몸이 아프거나, 고민이 있을 때면 식욕부터 사라지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아냐. 맛있어.”
나는 파스타를 포크에 돌돌 말아서, 입에 쏙 집어넣었다.
그제야 발자크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리시먼드는 캐서린을 피해 저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 * *
식사를 끝내고서 방으로 올라왔다.
이클립토 령에서 내준 방은 마음에 든다.
물론 아스트라만큼 호화롭진 않지만, 잘 관리된 태가 났다.
짐은 식사하는 동안 옮겨둔 모양이었다.
막 소파에 앉으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루멜리사예요.”
문을 여니, 루멜리사를 비롯해 몇 명의 영애들이 있었다.
루멜리사가 홍차 케이스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식후 티 타임 어떠세요? 좋은 차가 있거든요.”
‘좀 피곤하긴 한데…….’
인맥을 쌓을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정원에서 함께 마셔요. 다른 분들도 계시거든요.”
“네.”
난 카디건만 걸치고 방을 나왔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으니, 정원까지는 금방이었다.
이클립토 백작성의 정원은 아름다웠다.
‘정원이라기보단 달맞이꽃밭 같은걸.’
다른 꽃은 하나도 없고, 온통 달맞이꽃들이다.
드문드문 아름다운 조명도 있었다.
조명 빛을 받아 빛나는 달맞이꽃은 정말이지 예뻤다.
“저기에 테이블이 있네요.”
한 아이가 가제보를 가리켰다.
나와 아이들은 정원의 유일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이 커서 다행이에요. 저희 모두 앉을 수 있잖아요.”
“네.”
하인에게 차 준비를 해달라고 하고서, 우린 본격적으로 떠들었다.
“요즘 아지스 백작가에 말이죠…….”
“오셀리아 황비님이…….”
“저희 가문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난 황홀한 표정을 애써 감췄다.
‘이 귀여운 수다쟁이들.’
고작 십여 분 이야기를 나눈 것뿐인데, 엄청난 정보들을 얻었다.
아직 애들이라 입이 무겁지 않은 점이 너—무 좋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하인이 차 준비를 해왔다.
루멜리사가 가져온 찻잎은 확실히 훌륭했다.
“향기가 너무 좋네요.”
“과자도 훌륭하고요. 멋져라…….”
우리가 꺅꺅 차를 즐기고 있던 중이었다.
“먼저 온 분들이 계시네.”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다가왔다.
‘캐서린이다.’
루멜리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좋은 밤이네요, 트랑 공작 영애.”
캐서린은 트랑 공작과 타국의 왕녀 사이에 태어난 아이였다.
귀한 것으로만 따지면, 황태후를 대고모로 두고 있는 루멜리사보다 한 수 위였다.
루멜리사가 인사하자, 캐서린이 대꾸했다.
“그렇네요, 파앙테 후작 영애.”
‘오, 캐서린도 루멜리사를 안 좋아하는 모양인데.’
후작이란 단어에 엄청 힘을 주어서 말한다.
루멜리사의 미간이 꿈틀했다.
“죄송해서 어쩌죠. 저희가 이미 자리를 차지해버렸네요.”
“괜찮아요. 아스트라 백작 영애만 모셔가도 되니까.”
캐서린이 생긋 웃으면서 날 쳐다봤다.
“처음 뵈어요, 영애.”
“안녕하세요, 트랑 영애.”
“파앙테 영애와는 이름을 부르신다면서요? 저도 캐서린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아…….”
루멜리사가 이젠 표정 관리조차 하지 않고 캐서린을 노려봤다.
‘그러고 보니까 첫 번째 삶에서부터 두 사람은 원수였지.’
이 둘은 공통점이 많았다.
1. 둘째가라면 서러운 고귀한 태생.
2. 권세가의 외동딸.
3. 태산 같은 자존심.
4. 각자 다른 무리의 리더라는 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 한 세계에 두 명의 리더도 있을 수 없다.
루멜리사와 캐서린은 만났다 하면 서로를 물어뜯었다.
“루멜리사 파앙테가 사교계의 공주라고요? 그것참 우스운 이야기네요.”
“캐서린 트랑이 사교계의 시인이요? 제가 혹시 시인의 뜻을 잘못 알고 있나요?”
원수로 유명한 샤토브리앙 공작 영식과 제르모 공작 영식만큼이나 사이가 나빴다.
‘왜 갑자기 나를 두고 이래…….’
캐서린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네? 서로 이름을 부르면 어떨까요?”
“네…… 캐서린 양…….”
“와, 기뻐요! 그럼 가실까요?”
“아, 저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루멜리사가 나섰다.
“에릴로트 양은 저희와 선약이 있어요. 트랑 영애의 지금 행동은 에릴로트 양을 곤란하게 할 뿐이랍니다.”
“파앙테 영애는 황도에서도 에릴로트 양과 자주 어울렸다고 들었는데? 처음 보는 제게 양보할 순 없나요?”
“사람을 양보하다니요. 에릴로트 양이 물건도 아니고요.”
“사람이 아니라, 오늘 밤을 양보해달라는 뜻이었어요. 파앙테 영애는 맥락을 못 읽으시나요?”
루멜리사와 캐서린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스파크라도 이는 줄 알았다.
‘이러다 싸움 나겠다.’
“저, 그러면—”
내가 말하려던 찰나.
당황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다른 아이들이 나섰다.
“그럼 다 함께 차를 마시는 건 어떨까요? 테이블도 넉넉하니까요!”
“그, 그래요.”
루멜리사와 캐서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내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자,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루멜리사 쪽 영애들이 캐서린 쪽의 영애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앉으세요.”
“파앙테 양이 찻잎을 나눠줬는데 굉장히 훌륭해요.”
“거기 너, 티 세트를 더 가져오렴.”
그렇게 우리는 밤 중에 둘러앉아서 티 타임을 갖게 되었다.
의자가 열 개씩이나 되니까, 정말로 북적거린다.
‘거의 티 파티인데…… 잠깐만, 의자가 열 개?’
나.
루멜리사 쪽에 5명.
캐서린 쪽에 5명.
‘11명인데?’
고개를 돌리자, 멀찍한 곳에서 서있는 붉은 머리의 영애가 보였다.
날 ‘더러운 피’라고 불렀던 아이였다.
루멜리사 쪽의 흑발 영애가 당황해서 말했다.
“어쩌죠. 자리가 부족한데…….”
“그러게요. 그런데 저분은 누구실까요? 처음 보는 분이신데.”
가장 먼저 남은 자리에 앉았던 캐서린아 “아.”하고 말했다.
“포그 자작가의 사라 양이에요.”
“포그 자작가라면…….”
못 들어본 가문인지 아이들이 당황하자, 캐서린이 가볍게 말했다.
“1구역의 가문은 아니지만, 이번에 황도에 올라오셨어요. 그렇죠?”
사라 포그가 어깨를 움찔하며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영애들.”
아이가 눈을 사르르 접으며 인사했다.
다른 영애들도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처음 뵈어요, 영애.”
“안녕하세요.”
“그보다 자리는 어떻게 하죠?”
그때, 내가 말했다.
“조금씩 당겨서 앉으면 어떨까요?”
여기 아이들은 당겨 앉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다.
황도엔 언제나 자리가 넉넉하다.
무엇보다 파티에선 늘 초청객 수를 헤아려서 완벽하게 세팅해놓으니까.
불청객이나, 허락받지 않은 손님이 있는 경우는 없다.
그건 아주 큰 무례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손뼉을 짝,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좋은 생각이에요.”
“의자를 가져오게 하면 되겠어요!”
여기 애들은 정말로 착한 편이라니까.
‘아스트라에서 이런 말을 하면…….’
난 잠깐 리앙틴을 떠올렸다.
“뭐? 우리가 먼저 왔는데 왜 자리를 양보해줘? 미쳤어?!”
우리는 자리를 조금씩 당겼고, 하인이 재빨리 새로운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사라 포그는 손뼉을 짝, 치며 기뻐했다.
“고귀한 분들과 한밤의 티 파티라니.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아하하 웃었다.
캐서린은 하인이 가져온 찻잔을 들며 말했다.
“사라 양은 항상 말을 사랑스럽게 해요.”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포그 자작과 제 아버님의 친분 때문이에요.”
사라가 에헤헤 웃었다.
“아버지가 트랑 공작님과 함께 사업을 하게 되셨거든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루멜리사는 다른 영애들을 위해 더는 캐서린에게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았다.
캐서린도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은지, 루멜리사를 못 본 척했다.
한밤의 티 파티는 다행히도 소란스럽지 않았다.
.
.
티 파티가 끝나고, 밤이 깊었다.
영애들은 하나둘 흩어졌다.
“정말 즐거운 티 타임이었어요.”
“내일도 모여서 함께 차를 마시는 게 어떨까요?”
“좋아요!”
나도 생글생글 웃으며 영애들과 인사했다.
그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원을 빠져나왔다.
‘좋은 얘기 많이 들었다!’
신이 나서 계단을 오르려던 찰나였다.
“저어, 영애.”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사라 포그가 보였다.
“포그 양?”
“네!”
“무슨 일이세요?”
“저기, 제가 오해를 하고 있던 것 같아서 사과드리려고요.”
“사과요?”
사라 포그가 우물쭈물 다가와서 말했다.
“영애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혼자 오해하고 있어요. 저…… 무례하죠?”
식당에서 헛웃음을 터뜨리더라니, 그런 이유에서였나 보다.
사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사려 깊은 분이 천박한 피를 반이나 가지고 있을 리 없는데. 저, 바보 같지요?”
“…….”
“사람들의 질투가 너무해요. 영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런 소문을 내다니…….”
“…….”
“오해했던 것을 사과드릴게요. 앞으로 좋은 관계를 쌓았으면 좋겠어요.”
“제 어머니가 평민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아요.”
“……네?”
나는 먼저 계단을 오르고 있었으므로, 몇 칸 위에서 사라를 내려다봤다.
“무례인 것도 맞네요.”
“아…….”
“하지만, 저도 앞으론 좋은 관계를 쌓으면 좋겠어요.”
어린아이와 싸워서 뭐 하겠어.
‘귀족들 중에 핏줄 따지는 사람은 수두룩한데, 그들과 다 싸울 수도 없고.’
정원에서 봤을 때, 사라는 단지 다른 영애들과 매우 어울리고 싶어 할 뿐이었다.
“저, 그…… 죄송해요, 아스트라 백작 영애.”
“네.”
나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입구 쪽에서 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에릴로트 양! 캐서린이에요! 괜찮으시면 둘이 얘기를—”
“루멜리사예요! 찻잎을 마음에 들어 하시던데 나눠드리고 싶어요!”
‘으악.’
또 한 번 날 두고 쟁탈전이 벌어질 것 같았다.
* * *
이튿날.
나는 캐서린과 루멜리사 사이에서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캐서린이 말했다.
“이 책의 삽화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 삽화에 나오는 왕자님을 만나는 게 꿈이었는데, 리시먼드 님을 보고 정말로 놀라서—”
루멜리사가 입매를 비틀었다.
“그러니까 그분 때문에 에릴로트 양에게 오신 건가요? 다가가지는 못하셔서, 에릴로트 양에게 어떻게 부탁이라도 해보시려고?”
“리시먼드 님껜 제가 알아서 잘 찾아간답니다. 물론 리시먼드님과 머리칼도, 눈도 비슷한 점이 좋긴 하지만…… 원래도 에릴로트 양에게 관심이 있었어요.”
“아아, 그분에게서 파생된 관심이란 말이죠?”
“나쁜가요? 좋아하는 사람과 비슷한 아이를 보면 끌릴 수 있잖아요.”
“에릴로트 양을 통로로 쓰려는 것 같아서요.”
“그런 게 아니라! 저는 리시먼드 님을 오라버니로 둔 영애와는 말이 잘 통할 것 같아서……!”
“아아, 네.”
“그러는 파앙테 영애도 발자크 님에게 찻잎을 주었잖아요!”
“어머! 저는 이성적인 호감보다, 영애를 인간적으로 먼저—!”
두 사람은 정말로 끊임없이 싸워댔다.
‘살려줘…….’
다른 영애들은 영혼이 나간 것 같은 날 보고 쿡쿡 웃었다.
“그만들 하세요. 에릴로트 양이 곤란하실 거예요.”
내 말이…….
캐서린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 정말로 리시먼드 님께 다가가려는 불순한 이유가 아니라고요! 리시먼드 님을 두고 얘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에요!”
정말로 그럴 것이다.
‘아이돌 덕토크를 하고 싶은 것 같으니까.’
나는 한숨을 삼켰다.
그러다가 멀찍이 선 사라와 눈이 마주쳤다.
‘아, 애들 사이에 끼지 못하네.’
어제는 캐서린이 챙겨줘서 이야기에 꼈는데.
평소에도 캐서린이나 그쪽 영애들이 챙겨 줘야 아이들 사이에 낄 수 있는 것 같았다.
사라가 움찔움찔하며 캐서린 쪽의 영애들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저어, 영애—”
“아, 그런데 아스트라 백작 영애는 어떤 별을 제일 좋아하나요? 저희끼리는 별 이름으로 부르거든요. 캐서린 양은 북극성이에요.”
화제가 돌아가서 사라는 우물쭈물하며 물러났다.
나는 사라에게 물었다.
“그럼 포그 양은 무슨 별인가요?”
“전…….”
캐서린이 생긋 웃었다.
“포그 양은 별꽃성이에요. 그쵸?”
“……네.”
“별꽃처럼 눈망울이 반짝여서요. 그렇지요?”
“네…….”
“제가 볼 때, 에릴로트 양은 불꽃성이 어울릴 것 같아요. 제일 아름다운 별이니까요.”
캐서린이 말했다.
“아뇨, 하프성이에요.”
“중심 별자리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하프성이 있기에 다른 별자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거라고 했어요. 사려 깊게 한발 물러서 계시는 에릴로트 양과 딱이라고요.”
사라는 입을 다물었다.
‘물꼬를 터줘도 대화를 잘 못 하네.’
그러고 보면, 어제도 대화의 중심이 되어야만 입을 열곤 했다.
‘생각보다 숫기가 없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 * *
오후.
사라는 홀로 정원을 나섰다.
“어디 가세요?”
다른 영애가 물었지만, 사라는 입꼬리만 조금 올렸을 뿐이었다.
아이가 향한 곳은 정원의 반대편에 있는 호숫가였다.
호숫가에선 남자아이들이 모여 떠드는 중이었다.
목검을 휘두르는 소년도 있었다.
“발자크 님! 봐주세요! 이렇게 하는 겁니까?”
“……그 꼴로 춤추면 딱이겠다.”
발자크가 엄청나게 귀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슈아는 그런 형의 다리를 툭 쳤다.
“에릴로트의 말을 잊었어?”
“알아. 안다고. 애들이랑 잘 어울리랬잖아.”
그러니까 귀찮아도 영식들을 거절하지 않고 나온 거지.
그가 한숨을 푹 내쉬고 있을 때였다.
“저어…….”
사라가 영식들에게 다가왔다.
“여기 있어도 될까요?”
목검을 휘두르던 영식이 눈을 홉떴다.
“영애들은 정원에 계시던데. 다들 모여 있어요. 가보세요.”
“영애들은……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예?”
“대화에도 잘 끼워주지 않으시고…….”
사라가 울먹이며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영식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사라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