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마무리 (1)
현 발로른 제국의 황제 필립 4세의 처분이 이제 결정된다.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필립 4세의 사지를 구속한 다음 바닥에 무릎 꿇렸다.
“그래, 제국 황제를 무릎 꿇린 기분이 어떠냐.”
필립 4세는 바닥에 무릎을 붙였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두 사람에게 되물었다.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위축되면 카이루스와 일레나에게 만족감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이루스는 이런 황제를 동요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 감히 황제 행세를 하는 거냐. 대타 주제에.”
순간, 황제의 눈에 물음표가 떠오르나 싶더니.
금방 느낌표로 변했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느낌표였다. 놀랐다는 표현보다는 경악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너… 이… 네 녀석이 감히!”
황제를 대체한다. 필립 4세는 지금 카이루스가 하는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옥새를 가짜에게 넘기고, 카이루스는 가짜의 약점을 잡아둔다.
“이제 네 가문의 황가는 네 대에서 핏줄이 끊긴다.”
발로른 제국의 황가는 새로운 핏줄, 필립 4세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더러운 피’가 대신한다.
그 말은 현 황가의 종말을 뜻한다.
“내가, 내가 죽어도 황가의 피는 끊어지는 게 아니다.”
필립 4세는 슬하에 자식들이 있다. 그들 중 하나가 황제가 된다면, 현 황가의 핏줄은 끊기지 않는다.
“아직 황태자를 임명하지도 않은 주제에.”
발로른 제국의 황태자는 장남이 자동으로 차지하는 게 아니다. 황자들 중 누구를 황태자로 책봉하느냐는, 전적으로 현 황제의 권한이다.
하지만, 필립 4세는 아직 황태자를 임명하지 않은 상태다.
“내가 이 친구를 지키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일레나가 벽에 기댄 채, 필립 4세를 보며 웃었다.
“이 대타, 시술로 외모를 바꿨지만 아직 팔팔한 젊은이라고 들었어.”
이제 막 25살이 된 청년이다. 그런 청년을 시술로 중년 외모로 만들어 버린 거다.
“어쩔 수 없었다. 그 몸이 시술 부작용이 가장 적다는 결과가 나왔어.”
황제의 말에, 대타가 웃었다.
“어쩔 수 없다고 할 필요 없다네. 내가 황제가 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이제, 대타는 당연하다는 듯이 황제의 연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20대 중반이라. 그럼, 앞으로 몇 년이나 우리가 만든 대타는 황제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30년 정도는 문제 없을 거다. 그리고 그 시간이라면.
“이 대타가 낳은 아이가 장성해서, 황태자로 임명되고도 남을 수 있는 시간이야.”
그때가 되면 오히려 대타가 새로 낳은 자식에게 명분이 생긴다. 앞으로 30년 뒤라고 하면, 현 황제가 낳은 자식들은 50줄에 접어들어 60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다.
“오히려, 네 자식들은 나이가 너무 들어서 즉위해도 불안하다는 의견이 다수일걸?”
일레나가 웃으며 카이루스의 말을 이어받았다.
틀린 말이 아니다. 황제가 너무 장수하는 바람에 황태자를 건너뛰고, 황세손이 황제가 되는 경우도 실제로 있었으니까.
하물며 이 경우에는 황세손이 황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황자 중 가장 젊은 녀석이 황태자로 책봉되는 것이니 일처리가 더 쉬울 거다.
“….”
황제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동시에 필립 4세는 희미한 희망 또한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했다는 건.’
자신을 죽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한 것이다. 이렇게나 수고를 해서 필립 4세를 더 이상 황제가 아니게 만들고, 발로른 황가의 핏줄을 싸구려 대타로 갈아끼웠다.
당연히, 원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후 필립 4세가 절규하며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숨이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
필립 4세에게도 기회가 있다. 얼마든지 있다. 여기에서 반병신이 된다 해도 가능한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자신이 진짜 황제라는 걸 제국 귀족들이 믿게 만들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은 있다.
옥새가 없어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 지금의 황제가 가짜고, 자신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잘 생각해보면 있을 거다.
“자, 이제 우리가 뭘 할지는 잘 알았겠지.”
카이루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상상에 빠져 있던 필립 4세의 얼굴에서 핏기가 쫙 빠져나간다.
“설마, 설마.”
“설마는 무슨 놈의 설마. 그럼 네가 여기에서 살아나가기라도 할 줄 알았냐?”
카이루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필립 4세를 바라봤다. 살려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필립 4세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도 일레나가 보는 앞에서 죽이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
카이루스는 잠깐 동안, 감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황제의 표정을 바라봤다.
“황궁을 뒤져보면 사진기도 있겠지.”
카이루스는 사진을 찍을 생각이다. 두 장이 필요하다. 대타와 진짜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 한 장.
그리고 진짜를 죽인 다음, 대타와 시체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가서 한번 찾아봐. 이 두 명은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그래, 부탁 좀 하자.”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엉망으로 무너져버린 황궁이지만, 잘 찾아보면 분명 사진기 하나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거다.
한동안 황궁을 돌아다니며 조사하던 카이루스는 마침내 사진기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거면 되겠지.”
사진기를 챙긴 카이루스는 다시금 일레나가 기다리고 있는 지하로 돌아왔다.
“자, 이쪽 보고 웃어.”
카이루스는 두 명의 황제를 나란히 세워둔 채, 사진을 한 방 찍었다.
그리고 이제… 카이루스는 진짜 황제에게 다가갔다. 일레나가 입에 재갈을 물려놓은 상태였기에, 황제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거야.”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나는 거다. 카이루스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황제의 미간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살이 찢어지고, 두개골이 빠개지고, 그 골통 속에 들어있는 연약한 살덩이가 휘저어지는 감각이 그대로 손을 타고 전해진다.
생명이 꺼지는 몸부림을 알 수 있다.
“황제의 죽음이라.”
죽은 시체가 옆으로 쓰러진다. 눈을 크게 뜨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스스로의 끝을 인정하지 못한 채 맞이한 최후였다.
결국 죽음이라는 건 더럽게도 평등해서, 황제의 죽음이라고 해도 한낱 필부의 죽음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
팡! 하고 빛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진기가 죽은 황제의 시신과 대타를 촬영했다. 이걸로 필요한 일은 모두 마쳤다.
필름은 가져가서 나중에 인화하면 즉시 증거로 써먹을 수 있다.
“진짜는 죽었고. 이제 가짜가 진짜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야.”
카이루스의 말에 가짜였던 진짜 황제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한낱 대타로, 황제를 대신해 죽는 것이 운명인 줄 알았던 그에게 어마어마한 대사건이 찾아온 거다.
“동의하지?”
“제가, 여러분의 말을 잘 들으면 언제까지고 황제일 수 있는 거… 맞습니까?”
카이루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네 정체를 밝히는 일은 없을 거다.”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저는 이제부터 필립 4세입니다.”
“좋은 대답이야.”
카이루스는 빠르게 서류를 작성한 다음 새로운 필립 4세에게 내밀었다. 간단한 내용을 담고 있는 서류였다.
오늘, 황궁 지하의 대피소에서 진짜 필립 4세는 죽었고, 죽은 필립 4세가 이전에 준비해두었던 대타가 황제 노릇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서류였다.
“옥새를 찍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서류에 발로른 제국의 옥새가 찍혔다.
이 서류와, 두 명의 황제가 찍힌 사진을 가지고 있는 한 이 새로운 필립 4세는 카이루스와 일레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카이루스와 일레나가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만 할 것이다. 서류를 챙긴 카이루스는 깊게 한 번 숨을 몰아쉬고 대타 황제를 바라봤다.
“대단한 걸 요구할 생각은 없다. 우리를 방해하지 마라.”
발로른 제국을 멋대로 주무르고 싶은 욕구 같은 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게 지금 카이루스의 심정이었다.
“황제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나와 일레나를 추격하는 모든 행위를 중지해. 반년 준다.”
당장 하는 것은 무리라는 걸 카이루스도 잘 알고 있다. 카이루스는 대타 황제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주고, 카이루스와 일레나에 대한 모든 종류의 추적을 완전히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반년.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원하는 결과를 내겠습니다.”
기껏 황제가 되었더니, 다시금 누군가의 아래가 되어버린 상황이었지만, 대타 입장에서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아래에서 일하더라도, 황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좋아. 그럼 남은 건 저 시체 처리인가.”
카이루스는 그 말을 끝으로 죽은 황제의 시체를 향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삽시간에 일어난 바람이 죽은 황제의 시체를 휘감았다.
칼바람이 살을 저며내고 뼈를 바스라뜨렸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필립 4세의 시체였던 것은 이제 다져진 고기가 되어버렸다.
“이러면 아무도 황제의 시체라고 생각할 수 없겠지.”
카이루스가 해야 할 일은 완전히 끝났다. 더 이상 황궁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덴버 허드슨!”
지하 대피소를 빠져나온 카이루스가 호국경의 이름은 크게 외쳤다.
“…뭐냐.”
카이루스는 녀석을 향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내 보러 가야지. 태워주마.”
호국경, 덴버 허드슨이 약간 어색해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죽었으니, 이제 덴버 허드슨의 시간은 다시 흐르는 중이다.
아마, 리리아나 또한 몇 시간 뒤에는 마취에서 깨어날 것이다.
“베넷에 도착하면 배편을 준비해주마. 운하를 통해 다연 대왕국으로 향하면 될 거야.”
“임상시험은….”
카이루스는 척 하고 엄지를 세워보이며 대답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배 타고 운하를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내 쪽에서 다 끝내놓을 테니까.”
덴버 허드슨은 아내와 함께 가서 신약의 임상시험에 참여하면 된다.
“정말로 그 신약이 아내를 치료할 수 있을까?”
“3차 임상시험이야. 약효는 증명된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치료는 되더라도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하는 정도일 것이다.
“어지간히 심각한 부작용은 시술로 해결할 수 있어. 그런 상황이 오면, 필요한 시술 비용도 내가 지불하마.”
카이루스로서도 꽤나 자비로운 처우였다. 하지만 뭐, 그러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덴버 허드슨 또한 황제에게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혔던 것뿐이니까.
‘실력도 제법 있으니, 빚을 살짝 달아주는 것도 좋겠지.’
이렇게 달아둔 빚은 살면서 언제 써먹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고맙다. 잊지 않으마.”
실제로, 덴버 허드슨도 카이루스의 의도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모두 받아둬야 하기에 거절하지 않았다.
“그럼, 함께 날자고.”
카이루스는 일레나와 덴버 허드슨을 동반 한 채 비행해서 베넷 시로 복귀했다.
덴버 허드슨은 리리아나와 재회했다. 다연 대왕국으로 향하는 배편을 마련하고, 필요한 준비를 마치기 전까지는 베넷에 머무를 계획이었고, 운영위원회가 그를 도와주었다.
마침내 모든 일을 마무리 지었다.
카이루스와 일레나, 노라는 일을 마무리 지은 기념으로 거하게 술을 마셨다. 거의 혼절 직전까지 갈 정도로 술을 퍼먹었다.
“크으….”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카이루스는 옆에 헐벗은 채 누워있는 일레나를 확인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정황이, 그냥 둘이 사이좋게 손만 잡고 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일레나, 일어나.”
잠깐 생각을 정리한 카이루스는 일레나를 깨운 다음,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그날 이후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두 사람은 같은 반지를 끼고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