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6
16
“제길! 장기 손상도 심하겠네?”
“아예 짓이겨 놓기는 했는데, 장기 쪽은 많이 피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피는?”
“부족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과다출혈로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맥은?”
“거의 없습니다.”
“장기 쪽 손상이 없다면서?
“충격이 뇌손상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의식회복이 안 됩니다.”
“사망할 것 같아?”
“아직 숨은 붙어있습니다만……”
“이런 제길! 해도 정도껏 해야지, 송장을 가져와서 살려달라고 하면 어떡해!”
약천(藥泉) 수의원(首醫員)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점심을 잘 먹고 들어오는 길이다.
오랜만에 먹은 곰 발바닥 요리는 오늘 하루를 최상의 날로 만들어 주었다.
웅향(熊香)이 아직도 입안을 감돌고 있다.
그런데 오자마자 시신이나 다름없는 자를 살려내란다.
창상을 입은 자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는 종종 있다.
당장 깨어나지 못하고 이틀이나 사흘 만에 깨어나기도 한다. 심한 자는 한 달 만에 눈을 뜬 자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자는 의식이 있다고 본다.
‘의식불명’이라는 말을 쓰기는 해도, 괜찮다고 판단한다.
의원이 말하는 ‘의식회복이 안 된다’란 말은 아예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뜻한다.
이런 자는 육신은 멀쩡해도 죽은 자로 판단한다.
수의원이 신경질을 내는 이유다.
“품질(品質)은?”
“상(上)입니다. 그것도 최상입니다. 군장님께서 직접 손을 쓰신 자이고, 부맹주님께서도 잘 가둬놓으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뭐라고! 누구야!”
수의원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품질이란 말은 그들만이 쓰는 은어(隱語)다.
죽여도 좋은 자 같으면 신경이 한결 덜 쓰인다. 하지만 상이나 지금처럼 최상으로 분류되면 무조건 살려야 한다.
군장이 직접 데려왔단다. 살려야 한다. 부맹주가 잘 가둬놓으라고 직접 말까지 했단다.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한이 있어도 살려야 한다.
아니, 그것보다 두 사람과 죄수 한 명을 연관시키자 당금 청천맹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한 인간이 떠올랐다.
보검을 만든 놈! 천살검인가 뭔가를 만들어 낸 놈!
‘설마 그 놈?’
그가 일부러 점심에 짬을 내서 곰 발바닥 요리를 먹은 것도 오늘이 아주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 잘못 처신하면 일족이 몰살당한다. 그가 좋아하는 곰 발바닥 요리도 영원히 맛보지 못한다. 태연하게,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최선이다.
사람들은 약천에 아무 언질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약천을 이끄는 수의원쯤 되면 청천맹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눈치만 살펴도 알 수 있다.
오늘, 반란이 일어난다.
“네?”
수의원의 다그침에 보고하던 의원이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환자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해과월이라던가……”
“뭐라고! 누구!”
‘그 놈이닷! 이런 제길!’
“해과……”
“지금 어디 있어!”
웅향이고 뭐고 정신이 번쩍 났다.
“지금 어디 있어!”
“제사실(第四室)입니다.”
“뭐해! 빨리 앞장서지 않고!”
그는 의원에게 앞장서라고 소리 질렀지만 사실은 그가 먼저 앞장서서 달려가듯 걷고 있었다.
난감하게 되었다.
약천 의원들은 적어도 성(城) 정도의 도읍에서는 최고라는 명성을 들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손을 대지 못했다.
수의원이 돌아올 때까지 응급처치만 했다.
창상(創傷)이나 자상(刺傷) 같은 것은 누구나 손 댈 수 있는데…… 그럼에도 손을 대지 못했다는 것은 장기의 손상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지금 데려가면 죽는다.
그렇다고 놔둘 수도 없다. 곧 배신자들이 돌아와서 전력을 정비할 게다. 그렇게 되면 빼내고 싶어도 빼내지 못한다.
지금 청천맹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다.
좌(左)냐, 우(右)냐에 따라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날이다. 우라면 가차 없이 죽이고, 좌라면 살아남는다. 그렇다고 좌라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우를 완벽히 죽이지 않으면 편히 잠자지 못한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긴장으로 하루를 보낸다.
지금 청천맹에는 고수가 없다.
무공을 쓸 만한 자들은 죄다 맹주를 죽이기 위해서 몰려나갔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어떻게 죄수를 빼낼 수 있겠는가.
‘하필이면……’
그는 어둠 속에서 눈빛을 반짝였다.
제사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살필 필요가 있다. 그를 빼내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이거……”
“저희가 할 수 있는 한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잘 했어.”
수의원은 급히 환자 곁에 앉아서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약천 의원들이 찢어진 장기를 꿰매 놨다.
그는 봉합되지 않은 부분으로 장기 안에서 새로운 출혈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심장, 간장, 비장……
천만다행으로 주요 장기는 손상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상처라면 약천 의원들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칼을 여러 번 쓰기는 했지만 출혈이 심했을 뿐, 기껏해야 창자 좀 찢겼을 뿐이다.
칼을 쓰지 못하는 자가 칼질을 했다.
만약 무공을 배운 자가 칼을 휘둘렀다면 벌써 절명했을 게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난도질할 필요도 없다. 한 번만, 중요 부위를 한 번만 찔러도 끝난다.
그런데 왜 상처를 봉합하지 않은 것일까?
의식 때문이다. 환자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혹여 자신들이 파악하지 못한 상처가 있을까봐 마저 봉합하지 못하고 지켜보는 중이다.
그가 장기를 살펴본 후, 말했다.
“봉합해.”
“네!”
곁에 늘어서있던 의원들이 재빨리 달려들어 상처를 꿰맸다.
“흐음!”
수의원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고민했다.
이 자를 살려놓을 방법이 없다. 있기는 하지만 너무 위험하다. 자칫하면 즉사한다. 뿐만이 아니다. 약천에 있는 약재 중에서 그래도 쓸 만하다 싶은 약재는 모두 써야 한다.
액수만 해도 황금으로 오십 냥이 넘어서는 거액이다.
이 자에게 그만한 약재를 투여해도 괜찮은 것일까?
부맹주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여유는 없다.
환자가 깨어나지 못하는 것은 피습당할 때의 충격(衝擊)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은 육체적 충격이 워낙 강해서 머리가 잘못 된다. 극히 일부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이어진다.
이런 충격들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그와 흡사한 충격을 가해야 한다.
잘 하면 바로 의식을 회복할 수 있다. 허나 이런 시술이 실패하면 굉장히 오랜 세월을 혼절 상태에서 보내야 한다. 어쩌면 괜히 돈만 쓰고 평생 동안 의식 없는 인간으로 지낼 수도 있다.
‘검군 군장…… 부맹주…… 뇌옥……’
검군 군장과 부맹주만 생각하면 당장 시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 뇌옥에 갇혔던 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과한 치료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천살검을 만든 자라면 아주 중요한 자다. 그런 자가 뇌옥에 갇혔다는 것은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떻게 할까?
‘미치겠네. 점심 잘 먹고 들어와서…… 아!’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이 자가 정말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뇌옥에 가둘 필요도 없다. 벌써 소리 소문 없이 죽였다. 실제로 비오신장의 의문을 죽음을 당했다.
이 자를 데려온 것은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혈황검에 맞설 천살검!
그런 검을 만들 수 있는 자는 이 자밖에 없다.
수의원에게 해과월의 중요성이 새삼 인식되었다.
그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선녀탕 준비해!”
“선녀탕이요!”
옆에 있던 의원이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그래, 선녀탕. 그거라면…… 다른 방법 있어? 있으면 말하고?”
“아니, 그것보다…… 선녀탕이 너무 과하지 않나 싶어서요.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고.”
“이대로 놔둬도 죽어.”
“그렇긴 합니다만……”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하라면 할 것이지!”
수의원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질 나서 죽겠는데!
독섬(毒蟾), 독와(毒蝸), 독질(毒蛭)…… 온갖 독물들이 검은 솥에서 펄펄 끓었다. 인형설삼(人形雪蔘), 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 독각홍사(獨角紅蛇)…… 온갖 영물이 즙액으로 준비되었다.
의원 다섯 명도 준비를 마쳤다.
그들은 금침함(金針函)을 들고 팔에 한 명씩, 다리에 한 명씩, 그리고 머리 쪽에 한 명이 앉았다.
“선녀탕은?”
수의원이 제사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준비됐습니다.”
“쯧!”
수의원이 팔팔 끓고 있는 솥과 준비된 즙액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영약이다.
이것들을 하나로 혼합해서 육신을 안마하면 선녀에게 안긴 듯 포근한 느낌이 든다고 해서 ‘선녀탕’이라고 부른다.
황금 오십 냥!
벼락부자가 되고도 남을 거액이 한 인간에게 투여된다.
‘이놈이 쳐 죽일 놈이라면…… 난 죽는다.’
수의원은 내심 찜찜한 마음을 감추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하수오!”
만년하수오의 즙액이 환자의 입속에 부어졌다.
그 순간, 다섯 명의 의원이 금침함에서 금침을 꺼내 재빨리 혈을 취하기 시작했다.
수의원도 움직였다.
그가 들고 있는 침은 장침(長針)으로 길이가 능히 두 자에 이른다.
푸욱!
장침이 복부에 꽂혔다.
그는 계속 손을 움직여서 장침을 아주 뿌리만 남도록 깊이 찔러 넣었다.
그는 두 번째 침을 취했다.
이번에는 곡침(曲針)으로 반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진 침이다.
“삼(蔘)!”
인형설삼의 즙액이 부어졌다.
스슷! 스스스스!
의원들을 재빨리 금침을 써서 혈을 취했다.
수의원도 곡침을 가슴 부위로 찔러 넣었다. 역시 뿌리만 남도록 깊게.
일차 치료를 끝내는데 한 시진이 걸렸다.
그동안 준비된 영약이 모두 소진되었다.
환자는 고관대작도 평생 한 번만 먹어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영약을 무더기로 복용했다. 뿐만 아니라 백팔경략(百八經略)을 무려 천여 번이나 취했다.
일반적인 의리(醫理)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치료다.
마지막으로 수의원은 세필(細筆)로 팔팔 끓는 독액을 찍어서 각 혈(穴)에 투여했다.
한 방울이면 능히 천 명을 죽일 수 있는 독액의 정화를 모두 투여했다.
복용시키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즉사한다.
약천 의원들은 최종적으로 가운데가 대롱처럼 뻥 뚫린 공침(空針)을 썼다.
수의원은 공침으로 독액을 흘려보냈다.
이런 식으로 투여하면 이미 투여된 영약과 나중에 투여된 독액이 상충하면서 극심한 충격을 일으킨다.
독액은 끊임없이 밀고 들어간다.
영약은 최대한으로 버틴다. 한 방울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연적인 면역력을 형성한다.
원래는 벌모세수(伐毛洗髓)의 일환으로 고안한 방편이다.
벌모세수라면 황금 오십 냥을 투여해도 아깝지 않다. 아니, 정말 벌모세수를 할 수 있다면 황금 백 냥을 내놓는 사람도 부지기수로 있을 것이다.
헌데 이방편은 체내에 너무 과한 충격을 준다.
의식이 멀쩡한 사람에게 시술하면 열 중 아홉은 미친다.
산 사람에게 쓸 수 없는 방편이다.
하지만 덕분에 다른 용도도 알아냈다. 지금 해과월처럼 육체적인 충격 때문에 의식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이방편은 매우 효과적이다.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회복 가능성을 반반으로 본다.
절반은 깨어나고, 절반은 돈만 버린다.
수의원이 말했다.
“앞으로 십이시진 동안은 누구라도 접근시키지 마. 독기든 영약이든 어느 하나라도 흔들리면 목숨이 위험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정도는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철저하게 통제하겠습니다.”
‘앞으로 십이시진…… 꼬박 하루……’
그는 제사실 밖에서 창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배신자들이 들이닥칠 터인데…… 답답하게 되었다.
2
천문성 사마소는 청천맹에 도착하기 무섭게 그의 앞으로 날아온 전서 한 통을 받아들었다.
“뭐냐?”
“검군 군장께서 보내신 전서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문(守門) 위장(衛將)이 현관 입구에서 전서를 내밀었다.
“쯧!”
헛바람이 절로 나왔다.
맹주 암살은 실패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암살이 실패하지 않았다면 전서를 날릴 이유가 없다. 즉시 돌아와서 술판을 거나하게 벌일 터이다.
그는 말을 타고 가면서 전서를 펼쳤다.
역시 예상대로다. 맹주 암살에 실패했고, 현재는 지다성의 안배에 따라 요소요소 목을 지키고 있다는 내용이다.
‘바보들!’
그는 전서를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