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65
165
“술…… 술이나 더 줘.”
“어이구! 많이 취하셨는데……”
점소이는 좀처럼 여인 곁을 떠나지 못했다.
술을 가져다주고 싶다. 더 추하게 만들고 싶다. 몸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마음껏 요리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자신이 술을 가지러 간 사이에 다른 늑대들이 덤벼들 것 같다. 여인의 앞을 비켜서기만 해도 다른 자가……
“비켯! 자식아!”
황소처럼 우람한 사내가 점소이의 목덜미를 잡고 번쩍 들어 올리더니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우당탕! 쾅!
“아이쿠!”
요란한 소란스러움과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흐흐! 소저, 오늘 나하고 코가 삐틀어지도록 마셔봅시다.”
황소만한 사내는 여인과 일행이라도 되는 듯 태연하게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술……”
“아, 술은 여기 있지.”
사내가 술병을 건넸다.
여인은 술병을 받아들더니 잔에 따르지도 않고 병째 들이마셨다.
꿀컥! 꿀컥!
독한 화주(火酒)가 쉴 새 없이 들이부어졌다.
사내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여인을 쳐다봤다. 금방이라도 여인을 덮치고 싶은 욕망이 두 눈에 활활 피어났다.
여인은 예쁘다. 그러나 천하제일미인은 아니다. 기루 같은 곳에서 제일 잘 나간다고 하는 기녀 정도라고 하면 딱 맞을 정도로 적당하게 예쁘다.
여인은 매혹적이다. 온 몸이 매혹덩어리다.
이 점은 다른 여인들과 확실하게 대별된다. 여인에서 시선이 꽂힌 순간부터 어느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이 예쁘게만 보인다.
그녀는 허술하다.
예쁘더라도 정숙한 여인이라면 함부로 근접할 수 없다. 헌데 여인은 예쁘면서도 파락호나 주정뱅이가 쉽게 집적거릴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
‘욕정을 풀고 동전 몇 푼 쥐어주면 되겠군.’
여인은 그렇게 보인다.
점소이마저 욕정을 떠올릴 정도로 가볍게 보인다.
“꺼억!”
술병을 다 비운 여인이 트림을 했다.
“한 병 더 줄까?”
“아니, 이제 취했어. 잘래.”
“자? 크크크! 이 오라비가 부축해줄까?”
“크크! 부축…… 해…… 준다는 핑계…… 로 무슨 짓을 하려고……”
여인은 취한 몸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아니, 그녀의 경계심은 완전히 풀렸다. 이제는 누구라도 손만 뻗으면 취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크크크! 무슨 짓은…… 좋은 짓이지. 크크!”
덩치 큰 사내가 여인을 부축했다.
주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눈이 벌개져서 술 취한 여인을 쳐다본다. 하지만 거구의 사내를 막아서지는 못한다. 인근 일대에서 노산일우(虜山一牛)를 건드릴 정도로 배짱 좋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무뢰배다.
패거리도 있다. 노산파(虜山派)라고 부르는 산도적들이다.
산을 넘는 사람들에게 통행료를 뜯어내고, 타지 사람이라면 알거지를 만들어 버린다.
이 모든 게 천하역사라서 가능하다.
웬만큼 무공을 익혔다는 사람도 그의 주먹을 견뎌내지 못한다. 한두 대 정도는 맞아주면서 무식하게 파고들어 깔아 뭉기는데 당할 재간이 없다.
그럼 검이나 칼로 싸우면 어떤가?
마찬가지다. 그는 무조건 달려든다. 검을 쳐내면 등이나 옆구리로 받아낸다. 그리고 동시에 칼을 쳐댄다.
그는 죽지 않을 만큼 상하고, 상대는 죽는다.
이런 무식한 싸움꾼에게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그런데,
“비켜.”
여인이 나긋나긋한 손으로 거구를 밀어냈다.
“흐흐흐! 늦었어. 넌 이제 내 거야. 어디로 도망가려고 그래.”
사내가 여인의 허리를 억센 팔로 휘어감았다.
여인은 피식 웃었다.
“병신. 죽음이 안 보여?”
“뭐?”
“나 저 자가 마음에 안 들어. 저 자를 죽이고 와. 그럼 네가 하자는 대로 다 해줄게.”
그녀가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방갓을 쓴 사내가 앉아있었다. 술병을 들어서 자그마한 술잔에 한 잔을 따르고 조용히 마신다. 있는 듯 없는 듯 숨도 크게 쉬지 않고 마신다.
하지만 그는 무인이다. 허리에 검을 두 자루나 차고 있다.
“저놈만 죽이면 돼?”
“호호호! 죽이고 난 다음에 이야기 해. 그럼 난 여기 앉아서 구경해도 돼?”
“흐흐흐! 우리 새색시는 얌전히 앉아있으라고. 흐흐! 저런 닭대가리도 비틀 힘이 없는 놈은…… 흐흐흐!
노산일우가 대도(大刀)를 크게 휘둘렀다.
부웅! 부웅!
허공에서 큰바람이 일어났다.
번쩍!
하얀 섬광이 빛살처럼 터졌다.
그 순간, 노산일우의 몸은 거짓말처럼 우뚝 멈춰 섰다. 그가 휘두르던 대도 역시 움직임을 멈췄다.
툭!
평범한 철검에서 핏방울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저벅! 저벅!
방갓을 쓴 사내는 그를 지나쳐서 여인에게로 걸어갔다.
노산일우는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입도 열지 못했다. 그의 영혼은 이미 이승을 떠난 후였다.
쿵!
황소만한 신형이 뒤늦게 나뒹굴었다.
대도를 반으로 잘라버리고, 거구의 몸도 갈라버렸다. 그리고도 핏물이 스며나오지 않는다. 아주 잠깐 동안은. 방갓 사내가 몇 걸음 걸을 동안은.
파앗!
뒤늦게야 노산일우의 몸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몸뚱이가 옆으로 갈리면서 핏물을 한 가마니나 뭉텅이로 쏟아냈다.
“아!”
사람들이 비로소 어찌된 영문인지 사태를 바로 알았다.
방갓 사내는 노산일우 정도가 건드릴 수 없는 초절정고수다. 강아지가 잠자는 호랑이의 수염을 건드렸다. 그것도 아주 살성(煞星)을 건드린 듯 싶다.
쒜에에엑!
방갓 사내의 검의 여인에게 날아갔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여인은 분명히 싸구려다. 아무나 손대면 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여인 스스로 꼬리를 친다. 동전 몇 푼이면 잠 잘 수 있다고 눈웃음을 살살 친다.
그러나 죽는 것은 안타깝다. 싸구려 여인이 분명한데…… 자신에게 안기면 세상의 그 어떤 여인보다도 잘해줄 생각이다. 그럴 수 있다. 지금 있는 아내를 쫓아내고라도 저런 여인과 살고 싶다.
여인이 죽는 것은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
여인은 날카로운 검에 대항하지 않았다.
검이 쳐오는 것을 보면서도 태연히 술병을 들어서 입에 물었다.
술병은 비었다. 아까 거구의 사내와 함께 앉아있으면서 바닥까지 비워버렸다. 그런 병을 입에 물고 방긋 웃는다. 눈웃음 속에서 장미 백 송이가 활짝 피어난다.
“음!”
방갓 사내의 검이 우뚝 멈춰 섰다.
“휴우! 다행이다.”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정작 여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이 제 일처럼 난리들이다. 완전히 여인 편에 서서 일희일비를 느끼는 듯하다.
여인이 말했다.
“나…… 술 한 병만 사줘.”
그녀는 빈 술병을 입에 문 채 빙글빙글 돌렸다.
문득, 맹주의 말을 시험해 보고 싶다.
지금까지 맹주는 틀린 판단을 한 적이 없다. 맹주의 말은 곧 진리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수호자들에게는 판단의 자유가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판단을 했다.
여인은 요염하다. 안고 싶다는 충동이 치민다.
이런 충동은 일종의 최음향(催淫香) 때문에 일어난다. 그녀의 육신에서 발산되는 음기(淫氣)가 무향(無香)의 향(香)으로 변해서 양기를 자극한다.
그녀는 이런 음기를 얼마든지 거둘 수 있다. 헌데 거두지 않는다. 음기 정도는 얼마든지 발산할 수 있다는 듯이 마구마구 뿌리고 다닌다.
사실이 그렇다. 그녀는 평생 음기를 뿌리고 다녀도 남아돌 정도로 많은 음기를 지니고 있다. 정력이 절륜한 사내라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심해(深海)다.
사람들은 그녀만 보면 욕정이 동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사실은 이유가 분명한데, 이유가 없는 듯이 보인다.
이것이 혼천음양마공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진기를 발산해서 상대를 타격하는데, 타격당한 상대는 당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한다.
이러한 타격이 만약 양기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단전 본신진기를 노렸다면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했을 게다.
방갓 사내, 제일검은 여인의 정체를 안다. 여인이 전개하는 공부를 안다. 욕정이 일어나는 근원을 안다. 음기가 침습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견뎌낼 수는 있다.
– 이런 여자 정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미 늦은 것이다. 그때는 아무 생각하지 말고 피해라. 몸을 빼내라.
이런 여자 정도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
그는 수교빈의 맞은편에 앉았다. 검에서 손도 떼었다. 여인이 병기를 집어 드는 것과 자신이 쳐대는 것 중에 누가 빠르겠는가. 그런 정도는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한 병 사주려고?”
“술 한 병 가져와라.”
제일검이 수교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네. 네……”
노산일우에게 던져졌던 점소이가 황급히 줄달음질 쳤다.
노산일우를 거침없이 베어낸 사내,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염라대왕과 한 판 싸우자는 말과도 같지 않을까.
“오늘 한 사람이 죽어야지?”
“죽어야지.”
“누가 죽을 것 같은데?”
“너.”
“당신, 비성검문의 수호자, 맞지?”
“맞다.”
“그 검…… 해과월이 만든 검이야?”
“맞다.”
“봐도 돼?”
제일검은 노산일우를 베어낸 검,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검을 건네주었다.
“좋은 검이네. 날이 아주 잘 섰어. 하지만…… 형편없다. 살기가 없어. 이런 검을 들고 다니면 무시당하기 십상일 거야. 호호호! 아! 이제 알았다. 호호호!”
수교빈이 죽은 노산일우를 쳐다보면서 깔깔 웃었다.
방갓사내의 본래 기질은 매우 날카롭다. 노산일우 정도가 찝쩍거릴 정도로 밋밋하지 않다. 하지만 노산일우는 겁 없이 대들었다.
노산일우의 눈에는 방갓사내가 만만해 보였다.
수교빈이 들고 있는 검, 살기가 없는 검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기가 없는 검인데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죽일 힘이 없는 자와 맞섰는데 무얼 두려워해.
노산일우가 느낀 것이 그것이다.
“이거 나 줘.”
수교빈이 묵직한 철검을 두 손으로 들어서 품에 껴안았다.
“가져라.”
“해과월이 만든 검은 천하명검이라던데 이렇게 줘도 돼?”
“가져라. 지금 쓰면 더 좋고.”
“술 시켰잖아. 술이나 마시고. 그런데…… 해과월이 내 약혼자였다는 건 알아? 그 병신…… 손만 뻗으면 옷고름을 풀어줬을 텐데, 그러지 않았어. 난 항상 내줄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순간, 제일검은 손을 꿈틀거렸다.
수교빈이 말을 하고 있는데, 그의 손이 꿈틀거린다. 그의 손이 수교빈의 옷고름을 풀기 위해서 움직이려고 한다.
‘이런!’
제일검은 당황했다.
음기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기가 뜨겁게 달궈진다. 이미 음기에 중독되었다는 뜻이다. 강렬한 춘약을 복용한 것과 진배없는 상태로 치달리는 중이다.
‘위험해!’
그는 급히 눈을 감았다.
그가 왜 그랬는지 자신도 모른다. 왜 눈을 감았는지. 적을 앞에 두고, 검까지 내주고. 평생 실수란 것을 해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다.
푹!
가슴에 불붙은 검이 꽂혔다. 검이 꽂혔는데, 마치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겁다.
제일검은 눈을 번쩍 떴다.
수교빈이 웃고 있다. 그녀가 살기 없는 검으로 그의 가슴을 찔렀다. 아주 깊게…… 정확히 심장을 꿰뚫었다.
“이…… 런!”
제일검은 탄식했다.
살기 없는 검…… 그 검이 수교빈의 손에 쥐어지자 천하에 다시없는 음병(陰兵)이 되었다. 약간이라도 살기를 느꼈다면 당장 반응했을 텐데, 살기가 없어서 알지 못했다. 아니…… 음기로 휘감긴 무살기의 검이라서 완벽하게 당했다.
눈 뜨고 당한다고 했던가? 상대를 맞은편에 앉혀두고 검을 맞았다. 가슴을 내줬다.
“술은 마시고…… 싸우자면서.”
“죽고 죽이는 마당에 그런 게 어디 있어? 지금 쓰면 더 좋다고 말한 사람이 누군데? 사실은 말이야. 너 복상사할 운명이었어. 내 배위에서 발버둥 치다가…… 양기도 좋아 보이는데…… 쩝!”
그녀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데 이 검, 그놈이 만든 거잖아. 그놈의 손길이 닿은 거잖아. 그래서 써본 거야. 얼마나 잘 만들었나. 잘 만들었네. 당신 같은 사람이 가슴을 내줄 정도라면 지독하게 잘 만들었어.”
제일검은 고개를 툭 떨궜다.
‘맹주의 말이 맞았어. 검을 늦추지 말았거나…… 도망갔어야 해. 인검…… 완성되었다. 인검이 완성되었어. 이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검이야.’
생각이 멈췄다.
영혼이 육신에서 빠져나갔다.
제34장 검령(劍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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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산야에 눈이 내린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눈을 떠보니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다.
“이젠 길까지 끊어졌군. 키키!”
적화자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해과월에게 검 한 자루 얻은 대가는 혹독했다.
백운진인, 일여화상과 힘을 합쳐서 협공을 가했지만, 수혼검사 마출성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는 쫓고 자신들은 쫓겼다.
결국, 인적이 끊긴 산속으로 쫓겨 들어왔다.
하루 온 종일 사람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가을을 보냈다. 그리고 눈이 내린다. 지겹도록 뜨거웠던 여름 햇살이 오히려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