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92
192
수교빈이 시신처럼 반듯하게 누워있는 사내의 가슴에 들꽃 한 송이를 얹어 놨다.
느껴라. 죽음의 전율을.
하루…… 수교빈은 십 리 이상 멀어졌다.
오귀는 귀식대법을 풀고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각기 들꽃 한 송이를 집었다.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곳을 찾아낸 귀신이 놓고 간 꽃이다.
“무엇으로 찾아낸 것인가.”
한 명이 침중하게 말했다.
귀식대법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지운다. 육신의 냄새는 물론이고, 숨결까지 모두 지운다. 어떠한 기운도 흘려내지 않는다. 십리 밖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을 수 있는 고수라고 해도 자신들을 찾을 수 없다.
“암습은 불가하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귀식대법을 찾아온 그녀라면 그 어떤 암습도 무용지물이다. 암습이 아니라 정공을 선택해야 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맹공을 퍼부어야 한다.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군. 오귀합격광살진(五鬼合擊狂殺陣).”
이것도 굳이 입을 열어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미 머릿속에 오귀합격광살진을 떠올리고 있었다.
목숨을 던져서 상대를 죽이는 최후의 절초!
그들은 일어섰다.
수교빈을 멀리 떼어놓을 필요가 없다. 암습이 아닌 정공을 선택한 이상, 자신들을 숨길 필요가 없다.
스스스스스!
그들은 귀신처럼 소리 없는 신법을 펼쳤다.
2
감각(感覺)이라는 말에는 아주 큰 맹점이 있다.
감각은 느끼고 깨닫는다는 말이다. 즉, 외부적인 조건이 있어야만 깨달을 수 있는 무엇도 생긴다. 자극이 생기고 거기에 반응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감각이다.
음양의 조화가 완벽해지면 이런 감각이 본능에 와 닿는다.
의식적으로 어떤 일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 본능이 알아서 지금 현재 가장 집중해야 할 일을 찾아준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런 느낌을 직관(直觀)이라고 하는데, 음양의 조화는 직관을 가장 효율적인 작용으로 끌어올린다.
인검의 직관을 따를 수 있는 빠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감각은 인검의 직관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감지할 때, 인검은 벌써 검을 쳐낸다.
인검은 공기의 흐름을 감지한다.
검이 가장 빠르게 나아갈 길을 직관으로 찾아낸다. 거스름이 없이 순탄하게 쏘아져 가는 길이 열린다. 의식적으로 그런 길을 찾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그런 길로 나아간다.
인검이 할 일은 없다. 인검은 몸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좀 천천히 와도 되는데…… 되게 급했네.”
수교빈은 일화객잔(日華客棧)이라는 현판을 보면서 쓰게 입맛을 다셨다.
객잔 안에 소문주가 있다.
그녀와 약속한 대로 둘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목간통에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기다린다.
뜨거운 정사, 몸이 활활 타오르는 정사……
수교빈은 짜르르 일어나는 전율을 온 몸으로 느꼈다.
남녀 간의 단순한 정사라면 이토록 황홀한 쾌락을 얻지 못할 것이다. 정신이 깊디깊은 수렁에 푹 파묻히는 듯한 함몰감은 오직 음양의 교류에서만 일어난다.
이런 사내를 또 만날 수 있을까?
“후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지만…… 쾌락은 잠시 접어놓는다.
그녀가 객잔으로 들어서려가 말고 몸을 돌려 걸어온다.
“쳇!”
누군가의 입에서 실망스런 탄식이 새어나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속일 수 없다. 귀식대법을 펼쳤는데도 찾아왔다. 하물며 지금은 기식을 모두 드러내놓고 있다. 숨소리도 크고, 체기도 강하게 발산한다.
눈치 못 채기를 기대했다면 도둑놈 심보다.
“그래도 오귀 자존심이 있지. 그냥 죽을 수는 없잖아. 동귀어진(同歸於盡)은 해야 되지 않겠어?”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은데.”
명검, 수교빈의 검을 든 자가 말했다.
“인정사정 보지 말고 찔러. 무조건 찔러.”
“말이라고. 걱정 마.”
“괜히 걱정이 되니 하는 말이다.”
맹주의 검을 전해 받은 자가 말했다.
그들은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는데도 검을 쳐내지 못할까봐 두렵다.
다른 때 같으면 생각하지도 않았을 걱정거리다.
오귀가 어떤 사람인가. 갓 태어난 아기를 부둥켜안고 젖이나 한 번 먹여보자는 여인도 가차 없이 죽였다. 어떤 자는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죽음을 보이기 싫다고. 그래서 아이까지 베어버렸다.
그들은 인정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런 쪽에서 걱정거리가 생긴다.
“네가 화(火), 네가 금방(金方)을 맡아.”
오귀 중 한 명이 명검을 든 두 명에게 말했다.
“아니. 내가 수(水)를 맡지. 앞쪽에서 한 명쯤 죽어도 괜찮아. 이걸로 인검을 시험하고…… 뒤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
맹주의 검을 든 자가 말했다.
오귀합격광살진을 펼치면 수방에 위치한 자가 제일 먼저 접전을 벌여야 한다.
수교빈은 일초 이상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방에 있는 자는 공격과 동시에 절명한다. 제일 뒤에 남는 자가 화방인데…… 사실 그 차이는 눈 한 번 깜짝이는 순간보다도 짧다. 하지만 오귀 정도 되는 검사들에게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긴 시간이다.
“그것도 좋겠군. 그럼 네가 수방, 네가 화방. 자! 가자!”
스스스스슷!
그들이 날렵한 뱀처럼 수풀 속으로 헤쳐 나갔다.
수교빈은 병기가 없다.
그녀에게는 병기가 주어지지 않았다. 오로지 육신만으로 살공에 대처해야 한다. 병기가 있으면 더욱 쉽겠지만, 병기 없이도 이 정도의 난관은 헤쳐내야 한다고 본다.
우우와왁!
빛 한 점이 출현했다.
멀리서 환한 광채가 번득인다 싶었다. 헌데 그 광채는 어느새 한한 태양이 되어서 온 몸을 짓누른다.
“하!”
수교빈은 짧은 교성을 토해냈다.
입술을 살짝 벌리고, 추운 겨울에 입김을 쏟아내듯이 하얀 숨결이 토해졌다. 순간,
“훅!”
환한 광채를 발산하던 검이 움찔거렸다.
이 순간, 수교빈은 꽃 중에 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면서 가장 연약하여 안쓰럽다. 그녀는 인검이 아니다. 누구라도 손만 대면 꺾을 수 있는 가녀린 꽃이다. 굳이 그들이 검을 쓰지 않더라도 곧 비바람에 꺾일……
“줘.”
“뭐, 뭣!”
“검을 줘. 잠시 보고 줄게.”
“너, 너……”
“괜찮아. 줘. 잠시 보고 준다니까.”
첫 번째 검이 막혔다. 그는 인검의 사술에 걸려들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인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지워졌다. 대신, 이 아름다운 선녀와 함께 운우지락을 즐기는 환상이 가득 찼다.
쒜에에엑! 우우웃!
첫 번째 검사가 머뭇거리는 사이, 목방(木方)과 토방(土方)에 위치한 자들이 검을 쳐왔다.
그들이 검을 전개할 즈음, 제일 먼저 검을 쓴 일귀(一鬼)는 죽어있어야 한다. 그의 피가 안개처럼 분사되어서 시야를 피로 가려놓아야 한다.
오귀합격광살진은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정신차렷!”
목방 일귀가 일갈을 내질렀다.
“웃!”
수방 일귀는 곧 정신을 수습했다. 목방과 토방에서 쏘아지는 살기가 너무 신랄해서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면서 수교빈을 쏘아봤다.
일이 잘못되었다. 자신은 이미 죽어 있어야 하는데…… 공격을 중도에서 멈추지 말았어야 하는데……
“요망한!”
“호호호!”
파아아앗!
수방 검사의 혈색이 피 칠을 한듯 새빨갛게 변했다.
혈폭증참공(血爆增斬功)!
그렇다. 수방 검사의 죽음은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본인 스스로 혈맥을 터트려서 죽은 자진공(自盡功)이다.
부서지고 찢어진 살과 뼈가 암기로 화해서 쏘아진다. 하지만 그것으로 수교빈을 제압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혈촉증참공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잠시의 눈가림뿐이다. 수교빈이 잠시 충격을 받아서 인검을 쓰지 못하면 된다. 그것만 해주면 된다.
슈우왁! 파파파팍! 파파파파팍!
그가 들고 있던 검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쏘아졌다.
전신 진기를 모두 검에 싣는다. 검으로 취하는 공격은 이번 한 번 뿐이기에 진기를 아낌없이 싣는다.
수교빈의 코앞에서 잔뜩 웅크린 용수철에 퉁겨진 것처럼 탁 쏘아져 나갔다. 그런데,
슈웃!
그가 쏘아낸 검이 수교빈의 팔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 조금만 더 옆으로 쏘아냈으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이 간발의 차이로 실수한 것이 아니라 수교빈이 그렇게 피한 것이다. 자신이 한 뼘쯤 옆으로 더 쳐냈어도 수교빈은 피해냈을 게다. 역시 간발의 차이로.
“크크크크크!”
그의 입에서 괴소가 터져 나왔다.
탁!
내부에서, 단전에서 실 끊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밖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는 소리였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천둥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울렸다.
우두두둑!
순식간에 피와 살이 뜯겨나갔다. 방향은 전면, 사방으로 비산하는 게 아니다. 오직 전면으로만 쏘아진다. 생명이 끊긴 살과 뼈가 목표로 정한 일점(一點)에만 집중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혈폭공과 다른 점이다.
그 순간, 목방과 토방에서 검을 쳐낸 검사들도 죽음을 준비했다.
스스스스!
토방에서 검을 쳐오던 일귀는 안색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새까만 먹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새까맣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흑색이다.
목방에서 쳐온 자는 육신도 나무가 되었다.
쒜에에엑!
그는 검신일체(劍身一體)가 되어서 날아온다. 두 손으로 검을 꼭 잡고, 육신을 전부 던져서 찔러온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공격을 하든 수교빈은 한 수 위에 있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그녀의 직감이 먼저 알아채고 행동을 취한다.
막말로 하면 그들이 공격을 시작할 즈음, 그녀는 이미 피하고 있다.
뒤로 이보, 옆으로 삼 보.
이 정도의 이동만으로도 혈폭증참공은 피해낸다.
혈무(血霧)가 뿌옇게 피어난다. 안에서 터트린 진기가 수많은 칼날이 되어서 육신을 쪼갠다. 그리고 일점을 향해서 쏘아져 나가게 만든다.
수교빈의 지척에서, 피할 수 없는 거리에서 비침 수십만 개를 응축시킨 암낭(暗囊)이 터졌다.
혈폭증참공의 위력이다.
그러나 수교빈은 이미 직관이 시킨대로 뒤로 이 보, 옆으로 삼 보 정도 물러섰다.
그녀의 직관은 곧바로 그녀의 몸을 움직인다.
밥상 앞에 앉으면 자동적으로 수저를 드는 것처럼, 직관이 들면 무의식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인다.
쒜에에엑!
거대한 폭풍이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러나 그런 폭풍은 계속 이어진다. 목방에서 육신을 내던지며 다가오는 검도 심상치 않다. 일신에 새까맣게 변한 토방 귀신도 주의해야 한다.
‘물러서! 최대한!’
그녀는 정신없이 뒤로 빠졌다.
저들이 다가오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물러섰다.
그녀가 펼치는 신법은 형식이 없다. 일정한 틀이 없다. 아무렇게나 무작위로 보법을 밟는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정신없이 물러서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혼천음양마공을 수련한 자는 자장 자연스러운 보법을 밟는다.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보법이 무엇인지 몸이 말해주고 있다.
쒜에엑! 쒜에에엑!
쫓고 쫓겼다. 공격해 오고 물러섰다.
드디어 결사(決死)!
금방과 화방에 있던 귀신들이 신형을 쏘아냈다.
그들은 은밀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버젓이 몸을 드러낸 채 서있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수교빈이 물러서느라고 바쁜 사이에 스르륵 땅 속으로 녹아들었다.
스읏!
물러서던 수교빈이 수방 일귀가 쏘아낸 검을 집었다.
마침 그녀가 물러선 곳에 검이 있었다. 있었다? 아닐 것이다. 우연히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검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인 움직임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벤다!’
촤아아악!
그녀는 제일 먼저 목방에서 다가오는 자를 베어냈다.
검이 목방 일귀에게 향한다. 그의 검을 잘라내고, 두 팔을 잘라내고, 이어서 목을 쳐낸다. 머리를 떨궈낸다.
일초삼식(一招三式)이 순식간에 터졌다.
목방 일귀가 일초를 전개하는 동안, 그녀는 무려 삼초나 전개했다. 아니, 얼굴이 시커멓게 변한 토방 일귀를 향해서 몸을 돌린 것까지 셈하면 사식이나 전개한 셈이다.
그녀는 이렇게 빠르지 않았다. 음살문이 자랑하는 오귀가 이토록 약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수교빈과 오귀가 만나자, 한 사람은 무척 강해졌고 오귀는 약해졌다.
“허허허허!”
그는 눈빛을 번뜩이면서 웃었다.
인검의 무서움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겠다.
인검은 사술이다. 사람의 정신을 미혹시킨다. 특히 사내에게는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으로 작용한다.
이것이 첫 번째 무서움이다.
오귀의 광살진은 여기서부터 틀어졌다. 수방 일귀가 제대로 죽긴 죽었는데, 혈무를 쏘아내는 시간이 약간 늦어졌다. 예상치 못한 망설임 때문이다.
그것이 목방의 목상검(木像劍)을 무력화시켰다. 토방의 흑멸참독검(黑滅慘毒劍)도 위력이 오 할 이하로 떨어졌다. 제대로 광살진이 전개되었다면 훨씬 위력적이었을 독검이 한낱 잔재주 정도로 몰락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