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223
223
푸욱!
살을 찢는 파육음이 터져나왔다.
3
주한극이 죽었다. 마출성도 죽었다.
하루아침에 무림을 좌지우지하던 두 맹주가 차디찬 주검이 되어서 나뒹군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두 맹주를 일시에 죽인 사람이 누구인가!
인검을 아는 사람들은 당혹스러웠다. 인검이 그토록 강했던가. 이제는 어떻게 하지? 그녀가 염사검까지 취했으니…… 살검이 드리워지면 죽는 수밖에 없는 건가?
인검을 모르는 사람들도 당혹스러웠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도대체 누가 절대 강자 두 사람을 한 자리에서 죽일 수 있는 거야?
인검을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불안감이 깊이 파고드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비성검문은 어떻게 할 거요?”
얼굴빛이 납처럼 창백한 사내가 물었다.
“무림에 맡겨야죠.”
운벽슬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무림이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소?”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
운벽슬이 뒤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미행을 당하고 있다. 아니, 그들이 스스로 자청해서 일부러 미행을 붙였다.
청천맹의 비망이 따라붙었다.
음살문 쪽도 비성검문 쪽도 아닌, 오로지 청천맹만 추종하는 순수 비망이다.
개방도도 따라붙었다.
그 역시 개방주가 직접 추려내서 보내온 자이니 믿어도 좋다.
그들 십여 명이 은밀하게 뒤를 쫓아온다. 목적은 단 하나, 청천맹 오웅이 정말로 음살문을 몰락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 자신들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웅이 나섰는데도 음살문이 건재하면 중원 무림은 힘을 잃는다.
역시 음살문!
그들은 저항하기 보다는 보고도 못 본 척 눈을 돌리는 쪽을 택할 게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허나 음살문이 몰락한다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땅에 떨어져서 찾아볼 수 없었던 무림정기가 되살아난다. 모두가 검을 들고 일어선다.
운벽슬이 비성검문을 무림에 맡기자는 뜻이 바로 그것이다.
비성검문을 추종하는 무리는 이미 드러났다. 자신들 스스로 정체를 드러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림이 그들을 징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림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한다. 소림사나 무당파 같은 무림 태산북두조차도 손을 대지 못한다.
비성검문이 주는 압박은 그토록 뿌리가 깊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오웅이 그런 뿌리를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는 용기를 주어야 한다. 비성검문과 더불어서 무림을 쥐락펴락 하던 음살문을 몰락시킴으로써 힘과 용기를 주어야 한다.
쳐라! 칠 수 있다! 쳐도 된다!
“그러나 저러나 저놈들…… 경계도 하지 않는군.”
진룡대주의 눈에서 살광을 뿜어내며 말했다.
주한극이 건네준 지도는 정확했다.
그들이 굽어보는 곳에 작은 촌락이 있다. 음살문의 본단이라고 추정되는 곳이다.
겨우 십여 호에 불과한 조그만 마을이다.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은 있다.
사람들 눈에는 조용하기만한 마을이지만 그들 눈에는 도산검림(刀山劍林)처럼 위험해 보인다.
저 마을에 발을 내딛는 순간, 어느 구석에서 날아왔는지 모를 칼날에 목숨을 잃을 게다. 저항 한 번 변변히 못해보고 맥없이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만큼 위험한 마을이다.
“제반 시설은 지하에 있어요.”
운벽슬이 차분히 설명해 나갔다.
“입구는 저기 다섯 번째 초가(草家), 마당에 평상이 놓인 집이 입구에요.”
운벽슬이 손가락으로 초가를 가리켰다.
“음!”
오웅은 그녀가 가리킨 집을 눈으로 확인했다.
길을 오면서 벌써 수십 번도 더 들었던 말이다. 마을 한 가운데, 오른쪽에 있는 도로로부터 다섯 번째에 위치한 초가가 음살문 본단으로 통하는 입구다.
저 집 안방에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
지하는 무려 이천여 평에 이르고, 거주하는 인원도 오백여 명을 웃돈다고 한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같이 고수들이다.
그들 중 어느 누구를 붙잡고 싸워도 청천맹 오웅보다 부족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오웅이 저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다.
“후후! 너만 믿는다.”
얼굴이 창백한 자가 허리춤에 두른 작은 쇳덩이를 툭툭 쳤다.
검군 군장 탁좌량이 실종된 후부터 실질적으로 검군을 이끌고 있는 부군장이다.
그의 얼굴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깃들어 있지 않다.
죽음…… 그런 것은 청천맹 오웅 앞에 들이밀게 못된다. 모두들 죽음 앞에 서본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인검은 어찌할 셈이냐?”
혈랑도객 도주가 물었다.
“글쎄요.”
운벽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때 같으면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해과월을 믿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가 만수의 일초로 인검을 쫓아낸 적이 있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허나 이번에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겠다.
인검이 변했다.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두 배, 세 배 강해졌다. 아니, 열 배 이상 강해진 것 같다.
그녀는 주한극을 죽였다. 마출성도 죽였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소문주를 죽였다는 대목에서 ‘일이 틀어졌다!’하는 불길함을 느꼈다.
인검은 소문주를 죽여서는 안 된다. 소문주의 통제 하에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소문주를 제압함으로써 인검을 제압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인검이 소문주까지 죽였다면…… 눈에 거슬리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다면…… 대책이 없다. 당금 무림에서 그녀보다 강한 자가 어디 있는가.
해과월? 천만에!
만수의 일초가 아무리 뛰어나도 염사검까지 움켜쥔 인검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녀는 대답할 수 없다. 어떤 대답도 생각나지 않는다.
“대책이 없는 게냐?”
도주가 다그쳤다.
“글쎄요. 그건 사마소가 알아서 해야겠죠. 저도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것 같으니까요. 도주님, 산 사람 일은 산 사람에게 맡기는 게 어때요?”
운벽슬이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남은 일은 산 자들의 몫이다. 죽은 자가 남은 일에 대해서 무얼 그리 걱정하는가.
“산 사람은 산 사람에게…… 후후! 좋은 말이군.”
스릉!
도주가 검을 뽑았다.
슈웃! 슈우웃!
열 명이 앞장서서 달려나갔다.
그들은 화려하게 느껴질 정도로 깨끗한 백의를 입었고, 허리에는 검을 찼다.
“웬 놈들이냐! 응? 검군? 검군이!”
십여 명의 사내들이 앞을 가로막아 섰다.
음살문은 여인으로 구성된 문파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사내의 필요성도 느꼈다. 무림의 대소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여인보다는 사내가 움직이기 편했다.
그래서 사내도 받아들였다.
사내를 음살문도로 받아들였고, 그들에게 음살문의 절기를 가르쳐주었다.
단, 사내는 지하 본단으로 들어서지 못한다.
특별하게 허락을 받지 않는 한, 지상 초가까지 근접하는 게 가장 가까이 다가선 것이다.
“비켯!”
철컹! 쒜에엑! 쒜엑!
검군 무인들이 치달리면서 검을 뽑았다.
“어? 하하! 저것들이 미쳤나?”
“이것들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음살문도들은 검군 무인들을 비웃었다. 무림에서는 모두가 알아주는 검군 무인들이지만, 그들 눈에는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처럼 보였다.
“뭐야?”
“이놈들만 온 것 같진 않은데?”
여기저기서 사내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들은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다. 급습한 자가 십여 명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챘으면서도 긴장하지 않았다.
달려들면 받아친다!
그들에게는 그만한 무공이 있었다. 지하로 들어서지 못하는 사내들이지만 그래도 청천맹 무인들 정도는 상대할 수 있는 무공 정도는 구비했다.
“오늘 피 맛 좀 보겠는데. 하하!”
“그런데 이놈들, 여긴 어떻게 안 거야?”
“비성검문이 슬쩍 내준 정보를 날름 받아먹었겠지.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하하하!”
그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검을 뽑았다.
스읏! 츠츠츠츳!
그들이 움직이자 사방에 검벽(劍壁)이 쳐졌다.
단지 검을 뽑고 몇 걸음씩 움직였을 뿐인데, 검으로 벽을 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저들의 무공에 경탄을 보낸다. 한낱 수문 무인에 불과한데도 이만한 신위를 보인데 감탄한다. 하지만…… 검군 무인들은 달리면서 양손가락에 걸어놓은 실을 잡아당겼다.
스읏! 턱! 턱!
실은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작은 사발에 이어져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은 사발에 꽂혀 있는 쇠뚜껑, 쇠로 만든 판막(瓣膜)과 연결되어 있다.
판막이 뽑혀 나왔다. 불안정한 뇌섬력이 마구 뒤엉켰다.
꽈앙!
작은 사발들 이십여 개가 동시에 폭발을 일으켰다. 마치 용광로가 터지듯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쳤다.
비명은 없다.
산 자들의 비명을 폭음에 묻혀서 들리지 않는다.
뇌섬력의 폭발력은 방원 십 장을 초토화시킨다. 개미조차 살아있지 못하게 만든다.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너무도 찰나적이라서 감지조차 못한다.
“다음!”
쒜엑! 쒜에엑!
검군 무인 열 명이 즉시 튀어나와 치달렸다.
이번에는 그들을 막는 사람이 없다. 검군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함부로 달려들지 못한다.
“활! 활을 쏴라!”
그들의 대응은 빨랐지만, 그에 대한 대비책이 이미 세워져 있었다.
“비산!”
검군 열 명이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꽝! 꽈아앙!
조그만 산곡이 지진이라도 만난 것처럼 흔들렸다.
‘됐어,’
운벽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군과 진룡대가 전면을 뚫고 있다. 그들의 희생은 벌써 일흔 명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초가 바로 앞까지 바싹 다가섰다.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보였던 산곡 마을…… 실은 처음 느낌 그대로 도산검림이었다. 나무 위, 바위 뒤, 땅 속…… 온갖 곳에 무인이 숨어있었다.
갑자기 발밑에서 칼이 불쑥 튀어나온다. 힘껏 달리던 발목을 싹둑 잘라버린다. 머리 위에서 창이 내리꽂힌 적도 있다. 진룡대 무인이라면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그런 무인이 꼬치가 되어서 즉사하고 말았다.
물론 그들은 그냥 죽지 않았다.
꽈앙! 꽝!
사방에서 연신 폭음이 울린다.
그들이 잡고 있는 것은 병기가 아니다. 도검이 아니다. 여인들이나 만지작거린다는 실이다. 양쪽 엄지손가락에 실을 묶어 놓고 힘껏 위로 쳐들기만 하면 판막이 빠져나온다.
그들은 불의의 습격에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에도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놀린다.
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이럴 것에 대비해서 혈랑도객이 뒤로 돌아갔다.
뒷산을 지키던 무인들까지 모두 빠져나온 자리…… 혈랑도객이 그 자리를 은밀히 뚫고 들어선다.
‘이백 정도……’
초가 안에 있는 밀실 통로로 이백 명 정도가 뛰어 들 게다.
그 중에 쉰 명 정도는 통로에서 죽을 것이고, 또 쉰 명 정도는 통로를 벗어나자마자 죽을 것이다.
허나 결국 저들은 들어선다. 백 명 남짓한 무인들이 음살문의 본거지로 들어선다.
군사의 안목으로 봤을 때, 승부는 끝났다.
“휴우!”
마지막까지 방심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저항이 훨씬 심할 줄 알았는데…… 무림을 좌지우지하는 음살문이라면 훨씬 더……
문득! 운벽슬은 생각을 그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느낌이 뒷덜미를 어루만진다. 무엇인가 기뿐 나쁜 느낌은 전신을 옭아든다.
등 뒤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다.
우선 이동식 침상에 누워있는 늙은 노인들이 보인다. 상체를 절반쯤 일으켜 세우고 자신을 쳐다보는 여덟 명의 늙은이.
‘뇌…… 련신?’
그녀는 전설상의 사람들을 생각해 냈다.
지상에서 가장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태어났으나 그 대가로 신체의 자유를 잃은 사람들.
‘뇌련신, 뇌련신이 맞아! 그럼 이 자들은!’
음살문을 이끄는 여덟 명의 장로, 팔정로다.
노인들 뒤에는 여인들이 서 있다. 그 수는 정확하게 열두 명이다. 날카로움도 강함도 드러내지 않지만 묵직한 위엄이 풍긴다.
상당한 권력을 휘둘러 본 여인들이다.
‘십이성! 팔정로와 십이성! 이들…… 음살문의 우두머리들! 모조리…… 살았어. 이미 모두…… 빠져나와 버렸어.’
그녀는 절망스런 눈길로 산곡을 쳐다봤다.
꽝! 꽈앙! 꽈아아앙!
청천맹 무인들이 음살문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혈랑도객은 이미 초가 안에 있는 지하통로로 뛰쳐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무인들이 줄줄이 따라서 들어가고 있다.
오늘, 음살문은 무너진다. 산산조각난다. 음살문을 이끄는 십이성과 팔정로만 제외하고.
‘아! 이 사람들…… 알고 있었어. 청천맹이 급습한다는 사실을.’
운벽슬은 웃었다.
“멋진 금선탈각(金蟬脫殼)이군요. 껍데기를 내놓고 알맹이는 숨을 생각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