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224
224
“후후후! 아무래도 그래야 되지 않겠나. 인검이 잘못 만들어졌으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잠시 숨을 돌리는 것도 좋겠지.”
침상에 누워있는 노인이 말했다.
“그럼 제가 울고 싶은 아이의 뺨을 때린 건가요?”
“후후후! 이쯤에서 누가 공격 좀 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네. 비성검문도 좋고, 청천맹도 좋고. 아무래도 성격이 급한 네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리고…… 어른들에게 아이라는 표현은 좋지 않군.”
“인검을 다시 만들 건가요?”
“혼천음양마공은 우리에게 있고, 세상을 뒤져보면 요마상은 또 나올 거고.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생기지 않겠나. 허허! 그게 세상 이치지.”
“인검은…… 인검은 저대로 놔둘 건가요?”
“무림이 알아서 하겠지. 그것도 세상이치. 자, 가세들. 문주님이 기다리시겠네.”
팔정로가 뒤에 늘어선 여인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여인들이 팔정로의 이동식 침대를 들어올렸다. 아주 가볍게. 그리고 바람처럼 신형을 쏘아냈다.
그 중에 한 여인, 그녀는 검을 뽑은 채 운벽슬에게 다가섰다.
운벽슬은 그녀의 무위를 알아봤다. 능히 마출성에 견줄 수 있는 뛰어난 무공의 소유자다. 그녀가 지위가 십이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마출성보다 강하면 강했지 못하지는 않는다.
‘저항은…… 추잡해.’
운벽슬은 눈을 감았다.
4
수교빈이 인검이었을 때,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감각적인 살인을 했다.
기(氣)를 운용하는 모든 무공이 그녀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상대가 운기를 할 때, 그녀는 상대의 몸에서 일어나는 운기 변화를 알아차린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공격의 변화를 예상해 냈고, 그에 가장 적합한 대응을 할 수 있다.
그녀는 무적이다.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무공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그 대답은 음양의 완벽한 조화 속에 있다.
세상은 음양의 조화가 완벽하지 않다.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모든 물체들은 음양을 모두 갖추고 있다. 여인도 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난폭한 사내도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 여인은 음의 기운이 짙고, 사내는 양의 기운이 강하다.
이렇게 불균형한 현상이 자연스럽다.
마치 칼로 썬 듯 음양의 기운을 완벽하게 절반씩 가지고 있는 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존재를 혼천음양마공이 만든 것이다.
완벽한 균형,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완벽한 균형은 흐름을 잃어버린다. 흐르지 않는다. 양쪽이 팽팽하게 맞서기 때문에 움직이려야 움직일 수 없다.
수교빈의 체내에 잠복된 두 개의 기운은 서로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팽팽하게 견제한다. 또한 그런 이유로 티끌만한 기운이 밀려와도 세심하게 알아챈다.
반면에 상대는 음양의 기운이 조화롭지 않다. 즉, 움직임이 심하다. 그런 사람이 운기를 시작하면, 거센 풍랑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런 흐름쯤은 눈감고도 알아챈다.
사람 중에 인검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녀는 염사검까지 취했다.
그녀 자신만으로도 완벽한데, 검령의 기운까지 빌리고 있다.
검령과 인검이 서로를 상잔하면 좋으련만, 그 둘은 찰떡궁합처럼 아주 잘 어울린다.
원래 검령의 기운은 무기(無氣)다.
검을 쥔 사람이 혈기(血氣)를 띄기 때문에 잔혹한 혈검으로 보인 것뿐이다.
수교빈이 염사검을 들자, 염사검은 오직 죽음만 몰고 다니는 사검이 되었다. 피는 중요하지 않다. 살인 방법도 큰 의미가 없다. 목숨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
수교빈은 가장 빠른 검초를 구사한다.
사람을 죽이면서 시간을 오래 끌지 않는다. 검을 쓰는 것과 동시에 죽음을 일으킨다.
그녀는 생명의 흐름을 정지시키는 작업에만 쾌감을 느낀다.
인검에서 벗어난 수교빈은 오직 생명을 멸살시키는 지옥의 파괴자일뿐이다.
사락! 사락! 사락!
그녀가 숲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만 신경 쓴다. 옷자락이 나뭇가지에 걸려서 찢어졌지만 일체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을 터인데, 피하지 않는다.
옷이 찢어지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도 있군.”
귀사령주가 중얼거렸다.
그들은 인검을 본 적이 있다. 해과월과 삼장로는 손속을 마주쳐보기도 했다.
그때의 수교빈은 파와 살이 흐르는 인간이었다.
지금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모습만 취하고 있을 뿐, 도저히 인간다운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키키! 주책이지. 이 나이가 되고도 아직 호승심이 남아있네. 저 괴물을 보자마자 온 몸이 덜덜 떨려오는데?”
적화자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모두들 강한 호승심을 보이고 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수교빈과 한 바탕 어울리고 싶다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하지만 마음만 그럴 뿐이다. 현실적으로 그들은 절망을 감지했다. 상대가 너무 강하다. 그들 같은 사람들이 절망감을 느낄 정도로 강하다.
그녀는 주한극을 죽였다. 마출성도 죽였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검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져서 돌아왔다.
“막지마세요.”
해과월이 말했다.
“그래도 시작은 해야 할 거 아닌가.”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백운진인이 검을 들면서 말했다.
“잘못 생각했습니다. 인검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 같군요. 멈추라고 해. 모두 죽을 뿐이야.”
뒷말은 비비에게 한 말이다.
수교빈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마흔두 명의 기무령이 그녀들을 막으려고 한다.
물론 승산은 없다.
죽을힘을 다해서 검진을 수련했다. 이 정도면 인검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런 자부심은 수교빈을 보는 순간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단지 느낌에 불과하지만…… 수교빈을 상대할 수 있는 검은 없다.
“진인의 말이 맞아요. 누구든 시작해야 하잖아요.”
“그 시작, 내가 먼저 하지.”
해과월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비비가 해과월의 손을 살며시 쥐면서 말했다.
홍화문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서 수교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물론 해과월이다. 해과월만큼 그녀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도 없다.
그 다음은 비비, 그녀 자신이다.
그녀는 수교빈 손에 잡혀서 모진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더불어서 그녀가 어떤 식으로 사내들 이끌어 들여서 죽음으로 밀어 넣는지도 보아왔다.
수교빈에게는 사내들이 거역하지 못할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얼굴이 예뻐서 그런 게 아니다. 몸매가 천하제일도 아니다. 수교빈은 발정 난 수컷이 암컷에게 달려드는 그런 종류의 매력을 풍겨낸다. 그렇기에 거부할 수 없다.
그런데 차라리 그때가 좋았다.
지금의 수교빈은 살아있지 않다. 걸어 다니는 시신이다. 두 눈을 뜨고 있고, 입가에 섬뜩한 웃음을 매달고 있지만, 누가 봐도 죽은 사람처럼 보인다.
해과월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아.”
“나도 눈이 있어요. 괜찮지 않아요. 우리 같이 하면 안 돼요?”
“안 돼.”
“왜요?”
“당신은 상대가 안 돼.”
“뭐가요? 뭐가 상대가 안 돼요? 제가요? 그럼 가가는 상대가 되고요? 제 눈에는 모두 다 상대가 안 되는 사람들로만 보여요. 저도 눈이 있다고요.”
그녀의 말은 맞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홍화문에 모인 사람들이 일심으로 합공을 취해도 수교빈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한다. 수교빈에게는 홍화문에 모인 사람들이 허수아비처럼 보일 것이다.
그녀는 허점이 없다. 반면에 홍화문 사람들은 허점이 많다.
홍화문 사람들도 수교빈이 없을 때는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나자 단번에 허점들을 드러낸다. 그녀가 너무 완벽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미진한 구석을 드러내는 것이다.
누구라도 안다. 모두가 부족하다는 것을.
해과월이 비비의 꽉 잡은 손을 풀었다.
“난 지지 않아.”
“그러니까 같이 해요.”
비비가 고집을 피웠다.
이럴 때, 비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녀가 목숨을 내놓고 부리는 고집은 하늘도 막지 못한다.
다른 때 같으면 비비의 말을 받아들였을 게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그녀와 같이 가면 오히려 좋지 않다. 이쪽 힘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좋지 않다.
이쪽은 지금의 상태…… 어느 정도 약한 상태가 좋다.
해과월은 비비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다짐하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 세상은 완전하지 않아. 불완전해. 그래서 살만 한 거야. 후후후! 완벽해지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결코 완벽할 수 없어. 그게 사람이고, 세상이야. 내가 완벽한 것 같아?”
“아뇨. 부족해 보여요.”
해과월은 완벽했다. 그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사람이다. 하지만 수교빈이 앞에서는 부족해 보인다. 그가 만수의 일초라는 절학을 지녔지만 그것조차도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난 사람이야. 지금도 완벽해 지려고 노력하는.”
“그래서 같이 하자는 거 아녜요.”
“같이 해도 부족해. 이 세상은 결코 완벽한 사람을 만들 수 없어. 완벽한 것은 이 세상의 순리가 아냐.”
“……”
비비는 해과월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해과월조차도 설명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은 알아챘다. 그래서 꽉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뺐다.
“내가 이기면 같이 저녁 먹자. 내가 지면 따라올 거잖아? 우리에겐 그것밖에 선택이 없는 것 같은데.”
“푸훗! 그렇네요.”
그렇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비비는 손을 놓으며 말했다.
“잘 다녀와요. 우리 맛있게 저녁 먹어요.”
수교빈이 걸어온다.
그녀는 서둘지 않는다. 침착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마치 고양이가 다 잡아 놓은 쥐를 놀리듯이 여유 있게 걸어온다.
해과월은 숲이 끝나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를 기다렸다.
숲에서 싸우기는 싫다. 맑은 하늘 아래서, 탁 트인 공간에서, 훨훨 나는 나비처럼 즐기고 싶다.
그는 수교빈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하늘이 참 맑군.’
오늘 따라 하늘이 무척 청명하다.
그의 마음도 맑다. 비비가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입술을 삐죽 내밀겠지만, 정말로 이번 싸움이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
수교빈은 죽음이다.
그녀가 내딛는 걸음걸이 속에 죽음이 담겨있다.
지금이 바로 생사절명의 순간이 아닌가. 모든 신경을 수교빈에게 집중해야 하지 않는가.
그는 그녀를 잊었다.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수교빈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만수 해달막이 생각났다.
정말 이상하게도 이미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던 사람이 떠올랐다. 만수의 일초가 떠오른게 아니라 만수 해달막이라는 인간이, 사람이 생각났다.
만수가 망치를 든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햇볕이 스며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암흑의 도(道)를 깨우쳤다.
그 순간, 그는 완전했다.
수교빈이 인간 중에서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천인(天人)이라면 암흑의 도를 깨닫는 순간의 만수 해달막도 천인이었다.
만수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음양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뤘다. 태극을 이뤘다. 태극을 넘어서 무극까지 이뤄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치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대로 떠났어야 한다.
아무 것도 남겨놓지 말고, 깨달은 상태 그대로 이 세상을 등졌어야 한다. 그랬다면 그는 천인의 상태로 우화등선(羽化登仙) 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만수의 일초는 전해지지 않았을 테지만.
만수는 떠나지 못했다. 그가 터득한 것을 후세에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혼신을 다해 망치를 들어올렸다.
그때 그는 천인에서 인간으로 떨어진다.
심득을 남기고자 하는 노력이 어처구니없게도 완벽했던 그를 불완전한 인간으로 전락시켰다.
무엇을 남기고 하는가? 체득한 것이다. 왜 남기고자 하는가? 후인이 깨달으라고. 왜? 그냥 가면 안 되는 거였나? 후인이 만수의 일초를 배워서 뭐하라고?
욕심!
아주 작은, 또는 아주 만수의 전부였다고 할 수도 있는 욕심이 끼어들었다.
만수의 일초 속에는 만수의 심득과 더불어서 그가 남긴 욕심까지도 가미되어 있었다.
자신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본 것은 그것이다.
만수의 일초만 본 것이 아니다. 그것과 더불어서 만수의 욕심도 승계 받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 때,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는 욕심이 버려진다.
수교빈을 봤을 때에서야, 그녀가 이룬 완벽한 죽음을 보고 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하는 입장이 되고서야 비로소 한 가닥 남은 욕심을 버릴 수 있었다.
그것은 삶에 대한 미련이다.
머릿속으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온 몸, 온 마음으로 버려야 한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그게 정상이다. 완벽하게 보일 망정 정말로 완벽한 사람은 없다.